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89화 (189/225)

2

지구 곳곳에 작게는 300미터, 크게는 1킬로미터를 넘는 초대형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게이트는 지금까지 인류가 공략해온 게이트와는 달랐다. 상공에 열리자마자 전략핵에 필적하는 폭발이 터지고, 대파괴의 열기가 휘몰아치는 한복판에 무수한 언데드 병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서울.

일본 오사카.

미국 뉴욕.

캐나다 몬트리올.

대만 타이베이.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모스크바.

태국 방콕.

호주 시드니…….

게이트는 계속 추가되었다.

그리고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그 도시는 지도상에서 소멸했다. 지구 인류의 능력으로는 막을 길이 없는 재앙이었다.

<이제 알겠느냐?>

지구에 진입한 군단원의 숫자는 순식간에 30만 명을 돌파했다.

<너희 인류의 무력함을.>

이만한 타격이면 지구 인류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용우와 대치한 해골 기사는 그 사실을 확신했다.

<제3세계의 역사는 오늘로 끝난다. 너희 모두가 죽음으로써 군단의 영광을 꽃피울 비료가 될 것이다.>

해골 기사는 자신이 말하는 미래에 도취된 듯했다.

그 앞에서 용우는 가만히 서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헬멧을 쓰고 있기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골기사는 그의 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아무 말도 없지? 절망했느냐? 그럴 만도 하지. 넌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라.>

“…….”

용우는 말없이 서 있었다.

문득 해골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끝났다.>

베이징 상공의 거대한 게이트가 언데드 병력을 쏟아내길 멈췄다.

이곳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 열린 17개의 게이트 모두가 그 역할을 끝내고 닫히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군단원이 지구로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이징 게이트에서 단 한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보아라. 왕께서 강림하신다.>

“…왕?”

멍하니 서 있던 용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래.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을 알려주실, 위대한 왕.>

용우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상앗빛 피부와 눈부신 금발을 가진 청년. 타락체 라지알이 붉은 눈동자로 용우를 내려다보며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아하.”

용우는 그를 보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나머지 군주들은 놈에게 죽은 건가.”

라지알이 융합체를 지닌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단의 왕이 뭔가 했더니, 군주를 죽이고 융합체를 가진 놈이 왕이 되는 거였군.”

용우가 중얼거렸다. 그것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몇 개가 해소되었다.

‘왕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없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거겠지.’

눈앞의 언데드 열 명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마력을 지닌 것도, 그 권능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군주 살해자.”

땅에 발을 디딘 라지알이 용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용우 앞을 가로막고 있던 열 명의 언데드가 좌우로 갈라졌다. 용우와 라지알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

“너도 알고 있겠지? 너희가 우리에게 쳐들어오지 못한 시점에서, 결과는 정해졌다.”

지구와 군단의 세계, 둘 중 어느 쪽이 전장이 될 것인가?

그 선택권을 군단이 가진 시점에서 지구 인류의 멸망은 결정되었다. 팀 섀도우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군단을 향해 멸망한 종족의 분노와 원한을 쏟아내는 것뿐.

“물론 너희가 쳐들어왔더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겠지만.”

이 전장에서 용우가 보여준 힘은 인상적이었다. 과연 군주 살해자라 불릴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용우는 군단의 예상을 뒤집는 위험까진 보여주지 못했다.

“자, 모든 게 끝났는데도 끝까지 싸워보겠어?”

라지알의 물음에 용우가 고개를 숙였다.

절망해 버린 것 같은 몸짓이었지만 잠시 후, 군단은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큭…….”

용우의 몸이 작게 들썩였다.

“큭큭큭…….”

아무리 애써도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쳐버렸나 보군, 불쌍하게도.>

해골 기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동료들을 돌아볼 때였다.

콰직!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어억……!>

한순간에 그에게 접근한 용우가, 일격으로 그의 몸을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상대도 안 되는 잡것이 내 앞에서 한눈팔고 그러면 쓰냐?”

용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이놈…….>

콰광!

그리고 해골 기사가 뭔가 해보기도 전에 그의 몸이 폭발해 버렸다.

<이놈!>

<포기하면 편해질 수 있었을 것을.>

기습으로 한 명이 당하자 다른 언데드들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용우는 그들을 무시하고 라지알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타락체.”

“끝까지 싸워볼 생각이구나. 그 뜻을 존중해주지.”

“푸훗.”

라지알이 애석하다는 듯 말하자, 용우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정말로 웃겨 죽겠다는 듯 크게 웃어대는 용우의 행동에 군단은 다들 기괴함을 느꼈다.

라지알이 차분하게 물었다.

“뭐가 그리 우습지?”

“네놈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거창한 말투 쓰는 게 웃겨서. 내가 왜 웃는지 정말 모르겠냐?”

“절망으로 미쳐버린 거겠지.”

“그래 보여? 정말로?”

용우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헬멧 속에서 이죽거렸다.

“한심한 것들이군. 하긴 진입하기 전에 진입지점을 초토화시키고 시작했으니 모를 만도 한가?”

그 말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용우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너희들이 넘어온 문은 닫혔다.”

베이징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지구상에 열렸던 모든 게이트가 닫혔다.

“그 결과 너희 모두가 이 세계에 있지. 진입한 숫자는 총 71만 7,467명… 지금 남아있는 건 71만 5,104명인가? 내가 대략 2천 명 정도는 죽였군.”

용우의 말에 라지알은, 아니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요했다. 이 상황에서 저토록 정확하게 군단 병력의 숫자를 파악하다니, 그런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이제 아무도 도망 못 간다. 이 세계가 네놈들의 무덤이야.”

“…….”

라지알은 황당해하며 용우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왕이시여, 이상합니다.>

다른 지역으로 진입한 자들이 보고해왔다.

<아무도 없습니다.>

“뭐?”

<제3세계의 인류가 전혀 안 보입니다.>

<이,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쪽도…….>

같은 보고가 연달아 날아들었다.

진입하기 전에 종말급 스펠로 도시를 초토화시켰으니, 진입 지점에서 살아있는 인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팀 섀도우리스를 제외한 지구 인류는 그 누구도 그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렇게 초토화한 지역에 진입했기에, 그들이 이상을 눈치채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경악한 라지알의 눈이 용우에게 향했다.

“설마… 인류 전체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킨 거냐?”

“그것도 하려면 할 수는 있었지.”

구세록을 손에 넣은 지금, 인류 개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수십억 인류를 피신시킬 수 있는 장소?

물론 있었다.

소멸한 게이트 내부 필드라는, 아주 훌륭한 피신처가.

“하지만 우리 세상은 네놈들처럼 모든 인구가 군대화된 해괴한 사회가 아니야. 그런 짓은 후유증이 너무 크지.”

“…후유증이라고?”

라지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계의 운명을 건 일전에서 후유증 때문에 수단 방법을 가린단 말인가?

“선택할 여유가 있는데 가리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무슨 짓을 한 거지?”

“멍청하군. 정말 모르겠냐?”

용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도 여기가 지구로 보이냐?”

“…….”

그 말에 라지알이 헛숨을 삼켰다. 동시에 강렬한 깨달음이 찾아들었다.

자신이 발 디디고 선 이곳은…….

“물질세계가… 아니란 말인가?”

“그래.”

용우가 헬멧 속에서 웃었다.

“너희들은 애당초 지구에 가지도 못했어.”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거대한 우주 공간까지 복제해서 구현한, 거대한 정보세계였다.

“전장을 고르고 싶어 했던 건 피차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내가 네놈들이 쳐들어올 때까지 손 놓고 있었을까?”

용우는 전장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게 아니었다.

지구가 전장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패배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용우는 정말로 전 인류를 소멸한 게이트 내부 필드로 피신시키는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군단의 세계를 전장으로 삼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용우는 이미 왕의 섬이 얼마나 위험한 전장인지 경험해보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라지알의 선택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제3의 전장을 준비하고 기다린 것이다.

“그럼 여긴 대체 어디지?”

“구세록.”

“뭐라고?”

“구세록이라고. 어떠냐, 너희가 그토록 원했던 보물창고에 들어온 기분은?”

* * *

용우가 군단의 세계, 왕의 섬에 게이트를 연 것은 결코 헛짓거리가 아니었다.

군단의 병력을 죽이는 게 아닌,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구와 군단, 두 세계의 연결고리를 조작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군단의 게이트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좌표를 구세록 내부로 향하도록 조작하는 것은 가능했다.

본래 이것은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최후의 전쟁을 위해 준비한 한 수였다.

언젠가 군단과 결전을 치를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그들은 물질세계를 전장으로 삼길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서 군단의 침략을 받고 있을 세계는,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들이 지배하여 살아갈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구세록 내부 세계를 최후의 전장으로 설정하고, 군단을 끌어들일 방법을 만들어둔 것이다.

이곳이 지구 환경을 복제하여 구현한 것 또한 그 기능의 일부였다.

최후의 전쟁 시점에서 침략 받고 있는 세계를 복제하여 구현한다.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그렇게 준비해뒀던 것이다.

‘하여튼 쓰레기 같은 것들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준비에 감사한다. 그들 모두를 지옥에 처박고, 그들이 준비한 것을 모조리 강탈한 지금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멋지게 당했군.”

일의 전모를 알게 된 라지알이 이를 갈았다.

완벽하게 한 방 먹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아. 너는 여기서 죽는다.”

“야,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라. 내가 왜 너한테 이렇게 친절했을까?”

“뭐?”

“얌전히 경청해줘서 고맙다, 얼간아.”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전력을 다해 뒤로 뛰었다. 그의 뇌리로 이비연의 텔레파시가 날아들고 있었다.

<3초 후에 터질 거야! 충격에 대비해!>

그리고 하늘에서 발생한 빛과 열기가 군단을 덮쳤다.

……!

상공 1킬로미터 지점에서 종말급 스펠과 필적하는 빛과 열이 발생, 수십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그것도 한 발이 아니었다. 연달아 같은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베이징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뭐지?’

그 파괴의 폭풍 속에서 라지알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이런 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라지알 만이 아니라 군단 전원이 같은 감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분명 엄청난 폭발이다. 하지만 군단에게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폭발은, 마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구 인류가 개발해낸 최악의, 하지만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는 그 가치 평가가 수직 하락한 무기.

핵무기였다.

전략핵이 일곱 발이나 연달아 폭발하면서 베이징은 물론이고 그 주변 지역까지 파괴한다. 하지만 정작 타격해야 할 군단에게는 아무런 손실도 입히지 못한 공격이었다.

‘아니, 잠깐.’

라지알은 뒤늦게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놈들이…….’

하지만 그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꽈아아아아앙!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