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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혼돈이 지배하는 분쟁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치안이 안정된 선진국, 그것도 대도시 한복판에도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면에서 비상식적인 조직이었다.
닥터 엘리엇은 HU 프랑스 파리 지부의 연구 총책임자였다.
본래 그는 몬스터의 사체를 활용하는 전문 연구자였다.
몬스터의 사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요소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궁무진했다.
신소재 연구는 물론이고 의약 분야와 바이오산업에도 이 연구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닥터 엘리엇이 연구하던 것은 키메라 연구였다.
몬스터 중에 생체라고 할 수 있는 부류를 주로 연구해서, 지구상의 생명체와 혼합된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연구 목표였다.
언뜻 끔찍한 연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의학적으로 도움이 되는 키메라를 만들어 내려고 한 것이다.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조직을 가진 키메라, 인간에게 보다 건강한 피를 수혈 가능한 키메라, 의약 분야에 희귀 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키메라…….
그 연구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서 스폰서 기업에도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연구소 내부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 해고당했고, 연구 성과 일부를 상사에게 도둑맞고 말았다.
크게 낙심하여 알콜 중독에 빠진 그는 HU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들이 말하는 연구 내용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닥터 엘리엇은 금단의 연구에 큰 매력을 느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HU 소속으로 연구를 진행,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냈다.
그것은 HU의 지원 덕분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연구재료로 쓸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몬스터를 얼마든지 산 채로 연구에 사용할 수 있게끔 제공하고, 통제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각성자의 협력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것, 마력을 이용하여 현상을 일으키는 것까지도 얼마든지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집단은 세상에 없으니까.
세계 유수의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닥터 엘리엇은 그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처음 HU와 접촉한 순간부터, 그는 당연히 생각했어야 할 모든 문제를 잊고 있었다.
* * *
쿠과과광!
폭음이 울리며 연구소 한쪽 벽에 구멍이 뻥 뚫렸다.
그리고 그 벽으로 한 사람이 여유롭게 걸어 들어왔다.
“뭐, 뭐야?”
연구원들이 흠칫했다.
침입자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티셔츠 위로 검은 재킷을 걸치고, 청바지를 입은 캐주얼한 차림새의 청년이었는데…….
“얼굴이 없어?”
연구원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고 있었다.
침입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 없이 희고 매끈하다는 게 아니었다. 분명히 얼굴이 있는데 인지할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는 것을 뇌가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이 고장 나버렸다는 실감이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었나.”
침입자, 서용우가 연구실을 휘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파지지지직……!
그리고 주변에서 격렬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연구실, 아니 이곳만이 아니라 지하에 있는 시설 전체가 격하게 뒤흔들렸다.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다.
“소용없어.”
용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연구시설을 통째로 텔레포트 해서 옮길 수 있게 설계한 건 참신하군. 하지만 이제 도망 못 간다.”
HU가 연구시설을 지하에만 만드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연구시설을 통째로 다른 장소에 텔레포트 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 지하의 다른 부분과 분리된 패키지 형태로 연구시설을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용우는 이미 그 수법을 간파하고 텔레포트를 차단해둔 상태였다.
곧 스파크와 진동이 잦아들었다.
저벅…….
엉망진창이 된 연구실 속에서 용우의 발소리가 울렸다.
용우는 주저 없이 한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이 연구소의 책임자, 금발의 중년 사내 닥터 엘리엇이었다.
“으, 으으… 다, 당신은 뭡니까? 뭘 원하는 겁니까?”
닥터 엘리엇이 덜덜 떨며 물었다.
용우는 그런 그와 2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서더니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짜증 나는군.”
용우가 입을 열더니 그렇게 말했다.
“뭐, 뭐라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
용우는 닥터 엘리엇을 무시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놈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멀쩡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이 인간을 좋은 모르모트로 보는 수준까지 타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거든.”
닥터 엘리엇은 선진국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별 탈 없이 좋은 학력을 취득하고 연구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이 연구시설에 있는 연구원들은 다들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법과 도덕을 준수하며 살아가던 고학력자였다.
“그런데 HU 조직원이란 놈들은 다 그렇단 말이지. 게다가 인원의 대부분이 멀쩡하게 직장에서 일하던 고학력자 연구원이라니, 이상하잖아?”
HU는 철저하게 비인륜적인 일에 주력하는 불법적인 조직이다.
그런 조직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조직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한 무력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시설에는 그 당연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자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기술자들만 있고 무력을 담당하는 인력은 전혀 없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
“전부 먹어버렸군. 역겨운 에일리언 놈, 이게 네놈들의 침략 방식인가?”
“…….”
그 말에 닥터 엘리엇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눈이 흰자위 하나 없이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면서, 조금 전까지의 두려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는 누구지?”
소름 끼치는 상황이었지만 용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닥터 엘리엇의 물음을 무시하고 묻는다.
“브레인 서커인가? 뇌를 파먹고 인간으로 위장한?”
“그 표현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절하군.”
대답한 것은 닥터 엘리엇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연구원이었다.
그 연구원도 역시 눈이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모든 연구원이 같은 상태가 되어 용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상황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군. SF 호러 영화에서 본 적 있는 상황이랑 똑같잖아? 픽션이 그렇게나 현실을 잘 예상해서 구현하다니, 역시 인간의 상상력은 대단해.”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 속에서 용우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공포라고는 눈곱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닥터 엘리엇이 물었다.
“무력 제압 단말을 격퇴한 그녀도… 너와 관계가 있는가?”
“너희는 뭐지?”
용우도 물었다. 처음부터 상대의 질문에 대답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도 마찬가지라면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용우와 대화를 할 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
“에일리언.”
“브레인 서커.”
“지구 인류 입장에서 보면.”
“네가 쓴 표현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우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대답은 여러 사람에게서 나왔다. 마치 사전에 대본을 쓰고 수도 없이 연습하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서로의 말을 받아서 말을 완성해가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용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 목 뒤쪽에 파고든 조직이 핵심이겠군.”
“과연 너는 범상치 않은 자로군.”
이번 대답도 여럿의 입에서 조각조각 나뉘어 나왔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것도 특이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은 목 뒤쪽에 지구상의 존재가 아닌, 외계의 생체조직이 파고들어 있었다.
그 생체조직은 인간의 뇌를 통제할 권한을 물리적으로 강탈한다. 그리고 우주 저편, 수백만 광년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외계 존재의 정신파를 중계하는 역할을 했다.
어떻게 그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존재와 통신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필요 없었다. 종말의 군단이 그랬듯 이 에일리언 세력도 아인슈타인 우주의 물리법칙을 초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좌표 설정만 가능하다면 물리적 거리 따위는 의미가 없지.’
그 점은 용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세록을 장악한 용우는 이미 지구만이 아니라 태양계 전역을 자신의 권역으로 삼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명왕성의 지표면에 서서 태양계 바깥을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태양계 바깥 탐사도 시야에 넣어야 하는 건가? 귀찮군.’
용우가 태양계 전역을 탐사한 이유는 단순히 흥미와 보험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주 저편에서 소행성 하나만 지구로 날아와도 인류는 멸망할 수 있었다. 그런 우주적 재난을 막기 위해 태양계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브리짓의 제안도 쓸모가 있겠군.’
브리짓은 향후 미국의 우주 연구를 위한 설비 구축을 용우와 협상하고자 했다.
태양계 어디든 한순간에 오갈 수 있는 용우를 통하면 현재 지구의 공학 기술로는 도저히 가격대성능비를 맞추기 힘든, 태양계 전역을 커버하는 관측 네트워크를 손쉽게 구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용우가 닥터 엘리엇, 아니 그를 장악한 외계 존재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지?”
“네 물음은 정확성이 부족하다.”
“너희는 왜 지구 인류를 침략했지?”
“지구 인류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뭐?”
“우리는 지구 인류를 사랑한다. 견딜 수 없이 사랑하기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다.”
“…….”
용우는 이놈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외계 존재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고, 정확히 ‘Love’라는 어휘를 사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치는 유머 감각을 가진 것 같지는 않은데…….”
“유머가 아니다.”
“그럼?”
“우리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외계 존재가 설명했다.
“오차가 어느 정도 있지만, 지구인의 방식으로 계산해본 결과 지구 시간으로는 대략 61만 9,000년 정도로 추정된다.”
“…….”
정말 까마득한 시간이었다.
군단이 침략을 시작한 것보다도 아득히 오래전. 저때면 인류는 구석기 시대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네 말이 옳다. 지구인의 상상력은 매우 뛰어나다.”
“뭐?”
“지구인은 이미 우리 같은 존재를 많이 상상해왔다. 픽션을 창작하고 즐기는 문화, 그건 매우 흥미로웠지.”
외계 존재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쳐서 그런다기보다는… 이놈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환장한 것 같은데?’
용우가 그들의 적으로 나타났는데도 전혀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나타나서 기뻐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들은 지구상의 생물학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의 본거지인 행성, 아니 항성계에는 동물도, 식물도, 미생물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들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주 공간에서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못하며 별들 사이를 오가는 우주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다양한 생명과 ‘융합’하여 자신들의 가능성을 넓혀왔다.
“그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지적 생명체였지.”
지적 생명체와의 융합은 그들의 가능성을 크게 넓혀주었다. 그저 모든 것을 포식하며 확장해갈 뿐이었던 그들은 지적 생명체와의 융합을 통해서 한 단계 고차원적인 생명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양날의 검이었다.”
지성이 없을 때의 그들은 저차원적이지만 강했다.
“우리는 무감각했다.”
“정체됨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각인된 본능에 따라 별의 지표면에 있는 모든 생명을 먹어치우고, 또 다른 생명을 찾을 뿐.
종(種)의 본능에 각인된 기계적인 프로세스를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도의 지성을 획득하여 고차원적인 존재가 되는 순간, 그들은 터무니없이 약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포식자로서 약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의 권능은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우리는 정체됨이 고통스러워졌다.”
“아무런 자극 없이 시간이 흘러감이 두려워졌다.”
그들은 하나이며 여럿인 존재였다. 거대한 텔레파시 네트워크로 통합된 존재이되, 그 네트워크 속에 개성을 가진 다양한 자아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외부 정보의 유입이 없다 해도 그들에게는 그동안 융합을 통해 확보한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지적 생명체를 찾아내지 못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까마득한 시간의 흐름에 그들의 정신이 마모되어갔다.
“우리는 고립된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손에 넣은 지성은 그들의 육체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약했다. 육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점점 정신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려웠다.”
다시금 무감각해져 가는 것이 두려웠다. 이대로 가면 다시금 지성을 잃고 저차원적인 존재로 격하되고 말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를 본 자가 있었다.”
그들의 정신이 인지하는 고차원적인 세계, 혼돈과 맞닿아 있는 정보세계의 존재가 그들을 관측했다.
종말의 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