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97화 (19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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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백원태와 오성준, 다니엘 윤은 한국 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한국 최정예 헌터 기업의 사장으로서 방위 시스템을 정상화하고, 사재를 털어서 가족과 집을 잃은 사람들의 삶을 지원했다.

또한 그들은 정재계 인사들을 하나로 모아 자신들의 행동에 동참하게 만들었고, 서용우는 이 행동을 지지해주었다.

피로 얼룩진 일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국가 정상화를 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 각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진실’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던 세계가 얼마나 위태로운 살얼음판이었는지 깨닫게 해주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이 일에도 용우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의 노출을 꺼렸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조용히 잊히길 원했다.

그래서 차준혁이 대신 이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오랜만에 불러내놓고 또 이런 역할을 시켜서 미안하군. 웬만하면 우리끼리 해결하겠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쿠데타라…….”

오성준의 말에 차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불필요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빨리 한국 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흐를 피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차준혁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백원태와 오성준에게 협력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됐으니 이럴 일도 없을 거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백원태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한국은 작년에 수립된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얼마 후면 선거가 시작된다.

“쿠데타라니, 난 보고서 올리는 놈이 장난친 건 아닌가 의심했다니까?”

“그러게 말이지. 하여튼 어느 시대나 비슷한 망상에 취하는 놈이 나타나는 건가.”

백원태와 오성준은 진저리를 쳤다.

문득 백원태가 차준혁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용우 씨는 본 적이 있나?”

“저보다 백 사장님이 더 자주 보시지 않습니까?”

“나도 요즘 너무 바빠서 못 본 지 좀 됐네. 지난번에 통화해서 기부금 뜯긴 게 다였지.”

“캡틴이 사장님한테서 기부금을 뜯어냈다고요?”

“아직도 캡틴인가?”

팀 섀도우리스는 해산했다. 그런데도 차준혁은 서용우를 캡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색해서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형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나?”

“그건 싫습니다.”

차준혁은 딱 잘라 말했다.

백원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좋은 일에 쓰는 거니까 생각날 때마다 내라고 하더군.”

“확실히 구호사업이 밑도 끝도 없이 돈을 먹는 것 같긴 하더군요.”

군단의 대공세가 한국 사회에 입힌 피해는 너무나 컸다.

임시 정부가 수립되기는 했지만 아직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너무나 많다. 그런 상황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금 규모가 큰 구호사업을 벌이는 조직이 있었다.

임시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한 피해자들을 보듬어주는, 이 조직의 장은 바로…….

* * *

2030년 2월.

군단의 대공세가 지구를 덮친 지도 어느덧 9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서울에는 아직도 대파괴의 흔적들이 흉측하게 남아 있었다. 파괴 규모가 너무 컸고, 그 흔적을 복구할 여력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본격적인 재해 복구는 빨라도 내년부터 이뤄질 것이다. 선거가 끝나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재해 복구 사업안을 입안하기까지의 과정을 거쳐야 했으니까.

“후우.”

김은혜는 사무실 의자에 몸을 묻은 채로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일반인보다 월등한 신체를 지닌 각성자였지만,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일만 했더니 눈이 침침해지고 있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잠시 쉬고 있자니 누군가 집무실을 노크했다.

그러자 자신감 넘치는 인상의 중년 여성이 들어와서 말했다.

“어제 말씀하신 기획안 완성했습니다.”

“기한 사흘 준다고 했었는데요?”

“아이템이 워낙 확실하니까요. 오래 끌 필요가 없었지요.”

“천천히 해도 되는데……. 부하 직원들이 너무 유능해서 피곤하군요.”

“회장님만 하겠어요?”

중년 여성의 말에 김은혜가 힘없이 웃었다.

“그러게요. 나도 좀 슬슬 일해야 하는데.”

김은혜는 눈앞에 일이 있으면 해치우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능했다. 그녀와 일해본 사람 중에 그녀의 유능함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한 팀 섀도우리스의 매니지먼트도 훌륭하게 소화해낸 그녀가 아닌가.

‘공무원 인생을 살다가, 멸망의 위기에서 세계를 구한 초인 집단의 매니지먼트를 하다가, 이제는 한국에서 제일 돈을 펑펑 써대는 구호사업체 회장 노릇이라니… 인생 참 알 수 없네.’

정말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팀 섀도우리스가 해산한 후, 김은혜는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군단의 대공세로 피해 본 사람들을 위한 조직이었다.

김은혜는 유능함을 십분 발휘하여 돈을 효율적으로, 그러면서도 펑펑 써대고 있었는데 워낙 자금력이 막대해서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배경에는 팀 섀도우리스가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 해산 때, 서용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혹시 다음 계획이 있나?’

‘글쎄요. 돈 많은 실업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데요.’

김은혜는 워커홀릭이었다.

업무 능력이 출중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에서 성취감을 얻었기에, 일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 데리고 여행이나 다닐까 했는데, 지금은 별로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고…….’

‘휴식이 간절한 게 아니라면, 일 하나 안 해보겠어?’

‘또 저를 고용하려고요? 무슨 일인데요?’

‘돈 쓰는 일.’

서용우는 그녀에게 구호사업을 맡기고, 초기 자본금으로 1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안겨주었다.

한국 내에 국한된 구호사업인데 대뜸 1조 원을 쓰라고 주다니, 서용우이기에 가능한 스케일이었다.

게다가 이 구호사업의 자본금은 그것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팀 섀도우리스 멤버들을 시작으로 막대한 자금이 추가로 유입되었다. 김은혜는 전력을 다해서 그 돈을 보람차게 쓰는 중이었고, 그 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일에 돈을 마구 써대는 맛이란!’

그건 팀 섀도우리스의 매니지먼트로 돈을 쓰나미처럼 벌어댈 때와는 또 다른 쾌감을 안겨주었다.

“일단 나가보세요. 검토라도 좀 천천히 해야겠네.”

“네.”

부하 직원이 나가자 김은혜는 잠시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딴짓을 했다. 하지만 3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기획안을 집어 들었다.

‘이재민 돕기 e스포츠 & 각성자 격투 대회.’

기획안의 타이틀이었다.

* * *

팀 섀도우리스 해산 후에도 유현애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가 휴고 스미스라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는 유현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나와 차준혁도 레전드로 불렸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유현애를 따르지 못했다. 유현애는 미모도 빼어나고, 대중의 주목을 모으는 스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트 재해가 소멸한 이후, 그녀는 이미나, 차준혁과 손잡고 적극적으로 한국의 재해 지역을 정화했다.

긴급한 요청이 있으면 종종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지로 날아가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그녀를 여신처럼 떠받들었다.

“자, 여러분! 결승 진출자가 결정되었습니다! 모두가 기대하던 스페셜 매치가 성립되었어요!”

와아아아아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2030년 3월. 구로구의 고척 스카이돔을 1만 8천 명의 환호성이 뒤흔들었다.

김은혜가 이끄는 구호사업체가 기획한 행사였다.

고척 스카이돔을 이틀간 빌려서 어제는 인지도 높은 16명의 헌터가 출전하는 격투기 대회를, 그리고 오늘은 e스포츠 대회를 열었다.

양쪽 행사 모두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이재민 돕기 성금을 기부받는 행사라 출전자 모두 자원봉사였다.

홍보에도 심혈을 기울여서 TV 시청률과 인터넷 시청자 수도 굉장한 수치를 기록했고, 어제 하루만으로도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이 모여서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의 세 배가 넘는 기부금이 모여서 사람들을 경악시키고 있었다.

“역시 현애 인기는 사기급이야.”

VIP석에 앉아 있던 이미나가 혀를 내둘렀다.

어제 격투기 대회 행사에는 그녀도 출전했다. 그녀가 출전한다고 하자 한국 헌터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격투기로는 난다 긴다 하는 거물들이 출전해 주었다. 이미나의 명성이 워낙 높았기에 다들 한 번쯤 싸워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미나의 상대가 되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의 이미나는 규격을 초월한 강자였다. 그녀와 다른 헌터는 피지컬 면에서 사자와 개미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당연했다.

이미나도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힘을 감추고 최대한 재미있는 경기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 경기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슈퍼 플레이가 난무했기에 어제 그녀가 뛴 경기의 다시보기 매출이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난 이젠 격투기 선수가 아니라 엔터테이너가 되어 버렸네.’

이미나는 그 사실이 좀 씁쓸하기도 했다.

그녀는 각성자가 되기 전에는 진지하게 격투기의 길을 걸었고, 이벤트성이라고는 하나 헌터 격투기에 진지하게 임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강해서 상대가 없다는 사실에 박탈감을 느낀다니, 무슨 만화 캐릭터도 아니고…….’

세계를 구한 대가로 적수가 없는 고독을 선물 받다니, 현실이라기보다는 중학생 시절 일기장에 끄적였을 법한 망상 같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이미나의 현실이었다.

와아아아아!

그때 사람들의 함성이 한층 더 커졌다.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한 사람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동안형 미모에, 키는 작지만 근사한 비율을 자랑하는 단발머리의 여성 유현애였다.

“현애야! 사랑한다!”

“꺄아아아악! 언니! 여기 좀 봐주세요!”

남녀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인기가 실감 나는 현장이었다.

그녀가 연예인이 아니라 아시아의 여신처럼 숭배받는 헌터이기에 가능한 인기였다.

오늘 e스포츠 대회는 처음부터 유현애를 주인공으로 시작된 기획이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가리지 않는 이벤트 토너먼트.

16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 대회에서 유현애는 멋진 경기력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소원 성취했네.”

결승전 치를 준비를 하는 유현애를 보며 이미나가 피식 웃었다.

게임에 집중하는 유현애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력이 강하다는 것을,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얼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저 표정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기부금 액수가 경이로운 것은 그녀의 팬이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저 표정이 단단히 한몫했으리라.

‘그래.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하지?’

선택받은 존재가 되어 인류를 파멸의 운명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예전에 자신이 진지하게 걸었던, 이제는 영영 잃어버린 꿈의 편린을 이런 식으로나마 맛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아쉬움은 있어도 즐거운 인생 아니겠는가?

이미나는 유현애를 보며 푸근하게 미소 지었다.

* * *

이재민 돕기 e스포츠 대회는 유현애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5판 3승제로 치러진 결승전은 치열한 접전으로 3:2 스코어를 기록했고, 기부금도 엄청난 액수가 모여서 매우 성공적인 행사였다.

유현애와 이미나는 관계자들과 뒤풀이를 즐기고 나서 인적 없는 하천 산책로를 걸었다.

“문득 궁금해진 건데…….”

유현애가 말했다.

“우리 지금 운전하면 음주운전으로 걸릴까요?”

“현애 넌 면허 없잖아.”

“아,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유현애의 투덜거림에 이미나가 아하하 웃었다.

“걸리겠지.”

“하나도 안 취했는데.”

“음주운전하는 사람들 다 그런 말 하더라.”

“진짜로 안 취했잖아요.”

“안 취했다고 술 냄새가 안 나는 건 아니니까. 냄새로 잡잖아.”

유현애와 이미나의 몸은 항상성 유지력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났다.

각종 약물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치사성 독도 유의미한 손상을 입힐 수 없을 정도였다. 술도 마찬가지라서 열심히 들이부어봤자 잠깐 알딸딸해졌다가 금방 회복되고 만다.

“이런 날에는 좀 취해서 흥얼흥얼하면서 걸으면 되게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지금도 기분 좋으면서.”

“그냥 술에 취할 수 있었을 때의 기분이 그리워지네요.”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로를 걸을 때였다.

문득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걷는 산책로 앞쪽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안녕. 현애, 미나.”

또박또박한 발음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갈색 머리칼의 백인 여성, 브리짓 카르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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