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83화 (18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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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는 무참한 폐허에 와 있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술을 연구하던 장소,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의 폐허였다.

권희수 박사가 죽었다.

용우는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사실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가 파괴당하고 권희수 박사가 사망했다는 사실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군단 입장에서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는 당연히 노릴 만한 표적이었다.

게이트 재해에 맞서기 위한 기술들이 개발되는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외적으로는 팀 섀도우리스가 권희수 박사의 비밀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언론 플레이로 그런 정보를 퍼뜨렸으니, 지구인에게서 텔레파시로 정보를 얻은 군단이 테러할 표적 리스트에 추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없나…….”

대공습으로부터 사흘이 지났을 뿐이다.

아직 파괴된 곳에 대한 탐색과 구조작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다. 연구소의 폐허에는 처참하게 죽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용우는 그곳에서 권희수의 시신을 찾아보았다. 시신을 수습해서 제대로 장례라도 치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마력 반응 탄두를 연쇄 폭발시켜서 산산조각 난 그녀는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다.

‘열쇠와 아티팩트도 빼앗겼다.’

권희수에게 연구용 샘플로 줬던 군단의 열쇠 두 개와 아티팩트 굉음의 도끼도 사라졌다. 하긴 군단 입장에서는 최우선적으로 회수할 표적이었을 것이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용우에게는 아직 다섯 개의 열쇠가 남아 있다.

그리고 굉음의 군주 소우바는 이미 죽었다. 아티팩트 굉음의 도끼를 빼앗긴다 한들 군주가 강림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놈들이 먼저 공격해온다면, 그런 방식이 아니겠지.’

이미 모든 구세록의 계약자가 사라지면서, 군단에 가해지는 제약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약해지고 있을 것이다.

‘늦지 않을지 모르겠군.’

용우는 두 가지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쪽에서 군단의 세계로 쳐들어가기 위한 준비와, 군단이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한 준비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 처리 능력을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최선은 쳐들어가는 것이었지만, 그쪽에 올인하다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망하는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군. 그만큼 이득을 봤으니 최소한 건드려볼 만도 한데,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사흘이 지났건만 군단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구세록의 탐지능력이 지구 전역을 커버하고 있는 상황이니 확실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놈들이 용우가 구세록의 전권을 탈취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데 왜 정찰을 위한 움직임조차 없단 말인가?

‘놈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용우는 군단에 뭔가 문제가 터졌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그 문제는 분명 대공세의 한 축을 담당했던 특수 지휘관 개체들이 자멸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 * *

결국 용우는 성과 없이 돌아와서, 자신의 메일함에 전달된 데이터를 재생시켰다.

권희수의 인공지능 비서 민수가 전달한 데이터였다.

[뒷일은 부탁해요.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저 할 만큼 한 거 인정하죠? 욕하지 마세요. 당신 과거 이야기를 못 듣고 가는 건 아쉽네요.]

권희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용우는 그것이 권희수의 유언임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답군.”

민수가 보낸 메일에는 현장에서 녹음한 권희수의 유언 말고도 두 가지 파일이 더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권희수가 죽을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파일이었다. 민수가 당시에 아직 기능하고 있던 연구소 곳곳의 카메라들로 촬영한 영상 자료와 첨부된 텍스트를 다 읽은 용우가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사람 같으니. 그냥 놈들에게 잡혀줬어도 됐을 텐데…….”

용우는 타락체가 권희수를 특정하려고 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 때문에, 팀 섀도우리스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했을 것이다. 생사를 불문한 것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면 영혼을 포획해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권희수는 적에게 사로잡히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도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는 참혹한 죽음을…….

용우는 마지막 파일을 재생했다.

그것은 권희수가 좀 더 전에 녹화한 비디오 레터였다.

[몇 번이나 다시 녹화하는 중인데… 슬슬 지겹네요. 이게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어요. 뭐 이렇게 말하고 또다시 녹화할 것 같지만.]

어깨를 으쓱한 권희수는 비디오 레터를 녹화하는 상황 자체가 어색한 것 같았다.

“마지막이었어. 안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용우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권희수의 말이 이어졌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하려고 해봤는데… 왠지 좀처럼 말을 꺼낼 수가 없었어요. 생각해 보면 별 이야기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권희수는 평소의 멍한 표정과는 달라 보였다. 삶에 찌든 것처럼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마 저 표정이야말로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던, 그녀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진심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죠. 내 중고등학생 시절이 궁금하진 않을 테니까.]

권희수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미리 대본을 써서 리허설이라도 해본 것처럼 매끄러운 말솜씨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녹화된 화면 속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과거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직장에 나가 있던 아버지가 몬스터의 난동에 휘말려 죽었다.

초창기의 전쟁터에서, 군인으로 징병 된 남동생이 전사했다.

[동생은 저와 같은 대대 소속이었어요. 이름은 민수였죠.]

그녀의 인공지능 비서의 이름은 죽은 동생에게서 따온 것이었다.

대학 졸업반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권희수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와 동시에 각성자 튜토리얼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고생한 끝에 1세대 각성자가 되어 지구로 돌아왔고, 곧바로 강제 징병 되어서 전쟁터에 투입되었다.

그녀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같은 대대의 각성자인 그녀를 지원하는 부대에 배치된 것은 상부에서 의도한 바였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동생은… 제가 투입되지 않은 전투에서 전사했어요.]

모든 것이 열악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몬스터와의 교전수칙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부족한 각성자의 능력에 의존해서 난잡한 전술로 싸웠다.

권희수의 동생이 전사한 것은 딱히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한 번 교전을 치를 때마다 전사자가 몇 명씩 나오고는 했고, 그녀의 동생도 그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거기에 권희수의 잘못은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동생이 전사한 전투에는 투입되지도 않았으니까.

[정말로 자신을 탓할 이유를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슬픔에 잠겼다. 동생을 살릴 방법은 없었을까, 그런 의문과 함께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권희수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동생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이었을 뿐이다. 굳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린다면 매번 전사자를 내는 지휘부의 무능함을 탓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이성적으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권희수는 각성자라는 이유로 전장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동생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언제나처럼 전투 대기 중이었던 그녀에게, 장례식장에 있던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다.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그 애를 지켜줬어야지! 각성자라면서! 인류의 희망이라면서! 왜 동생 하나 지켜주지 못한 거니!’

[각성자가 인류의 희망이니, 구원자니… 그때는 그런 식으로 열심히 광고하고 있었죠. 저도 선전 포스터에 나온 적도 있었고.]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이성을 잃은 어머니는 전쟁터로 내몰린 딸에게 원망과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상처받았어요, 정말로. 자살해버릴까 고민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살하지 않았다.

자살한 것은 어머니였다.

[동생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이었죠. 저는 엄마의 버팀목이 되지 못했나 봐요.]

그렇게 권희수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왜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 뭘 할까?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운명의 변덕으로 빼앗기고 말았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각성한 특수한 능력으로 뭔가를 이뤄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그 사명을 이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런 세상이나마 지킬 것을 강요받으며 필사적으로 싸웠건만,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살아야 할 이유 따위,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날 밤에 권총을 머리에 가져다 대고, 방아쇠에 손을 걸어봤죠. 꽤 서늘한 감촉이었어요. 참 위험한 짓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더군요.]

그때 깨달았다. 자신의 마음이 죽어 버렸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마음에 남긴 흉터가 그녀를 붙잡았다.

[나는 정말 잘못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성적으로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인데… 그런데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녀에게는 마력의 구조를 미세 영역까지 보고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직후에 각성한 그 능력은 분명 각성자 중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걸까?]

남들보다 특별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더욱 특별한 능력을 가졌는데… 정말로 동생을 살릴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때 윤 사장님을 만났어요.]

지휘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방어선이 붕괴했다. 잠깐 동안 의식을 잃었던 권희수는, 파트너로 일하던 각성자가 피투성이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며 망연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 앞에서, 그 시체가 일어나서 다른 무언가로 변모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권희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윤 사장님에게 제 능력을 말하고, 계약을 맺었죠.]

당연하게도 다니엘 윤은 그녀에게 그 재능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졌어요. 이 능력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과연 내가 그날 느낀 사명감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던 것인지.]

그리고 그녀는 증명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남다른 위업을 이룰 힘이 있다는 것을.

증폭탄두의 이론을 만들어내고, 직접 만들어낸 프로토타입으로 전장에서 성과를 냈다. 그러자 다니엘 윤은 그녀를 전장에서 빼내어 연구소에 배치하고, 연구를 위한 자원과 권력을 쥐어주었다.

[그렇게 되니까 변명을 못 하겠더라고요. 아, 난 사실은 할 수 있었구나. 내가 좀 더 잘했으면 동생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였구나…….]

물론 권희수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을 덮친 비극은 그녀가 어떤 성품의 소유자인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는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운명의 영역이었다.

[내가 잘했으면 동생이 살았을지도 몰라. 그러면 어머니도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녀는 불합리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라면… 내가 잘한다면 저 빌어먹을 것들을 끝장낼 수 있을지도 몰라.]

자신의 삶을 파괴한 비극의 근원, 게이트 재해와 몬스터를 끝장내고 싶다는 복수심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살아있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죽을 만큼 힘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권희수는 그 감각이 마치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 같다고 느꼈다.

[이상하게 들릴 것 같지만, 괴로워서 살아갈 수 있었어요.]

그 괴로움이 삶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그녀에게 아직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발버둥 쳐가면서 무언가를 이뤄내어 속죄하라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몇 번이고 죽고 싶었지만, 한 번도 그래도 되는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그저 충동과 욕망만 있을 뿐…….]

도망쳐서는 안 된다. 도망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그녀를 구속하던 마음은 어디서 비롯되었던 것일까.

하루하루, 죽는 것보다 힘든 고행 같은 삶을 살아가던 권희수가 죽어도 되는 이유를 찾아낸 것은 사흘 전의 일이었다.

[난 도망치는 게 아냐. 그렇지?]

인공지능 비서 민수가 영상의 뒤에 덧붙인 권희수의 마지막 목소리에는 두려움도, 괴로움도 없었다. 마침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후련함과 안도감만이 느껴졌다.

“…….”

용우는 가슴 한편이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바보 같은 여자.”

정말로 바보 같은 여자였다.

사람들은 연구자로서의 권희수를 알 뿐, 인간 권희수를 몰랐다. 연구원들과 술자리 한번, 아니 식사조차 같이한 적이 없었다.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쓸쓸한 삶이었다. 어쩌면 그 쓸쓸한 삶을 고집한 것 또한 권희수가 스스로 강요한 형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으면서.”

하지만 용우도 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진실로 죄를 저질렀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운명이 권희수에게 잔혹하여 그녀의 삶을 고통으로 가득한 가시밭길로 만들었겠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운명을 탓하지 못하고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고 말았다. 머리로는 부정하면서도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의 마음은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지옥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말고, 앞으로는 영원히 평온하길.”

용우는 홀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 그에게 인공지능 비서 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님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한 연구 데이터입니다.]

147번이라는 넘버링이 붙은 연구 데이터는 용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해석을 위해서는 백원태에게 협력을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연구 데이터는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마무리한 프로젝트 결과물입니다. 아직 데이터 축적을 통한 증명 단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박사님은 프로젝트의 완성을 확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수는, 간략하게 147번 연구 데이터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그리고 그 설명은 용우를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Chapter57 주고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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