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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마인드의 전투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무수한 단말의 연결로 구성된 거대한 정신적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힘으로 적을 압살한다.
그것은 일격에 별을 부수고, 천체의 운행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우주적인 권능을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발하는, 지구 인류에게 있어서는 코즈믹 호러 그 자체.
하지만 오버마인드는 지구에서는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없었다.
지구인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인은 날파리, 아니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발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작은 존재다.
지구 인류가 구축한 문명사회는 거대한 미생물의 군집체나 마찬가지였다. 오버마인드의 스케일 감각으로는 그랬다.
오버마인드는 지구인을 사랑한다. 그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오버마인드와 지구 인류가 완전한 융합을 이루는 그날까지, 지구 인류는 온전히 살아남아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 오버마인드는 얼마든지 출혈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버마인드는 본체로 지구를 강습하는 대신 작은 단말들을 만들어 침투했다. 그리고 지구인을 연구하고, 포식하는 과정에서 무력 제압 단말을 만들어냈다.
“지구인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단말인데, 지구인을 제압하기 위해 쓰게 되다니 역시 앞날은 알 수 없군.”
“뭐?”
용우가 황당해하자 오버마인드가 설명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몬스터를, 지구 인류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지구 인류가 9등급 몬스터를 제압할 수 없어서 파멸의 위협을 겪는다면, 오버마인드는 지구 인류를 지키기 위해 무력 제압 단말을 투입할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지. 우리가 아닌 다른 외계 존재로부터 지구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도 ‘적정 수준’의 전투능력을 가진 존재가 필요했다.”
인류의 일원으로 위장해서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오버마인드의 전투 병기.
그것이 바로 무력 제압 단말이었다.
“하지만 설마 지구인 중에 더 강한 존재가 있을 줄 몰랐지. 그래서 더 강화한 개체들을 준비하면서 걱정했는데… 여기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오버마인드는 지나치게 강한 전투 병기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지구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든 병기가, 전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파로 지구 인류를 멸망시키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겠는가?
“아, 정말 참신하게 미친 새끼네, 이거…….”
용우가 혀를 내둘렀다.
그 앞에서 오버마인드가 변화한다.
연구시설을 이루고 있던 오버마인드의 생체조직이 무수히 분화한다.
동시에 시설 일부는 연구원들을 집어삼켜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소중한 자원이라 이거지?”
용우는 그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어차피 이 게이트 내부 필드에서는 달아날 수 없으니까.
연구시설의 나머지 부분이 분화하더니 인간 비슷한 형상으로 변했다. 총 17개체의, 인간을 닮은 검푸른 살덩어리가 전신에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평균적으로는 리사가 싸웠던 놈의 1.8배 정도.’
구세록의 권능이 적을 분석한다.
하나하나가 9등급 몬스터를 훨씬 능가하는 마력을 지닌 개체 17명이 일제히 용우에게 적의를 발산했다.
“지구를 제압하기에는 충분한 숫자긴 하군.”
용우는 그만한 전력을 앞에 두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구세록의 초월권족에게서 노획한 양손 대검을 붙잡고 마력을 끌어올릴 뿐.
<아직도 자신감이 넘치나?>
<하긴 지구인은 전투기술에 큰 가치를 부여하더군.>
<네 마력은 무력 제압 단말과 비슷한 수준. 전투기술에서 큰 격차가 나면 이 숫자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오버마인드가 17명의 무력 제압 단말로 용우를 포위하며 텔레파시로 물었다.
용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닌데.”
<그럼?>
“애당초 마력이 비슷하다는 전제부터가 틀렸어.”
용우가 검을 휘둘렀다.
<어?>
오버마인드가 당황했다.
용우가 검을 휘두르는 동작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용우가 휘두른 검 끝의 속도는 제3우주속도를 돌파했다.
콰과과과과과과!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대폭발이 그 자리를 집어삼켰다.
<…….>
검이 휘둘러지는 방향에 있던 무력 제압 단말 7명이 증발했다.
“혹시 모르니까 둘 정도 남겨놓고 해볼까.”
용우가 느긋하게 중얼거리며 다시금 검을 휘두른다.
그러자 다시금 소형 전술핵이 터졌을 때와 버금가는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무력 제압 단말 5명이 증발했다.
<넌 뭐냐?>
오버마인드가 당황했다.
용우의 힘이 상정한 바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가 수집한 지구 인류의 정보는 이렇게 강한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용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걸음만으로 무력 제압 단말에 다가가더니 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빛이 폭발하며 또 하나의 무력 제압 단말이 소멸했다.
“말했잖아. 너희들의 코즈믹 호러가 되어주겠다고. SF 소설을 많이 봤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야지?”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 비하면 모래알처럼 작은 존재다.
그런 지구 인류에게 우주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행성을 집어삼키는 오버마인드는 그 스케일을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포, 즉 코즈믹 호러였다.
그런데 그런 오버마인드에게 있어서 코즈믹 호러가 된다?
그것은 오버마인드를 능가, 아니 압도할 정도로 우주적인 힘을 가져야만 가능했다.
“너는 관측당함으로써 관측자를 파악했지. 그런데 지구에 침입하기까지 했으면서 네 본체가 어디 있는지 파악 당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면 너무 뻔뻔하지 않냐?”
용우가 무력 제압 단말 17명 중 15명을 없애고 2명을 제압하기까지는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중간에 대화를 나누는 시간까지 합쳐서 그랬다.
<너만이 아니군. 너희 모두가… 지구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
오버마인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구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이비연은 푸른빛의 실루엣으로 화한 무력 제압 단말들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고작 이걸로 지구가 걱정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한 거야?”
그녀는 가속 스펠을 중첩, 초가속 상태에 들어간 채로 무력 제압 단말을 덮쳤다.
퍼엉!
그녀가 뻗은 주먹에 맞은 무력 제압 단말이 터져나갔다.
쾅!
그녀의 하단 돌려차기에 맞은 무력 제압 단말의 두 다리가 폭발했다.
콰콰콰콰쾅!
주먹, 팔꿈치, 어깨치기, 무릎 차기, 발차기…….
현란한 격투기술로 무력 제압 단말을 학살한다. 무력 제압 단말 중 그녀의 일격을 버텨내는 놈이 없었다.
“그런 스케일의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너무 약한걸?”
<이건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오버마인드가 경악했다.
이비연은 오버마인드가 놀랄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하지만 진정 경이로운 것은 이비연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결과였다.
그녀가 움직이는 속도, 그리고 그녀가 발하는 마력을 고려하면 일격을 가할 때마다 최소한 전술 무기급의 파괴력이 발생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비연은 전투로 인해 발생하는 여파를 보통의 인간들끼리 싸울 때 발생하는 물리적 여파, 그것을 불과 몇 배 정도 증폭시킨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억제된 파괴력이 고스란히 표적의 내부로 집중되는 것이다.
“그야, 기술이지.”
순식간에 무력 제압 단말들을 해치운 이비연은 마지막으로 남은 개체를 붙잡으며 잔혹하게 웃었다.
* * *
서용우, 이비연 두 사람과 비교하면 다른 이들은 그래도 전투다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리사는 16개체의 무력 제압 단말을 상대로 현란한 공방을 펼쳤다.
콰콰콰콰쾅……!
얼어붙은 산악지형 곳곳에서 폭발이 치솟았다.
오버마인드는 텔레포트 재밍으로 리사의 기동력을 제한시키고, 머릿수를 이용한 화력전으로 우위를 쥐려 했다.
그리고 오버마인드가 쥔 우위는 한 가지 더 있었다.
“UFO?”
리사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16개체의 무력 제압 단말들은 관성을 무시하는 초음속 비행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똑같이 마력을 원천으로 삼아 초능력을 쓴다고 해도 스펠과는 차이가 크다.
리사는 지구 인류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권능을 가졌지만 저런 비행 능력, 그리고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능력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전투 효율성은… 글쎄?’
한동안 오버마인드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에만 전념하던 리사는, 어느 순간 반격에 나섰다.
-피지컬 부스트!
가속 스펠이 걸리면서 그녀의 움직임이 확 빨라졌다.
그러자 무력 제압 단말들의 화망(火網)이 그녀를 놓쳤다. 일정한 속도로 몰아가고 있던 표적이 갑자기 두 배 가까이 빨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망을 빠져나간 리사가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퍼어어엉!
극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간 에너지탄이 무력 제압 단말을 관통, 대폭발을 일으켰다.
‘역시 마력에 비하면 전투 능력이 별로야.’
리사는 차분하게 오버마인드의 능력을 파악했다.
그녀만이 아니라 팀 섀도우리스 전원이 같은 작업을 수행하면서 정보를 종합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버마인드는 텔레포트 외에 다른 공간 간섭계 능력이 없다. 워프 게이트에 대한 대응책이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또한 오버마인드는 가속 능력이 없다. 관성을 무시한 비행은 가능해도 속도 면에서는 철저하게 마력의 출력에만 좌우될 뿐, 추가적인 효과가 붙어 있지 않았다.
‘염동력은 좀 짜증 나지만…….’
스펠로 펼치는 염동력은 그 형태가 제한적이다.
그에 비해 오버마인드는 염동력을 광범위하게,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었다.
몇몇 개체가 힘을 합쳐서 염동력을 펼치자 리사조차도 한 템포씩 움직임이 늦어질 정도로 강한 압력이 걸렸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펠을 통해 싸우는 리사의 전투 효율이 훨씬 우위였다.
‘동급 마력의 몬스터보다는 우위지만 동급 마력의 언데드나 타락체보다는 아래.’
그것이 팀 섀도우리스 전원이 판단한 오버마인드의 전투 능력이었다.
퍼어어엉!
또 하나의 무력 제압 단말이 에너지탄에 맞고 터져 나갔다.
설령 마력이 동급이더라도 지구 인류가 만들어낸 무기를 통해 발사되는 공격은 본인의 마력을 훨씬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한다.
하물며 리사의 마력은 무력 제압 단말보다 월등히 위였으니, 무력 제압 단말이 증폭탄두를 이용한 사격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우우우우!
리사의 마력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나?>
오버마인드가 놀랐다.
리사의 마력은 지난번 무력 제압 단말과 싸웠을 때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전력이 아니었다는 듯 마력의 크기가 계속해서 상승한다.
-프리징 필드!
어느 순간 리사의 손에 나타난 빙설의 창으로부터 순백의 파동이 폭발했다.
극저온의 파동이 터지자 반경 2킬로미터가 한순간에 하얗게 얼어붙었다. 하늘을 날던 무력 제압 단말들도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왕의 권능, 좋은데?’
이 작전을 앞두고 서용우는 멤버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쥐어주었다.
군단과의 최종결전 때 라지알이 선보였던 것, 즉 왕의 권능으로 소수의 아군을 강화하는 권능이었다.
이 권능은 성좌의 의식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대신 제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지 자유롭게 통제 가능하다는 강점도 있었다.
라지알이 썼을 때는 왕이 거느린 백성이 많아야 의미가 있는 권능이었다. 그러나 서용우는 그런 제약을 초월했다.
그가 구세록과 군단의 왕좌 모두를 손에 넣었고, 그 열쇠가 되는 궁극의 융합체 네뷸라를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끝내자.”
리사는 담담하게 말하며 무력 제압 단말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다.
* * *
팀 섀도우리스가 오버마인드의 무력 제압 단말 부대를 압살해버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버마인드가 신음했다.
“너희들은 위험하다……!”
“그게 네놈이 할 소리냐?”
용우가 어이없어하자 오버마인드가 말했다.
“너희와 지구에서 싸운다면 소중한 지구 인류가 피해를 볼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내 본체가 있는 곳을 알려줄 테니, 와라.”
“뭐?”
“내 본체가 있는 항성계에는 다른 생명체가 없다. 네놈들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천체가 부서질 뿐이지. 지구 인류가 피해를 입을 일도 없을 것이고. 우리가 결판을 내기에는 적절한 전장일 것이다.”
“…….”
황당해하는 용우에게 오버마인드는 정말로 자신의 본체가 있는 항성계의 공간좌표를 알려주었다.
용우는 허탈해하며 중얼거렸다.
“와, 진짜 어이없는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