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84화 (18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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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의 심장부, 왕의 섬.

그곳에는 오랫동안 주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왕궁이 있었다.

또한 아무도 앉을 수 없었던, 비어 있는 옥좌가 있었다.

언젠가 탄생할 왕을 위해 안배된 그 의자에는 지금 누군가 앉아 있었다.

“이런 식이었나.”

핏빛 눈동자와 상앗빛의 피부, 그리고 눈부신 금발을 가진 청년 라지알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눈을 뜬 라지알이 물었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

“왕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굴욕으로 느껴지는가, 군주의 망령?”

라지알이 눈앞의 존재를 비웃었다.

그곳에는 푸른 스파크를 튀기는 빛구슬이 허공에 떠 있었다.

아니, 떠 있다기보다는 결박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옥좌 주변에서 뻗어 나온 무수한 빛의 실이 빛구슬을 붙잡아서 허공에 결박시켜두고 있었다.

“내가 얻은 것을 보여주지.”

순간 라지알의 목소리가 기이한 울림을 띠었다.

「내 물음에 답하라.」

<제3세계의 시간 기준으로 나흘하고도 열일곱 시간.>

자기도 모르게 대답한 빛구슬, 정확히는 그 속에 담긴 의지가 깜짝 놀랐다.

<뭐, 뭐지?>

“왕의 권능이지. 군단의 일원에 대한 절대 명령권. 시시한 권능이지만 내가 왕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는 점은 괜찮군.”

라지알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왕의 섬을 수호하는 군단의 의지는 나를 왕으로 인정했다. 그러니까 우리 쓸데없이 기력 낭비하지 말지, 에우라스.”

빛구슬은 뇌전의 군주 에우라스였다.

아니, 정확히는 뇌전의 군주였던 존재라고 해야 할까?

에우라스의 군주 코어는 라지알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라지알은 그 과정에서 에우라스를 살해하지 않았다.

봉인을 기반으로 하는 초월권족의 비술을 이용, 에우라스의 의지만을 추출하여 다른 그릇에 담았던 것이다. 이것은 초월권족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이었던 라지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로 그런 방법으로 왕이 될 수 있는 것이었나……. 어째서 우리가 몰랐지?>

“정석은 아니었어.”

<뭐라고?>

“왕에 이르는 길은 세 가지였다. 우리가 알던 두 가지 말고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을 뿐이지.”

비어있는 옥좌를 차지하여 군단의 왕이 된 라지알은 종말의 군주들도 모르던 진실을 알아내었다.

“첫 번째는 기둥을 빼앗는 것.”

일곱 개의 성좌의 무기가 군단의 손에 들어왔을 때, 군단은 왕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전쟁에 승리하여 구세록을 손에 넣는 것.”

여기까지는 에우라스도 알고 있는 대로였다.

참고로 이 두 가지 방법은 왕을 탄생시키기 위해 한 번 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왕위계승권자 전원이 모여 왕을 선출하는 과정을.

물론 모두가 자신이 왕이 되고자 했을 테니 투표로 결정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결투에 가까운 방식으로 왕이 결정되었을 터.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방식은 아니었으리라. 의식의 힘을 통해 순수하게 기량만을 겨루는, 일종의 결투 스포츠 같은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주 코어를 하나로 모으는 것.”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우리는 그런 방법은 설계하지 않았다.>

군단이 생명을 버리고 언데드가 되는 길을 택했을 때, 일곱 군주는 한 세계를 바꾸는 대변혁의 의식 중심부에 있었다.

그들은 군단을 지탱하는 기둥이었으며, 그들이 언젠가 도달할 불멸이 실현 가능함을 증명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군주 코어는 다른 코어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 성질은 바로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

설령 군주 코어에 담긴 힘을 모두 쓴다고 하더라도 저절로 회복된다. 굳이 외부의 마력이나 영적 자원을 이용해서 충전하지 않더라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이 마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유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무한의 힘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군주 코어였다.

“너희들이 의식을 통해 만들어낸 것은, 왕이라는 존재를 선택하고 권능을 쥐여주는 시스템이었지. 하지만 그 시스템에는 의지가 있었다.”

<뭐라고?>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의지가 있었다는 거다. 강력한 마력을 지닌 장비들이 자아를 갖는 것과 비슷하지. 우리가 이해하고 대화할 만한 지성을 가졌는가와는 별개로, 분명한 의지를 가진 것. 그리고 왕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너희 설계자들의 의도를 초월한 완성도를 갖게 된 거야.”

그 시스템의 목적은 단 한 가지였다.

왕을 탄생시켜, 군단을 영원에 도달시키는 것.

“방대한 영적 자원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시스템의 의지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지.”

군주 코어는 성좌의 무기와 대비되는 존재였다.

시스템은 그 사실을 근거로 성좌의 무기를 군주 코어로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내가 지금 왕으로 인정받은 것 또한 시스템이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최종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군단이 존속해야 하고, 군단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나를 왕으로 인정해야만 했으니까.”

<무슨 뜻이지?>

“나는 완전한 왕이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지 않나?”

<군주 코어 일곱 개를 다 모으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래. 고작 세 개의 코어를 모았을 뿐인데도, 나는 왕으로 인정받았지.”

라지알은 광휘의 데바나, 뇌전의 에우라스, 대지의 트라드 세 군주의 코어를 하나로 합친 융합체를 가졌다.

그로써 일개 군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권능을 갖게 되었지만, 진정한 왕이라 불릴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이 상황에서 군단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유연성을 발휘한 결과다. 의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왕의 권능은 한정적이지만…….”

왕의 권능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스템이었다. 한 세계의 주인이 되어 신적인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라지알은 불완전한 왕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군단이 비축한 영적 자원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왕이다.”

라지알은 자신이 군주 살해자와 대적하고도 남을 힘을 갖췄음을 확신했다.

왕의 힘은 단지 군주 코어 세 개를 합친 융합체를 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군단을 아우르는 거대한 시스템이, 그동안 축적된 막대한 영적 자원을 통해서 라지알에게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어마어마한 권능을 부여하고 있었다.

지금의 라지알이 지닌 힘은 더 이상 개인의 권능이라 할 수 없다. 그의 권능이 곧 군단이다.

하지만 라지알이 손에 넣은 것은 그저 힘뿐이었다. 거대한 힘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을 뿐, 군단에게 영원을 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진정한 왕에게만 가능한 일이니까.

<완전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군주 살해자가 가진 코어들을 빼앗아야 하는 건가.>

“뿐만 아니라 기둥도.”

나아가서는 구세록까지 빼앗음으로써 군단을 영원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그것이 왕이 된 라지알이 짊어진 의무였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이기고 나서도 침략전쟁을 계속해야 할지도 모르지. 한 번, 혹은 두세 번.”

원래대로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군주 코어 일곱 개, 성좌의 무기 일곱 개, 그리고 온전히 안정된 세계를 구축하는 구세록 일곱 개가 모이는 것만으로도 군단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제3세계와의 전쟁은 너무 많은 변수를 일으켰다. 그들이 대전제로 삼고 있던 규칙들이 무너지면서, 절대로 있을 수 없던 손실을 여러 차례 겪었다.

이 시점에서 라지알이 왕이 된 것은 야심을 이룬 결과가 아니었다. 군단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는 몇 번 더 다른 세계와 전쟁을 치러서 영적 자원을 수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상황만 타파할 수 있다면 그런 전쟁은 백 번이라도 치러줄 의향이 있었다.

<왜 나를 살려둔 거지?>

라지알이 에우라스의 의지를 추출하는 과정은 대단히 번거로웠다. 또한 그 자신이 에우라스에게 역습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했다.

라지알이 씩 웃었다.

“혹시 굴욕적으로 살아남기보다는 명예롭게 죽길 바란 건가?”

<…….>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가능한 모든 권능을 활성화시켜야 해. 내가 불완전한 왕이기에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찾아서 고르고, 일일이 활성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동안 에우라스, 너는 제3세계를 공격해줬으면 한다.”

<뭐라고? 어째서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시간?>

“우리와 놈들, 둘 중 누가 공격권을 가질 것인가를 정하는 시간.”

라지알이 눈을 빛냈다.

“이 순간에도 장벽이 빠르게 무너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지구를 수호하는 장벽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 바로 군단이 총공세를 퍼붓는 순간이다.

그전에도 공격은 가능하지만 제약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막대한 영적 자원을 손해 보게 된다.

왕이 탄생했음에도 아직 그 권능의 근본이 될 무한의 힘이 갖춰지지 않은 지금, 군단이 축적한 영적 자원은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최초로 융합체를 만들어낸 이레귤러, 군주 살해자 서용우의 힘은 예측불허였으니까.

따라서 라지알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총공세의 타이밍까지 모든 준비를 완료할 생각이었다.

“놈들 역시 그 순간을 노리고 있겠지. 그러니까 흔들어줘야 하는 거다. 놈들이 남은 시간 동안 완벽한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어차피 군단의 승리는 정해졌다. 구세록의 제약이 무너지고, 네가 왕이 된 시점에서 군단의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에우라스는 왕이 된 라지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융합체를 이용해서 자신을 쓰러뜨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우리가 쳐들어가서 놈들을 죽이는 것과, 왕의 섬으로 쳐들어온 놈들을 죽이는 것. 두 가지 경우의 승률이 차이가 난다고?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전자는 압도적인 머릿수로 지구 전역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다. 군주 살해자가 뭘 해보기도 전에 지구 인류를 멸망시키고 막대한 영적 자원을 수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확고한 수적, 자원적 우위를 바탕으로 군주 살해자를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후자는 본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서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전장이 한정되는 만큼 머릿수의 차이를 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활성화된 왕의 섬의 기능으로 군주 살해자를 압박하면서 서서히 말려 죽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군주 살해자만 죽이면 제3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양쪽 다 군단의 승리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런데 왜 라지알은 굳이 전장을 고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군주 살해자 때문이지.”

<무슨 뜻이지?>

“그는 나보다 많은 군주 코어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둥까지 갖고 있다.”

즉 서용우는 라지알보다 왕의 조건을 더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가 왕의 섬에 침입해올 경우, 과연 내 왕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까?”

<네가 왕이 된 것 자체가, 시스템이 유연성을 발휘한 결과. 그렇다면 그 유연성이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그래. 물론 군주 살해자는 군단의 일원이 아니니 걱정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군주 살해자가 융합체를 비연이에게 준다면?”

이비연은 타락체의 비술을 깨고 인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군단의 일원이었던 과거를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라지알보다 완성도 높은 융합체를 갖고 왕의 섬에 진입하면 어떻게 될까?

“왕을 결정하는 시스템의 의지는 대화 가능한 지성이 아니야. 조건의 디테일 때문에 혼선을 빚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만에 하나의 가능성. 하지만 라지알 입장에서는 확실히 우려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할 사안이니까.

<그렇군. 그런 이유 때문에 나보고 죽으러 가라는 거군.>

“부정하진 않겠다.”

<…….>

“하지만 살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 제3세계를 파괴하여 영적 자원을 수급하고, 놈들에게서 군주 코어와 기둥을 빼앗으면 너는 다시금 군주의 위(位)를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빈손으로 보내진 않겠어.”

이 공격은 지구를 흔들어놓기 위한 견제이며, 또한 탐색전이기도 하다. 그 중요성이 큰 만큼 라지알은 충분한 전략 자원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네게 최대한 생전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몸을 주마.”

<뭐? 그런 게 가능한가?>

“왕의 권능이라면 가능하지. 혼돈을 소재로 너를 위한 특별한 몸을 만들어주지.”

몬스터가 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왕의 권능이라면 기존에 설계된 규격에 해당하지 않는, 군주의 격에 걸맞은 특수한 몬스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9등급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육체를 만들어주마. 사상 최대급의 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라지알이 잔혹하게 웃었다.

얼마 후, 그가 말한 대로 사상 최대급의 게이트가 열렸다.

하지만 그것은…….

* * *

군단의 대공세 이후 나흘째.

지구는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팀 섀도우리스에 의해 한번 정화되었던 바다 한복판의 재해 지역, 괌.

그곳에 사상 초유의 초대형 게이트가 발생했던 것이다.

“120미터급이라…….”

용우가 씩 웃었다.

“역시 이런 식으로 나오는군.”

100미터를 넘는 게이트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출현한 바 없었다.

9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게이트들조차도 90미터급, 95미터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20미터급이라니.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지만, 용우는 너무나 얄팍한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성의는 고맙지만 서포트는 필요 없어.”

미국이 서포트 지원을 제안했지만, 용우는 거절했다.

팀 섀도우리스만으로 처리하겠다.

그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당연히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미국도 자국의 게이트 재해를 처리하고, 혼란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숨넘어갈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팀 섀도우리스의 힘이 보다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도버 해협에서 9등급 몬스터 폭풍용을 처리했고, 전 세계를 수호할 35명의 초인을 탄생시켜준 집단이다.

그 힘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지구 최강.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봐도 감히 그들과 필적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승리한 후의 일이라…….’

용우는 브리짓의 걱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만의 걱정이 아닐 것이다.

‘모두 내가 사라져주길 바라겠지. 자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구한 영웅, 그런 게 입맛에 맞지 않겠어?’

인류의 존망이 걸린 급박한 상황이라 실체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인류 사회의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은 팀 섀도우리스가 재앙보다도 더 무서운, 통제 불가능한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인류의 신이 될 생각 따윈 없어.’

용우가 바라는 것은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적당히 잘 살아가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자신을 배척하고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면 참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아주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되리라.

‘뭐, 일단은 지구를 구한 뒤의 일인가.’

* * *

에우라스는 눈을 떴을 때, 그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군단의 세계를 침식하는 혼돈을 소재로 빚어낸 그릇.

라지알이 손에 넣은 왕의 권능으로 디자인된 그 육체는 기존에 존재했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몬스터였다.

<크큭, 이런 몸인가. 확실히 지금의 내게는 사치스럽군.>

에우라스의 몸은 생명체가 아니라 에너지 덩어리였다. 끓어오르는 뇌전으로 그려낸, 인간형 실루엣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몸에는 두 개의 코어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강탈한 아티팩트 굉음의 도끼.

그리고 왕의 권능으로 설계된, 새로운 뇌전 코어.

그 결과 에우라스는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뇌전의 권능과 소우바의 것이었던 굉음의 권능을 양쪽 모두 다룰 수 있었다.

마력도 지구에 등장한 모든 존재를 통틀어 최강이었다. 군단의 영적 자원이 대량으로 투입한 왕의 권능으로 9등급 몬스터를 훨씬 능가하는 마력이 주어졌다.

당장 이 게이트에는 강력한 존재들이 즐비하다.

중국을 갈라놓은 재앙. 9등급 몬스터 랜드 스타가 있지만, 얌전히 에우라스에게 복종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력한 존재들도 있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군주시여.>

에우라스와 똑같은 꼴이 되어 투입된 언데드들이었다.

라지알이 왕의 권좌에 앉았음에도 그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한 에우라스의 공신 여섯 명. 라지알은 그들을 에우라스와 마찬가지로 혼돈의 소재로 빚어낸 그릇에 담아서 투입했다. 그리고 그들의 힘도 9등급 몬스터를 능가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눈을 뜬 지 얼마나 되었을까?

에우라스는 뭔가 계획이 어긋났음을 느끼고 있었다.

라지알이 의도한대로라면 그가 있는 초대형 게이트는 제3세계의 인류가 방치한 재해 지역에 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리고 얼마 안 되어서 그 지역에 수두룩한 코어 몬스터 중 하나와 접촉,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어야 했다. 지금까지 군단이 그런 환경을 몇 번이고 이용해왔지 않던가?

그런데 에우라스가 눈뜨고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문제가 터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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