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핵무기가 연달아 터지던 것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규모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 이건 뭐야?>
<방어막이 깨졌다! 젠장, 생존자는 흩어져서 다른 부대로 합류해!>
전략핵이 일곱 발이나 터지자 주변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베이징 전역이 다시금 초토화된 것은 물론, 하늘을 찌를 듯한 버섯구름이 일어나고 흙먼지가 세상 전부를 뒤덮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기에 군단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공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 고작 눈속임으로 이런 짓을 한 건가?’
라지알은 적들이 전략핵을 굳이 쓴 이유를 알아차렸다.
단순한 눈가림이었다.
전략핵을 연달아 터뜨려서 이목을 가리고, 그 틈에 상공에 워프 게이트를 연다.
꽈아아아아앙!
그 워프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뭔가가 음속의 50배를 넘는 속도로 내리꽂혔다.
작게는 수 톤, 많게는 수십 톤 질량을 보유한 물체가 그 속도로 내리꽂히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다. 그런데 그 물체는 강력한 마력을 두르고 있었다.
‘이런 공격이라니!’
게다가 이 공격은 2단 구조였다.
마력을 두른 채 초고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1단, 그리고 충돌지점에서 골렘의 코어가 대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2단!
콰아아아아아!
전술핵급 대폭발은, 방어막이 깨진 채로 노출된 군단의 병력을 쓸어 버렸다.
그런 일이 초당 수십 번이나 일어났다. 베이징만이 아니라 지구 전역에서!
‘골렘을 이런 식으로 쓸 줄이야! 어떻게 이 숫자를, 이렇게까지 가속시켜둔 거지?’
상공에 열린 무수한 워프 게이트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골렘이었다.
군단 지휘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백 기의 골렘을 다른 곳에서 극한까지 가속시켜두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 불러들여서 적에게 충돌시키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 * *
그것은 정신으로 통제되는 권능에 의존할 뿐, 우주의 본질을 학문적으로 분석하지 않는 군단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의 공격이었다.
용우와 이비연은 골렘 다수를 우주 공간으로 날린 뒤 지구 중력권을 이용, 우주선이 행성간 이동을 할 때 가속에 쓰이는 스윙바이 기술을 응용해서 가속시켜두었다.
위성궤도에서 지구의 자전을 따라서 가속하던 골렘을, 필요한 순간 일제히 워프 게이트로 불러들임으로써 군단을 타격한 것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가속이었고, 워프 게이트를 쓰는 것만으로도 언제든지 불러들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이 공격에 골렘을 쓴 이유는 또 있었다.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보유하고 있던 골렘의 마력은 최소한 6등급 몬스터 이상.
그런 골렘의 코어를 폭발시키자 군단의 병력이 수백 수천 명씩 증발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 안 죽었군.”
<확실히 대규모 파괴 공격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어. 레이저 수소폭탄이 없었다면 별로 타격을 못 줬을지도 모르겠는걸.>
군단의 방어력이 예상 이상으로 강했다. 골렘을 떨궈서 코어를 폭발시키기만 했다면 이 공세로 5만 명도 못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용우와 이비연은, 거기에 현대무기까지 더했다.
브리짓에게 요청, 미국이 비축해놓은 마력 반응 탄두 탑재형 레이저 수소폭탄 전량을 받아왔다. 그것을 골렘의 코어에 장착하고는 폭발용으로 대량의 마력석을 함께 세팅해두었기에, 군단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라지알이 깨달은 위화감의 핵심이었다.
물질세계에서만 사용 가능했던, 지구 인류의 현대 병기가 정보세계에 구현되었다.
‘권 박사, 보고 있나?’
그것은 권희수 박사가 용우에게 전한, 최후의 연구성과였다.
‘당신이 바라던 복수의 순간이다.’
* * *
권희수의 인공지능 비서, 민수는 권희수가 완성한 최후의 연구 데이터를 용우에게 전달했다.
민수가 프로젝트의 개요를 이야기하고 나서, 화면에 권희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연구 설명을 위해 녹화한 화면이었다.
[군단의 열쇠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아티팩트와 대비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뭔가 다른 활용법이 있을 것 같았어요.]
권희수가 연구용으로 맡겼던 군단의 열쇠를 카메라 앞에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제로, 당신의 경험에 따르면 성좌의 무기와 아티팩트에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죠.]
둘 다 용우가 정보세계에 진입했을 때 온전한 형태로 구현해서 쓸 수 있었다.
[딱히 당신이 의식해서 구현하지 않아도 물질세계와 정보세계 양쪽에서 똑같은 형질을 유지한다. 그 특성이 이것을 ‘열쇠’라 부르는 이유라고 추측해요.]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 항상성.
군주는 그 특성을 이용해서 정보세계의 자신을 지구에 구현할 수 있었다.
[성좌의 무기라면 완전체, 하지만 아티팩트라면 완전체는 무리. 이건 단순히 용량 차이일 거예요.]
군주라는 거대한 존재의 정보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용량이 필요했다. 성좌의 무기는 그만한 용량을 가졌지만, 마이너 카피라고 할 수 있는 아티팩트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겠죠. 물질세계의 물건, 그 존재 정보를 군단의 열쇠에 담아서 정보세계에 구현한다.]
권희수는 이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이 활용에 있어서 우리는 군단보다 유리한 점이 있어요.]
정보세계의 주민인 군주는 물질세계로 오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물질세계의 주민인 용우는 정보세계로 갈 때, 아무런 대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신은 구세록의 제약조차 받지 않죠. 그건 즉 우리가 ‘군단의 열쇠’의 용도를, 물질세계의 무언가를 옮기는 것으로만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권희수는 군단의 열쇠에 물질을 정보화해서 담는 기술을 연구했고, 결국 완성했다.
용우는 그 기술을 이용, 온갖 전투 자원을 지구에서 구세록 내부 세계로 공수해왔던 것이다.
M슈트도, 증폭 탄두를 쏠 수 있는 각성자용 총기도, 마력 반응 탄두 탑재형 레이저 수소폭탄까지도…….
* * *
‘가슴을 펴고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누가 뭐래도 당신이 최고다, 권 박사.’
용우는 그녀를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지금의 팀 섀도우리스는 지구에서 쓰던 장비를 그대로 쓸 수 있었다. 데이터 센터와 인공위성 등의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서포트 시스템은 쓸 수 없지만, 그 부분은 구세록의 권능으로 대체 가능했다.
<그래도 25만 이상 줄었어. 앞으로 46만 명만 상대하면 되네.>
<…그거참 위로가 되는 수치네요.>
이비연의 말에 유현애가 투덜거렸다.
어쨌든 공들여 준비한 전술 폭격, 아니 지구 전역을 타격하는 전략 폭격의 효과는 탁월했다. 이 공격만으로도 군단은 25만 명 이상의 전사자를 낸 것이다.
<지구에서는 절대 못 할 짓이군요.>
브리짓이 혀를 내둘렀다.
진짜 지구에서 전략 폭격을 가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류는 멸망했다고 봐야 했다. 전 세계에서 전략핵급 폭발이 수백 발이나 터져서, 이미 대기권 안쪽은 인간이 생존 가능한 환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놈들을 상대할 수가 없지.”
어차피 지구가 전장이 된다면 지구 멸망은 정해진 결과였다.
군단의 총력을 감당할 전장으로 지구는 너무 작고 연약했으니까.
“어쨌든 놈들이 정신 못 차리는 동안에 하나라도 더 줄여. 시간 끌수록 힘들어진다.”
그렇게 말한 용우는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대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군단을 급습해서 닥치는 대로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크악! 지원! 지원을 요청해!>
<마, 막아! 어떻게든 방어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전략 폭격에 당한 군단은 모두 군진이 붕괴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는 서로의 힘을 하나로 묶어 통제하는 전투 시스템도 활용할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용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염마용참격(炎摩龍斬擊)!
용우가 네뷸라를 휘둘렀다. 그러자 검을 불태우며 뻗어 나간 섬광이 1킬로미터 저편까지를 베어버렸다.
콰과과과과과……!
단 일격으로 천 명 가까운 언데드가 증발했다.
-선다운 버스트 연속투하!
세상을 불태울 것 같은 섬광이 연속적으로 폭발했다.
-만군(萬軍)의 화살!
성좌의 무기 불꽃의 활에 내재된 권능이 발동, 5만 발을 넘는 불꽃의 화살이 서울 전역에 소나기처럼 쏟아져 폭발했다.
-초열광(焦熱光)!
10만도가 넘는 초고열의 광선이 발사되었다. 용우가 그 광선을 분사하면서 몸을 한 바퀴 빙글 회전시키자 전방위가 초토화되었다.
-초열결계(焦熱結界)!
서울을 불태우고도 모자라서 경기도 전역으로 퍼져나가던 열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불의 결계, 그 안은 고위 언데드조차 불타 죽는 불지옥이었다.
-용암의 군단!
그리고 그 불지옥에서 무수한 불의 거인들이 일어나 언데드 병력을 덮쳤다.
<군주 살해자……!>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힘을 그러모은 언데드 지휘관이 용우에게 뛰어들었다.
꽈아아아앙!
공간이 뒤흔들렸다.
언데드 지휘관은 잠시나마 용우를 밀어내고 초열결계를 파괴할 생각이었지만…….
콰직!
용우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반격, 일격으로 언데드 지휘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이런, 이렇게까지…….>
그제야 언데드 지휘관은 깨달았다.
처음 베이징에 진입한 군단과 맞붙었을 때, 용우는 진짜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용우가 발하는 마력은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군주의 다섯 배에 달하고 있었다.
<왕이시여…….>
언데드 지휘관은 힘을 쥐어짜 내어 텔레파시를 발했다.
<당신이 아니면, 누구도 이 자를…….>
그의 말은 끝까지 전해지지 못했다. 용우가 가볍게 손을 틀자 그의 몸이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파아아아아!
그리고 초열결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좌우로 갈라지는 불지옥 너머에서 붉은 눈동자로 용우를 노려보는 라지알이 나타났다.
“이제 41만 2천 명쯤 남았군. 아직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타락체?”
“인정할 수밖에 없군. 사냥꾼은 너였다.”
라지알이 용우 앞에 내려서며 말했다.
용우는 덫을 준비한 채 기다리는 사냥꾼이었고, 군단은 자신의 힘만 믿고 달려든 맹수의 무리였다. 라지알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너 혼자뿐이다.”
라지알에게서 해일 같은 마력 파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용우의 표정이 굳었다.
‘이 녀석…….’
라지알은 이비연을 상회하는 본신 마력을 가졌다. 이비연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거의 어비스 종국의 용우와 필적하는 수준일 것이다.
그런 그가 세 개의 군주 코어를 손에 넣어 융합체를 만들었다. 이미 융합체를 가진 용우는 그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 쉽게 짐작해냈다.
그런데 지금 라지알이 개방한 마력은 용우가 짐작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군주 살해자, 내 힘을 짐작했겠지? 나 또한 네 힘을 짐작했다.”
라지알이 웃었다.
“네 힘은 내 짐작보다 못하군. 아직 감추고 있는 힘이 있겠지. 하지만 내 힘은 어떻지? 네 짐작을 뛰어넘지 않았나?”
그 말대로였다.
왼팔에는 백은의, 오른팔에는 황금의 건틀릿을 끼고 몸에는 화려한 백금의 갑옷을 입은 라지알은 일곱 군주를 합친 것보다도 거대한 마력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가 뭘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겠지. 이해한다. 네가 준비한 것에는 정말 놀랐으니까.”
전략적 레벨에서의 수싸움에서는 철저하게 패배했다. 라지알은 그 뼈아픈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지 못한 것은 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의 권능은 구세록의 초월권족도 모르는 변수였다. 네 명의 군주가 살해당한 군단이 이토록 강력한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너만 막으면 나머지는 우리 적수가 될 수 없지. 너는 내가 상대해주마. 그동안 네 동료가 군단에 짓밟히는 걸 지켜봐라.”
라지알이 잔혹하게 웃었다.
Final Chapter Kill the 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