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91화 (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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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권능은 군단을 극적으로 강화시켰다.

핵심은 두 가지.

본래대로라면 군단이 병력의 힘을 하나로 모아 통제하는 것은 만 명 정도가 한계였다. 그래서 군단은 만 명을 하나로 묶어서 전단으로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왕의 권능은 그 제약을 없애고, 거기에 더해 영적 자원을 소모해서 전원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또한 왕의 권능으로 특정한 언데드의 힘을 증폭시켜 군주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마력을 지니게 해줄 수 있는데, 한 번에 그 권능을 적용시킬 수 있는 숫자가 30명에 달했다.

이는 그만큼 영적 자원을 많이 소모하는 권능이다. 하지만 군단이 비축한 영적 자원의 양은 전략 차원에서 봐도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펑펑 써대도 한 번의 전투로는 다 쓸 수가 없을 정도다.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이 두 가지 권능을 알게 된 군단 지휘부는 기뻐 날뛰었다. 아무리 적이 강력해도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았다.

* * *

리사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혼란에 빠진 군단을 향해 소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우처럼 일방적인 학살극을 펼치지는 못했다.

콰쾅! 콰콰콰콰콰쾅……!

적진에서 리사를 향해 무수한 스펠이 날아들어 폭발했다.

전략 폭격으로 엄청난 숫자가 죽어 나가긴 했지만, 여전히 군단의 머릿수는 압도적이었다.

통제가 무너진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중구난방으로 쏴대는 공격도 무서웠다.

리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공격을 가해 수를 줄여나간다. 혼란 속에서 그녀가 사살한 언데드 숫자는 백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녀 앞에 일군의 언데드 무리가 나타났다.

<인간! 지금까지 설쳐댄 대가를 치를 차례다!>

자신이 소속된 전단의 힘을 받아 마력이 증폭된 자들이 20명.

그리고 그 앞에는 특출하게 강력한 힘을 뽐내는 두 해골기사가 있었다.

왕의 권능으로 특별히 강해진 자들.

리사는 사격의 반동으로 망가진 총을 버리고 창을 들었다.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었다.

<알량한 힘을 믿고 설치는 것도 이제 끝이다.>

지금 전개된 리사의 마력은 9등급 몬스터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기 위해 투입된 언데드 중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리사는 후퇴해서 동료와 합류하는 대신 맞서기를 택했다.

<죽어라.>

언데드들이 공격을 가했다.

섬광이 쏟아지면서 리사의 회피 루트를 차단한다. 그리고 왕의 권능을 받은 해골기사가 돌진해왔다.

꽈아아아아앙!

리사와 해골기사가 충돌한 여파로 대지가 터져 나갔다.

무식한 힘 대 힘의 격돌이었다.

<아니?!>

해골기사가 경악했다.

리사가 전혀 밀려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력을 생각하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별거 아니네.”

<뭐라고?>

리사의 중얼거림에 해골기사가 발끈하는 순간이었다.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프리징 필드!

극저온의 빙결 파동이 폭발했다.

일순간에 반경 1킬로미터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세계로 화한다.

<큭……!>

하지만 해골기사를 비롯한 최정예 언데드들은 버텨냈다. 리사의 바로 앞에 있던 해골기사의 몸 표면이 살얼음으로 뒤덮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이었다. 잠시 주춤한 해골기사의 빈틈을 리사가 용서 없이 찔렀다.

콰직!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해골기사의 몸통을 관통했다.

<이건, 이럴 리가……?>

해골기사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리사를 바라보았다.

왕의 권능으로 더없이 강대한 마력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허공장을 단번에 꿰뚫고 치명상을 입히다니?

그 일을 해낸 리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헬멧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오른손으로 창을 쥔 리사의 왼손에 마술처럼 소총 한 자루가 나타났다.

-염동충격탄!

소총이 박살 나면서 섬광이 해골기사를 꿰뚫었다.

콰아아아앙!

도저히 에너지탄 한 발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해골기사를 일격에 끝장내버리고, 그 뒤에 있던 언데드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다.

<마력을 감추고 있었단 말인가?>

그제야 사태의 전모를 알아차린 언데드들이 신음했다.

그런 그들에게 리사가 돌진했다.

꽈아아아앙!

천둥소리 같은 폭음이 터지면서 대지를 뒤덮은 얼음이 산산조각났다. 새하얀 파도가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녀와 대치한 언데드 전원이 튕겨 나갔다.

<이건 말도 안 돼!>

언데드들은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서로 힘을 연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힘은 엄청났다. 군단이 수집한 정보대로라면 서용우와 이비연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들 중 하나만 나서도 짓밟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뭔가?

얼음처럼 투명한 푸른 불빛이 리사를 감싸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울 중심가의 고층빌딩보다 더 크게 보이는, 성대한 불빛이었다. 그 뿌리 부분에 있는 리사가 개미보다 작아 보일 정도로.

<하스라 님?>

리사가 억누르고 있던 힘을 드러낸 순간, 그녀와 대치한 언데드들은 충격으로 말문이 막혔다.

지금 리사가 발하는 존재감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빙설의 군주 하스라.

그들이 잘 아는 군주와 한없이 유사한 존재감이었고, 동격의 마력이었다.

‘느껴져. 이제 힘이 다 차올랐어.’

리사가 헬멧 안에서 눈을 빛냈다.

군주가 다시 되살아난 것 같은 힘의 정체는 바로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준비한 결전병기, 성좌의 의식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서용우와 이비연을 제외한 여섯 명은 최종결전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구세록을 장악해서 힘의 제약을 풀어도 그들의 한계는 명백했다.

하지만 서용우와 이비연은 방법을 찾아냈다.

한 번의 죽음을 대가로 군주를 능가하는 마력을 부여하는 성좌의 의식.

그것으로 리사를 포함한 여섯 명을, 성좌의 화신으로 만든 것이다.

게이트가 열린 시점부터 의식을 발동했기에 여섯 명의 힘은 이미 최고치에 도달해 있었다.

<힘으로 부딪치지 마! 아군이 태세를 정비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줘야 한다!>

제복을 입은 언데드가 말했다. 본신 마력은 해골 기사가 제일 높았지만, 지휘관 노릇을 하는 것은 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대처도 팀 섀도우리스의 상정 범위 내였다.

-초열투창!

그들이 동요를 가라앉히고, 대형을 정비하기도 전에 리사가 맹공을 가했다.

제2우주 속도로 쏘아져 나간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지휘관 언데드를 관통했다.

-프리징 버스트!

거대한 한기 폭발이 일어났다. 단 한방으로 빙설의 창이 꽂힌 지휘관 언데드가 박살 나고, 쏟아진 한기가 반경 10킬로미터를 눈과 얼음의 세계로 바꿔 버렸다.

최정예 언데드들은 그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는 동안 발이 묶이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오로지 빙설의 화신이 된 리사만이 자유로웠다.

-사냥꾼의 축복 3연쇄!

개인화기라기에는 너무 큰 대 몬스터 저격총이 리사의 손에 쥐어졌다. 총구 앞에 에너지탄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빛의 고리 세 개가 배치되었다.

휴고나 유현애, 차준혁이라면 빛의 고리를 일곱 개 이상 배치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팀 섀도우리스에서 전투기술이 가장 떨어지는 리사에게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유성의 화살!

대 몬스터 저격총이 박살 나면서 발사된 섬광이 남은 한 명의 해골 기사를 꿰뚫었다.

군주급 마력으로 발한 스펠이다. 그것이 인류가 만들어낸 걸작, 증폭 탄두에 의해 몇 배나 강해진 위력으로 쏘아졌다.

허를 찔린 상태에서 한기 폭발을 막아내느라 주춤한 해골 기사는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

그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그를 걷어차서 산산조각낸 리사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폭발의 중심에 있던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스스로 날아서 그녀의 손에 돌아왔다.

‘지금부터야.’

이 결전을 위한 비밀병기를 드러냄으로써 가장 위험한 적들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리사는 들뜨지 않았다.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였으니까.

‘우리 힘이 다하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너희가 모두 죽는 게 먼저일지.’

과연 힘이 다하기 전에 아직도 40만 이상 남아있는 대군을 모두 쓰러뜨릴 수 있을까?

리사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기를 피워 올리며 악귀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 * *

이비연은 프랑스 파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란에 빠진 적을 덮쳐서 일방적인 학살극을 펼쳤다. 하지만 그녀 앞에 세 명의 타락체가 나타나서 제동을 걸었다.

암석인 타락체가 둘, 그리고 상아인 타락체가 하나.

셋 다 이비연이 아는 얼굴이었다.

“벙어리 공주, 오랜만이군.”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 것은 암석인 타락체였다.

그는 다른 암석인과는 큰 차이가 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돌 같은 피부 위로 용암이 끓어오르는 듯한 붉은 빛이 흐르고 있었으니까.

“이거 어쩌지? 난 이제 벙어리가 아닌데.”

“그렇군. 이비연이라고 불러주길 바라나?”

거구의 암석인 타락체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아인 타락체가 빈정거리는 어투로 한마디 했다.

“이제 와서 호칭에 신경 쓰는 의미가 있을까?”

“뭐라고 부르던 상관없어. 어차피 너희들 다 여기서 죽을 테니까.”

이비연이 헬멧 속에서 싸늘하게 웃었다.

거구의 암석인 타락체가 말했다.

“확실히 너는 강하다. 하지만 우리라면 너를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예전에 이비연은 용우에게 말했다.

벙어리 공주 이비연은 군단의 타락체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라고.

그 말은 즉 최강의 타락체인 라지알을 제외하고도 그녀와 필적하는 강자가 세 명은 더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세 명이 바로 타락체의 정점에 선 강자들이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물론.”

두 명의 암석인 타락체는 제2세계의 지배계층, 신성한 돌이었다.

용암 같은 빛을 두른 자는 그중에서도 최강의 무투파로 이름났던 자였고, 다른 한 명은 제2세계 어비스의 종반기에 타락체가 된 최강자였다.

그리고 상아인 타락체는 라지알과 비슷할 정도로 신분이 높았던 초월권족이다. 무사 가문 출신으로 최전선에서 군단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타락체가 된 그의 전투기술은 라지알도 인정할 정도였다.

이 셋은 본신 마력이 이비연과 필적하는 자들이다. 거기에 전신을 아티팩트급 장비로 도배하고, 왕의 권능으로 마력을 대폭 늘렸다.

게다가 이비연을 상대하기 위해 나온 것은 이들 셋만이 아니다.

이들 셋을 포함, 왕의 권능으로 강화된 30명 중에 절반인 15명이 이비연을 잡기 위해 투입되었다.

라지알이 이비연을 얼마나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확실히 막강한 전력이야.”

이비연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문득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 시작됐네.”

그 말에 적들이 흠칫했다. 그들 역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이변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군주의 힘?”

차준혁, 리사, 유현애, 이미나, 리사, 휴고 여섯 명이 성좌의 화신이 되었다.

그들은 힘이 최고치에 달하기 전까지는 힘을 감쪽같이 숨겼다. 이곳이 구세록의 내부 세계고, 구세록의 권능을 장악했기에 가능한 속임수였다.

그리고 적들이 그들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 최정예 전력을 투입한 순간, 허를 찔러 그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갔다.

“어때? 모든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줄 알았는데, 계속 뒤통수만 맞는 기분은?”

이비연이 적들을 조롱했다. 적들이 신음을 흘리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이비연을 최대한 빨리 죽이고 다른 지역에 합류하는 것임을 알았다.

쏟아지는 살기 앞에서 이비연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너희들도 내가 상정한 범위를 넘지는 못한 것 같은데?”

그녀가 지닌 융합체-굉뢰(轟雷)가 빛을 발하자 마력 파동이 폭풍처럼 그 자리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파리 상공, 아니 유럽 전역의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광휘의 세계수인가?”

이비연의 결전병기, 광휘의 세계수가 전개되었다.

“이걸 믿고 있을 줄 알았다.”

“설마 우리가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을 것 같았나?”

이비연을 상대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광휘의 세계수 대응책은 완벽하게 준비해왔다.

그런데…….

“뭐야?”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를 보이던 그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광휘의 세계수가 한순간에 유럽 대륙보다도 거대한 규모로 하늘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이런 규모라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론상으로 광휘의 세계수는 무한히 확장하며, 무한한 동력원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술자의 역량을 넘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비연이 강력한 존재고, 융합체까지 가졌다 해도 이만한 규모의 힘을 한순간에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야 지금 구현한 게 아니니까.”

이비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결계의 구축은 전략 폭격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략 폭격으로 발생한 거대한 에너지가 이비연의 손에서 변환되어 하늘을 수놓았던 것이다.

그 과정은 구세록의 권능으로 감춰졌다. 이 또한 이곳이 구세록의 내부 세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통 빛으로 가득한 하늘 아래서 이비연이 물었다.

“아직도 너희들만으로 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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