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92화 (19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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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여섯 개의 불빛.

그리고 유럽의 하늘을 점령해버린 거대한 빛의 군집체.

그 거대한 존재감은 세계 어디서나 느낄 수 있었다.

라지알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용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구세록 놈들, 이런 것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나.”

“놀랍지?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만 그래도 나름 놀라운 재주가 있었어. 그걸 제대로 써먹을 능력이 없었을 뿐.”

“하지만 이런 힘을 대가도 치르지 않고 쓸 수 있을 리 없다. 필시 그만한 영적 자원을 소모하고 있겠지. 아마 그 이상의 대가도.”

라지알은 초월권족의 비술에 통달한 자. 그렇기에 생소한 현상임에도 그 본질을 통찰해냈다.

“글쎄.”

용우의 미소가 짙어졌다.

물론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을 것이다. 전략 폭격이 성공한 시점에서 용우는 더 이상 적에게 친절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될 이유가 없었으니까.

성좌의 화신은 군주를 능가하는 마력을 가진다.

하지만 그 힘도 무한하지는 않았다.

구세록에 비축된 영적 자원이 어마어마하기에, 적어도 이 전투에서는 무진장의 마력이 제공될 것이다. 하지만 전투가 길어지면 그 마력을 담아서 쓰는 그릇에도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죽음의 리스크는 피했어도, 전혀 리스크가 없을 수는 없는 거지.’

구세록을 장악한 용우와 이비연은 성좌의 화신에 대해서도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구세록의 초월권족과 싸웠을 때, 그들은 한 번의 죽음을 대가로 그 힘을 구현했다.

하지만 사실 그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그랬을 뿐, 그들이 생각한 군단과의 최종결전에서는 그 대가조차 지불할 생각이 없었다.

‘인신 공양에 환장한 것들.’

그 시점에서 군단의 침략을 받는 세계.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군단을 무찌른 다음 지배해서 안주할 세계의 주민을 제물로 삼아, 대신 죽음의 리스크를 받게 할 생각이었다.

정말로 그들다운 추악함이었다.

그래서 용우와 이비연은 그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짓의 의미를 알려주기로 했다.

구세록의 지옥에 영혼이 갇힌 그들을 부활시킨 뒤, 팀 섀도우리스가 성좌의 화신이 될 때의 리스크를 대신 짊어지는 제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팀 섀도우리스는 죽음의 리스크 없이 그 힘을 쓰고 있었다.

‘머릿수 차이는 거의 1 대 9만. 하지만 결국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일대일 대결이라는 게 웃기는군.’

용우와 라지알, 둘의 싸움이 이 전투의 핵심이었다.

“이제는 이해했겠지? 궁지에 몰린 게 어느 쪽인지?”

“…….”

라지알이 이를 악물었다.

그 말대로였다. 궁지에 몰린 것은 팀 섀도우리스가 아니라 군단이었다.

“잘도 우리를 여기까지 몰아넣었구나…….”

라지알이 씹어 삼킬 듯한 흉흉한 눈으로 용우를 노려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용우의 의도에 놀아났다. 그 결과 군단은 외통수에 몰리고 말았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군단이 파멸하기 전에 라지알이 용우를 쓰러뜨려야 한다.

“너만 막으면 나머지는 우리 적수가 될 수 없어. 너는 내가 상대해주마. 그동안 군단이 내 동료들에게 짓밟히는 걸 지켜봐라.”

용우가 라지알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자기가 끝판왕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절대 깰 수 없는 악몽 난이도에서 발악하는 플레이어였다는 걸 알게 된 소감은 어때?”

“…….”

“하긴 지구인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비유겠군. 그래도 뉘앙스는 전해지지?”

“…너만 잡으면 된다.”

라지알은 백금의 광채를 발하는 양손 대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그게 유일한 길이지. 하지만 나를 못 잡으면 그 대가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할 거야.”

“파멸보다 끔찍한 대가는 없지.”

“아니, 있어. 곱게 죽을 수 있다는 착각부터 버리시지?”

“뭐?”

라지알이 흠칫했다. 지금까지 모르던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용우에게 살해당한 군단의 언데드, 그 영혼들이 전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구세록 놈들이 아주 좋은 걸 만들어놨더군. 지옥이라고.”

그곳은 본래 죄 없는 자들이 끌려가 희생당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이름에 어울리는 곳으로 만들어줬지.”

지옥에 갈 만한 놈들을 거기다 처넣었다. 그리고 계속 처넣을 것이다.

용우는 군단을 곱게 죽여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구세록의 지옥으로 보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쥐어 짜내어 줄 것이다.

“너도 거기로 가게 될 거야. 영혼 밑바닥까지 쥐어 짜낸 다음에 소멸시켜주지.”

“그거 잘 됐군.”

라지알의 붉은 눈이 흉흉한 빛을 발했다.

“너희 모두를 죽이고 그 지옥이란 걸 손에 넣어주지.”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0세대 각성자와 군단의 왕이 격돌했다.

* * *

구세록의 권능으로 복제된 가짜 지구, 그 세계 전역이 전장으로 화해 있었다.

유현애와 이미나는 호주 대륙에서 6만 대군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을 잡기 위해 군단은 왕의 권능으로 강화된 개체 다섯을 투입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들과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다.

충돌을 피하면서 군단의 병력을 줄이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군단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 나는 전술이다. 그것은 유현애와 이미나 입장에서는 그만큼 합리적인 전술이라는 뜻이었다.

문득 유현애가 중얼거렸다.

“…시작됐네요.”

느껴진다. 바다 저편, 머나먼 한반도에서 일어난 힘의 파동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0시간 넘게 걸리는 호주인데도 그 힘이 느껴진다니, 참 터무니없게 들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현실이지.’

유현애는 새삼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있음을 실감했다.

그녀의 눈이 하늘로 향한다.

익숙한 푸른 하늘은 없었다. 하늘은 혼탁한 색으로 불타고 있었고, 주변 공기는 온갖 독성물질로 가득했다.

구세록으로 복제 구현한 지구는 이미 죽음의 별이 되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군단에 스윙바이 기술로 가속한 골렘 400기를 떨궈서 폭발시킨 여파였다.

‘만약 군단의 침공이 1세기만 빨랐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인류는 과연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구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기적 같은 행운이라고 한다. 먼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론할 것도 없이, 가까운 천체인 태양에서 일어나는 이변만 해도 인류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유현애는 군단의 침공 역시 그런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미 천 년 이상 침략전쟁을 계속한 군단이 지구에 도달하는 게 100년, 아니 수십 년만 빨랐어도 인류 문명은 손쓸 도리 없이 끝장나고 말았으리라.

‘이 풍경이 그 증거겠지.’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이야말로 멸망한 세계의 모습이다.

유현애는 그 사실에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현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 풍경을 현실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이제부터는 진짜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한반도에서 시작될 일대일 대결은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일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현애와 이미나의 역할은 중요했다. 정확히는 팀 섀도우리스 전원의 역할이지만.

이제부터 그들은 더욱 열심히 군단 병력을 줄여야 한다. 그것이 승산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 * *

용우와 라지알은 과거에 한 번 싸워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용우는 분신이었고, 라지알 또한 왕이 아닌 타락체일 뿐이었다.

다시 만나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둘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둘이 격돌한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대지가 터져 나갔다. 그 폭발이 수 킬로미터 저편까지 뻗어 나갔다.

하지만 폭발이 발생한 시점에서 용우와 라지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쾅! 꽈광! 꽈과과과과광……!

둘의 전장이 되기에 서울은 너무 좁았다.

최초의 격돌이 일으킨 여파가 다 퍼져나가기도 전에 경기도 전역, 아니 그보다 더 먼 곳에서도 폭발이 연달아 터졌다.

둘의 격돌은 공간적 연속성을 초월했다. 짧게는 수십 미터 단위, 길게는 수십 킬로미터 단위로 정신없이 공간을 뛰어넘으며 부딪치고 있었다.

파지직!

어느 순간, 라지알의 공세가 용우의 방어를 넘어섰다.

공간을 뛰어넘으며 날아든 검격이 용우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술은 놈이 위군.’

용우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용우는 격투전에서 이비연보다 뒤진다. 이비연의 격투전 재능은 천재적인 수준을 넘어 불가해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라지알의 격투 기술은 이비연과 비등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초공간검술이었다.

파지지직!

또다시 라지알의 검이 용우의 몸을 스쳤다.

용우의 초공간검술은 어비스의 구조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어비스의 각성자들이 죽고 죽이면서 그 성과가 하나로 통합된 결과물인 것이다.

그에 비해 라지알의 초공간검술은 유구한 역사를 거쳐 정립된 전투기술이다. 그리고 라지알 자신이 타락체가 된 후 천 년 동안 탐욕스럽게 기술을 갈고 닦았으니, 그 완성도가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싸움의 승패는 검술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다.

쾅!

초공간검술로 용우를 위협하던 라지알이 튕겨 나갔다.

“음……!”

라지알이 침음했다.

왕의 권능은 그의 마력을 터무니없는 수준까지 높여주었다. 일곱 군주를 합친 것보다도 월등하다. 지금의 그라면 일곱 군주가 살아 돌아와서 한꺼번에 덤빈다고 해도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

출력만 봐도 그렇고 마력 비축량, 회복력까지 따지면 더욱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가 온힘을 다한다면 지구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 힘을 손에 넣었을 때, 라지알은 온 우주를 통틀어도 대적할 자가 없는 절대자가 되었다고 확신했다.

“확실히 나도 네 힘을 완전 잘못 계산했지. 그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의 라지알과 필적하는 존재가 있었다.

정보세계이기에 용우는 어비스 최전성기의 자신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궁극의 융합체 네뷸라를 든 것이다.

불꽃의 활, 대지의 로드, 빙설의 창, 새벽의 해머, 광휘의 검까지 성좌의 무기 다섯 개.

하스라 코어, 볼더 코어, 두라크 코어, 소우바 코어까지 군주 코어 네 개.

이 아홉 개의 요소가 하나로 통합된 것이 네뷸라였다. 게다가 구세록을 장악하면서 성좌의 무기에 걸려 있던 출력 제한까지 풀린 상태.

지금의 용우는 마음만 먹으면 일격으로 지구를 두 조각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지? 계산은 빗나갔어도 충분히 감당이 되는데?”

용우가 손가락으로 헬멧을 툭툭 치며 라지알을 도발했다.

우주적인 권능의 소유자 둘이 지표면에서 격돌한 여파는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탐색전에 불과했는데도 한반도의 3분의 1이 초토화되었다.

그리고 정말 두려운 사실은, 용우와 라지알은 지금까지 가벼운 탐색전을 벌였을 뿐이라는 점이다.

‘역시 지구에서 붙는 걸 피한 게 정답이었다. 환경파괴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지구 그 자체가 부서지면 답이 없지.’

지구 환경이 죽음의 별이 되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뒷수습이 가능했다.

성좌의 무기 일곱 개가 모두 손에 들어온 데다가, 군주 코어까지 있었으니까. 구세록에 축적된 영적 자원을 펑펑 써대면 지구 환경을 복원하는 테라포밍 작업은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문명의 흔적이 죄다 지워져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수십억 인류를 데리고 문명을 선사시대부터 다시 시작하는 작업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작업일 터.

그래도 인류 멸망보다는 훨씬 행복한 엔딩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테라포밍도 지구 그 자체는 남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용우와 라지알이 전력을 다해 싸우다 보면 지구 그 자체가 박살날 가능성도 충분했다.

‘자꾸 그 쓰레기 자식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곤란하군.’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비열한 속셈으로 준비해놓은 것들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불리함을 감수하고 군단의 세계로 쳐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네놈이 애써 도발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다.”

짧은 순간, 라지알은 태세를 정비했다. 그의 능력을 강화하던 스펠들이 무서운 속도로 갱신되었다.

탐색전으로 파악한 용우에게 맞춰서 전투 세팅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그런 라지알에게 용우가 말했다.

“그렇게 느긋해도 괜찮을까? 째각째깍. 시간이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네 사랑스러운 군단원들이 죽어가고 있잖아? 네 그 힘이 언제까지 유지될까?”

그 말에 라지알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녀석, 설마…….’

동요하는 라지알에게 용우가 확인사살을 하듯 말했다.

“이제 39만 명 밑으로 떨어졌군. 아직은 타격이 없는 것 같은데, 과연 몇 명 밑으로 떨어지면 네 힘이 감소하기 시작할지 궁금한데?”

“…….”

라지알이 입술을 깨물었다.

용우는 왕의 권능이 어떤 구조로 성립하는지 간파하고 있었다.

왕의 권능의 핵심은, 거느린 군단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군단원이 많다 해도 라지알 하나가 가질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라지알의 힘은 전투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감소하고 있으리라.

“곧 38만 명 밑이 될 것 같은데, 어때? 아직도 여유가 넘치나?”

이곳은 구세록 내부 세계였다.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최종결전에서 군단을 멸절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한 덫이다.

군단은 이곳에 진입한 순간, 자신들의 전력을 낱낱이 파악 당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수는 물론이고 개개인의 위치와 마력, 신체 상태 그리고 특별한 힘까지 모두.

왕의 권능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구조는 간파당하고 말았다.

전쟁에 있어서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리고 팀 섀도우리스는 압도적인 정보 우위를 쥐고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는 군단이 자신들을 잡기 위해 배치한 강자들과 싸워주지 않았다. 구세록이 제공해주는 정보를 십분 활용하면서 철저하게 군단원을 학살하는 것에 집중했다.

용우가 도발적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 해, 빨리 덤비지 않고? 시간 많은가 봐?”

라지알은 그 도발을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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