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99화 (19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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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강한 바람이 불었다.

공원을 산책하던 서우희는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따라서 시선을 옮기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곳에 그녀의 오빠, 서용우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별일 없었지?”

용우가 다가와서 물었다.

“아주 없진 않았어. 오빠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인데?”

용우는 이비연과 함께 한 달 동안 지구를 떠나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희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브리짓이 오빠를 찾더라.”

“음?”

“굉장히 중요한 일인가 봐. 한국에 와 있으니까 연락 달라던데.”

“그래? 그럼 이따가 연락해볼게.”

“지금 연락 안 하고?”

“너랑 카페에 갈 시간 정도는 괜찮겠지.”

그 말에 우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비연이는?”

“맑은 공기 좀 쐬고 싶다고 갔어.”

“어디에?”

“남극.”

“…….”

“가는 김에 빙산을 부숴서 얼음 좀 캐오겠다고 하니까 이따가 그걸로 술이라도 마시자.”

“하는 짓마다 스케일이 너무 커…….”

우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용우가 킥킥 웃고는 물었다.

“너도 막상 데려가 주면 좋아하면서 왜 그래?”

“뭐 펭귄들한테 파묻혔을 때는 좋았지만…….”

전에 우희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펭귄이 귀엽다, 저기 있는 사람들 좋겠다고 말했더니 용우가 그녀를 남극에 데려가 준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에베레스트산 정상이나, 현재는 재해 지역이 되어 버려서 누구도 접근 못 하는 빅토리아 폭포 등 일반인은 가볼 수 없는 곳에 우희가 말 꺼낼 때마다 가봤다.

“오빠 그 일은 언제 끝나는 거야?”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우희가 물었다.

“이번에 가서 체크해보니까 몇 년은 걸릴 것 같아.”

“몇 년? 그렇게나 오래?”

“몰디브 섬 같은 거야. 그 섬이 바다에 잠기는 것처럼, 서서히 혼돈에 침식되어서 사라져가는 거지.”

“그럼 그때까지는 계속 이렇게 한 달씩 지구에 없고 그러는 거야?”

“작업주기를 좀 바꿔보려고 생각 중이야.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단위로.”

“그렇게 해. 연락 끊긴 채로 오래 되면 불안해진단 말야.”

요즘 들어서 우희는 종종 용우가 예전에 실종됐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근거 없는 걱정이라는 건 알겠지만, 마음의 상처가 원인이 되는 불안감이라는 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

“그나저나…….”

우희가 화제를 돌렸다.

“올해는 수능 하겠지?”

“며칠 후면 선거도 하니까 하겠지.”

작년에는 수능이 없었다. 수능이고 대학 입시고 전부 올스톱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해야 할 텐데. 솔직히 작년에는 수능 치렀어도 의대 갈 점수가 안 나왔을 것 같지만 올해는 할 수 있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단 말야.”

“아, 그거… 너 꼭 수능 안 치러도 의대 갈 수 있을지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우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용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만 들은 거긴 한데…….”

“뭐야. 그런 거면 말을 하지 말지.”

“어……. 미안하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용우가 순순히 사과하자 우희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데?”

“그냥 안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안 들으면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아. 들어도 신경 쓰이고 안 들어도 신경 쓰이면 최소한 궁금증이라도 풀어야 안 억울하지.”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각성자가 안 나오잖아.”

“그렇지.”

“당연히 힐러도 안 나오고. 그래서 힐러의 가치가 폭등하는 상황이니까. 힐러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무조건 의대에 특례로 입학해서, 닥터 힐러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대.”

“…….”

잠시 동안 용우를 바라보던 우희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괜히 들었다…….”

“…….”

“오빠 바보.”

수험생인 우희 입장에서는 확정되기 전까지는 모르는 게 약인 이야기였다.

“미안하다…….”

용우가 쩔쩔매며 사과할 때였다.

“뭐야? 오빠 또 뭐 잘못했어?”

갑자기 이비연이 불쑥 나타났다.

캐주얼한 야구모자에 헐렁한 긴 팔 티를 입은 그녀는 한 손에 축구공보다 두 배는 큰 얼음덩어리를 들고 있었다.

우희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거, 남극 빙산에서 캐온 거야?”

“응.”

이비연은 생긋 웃고는 얼음덩어리를 아공간에다 집어넣었다.

그녀가 우희 옆에 앉으며 말했다.

“오빠,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보고 사오라고?”

“난 빙산 캐왔잖아.”

이비연이 에헴 하고 우쭐거리자 용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아, 비연아. 커피 마시고 나서 나랑 좀 가자.”

“어딜?”

“브리짓이랑 휴고가 며칠 전부터 우리를 만나려고 한국에 와서 기다리고 있대. 중요한 일 같다던데.”

“아니, 그럼 지금 나한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주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치? 비연이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우희가 옳다구나 하고 거들자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커피 안 마시고 가게?”

“커피야 이따 마셔도 되지 뭐. 이따가 집에서 남극 빙산 얼음 넣어서 남극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자.”

이비연이 용우의 등을 치며 재촉했다.

* * *

크리스마스 파티 이후 3개월 만에 팀 섀도우리스 멤버 여덟 명 전원이 모였다.

용우의 부름을 받은 리사도 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브리짓이 차분하게 HU에 대해서 설명하자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상한 놈들이군. 하는 짓을 보면 군단이나 구세록의 잔당 같지는 않고…….”

브리짓이 걱정한 것과 달리, 용우는 그녀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았다. 브리짓이 뛰어난 분별력의 소유자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용우가 리사에게 물었다.

“네가 접촉한 HU는 어땠어?”

“지금 브리짓이 설명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어요. 이름만 똑같이 HU일 뿐 다른 세력이 섞여 있는 것 같다는 추측도 아마 맞을 거라고 봐요.”

리사는 자신이 HU와 접촉해서 섬멸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기를 무력 제압 단말이라고 부른 개체는 전투능력이 상당했어요. 아마 지구상에서 우리 말고는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리사는 HU를 추적하던 과정에서 마력을 다루는 외계의 존재를 만났다.

리사가 체감한 무력 제압 단말의 마력은 9등급 몬스터 수준.

용우가 스펠 스톤을 공급해준 덕분에 지구의 최정예 헌터들은 전투 능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가장 높은 마력 보유자가 페이즈 13이라 한계가 뚜렷했다.

용우가 물었다.

“마력은 그렇다 치고, 전투능력은?”

“그렇게까지 뛰어나진 않았어요. 하지만 기술적인 면만 봐도 웬만한 각성자 수준은 될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우리가 없으면 인류를 몰살시킬 수 있겠군. 근거 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놈들은 아니네.”

무력 제압 단말은 허공장을 가졌으며, 마력을 연료로 삼아 스펠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초능력을 썼다.

그래도 리사의 적수는 아니었다.

리사는 팀 섀도우리스 내에서는 전투기술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팀 섀도우리스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최종결전이 끝난 후로도 이비연이나 유현애, 이미나와 종종 훈련을 해왔기에 당시보다 기량이 더욱 늘어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마력을 다 보여주지는 않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이었죠.”

최종결전 때와 비교할 때, 리사는 마력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그녀만이 아니라 팀 섀도우리스 전원이 그랬다.

구세록에 의해 걸려 있던 마력 제한이 풀린 후 그들의 기본 마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거기에 구세록의 초월권족과 군단으로부터 노획한 아티팩트 수십 개를 최적의 조합으로 세팅했기에, 전투 시에는 더욱 강한 마력을 쓸 수 있었다.

“추적은 실패했어요.”

리사는 무력 단말 개체를 제압하고, 그 정신을 조사했다.

“자신을 ‘단말’이라고 한 놈답게 뭔가와 연결된 존재더군요. 하지만 연결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그 존재를 조사할 수 없었어요.”

“흔적을 지우는 기술인가?”

“그건 아니에요. 굉장히 강력한 방벽으로 제 접근을 튕겨냈어요.”

“흠…….”

용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이비연이 말했다.

“다른 외계 문명이겠지, 뭐. 군단의 관측 기록에 있던 놈 중 하나 아닐까?”

“군단의 관측 기록? 그건 또 뭐야?”

휴고가 당혹스러워하며 묻자 용우와 이비연이 서로 눈을 한번 마주쳤다. 용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비연이 설명했다.

“군단은 침략할 세계 리스트를 꽤 여럿 확보해두고 있었어.”

지구 말고도 수많은 문명이 그들의 침략 대상으로 고려되었다.

“어떤 건 우리 우주에 존재하지만, 어떤 건 우리 우주가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하지.”

군단은 과학 기술이 아니라 영적 존재를 탐색하는 권능을 이용, 지성체가 이룩한 문명 세계를 여럿 찾아냈다.

다만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없었다. 지성을 갖춰서 수확할 가치가 있는 영혼을 가졌는가,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 정도만이 기록되었을 뿐.

“근데 이 탐색이 아무래도 일방통행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지구 인류 같은 경우는 군단에 일방적으로 관측당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우주는 넓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도저히 그 크기를 감각적으로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심지어 군단은 지구가 속한 세계만이 아니라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존재였다. 그들의 세계관은 지구 인류보다 훨씬 넓을 수밖에 없었다.

“군단이 관측한 존재 중에는, 군단이 관측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역으로 그들을 관측할 수 있는 존재도 있었어.”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군단이 파악하기로는 그랬다.

“그중에 군단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폭력적인 놈들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군단이 사라졌으니 군단이 먹어 치우려던 지구를 먹어치우자, 근데 일단 군단이 어쩌다 당했는지 조사나 해보자는 식으로 들어온 거 아닐까?”

“그거참 SF적인 이야기네.”

“우리는 예전이라면 픽션으로만 볼 수 있었던 이야기를 현실로 여기는 시대에서 살고 있잖아. 거기에 에일리언 침략자가 더해진다 한들 이상할 건 없어.”

“그렇긴 하지만.”

브리짓이 한숨을 쉬었다.

지구 인류의 문제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외계인이 쳐들어온다니 자신은 어쩌다가 이따위 시대에 태어나 버렸단 말인가?

용우가 말했다.

“어쨌든 딱히 고민할 필요는 없는 문제로군.”

“놈들을 찾아낼 방법이 있습니까?”

“전에는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있어. 리사가 놈들의 실체와 접촉했잖아?”

리사가 접촉했던 기억을 이용, 구세록으로 전 지구를 탐색하면 그만이었다.

“세력이 둘이라니 한쪽만 잡게 되겠지만.”

일단 한쪽을 없애고, 나머지는 또 찾아서 족치면 된다.

“지구를 건드린 걸 후회하게 해주자고. 그리고…….”

용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놈들의 전력이 미지수이니만큼, 모두에게 선물을 주지.”

멸망의 운명을 타파하여 지구를 구한 지 10개월.

다시금 팀 섀도우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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