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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상은 격변했다.
인류 문명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입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라고 명명된 대재앙의 날.
세계 곳곳에서 통칭 ‘게이트’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 * *
2029년, 세상은 격변했다.
그해, 당연히 찾아올 줄 알았던 8번째 각성자 튜토리얼은 없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
지구 인류 중에는 더 이상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각성자의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적인 요소가 아닌, 인류가 해명하지 못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후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면서 마력을 다루는 초인이라는 존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이 사실은 인류를 걱정에 빠지게 만들었다.
게이트 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각성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더 이상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9년 8월을 기점으로, 지구상에는 더 이상 게이트 재해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지진이나 태풍처럼 당연시되던 게이트 재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인류는 경악했다.
그 사실에 사람들은 기뻐했다.
종말의 군단이 퍼부은 대공세로 인해 인류는 파멸에 가까운 위기를 경험했다. 힘들게 버텨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게이트 재해가 사라지자 부담이 크게 줄었다.
그런 한편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14년, 지금의 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자원은 마력석이었다.
게이트 재해가 사라진다는 것은 더 이상 마력석을 수급할 방법도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아직 지구상의 재해 지역에 많은 몬스터가 남아있고, 그동안 비축해둔 마력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 문제의 해법이 존재할 것인가?
사실 인류는 전부터 이 문제의 해법을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었다.
마력석 없이도 상온 핵융합을 일으킬 기술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나와 있었다.
하지만 과연 마력석 비축이 동나기 전에 실용화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런 불안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인류는 게이트 재해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역사상 끊임없이 이어져 온 일들을 다시 시작했다.
전쟁이었다.
* * *
재해 지역.
그것은 인류가 관리를 포기한 지역의 통칭이었다.
게이트 재해가 범람하는 시대, 인류의 거주지역은 예전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관리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땅은 몬스터에게 점령당해 재해 지역이 되었다.
“아무도 갖고 싶어 하지 않았던 땅이, 이제는 엘도라도 취급을 받고 있군요.”
브리짓은 한숨을 쉬었다.
종말의 군단을 끝장낸 것이 2029년 5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29년 8월을 기점으로 더 이상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반년이 지난 2030년 2월.
브리짓은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광활한 재해 지역의 영토 소유권 때문에 벌어진 전쟁 소식을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재해 지역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었다.
게이트 재해가 사라진 이상, 이제 세계는 다시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전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 회귀 과정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지만…….”
브리짓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게다가 재해 지역이 예전과는 달리 능동적인 위협이 된 것도 문제지.’
종말의 군단이 파멸한 이후, 지구상에 자리 잡은 몬스터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본래 몬스터는 영역 의식이 투철했다. 몬스터가 재해 지역 밖으로 나오는 것은 그 안의 몬스터 개체수가 과잉단계에 들어갔을 경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재해 지역의 몬스터가 아무 이유 없이 밖으로 나와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한두 마리일 경우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무리를 지으면 그때부터는 심각한 위험이 발생한다.
그녀와 마주 보고 앉은 애비게일 카르타가 말했다.
“나쁜 예상은 늘 적중하기 마련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준비한 대로 하는 수밖에.”
“네.”
브리짓은 일찌감치 이런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쟁 그 자체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했던 그녀였지만, 얼마 안 가서 절망하게 되었다.
1세대 구세록의 계약자처럼 초월적인 폭거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런 흐름을 막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최대한 미국이 이 흐름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브리짓은 미국을 안정시키고,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전쟁의 흐름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힘을 쓸 것을 결심했다.
“그에게 허락을 받아두길 잘했어요.”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서 서용우에게 허락을 구했고, 서용우는 허락해주었다.
서용우는 군단을 끝장낸 후에도 팀 섀도우리스에게 주어진 힘을 회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럴 수 있음을 브리짓은 잘 알고 있었다.
애비게일이 말했다.
“과욕만 부리지 않으면 문제없을 거란다.”
“과욕이라…….”
“우리처럼 하지만 않으면 될 거다. 그는 그걸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애비게일은 서용우가 그어둔 선을 예상할 수 있었다.
서용우는 브리짓이 미국을 안정시키는 것은 허락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적인 이득을 얻는 것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미국을 통제해서, 미국이 슈퍼 파워였던 시절을 재현하려고 한다면?
그건 결코 맞설 수 없는 재앙을 부르는 과욕이 될 것이다.
“모호하면서도 명확한 선이지요.”
쓴웃음을 지은 브리짓은 문득 애비게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애비게일이 물었다.
“왜 그러니?”
“아니, 그냥… 뜬금없지만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비게일은 오래전부터 삶을 실감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삶이 소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삶을 지속했던 것은 구세록의 계약자로서 짊어진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 의무감을 잃었을 때, 과연 그녀는 삶이 계속되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브리짓은 그 사실을 걱정했다.
“너희들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괜찮을 것 같구나.”
애비게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군단의 대공세로 인해 그녀는 미국을 좌우하던 권력 기반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영혼을 짓누르던 무거운 의무감에서도 해방되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그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브리짓은 애비게일이 자살해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사다모토 아키라의 사례가 있었기에 더더욱 걱정이 깊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이후, 애비게일은 조금씩 정신적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예전의 애비게일은 브리짓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에 현실감이 사라져서 멍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그녀가 평온한 얼굴로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한 행위였다. 필사적으로 정신력을 끌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애비게일은 그런 증상을 보이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브리짓, 휴고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면 자연스럽게 웃는 일이 늘었다.
“혹시 식은 언제쯤 올릴지 생각하고 있니?”
“…….”
브리짓이 멈칫했다.
의표를 찔렀다. 애비게일은 이 화제를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 브리짓에게 애비게일이 말했다.
“보채는 건 아니란다. 지금은 둘 다 그럴 여유가 없겠지.”
“네. 지금은 정말로…….”
브리짓은 한숨을 쉬었다.
애비게일에게 거둬진 브리짓과 휴고는 오랫동안 남매처럼 자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서로를 남매로 여기냐 하면 그건 아니다. 휴고는 일찌감치 브리짓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대했고, 그런 태도는 브리짓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서로 마음을 확인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브리짓은 그의 마음을 쉽게 받아주지 못했다.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비게일이 짊어진 것을 자신이 이어받아야 한다는.
하지만 이제는 휴고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가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브리짓은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적어도 미국의 혼란이 정리되고, 미국이 초자연적인 힘없이도 세계정세 속에서 확실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그녀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런데 휴고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슈퍼스타였다. 그는 미국의 최정예 헌터들과 팀을 꾸려 재해 지역을 청소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고, 사람들에게 미국의 미래를 밝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괜찮아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브리짓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인류를 절망시킬 멸망의 운명은 사라졌다. 세계는 혼란에 휩싸여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 세상의 운명은 인류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쩌면 그리고 그 운명을 박살낼 수도 있는 폭탄도 인류의 손에 있지.’
브리짓은 정보부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서 고뇌에 빠졌다.
* * *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를 한 명만 꼽는다면 누구일까?
적어도 미국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 없었다.
휴고 스미스가 있었으니까.
본래부터 슈퍼스타였던 휴고 스미스의 인지도는 이제 감히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제는 해산한,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는 사상 최강의 헌터 조직, 팀 섀도우리스의 일원.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그 행보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팀 섀도우리스는 공식성명조차 발표하지 않고 해산했다.
이에 대해서 휴고 스미스와 차준혁, 유현애, 이미나처럼 신분이 드러난 이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팀 섀도우리스가 해야 할 일이 끝났기 때문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대답은 대중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수많은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지지되고 있는 것은 게이트 재해를 끝장내버린 것이 그들이라는 설이었다.
오랫동안 영국인들의 악몽으로 군림했던 9등급 몬스터, 폭풍용을 단 두 명의 팀원만으로 격퇴한 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않겠는가?
휴고 스미스의 행보는 그 추측의 신뢰성을 높여주고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 해산 후, 휴고 스미스는 본래 소속되어 있던 팀 가디언즈 윙에 복귀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함께 재해 지역 정화 작업을 진행할 최정예 팀을 모집했다.
아직 게이트 재해가 존재하는 과거였다면 이 부름에 응할 자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자신의 팀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활약하는 것이 중요했고, 또 팀과의 계약 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게이트 재해가 소멸한 것만으로도 헌터의 필요성은 급감했다. 시간이 지나 지구상에서 몬스터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모든 헌터가 실업자가 될 것이다. 이미 그때를 대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휴고의 소집은 미국의 헌터들에게는 기회로 여겨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이질적인 불안이 지배했던 이 시대의 끝에서, 미국을 구한 영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
그리하여 휴고를 중심으로 한 미국 올스타팀 ‘커튼폴’이 탄생했다.
선거를 준비하는 미국 임시정부를 비롯해서 수많은 기업과 자산가들이 그들의 스폰서가 되겠다고 나섰다.
헌터 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커튼폴의 재해 지역 정화 작업에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 * *
커튼폴은 미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오히려 미국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인류를 위해 재해 지역을 청소하는 그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냐고?
그들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계정세는 혼란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 재해 지역을 정화해서 영토를 수복하는 것에 전념하는 것은 미국의 국력을 높이는 길이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재해 지역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국외의 재해 지역을 정화하는 작업에 나선다면?
그것은 미국의 이익을 깎아 먹는 짓이 될 수 있다.
설령 타국의 사람들이 당장 긴급한 위험에 처했다 하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타국인을 구해주는 것보다는 전혀 급하지 않은 미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국가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커튼폴은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해외라 할지라도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날아가서 재해 지역을 처리했다.
“남미나 캐나다야 그렇다 치고, 필리핀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지.”
“그러게. 하지만 평화로운 남국의 바다를 보면서 술 마시는 기분은 정말 좋지 않나?”
“어이, 캡틴.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며칠 쉬다 가면 안 되나?”
작전을 마친 후, 커튼폴의 팀원들은 필리핀 정부가 마련해준 파티를 즐기며 시시덕거렸다.
휴고가 씩 웃었다.
“왜 안 되겠어? 필리핀 정부가 우리를 위해 이 리조트를 대절해주고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으니까 마음껏 즐기고 가자고.”
“브라보!”
“남국의 리조트에서 휴양이라니, 꿈만 같아!”
“난 어린 시절, 코타키나발루에 가족 여행을 갔던 적이 있어. 근데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커튼폴의 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틀은 놀 수 있어.”
휴고가 덧붙인 말에 우우- 하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런 데까지 왔는데 겨우 이틀이야?”
“너무한다. 일주일! 일주일은 놀고 가자고!”
“어차피 여기 오느라 고생한 것도 아니잖아. 나중에 한가해지면 사적으로 놀러 오라고. 이제 얼마든지 올 수 있을 테니까.”
본래 미국에서 필리핀까지 날아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커튼폴 팀원들은 한 발짝 내디디는 것만으로 도착했다. 휴고가 오버 커넥트로 만들어낸 워프 게이트를 이용했으니까.
팀원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즐기던 휴고가 순간 멈칫했다.
“왜 그래, 캡틴?”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설마 긴급 작전 때문에 바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
다들 불안해하며 휴고를 바라보았다. 휴고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휴고는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서 전화기를 들었다. 아니, 전화기를 드는 척했을 뿐 그의 정신은 구세록의 정보 공간에 진입해 있었다.
“수고했어. 작전은 잘 끝났다면서?”
그곳에서는 브리짓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고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잘 끝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사실 커튼폴에 휴고가 있는 시점에서 지구상에 그들이 어렵게 처리할 재해 지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휴고라면 9등급 몬스터도 어렵지 않게 죽여 버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휴고는 자신의 힘을 적당히 숨겼다. 이후의 삶을 위해서는 필요한 작업이었다.
브리짓이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뭔가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작은 일은 아니야.”
“뭔데?”
“리사가 ‘HU’와 접촉했어.”
그 말에 휴고가 흠칫했다.
“리사가? 그럼…….”
“그와 그녀도 알게 되었겠지.”
“확실히 중대사안이군.”
휴고가 표정을 굳혔다.
HU는 얼마 전에 미국의 정보망에 걸려든 비밀조직이었다.
브리짓은 이들의 존재를 포착하고, 그 실체를 알게 된 시점에서 바로 섬멸을 고려했다. 하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부분에서 심상치 않은 정보가 나와 좀 더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한국으로 가서 그에게 해명할 생각이야. 우리가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HU를 방치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켜야지.”
“안 돼!”
휴고가 기겁했다.
“왜 위험을 자초하는 거야?”
“어차피 그가 마음만 먹으면 지구 어디에 있든 마찬가지야. 우주로 나가도 똑같을걸?”
“…….”
휴고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직접 찾아가는 게 가장 진실성을 보이는 길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 혼자는 못 보내. 나도 같이 가. 마침 이틀이나 시간이 비었어.”
브리짓은 그러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푸근한 눈으로 휴고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그와도, 그녀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뭐? 어째서?”
놀라는 휴고에게 브리짓이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아무래도 그 두 사람은 지금 지구에 없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