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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와 이비연은 블랙홀 발생 직전에 오버마인드의 항성계를 탈출, 정보세계에서 구세록의 힘으로 상황을 관측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분쇄되고 있네.”
이비연이 혀를 내둘렀다.
처음 용우가 만들어낸 블랙홀의 지름은 고작 1킬로미터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수백억 개체의 오버마인드 단말과 소행성, 그리고 행성까지 집어삼키면서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었다.
저 항성계에 존재하던, 1,373억 개체를 넘었던 오버마인드 단말은 순식간에 1,100억 개체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저대로 가면 단번에 700억 미만까지 떨어질 것이다.
“행성을 잡아먹는 선에서 블랙홀이 더 확장되지 못하고 안정되겠지. 그다음에는 블랙홀의 증발을 가속시켜서…….”
용우가 중얼거릴 때였다.
“음?”
갑자기 오버마인드 단말이 소멸하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설마, 저놈…….”
용우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발생, 오버마인드의 군세를 감싸고 블랙홀의 초고중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지금 저거, 염동력으로 블랙홀을 막고 있는 거야?”
이비연이 입을 쩍 벌렸다.
고차원적인 권능을 갖지 못한 오버마인드는 블랙홀을 막아내기 위해 말도 안 되게 무식한 방법을 선택했다.
저 항성계에 존재하는 단말뿐만 아니라 다른 항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단말의 힘을 하나로 모아서 발한 염동력으로 블랙홀의 초고중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마력을 가진 2,500억 개체가 연동하면 저럴 수도 있는 건가. 와, 이거 진짜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는데? 감당 못 할 한방을 기습으로 던져줬기에 망정이지…….”
행성을 집어삼키며 확장하던 블랙홀이, 오버마인드의 염동력에 찢겨 나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별을 찢어발기는 완력이 아닌가?
“지금 좀 아프게 만들어놔야겠어.”
오버마인드는 모든 힘을 블랙홀을 중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블랙홀을 해체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블랙홀을 해체하는 순간, 그 안에 갇혀 있던 에너지가 해방되는데 이것은 작은 신성(新星) 폭발과도 같다.
그 폭발에 몰살당하지 않으려면 오버마인드는 염동력을 한계까지 쥐어 짜내야 할 터.
“전력을 다해서 하나 막고 있는데…….”
즉 지금의 오버마인드는 외부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하나 더 늘어나면 어떨까?”
용우가 오버마인드가 블랙홀을 막고 있는 항성계에서 16만 광년 떨어진 항성계에 나타났다.
오버마인드의 또 다른 근거지 항성계였다.
-공허의 입!
수백억 개체의 오버마인드 단말이 빼곡히 표면을 덮고 있는 행성의 지표에서 불과 1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작은 블랙홀이 발생했다.
용우가 스펠로 일으킨 폭발 에너지에 이 항성계의 위성들을 부숴서 집결시키고, 거기에 소행성들까지 던져 넣어 발생시킨 블랙홀이 오버마인드를 급습했다.
<이, 이런……!>
오버마인드는 첫 번째 블랙홀을 해체하고, 그로 인한 폭발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켜서 항성계 밖으로 날려 보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우가 그 틈을 찔러 다른 항성계의 물질을 그러모아 두 번째 블랙홀을 만들어낸 것이다.
“말했잖아.”
용우는 곧바로 항성계를 이탈하며 말했다.
“내가 너의 코즈믹 호러가 되어주겠다고.”
<너는, 대체 무엇이, 냐……?>
오버마인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가 본 우주의 그 어떤 존재도 이토록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오버마인드는 한 가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느끼는, 절박한 공포였다.
“너희들을 관측한 놈들이 도달하고 싶었던 존재라고 할까?”
<지구인일 리가 없다. 각각 독립된 개체인 지구인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어……!>
“내가 지구인이 아니면 뭘로 보이냐?”
<우리가 모르는 외계 존재… 아니…….>
오버마인드는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용우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했다. 그 호기심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지성의 상실을 막는 방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알겠다. 네 정체를!>
“내 정체를 알겠다고? 뭐라고 생각하는데?”
<신(神)!>
“뭐?”
<네가 바로 인류가 그토록 갈구한 신이라는 존재로구나.>
“…….”
용우는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구 인류는 모두가 신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믿고 있었지. 종교, 신화, 픽션… 수없이 많은 형태로 신의 존재를 그리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주장이 있을 뿐 실존이 증명된 바는 없었다.>
오버마인드는 그 사실을 흥미로우면서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야말로 지구 인류가 갈망하던 신이라는 이미지에 합치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지.>
그리고 자신들과의 융합이야말로 인간이 바라는 ‘신의 품에 안기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군? 하긴 꿈보다 해몽이지.”
원래 신화적 개념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코걸이 아니던가? 그 모호함으로부터 비롯된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인류 문화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근데 그 짓을 인류를 포식자의 사랑으로 바라보는 에일리언이 하니 진짜…….’
실로 소름끼치는 발상이 아닌가?
<하지만 아니었군.>
<우리가 틀렸어…….>
<우리는 지구 인류의 신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에게는 정말로 신이라는 존재가 있었던 거로군.>
오버마인드는 자신의 착각(?)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지구 인류의 신화에서는 신이 인격신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지.>
<과장과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리가 틀렸다.>
<정말로 있었군.>
<지구인의 모습을 하고, 그들과 같은 정신을 갖고…….>
<지구 인류를 보듬어 살피는 신이!>
오버마인드는 웃고 있었다. 절망과 환희, 양극단에 위치한 두 가지 감정이 하나로 섞여서 우주공간에 퍼져 나갔다.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것이다.>
<지구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던 존재를!>
<작고 가련한 인간, 그들의 힘겨운 삶을 지탱해 주는 기둥을!>
용우는 혼란에 빠졌다. 도통 오버마인드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절망하는 거야 당연했다. 하지만 별조차 멸하는 우주적 스케일의 공격에 맞고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인데 대체 왜 좋아하는 것인가?
<지구 인류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돌봐주는 이 없는 미아가 아니었어.>
<그렇다면…….>
오버마인드는 격정에 몸을 떨었다.
이 순간에도 그들은 죽어간다. 하나의 블랙홀을 해체하고, 그 여파를 막아내는 동안 또 다른 블랙홀에 공격당하면서 총 개체 수가 2,200억 미만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계속해서 자신들을 죽여가는 블랙홀을 막는 것보다도 용우의 정체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획일적이군.’
용우는 왜 오버마인드가 지구 인류의 정신을 갈망했는지 알 것 같았다.
2,200억에 달하는 개체가 존재하고, 그만큼은 아니라 해도 다수의 자아를 가졌는데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인데도 용우라는 강렬한 자극을 발견하자 호기심에 집착하고 있다.
심지어 그게 공감의 결과물, 말하자면 정보가 전파되면서 일어난 사회현상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오버마인드의 무수한 자아들이 제각각 용우를 보고 반응하는데 그 방향성이 거의 비슷한 것이다.
모두가 같은 곳만을 바라보는 세상은 이상하다. 모두가 오른손을 들 때도 누군가는 왼손을 드는 것이 정상적인 세상이다.
지구 인류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오버마인드에게는 아니다.
게다가 오버마인드의 정신은 너무나 거대하다.
지구 인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기에 섬세함이 부족하다. 개별 자아의 반응이 조금씩 차이나는 것만으로는 다양성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구 인류의 경우 파충류를 보고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크게 분류해도 그 정도고, 각각의 감정 분류 안에서도 반응이 천차만별로 나뉜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만으로도 나와 상대가 다름을 인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오버마인드의 정신은 그렇게 섬세하게 개성을 빚어내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연결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동일한 규격성에 갇혀 있기 때문에.
‘지금 반응도 아마 지구인을 상당수 포식하고, 그들과 연결된 채로 정신 활동을 관찰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오버마인드는 지구 인류의 정신을 ‘학습’했다. 지금의 반응은 그 학습의 결과이리라.
‘어쩌면 놈이 목표로 하던 지구 인류와의 완전한 융합을 이룬다면, 오히려 약해질지도 모르겠군.’
분명 정신적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힘은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오버마인드의 강력함, 그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연결성은 약화될지도 모른다.
용우는 그렇게 추측했다.
<인류의 신이여.>
그 말에 용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렇게나 인류의 신이 되지 않겠다고, 그게 내게도 인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해왔는데…….”
그런데 외계 존재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네 존재가 두렵다.>
<네 존재를 원한다.>
<우리 앞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우리 앞에 나타나 준 것을 원망한다.>
<지구 인류의 갈망에 응하지 않았던 것처럼……>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 다행이다.>
오버마인드는 혼란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절망과 환희가 교차한다.
양극단의 감정이 우주공간을 내달리고 있다.
<지구 인류의 신, 너를 손에 넣겠다. 우리는 너와 달리 절망하는 자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온 세상에서 절망과 슬픔을 지우고, 지구 인류에게 신의 실존을 알려주리라.>
오버마인드가 전의를 불사른다. 이미 천억 개체가 죽어나가서 전투 능력이 대폭 깎였음에도 더욱 강한 열망으로 용우에게 맞서고 있었다.
<지구 인류는 진정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와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와 지구 인류 모두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로 거듭나겠지. 그때가 되면 더 이상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주의 지배자가 탄생할 것이다.>
“정말 한결같은 놈이군.”
용우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오버마인드, 이제 와서 투지를 불태워 봤자 늦었다. 승패는 이미 갈려 있었어.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
용우의 의식이 광활한 우주공간 저편으로 향했다.
오버마인드의 의식이 용우에게 집중된 사이 이비연도 움직이고 있었다.
-오버 커넥트!
그녀는 우주공간에 거대한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그 지점은 바로 오버마인드가 한 방향으로 집중시켜서 날려 보낸, 해체된 블랙홀에서 쏟아져 나온 폭발 에너지와 물질들의 진행 궤도였다.
그 진행 방향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수십 광년 저편까지 도달했을 우주적 재앙이 워프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의 반대편, 172만 광년 저편에 있는 오버마인드의 행성을 직격했다.
이것은 단지 이비연의 힘이 강대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구세록의 권능이 그녀의 힘을 쓸 방법을 뒷받침해 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크아아아악……!>
오버마인드가 비명을 질렀다.
수백 수천만의 단말이 그 공격에 증발해 갔다. 수천억 규모를 자랑하는 오버마인드도 별을 부수는 공격에 난타당하자 파멸을 피할 수 없었다.
-광세(光世)의 별!
용우가 행성을 집어삼킨 블랙홀을 매개로 또 다른 종말급 스펠을 발동했다.
별을 집어삼킨 블랙홀이 해체되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일순간에 해방된다.
하지만 그 직전, 블랙홀이 소실되었다.
……!
그리고 172만 광년 저편, 오버마인드 세력이 있는 또 다른 항성계에 나타나서 폭발했다.
블랙홀 발생에서 이어지는 신성 폭발.
개체 수가 2,000억 미만으로 떨어진 오버마인드는 그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아아……!>
<아아아아아악!>
오버마인드의 비명이 우주에 메아리쳤다.
“군단이 우리에게 패한 것을 안타까워해라. 만약 우리가 군단에 패했다면, 너희들은 모든 걸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용우는 우주에 태어나 수억 년, 어쩌면 수십억 년만에 처음으로 종(種)의 파멸로 떨어지고 있는 오버마인드에게 고했다.
“하지만 기뻐해라. 너희들은 이제 더 이상 고립을 두려워할 필요 없어. 오늘이 너희들에게 약속된 종말의 날이니까.”
오버마인드의 개체 수가 가파르게 감소하면서, 마침내 그들이 발휘하던 영적 인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구세록의 권능이 오버마인드의 영혼을 수확한다.
무수히 파편화된 외계 존재의 영혼이 구세록의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걱정 마라. 네놈들이 지구에 끼친 해악만큼 봉사하기 전에는 사라질 수도 없을 테니까. 진정으로 지구 인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그렇게 우주 역사에 하나의 종말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