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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의 계획은 HU를 제압, 정신적 연결고리를 통해서 본체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리사는 실패했었지만, 자신과 이비연이라면 다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 구세록과 왕의 권능이라는 근거도 있었다.
하지만 오버마인드는 용우 일행과의 전투가 지구에 피해를 입힐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본거지를 알려주었다.
오버마인드와의 전투를 끝낸 멤버 전원이 구세록의 정보공간에 모였다.
휴고가 혀를 내둘렀다.
“누가 외계인 아니랄까 봐 진짜 사고방식이 이상한 놈들이군.”
“왜곡된 사랑의 끝판왕이네요.”
유현애는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쩔 건가, 캡틴?”
차준혁의 물음에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구세록의 권능으로 확인해보니 실제로 그곳에서 오버마인드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구세록의 탐색 능력은 경이적이었다. 일단 찾아내야 할 존재의 단서가 주어지고 나면 광활한 우주 저편에 있는 존재라도 찾아낼 수 있었다.
“31억 7천만 광년이라니… 이거 실화야?”
구세록이 산출한 물리적 거리 수치를 본 유현애가 입을 쩍 벌렸다.
31억 7천만 광년 저편에서 지구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지구와 그 정도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니, 오버마인드가 수십만 년 동안 다른 지성체를 못 찾아내고 고립된 것도 이해가 갔다.
용우가 잠시 생각해보고는 말했다.
“나랑 비연이만 가지. 나머지는 지구에서 놈의 흔적을 없애고, 지원이나 부탁해.”
구세록이 지구 곳곳에 있는 오버 마인드의 흔적을 찾아낸다. 생체조직과 정신파 패턴까지, 샘플이 충분히 확보된 이상 오버마인드는 구세록의 탐색을 피할 길이 없었다.
차준혁이 물었다.
“괜찮겠어?”
“우리가 안 괜찮으면 지구도 안 괜찮은 거야.”
“…….”
그렇기는 했다.
이비연이 말했다.
“가자, 오빠.”
두 사람은 오버마인드가 있는 항성계로 향했다.
* * *
물질세계와 정보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서용우와 이비연에게 우주의 물리적 거리는 큰 장애가 되지 못한다.
그 광활함에 막막해지는 것은 실제로 이동할 때가 아니라 탐색할 때였고, 그 탐색 과정이 생략되면 31억 7천만 광년이라는 거리조차도 한순간에 넘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안 보이는군.”
용우가 중얼거렸다.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별의 지표에 발 디디고 있었기에 소리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용우와 이비연은 텔레파시를 실어 말했기에 굳이 말하는 습관 자체를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 두 사람은 우주공간에서도 아무런 생존 문제를 겪지 못하고 있었다. 허공장을 약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신체를 위협하는 모든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4억 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지금쯤은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왜지?”
두 사람은 오버마인드가 알려준 좌표로 곧바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그 좌표에서 4억 3천만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 채 상황을 살폈다.
4억 3천만 킬로미터는 지구와 화성의 거리가 가장 멀 때보다도 더 먼 거리였다. 오버마인드의 본거지 행성은 지름이 지구보다 1.7배나 크기 때문에, 방향과 위치를 확실하게 잡고 보면 이 거리에서도 콩알만 하게 보이기는 해야 정상이었다.
용우와 이비연이 멀리보기 스펠을 써서 그 위치를 살필 때였다.
<왔군…….>
소리를 전달할 대기가 없는 우주공간에 거대한 정신파가 울려 퍼졌다.
<역시 여기까지 올 능력을 가진 존재였는가.>
우주의 물리적 거리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런 기준을 가진 존재는 우주적인 권능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었다.
용우, 이비연과 오버마인드는 4억 3천만 킬로미터 저편에서 서로를 인식하고 시간차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파로는 불가능하지만, 텔레파시로는 가능한 일이었다. 상대를 인지하고 있다면 정신파는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상대에게 도달하니까.
“아하. 저래서였군.”
용우가 왜 오버마인드의 행성이 육안으로 안 보였는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행성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행성 표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새카만 어둠이 퍼져나가면서 비로소 행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대기는 있는 행성이었네, 저거.”
행성 표면에 수백억 개체의 오버마인드 단말이 달라붙어서, 행성에 닿는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버마인드 단말은 생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디자인이 결여되어 있었다.
행성의 표면을 감싸고 있던 수백억 개체 모두가 정육면체의 검푸른 살덩어리였다. 무리에 따라서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외형에서 살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 구석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비연이 중얼거렸다.
“저거 군단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잖아.”
“물리적으로야 그렇겠지만, 군단의 힘은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지.”
“아, 하긴… 능력적인 부분으로 보면 결여된 게 많구나.”
오버마인드는 물리적 규모에서는 군단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군단과 맞붙었다면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세록의 규칙을 강요받을 때라면 오버마인드의 승산이 절대적이었겠지만, 그 제약이 풀린 상태였다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오버마인드는 마력을 쓰며, 그 인지능력이 고차원적인 영역에 닿아 있지만 그럼에도 물리적 우주에 속박되었다는 약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군단은 정보세계와 물질세계를 넘나들며, 시공간에 간섭하고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변환시키는 고차원적인 권능을 가졌다.
“군단 놈들이 때리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군단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우월한 권능으로 오버마인드를 난타할 것이다.
하지만 오버마인드는 군단의 백만대군이 초라해 보일 정도의 수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데다, 우주를 무대로 활동하는 강건함을 지녔다. 군단이 아무리 열심히 공격해도 오버마인드에게 정말 유의미한 수준의 타격을 입히기 어려울 것이다.
오버마인드 쪽에서도 군단이 정보세계로 빠져버리면 싸우기가 난감하다. 인지할 수는 있지만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가 없으니까. 군단이 물질세계에 병력을 현현한 상태로 때리다 지쳐서 실수할 때마다 하나둘씩 해치우는 정도가 고작일 텐데…….
이런 소모전 양상이 되면 결국 군단이 때리다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군단의 병력이 하나둘씩 포식당하면서, 오버마인드가 정보세계에 직접 간섭할 능력을 손에 넣었을 수도 있지.’
그랬다면 오버마인드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꼴이 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지.”
이비연이 투덜거렸다. 오버마인드의 군세가 그들이 보고 있던 행성에만 있는 게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던 곳은 이 항성계에서 가장 항성에 가까이 위치한 행성이었다.
그런데 오버마인드 세력은 그 행성 말고도 항성계의 다른 행성에, 수백억 개체씩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아, 현기증 나는 숫자다, 정말. 군단은 고작해야 백만대군이었는데 이건 무슨…….”
한숨을 쉬는 그녀의 손에 칠흑의 장검 한 자루가 소환되었다.
성좌의 무기 두 개와 군주 코어 세 개의 융합체-굉뢰(轟雷)였다.
“오랜만에 풀파워로 가볼까?”
이비연이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휘날리기 시작한다. 공기가 없는 우주공간인데 마치 바람이라도 불어오는 것처럼.
4억 3천만 킬로미터 저편에서 오버마인드 군세가 전개하고 있었다.
그 전개 속도는 빨랐다. 물리적으로 가속하면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전 단말이 텔레포트로 목표지점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지구 쪽, 준비 끝났어?”
<벌써 쓸 건가?>
이비연의 물음에 차준혁이 놀라서 물었다.
“지금 써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아니, 한 번에 퍼붓는 게 낫겠지. 느긋하게 준비해.”
이비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텔레포트 했다.
천체와 천체 사이를 징검다리를 뛰듯이 텔레포트 해서 9천만 킬로미터 거리까지 다가간다.
오버마인드 군세는 이미 포진을 마치고 전투태세로 들어가 있었다.
……!
순간 이비연이 있는 행성으로 정신파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860만 개체의 오버마인드 단말이 연동하면서 쏟아낸 텔레파시 공격이었다.
그 규모와 파괴력은 그야말로 전략급을 넘어 행성급이다. 지구에 직격했다면 전 인류의 정신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쿠구구궁……!
초고밀도, 행성급 규모의 정신파가 작렬한 여파는 놀랍게도 물질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정신파 폭풍의 궤도에 있던 소행성군이 박살 나고, 행성의 지표면이 거대한 대패로 깎아낸 것처럼 터져나갔다. 전략핵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다.
“확실히…….”
그런 공격이 작렬했음에도 이비연은 멀쩡했다.
“개체의 마력은 한계가 있지만, 연동이 장난이 아닌걸?”
<어떻게……?>
오버마인드가 당황했다.
별을 깎아내어 그 자전축을 어긋나게 했을 정도의 공격이다. 천체의 운행을 바꿀 정도의 공격에 직격당했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비연이 웃었다.
콰아아앙……!
우주공간에는 소리가 없다.
하지만 우주 한복판에서 발생한 열과 충격이 퍼져나가면서, 그 범위 안에 있던 존재를 두들겨대는 진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가 굉뢰를 휘두르자 공간을 격하는 일격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오버마인드 단말 하나를 베어버렸다.
단말 중에서는 작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크기가 20미터에 달하는 괴물인데도 일격에 두 동강 나고, 그 단면으로부터 발생한 초고열이 주변을 휩쓸면서 수십 개체를 집어삼켰다.
공격은 그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용우도 궁극의 융합체-네뷸라를 휘둘러서 오버마인드 단말들을 베어 넘겼다. 공간을 뛰어넘는 일격이 집결해 있는 오버마인드 단말들 사이를 가르면서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럴 때마다 적어도 수십 개체의 오버마인드 단말이 파괴되었다.
용우와 이비연은 완전히 반대편으로 갈라져서 행성의 양쪽을 향해 접근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오버마인드를 분석하고 있었다.
<지구의 단말과 똑같아. 결과적으로 공간에 간섭하지만, 공간을 직접 조작하는 능력은 없어.>
이비연이 정신파 폭풍을 방어한 방법은 간단했다.
육체를 정보세계의 존재로 전환시켜 물질세계에서 탈출했다.
정신파 폭풍의 위력이 워낙 강해서 정보세계에까지 영향력이 닿기는 했다. 하지만 그 위력은 1000분의 1 미만이었기에 이비연은 손짓 한 번으로 그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비연이기에 가능한 곡예였다. 그녀 역시 구세록과 왕의 권능 양쪽을 쓸 수 있는 자였으니까.
서용우와 이비연, 이 둘이야말로 군단이 꿈꾸던 진정한 왕을 초월한 권능의 소유자였다.
<정보세계에 대한 간섭도 마찬가지. 정보세계를 인식하고 정신파로 간섭할 수 있지만, 직접 정보세계로 침투할 수는 없어. 꽤 낭비가 심한 방식으로밖에 간섭 못 한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저 파괴력은 주의할 필요가 있군. 잘못 맞으면 위험해.>
<무엇보다 수가 너무 많아.>
행성의 표면을 완전히 감싸버릴 정도의 숫자였다.
용우와 이비연이 쉬지 않고 공격해서, 초당 수십 개체씩 파괴하고 있는데도 전혀 티가 안 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그만한 숫자가 소름 끼칠 정도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물고기들 뺨치는군!’
작은 물고기 수천수만 마리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경이다. 그 정밀성은 인간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오버마인드는 그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70만 개체가 일제히 텔레포트 해서 용우를 포위하는 최적의 포진으로 배치된다.
군사학적 관점으로 보면 도저히 대책이 안 나오는 짓이었다. 규모가 얼마가 되건 한순간에 최적의 포진을 짤 수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병력 운용이 있단 말인가?
당연히 거쳐야 할 중간 과정을 생략해버린 오버마인드 단말 70만 개체가 텔레포트 재밍 기술을 걸었다.
‘음……!’
그 압력은 용우조차 텔레포트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직후 70만 개체의 오버마인드 단말이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콰아아아앙……!
한발 한발이 전술병기급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섬광 수만 발이 용우를 포위한 채로 쏟아졌다.
용우가 디디고 있던 소행성이 증발하고 대폭발이 우주공간을 뒤흔들었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음?>
오버마인드가 놀랐다.
터져나가던 열파와 충격파가 일정 권역에 갇힌 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공간왜곡장이었다.
거대한 공간왜곡장이 폭발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를 모조리 한 점으로 집중시킨다.
-에너지 컨버전!
전략핵 수백 발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모조리 용우가 원하는 형질, 막대한 빛에너지로 변환되었다.
-광휘의 군단!
그리고 무수한 빛의 구체가 나타났다.
눈이 멀어버릴 듯 강렬한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 수천 개체가 관성을 무시한 움직임으로 오버마인드 단말들에게 돌격했다.
콰과과과과광……!
그리고 그대로 자폭, 화려한 섬광이 우주공간을 수놓았다.
“자릿수가 변하질 않는군…….”
용우가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구에서 벌어진 전투였다면 대군을 몰살시키고 전쟁을 종식했을 타격이다. 그러나 오버마인드에게 있어서는 손톱 끝이 살짝 갈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구세록의 권능은 오버마인드를 분석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총 개체 수를 파악하고 알려주고 있는데, 그 숫자가 무려 1,373억 117만 이상이다. 용우와 이비연이 파괴한 개체는 겨우 10만을 넘었을 뿐이었다.
<탐색전 한답시고 이렇게 찔끔찔끔 싸우다가는 정신적으로 지쳐서 나가떨어지겠어.>
이비연이 투덜거렸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네. 이놈들, 수가 실시간으로 불어나지는 않아.>
<수를 불리기 위해 유기 생명체를 포식하는 행위가 필요한 건지, 아니면 존재 유지 비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작정 수를 불린다고 좋은 게 아닐 것이다. 지구 인류가 늘 식량이나 자원문제를 이야기하듯 오버마인드도 단말의 수가 늘어날수록 존재 유지 비용을 걱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마도 지금까지는 행성의 표면을 덮은 채 태양빛을 흡수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 포착된 놈들만 없애면 되니까 좋은 일…….>
거기까지 말하던 용우가 흠칫했다.
<이런 젠장.>
구세록이 포착한 오버마인드 단말의 숫자가 실시간으로 폭증하고 있었다.
<다른 항성계에도 뿌려놨었냐?>
구세록이 각각 16만 광년, 172만 광년 저편의 항성계에 존재하는 오버마인드 세력을 찾아냈다.
오버마인드의 텔레파시 네트워크를 추적해본 결과 그 이상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2,735억 7천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치였다.
<스케일이 큰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빌어먹을 코즈믹 호러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