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79화 (17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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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우와 이비연이 지구로 돌아왔을 때, 전 세계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브리짓의 보고를 들은 용우가 중얼거렸다.

“개판이군.”

용우의 눈에서 분노가 타올랐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고작 7시간 동안 지구를 비웠을 뿐인데, 서너 시간만 더 늦었으면 세계가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니.

‘우희는… 무사하군.’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구세록 내부 세계에 다녀오는 동안 우희가 죽기라도 했다면 용우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인정해야겠군. 놈들을 너무 얕봤어.”

“그러게. 제법 하네.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걸.”

이비연도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어쩔까?”

“일단 우리 팀원들 문제부터 해결하고 그다음에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지.”

“알겠어. 그럼 내가 리사한테 갈게.”

“전투복 입고 가.”

“아, 그렇지.”

두 사람은 재빨리 전투복을 입고, 헬멧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비연은 리사가 있는 한국으로 날았고, 용우는 휴고 스미스가 있는 퀘벡으로 향했다.

<제로!>

세 명의 타락체와 격전을 벌이고 있던 휴고가 반색했다.

“…….”

용우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돈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퀘벡의 방어선은 붕괴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방어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휴고가 빠졌기 때문이다.

다수의 타락체들이 휴고를 노리고 공격해왔고, 휴고는 조금 전까지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군주살해자!”

상아인 타락체 하나가 용우를 알아보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콰직!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용우가 네뷸라로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소개 고맙군. 근데 사회자 역할 맡긴 적 없으니까 꺼져.”

폭음이 울리며 상아인 타락체가 산산조각 났다.

우우우우우우!

용우의 마력이 해일처럼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뒤흔들리고,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돌풍이 휘몰아친다.

“이, 이런…….”

타락체들이 숨을 삼켰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괴성과 굉음, 그리고 간간이 인간의 비명이 울려 퍼지던 전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미쳐 날뛰던 몬스터들이 점차 조용해지고 있었다. 절대적인 포식자를 앞에 두고 얼어붙은 작은 초식동물처럼, 항거할 수 없는 마력의 폭풍 앞에서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휴고.”

<어, 응?>

휴고 역시 굳어 있었다.

용우가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이 정도였던가? 지금 용우가 전개한 마력은 이비연을 훨씬 능가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 피신하는 것 좀 도와주고 있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알았다.>

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지시에 따랐다.

용우가 굳어 있는 타락체들을 슥 보았다.

그리고…….

* * *

유현애와 이미나는 개성 북쪽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힘이 나는 건 좋은데…….’

서용우가 돌아와서, 구세록이 그들에게 걸어두었던 제한을 풀어주었다. 덕분에 그때까지 절망적이었던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쾅! 콰콰콰콰쾅!

하지만 유현애와 이미나는 여전히 고전 중이었다. 싸우기보다는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무 많아! 왜 우리한테만 이렇게 많이 몰려온 거야!’

두 사람을 잡겠다고 모인 타락체의 수는 일곱이었다.

연계가 잘 되는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머릿수 차이가 너무 커서 도저히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 출력은 우리가 위긴 한데, 그래도 틈이 없네.’

전장이 도심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이 전투에 휘말려서 사람 여럿 죽었을 것이다.

“진짜 끈질기네. 이제 그만 포기하지그래? 내가 잘 해준다니까.”

혀를 차며 말하는 것은 젊은 동양인 남자였다. 정확히는 한국인 남자였다.

분명 한국인인데 마력이 8등급 몬스터 수준이다. 그리고 눈동자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지구인 타락체, 그것도 서용우, 이비연과 마찬가지로 어비스 출신이었다. 저 마력을 보니 꽤 후반기까지 살아남았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이제까지 작업 거는 놈이 많기는 했는데… 설마 타락체가 되라고 작업 거는 놈이 있을 줄은 몰랐네.>

유현애와 이미나를 공격해온 여덟 명의 타락체 중 유일한 지구인은, 유현애에게 타락체가 되길 권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권유를 한다고 듣는 놈이 있을 리가 없지? 역시 반쯤 죽여 놓고 강제로 하는 수밖에. 정말 빌어먹을 일이라니까.”

지구인 타락체가 씩 웃었다.

동시에 유현애는 섬뜩함을 느끼며 몸을 날렸다.

꽈과과광!

그녀가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아, 보면 볼수록 탐나네. 다른 지구 각성자들은 다 잡병들이던데, 왜 너희들만 이렇게 수준이 높은 거야?”

지구인 타락체는 여기까지 오기 전, 자기에게 맡겨진 지점을 테러하고 나서 도심 한복판에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그렇게 죽인 사람 중에는 각성자 헌터도 몇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앞에서는 벌레처럼 짓밟힐 뿐이었다.

<꺼져.>

유현애는 그런 그에게 소총으로 공격을 가했다.

쾅!

하지만 지구인 타락체는 가뿐히 피하면서 유현애에게 쇄도해왔다.

“지구 총기 정말 끝내주네. 설마 총기로 스펠 쏘는 상황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유현애의 사격을 모조리 피한 지구인 타락체가 거리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콰과과광!

유현애가 부비트랩처럼 깔아둔, 지연성 스펠들이 폭발하면서 그를 날려버렸다.

그녀는 격투전은 취약했지만 마력을 다루는 재능은 서용우와 이비연도 인정할 정도의 천재였다. 전술에 따라서는 고위 타락체라도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컥……!”

유현애는 그런 그를 향해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염동뇌격탄!

극초음속의 에너지탄이 지구인 타락체에게 작렬했다.

하지만 유현애는 추가타를 날리지 못했다. 또 다른 타락체가 그녀를 급습했기 때문이다.

<또야?>

유현애가 짜증을 냈다.

아까 전부터 계속 이런 패턴이었다. 한 놈을 상대해서 좀 대미지를 준다 싶으면 다른 놈이 끼어든다. 하나하나의 기량도 만만치 않은데 머릿수 차이가 크다 보니 답이 안 나왔다.

<언니, 합류 가능해요?>

<바빠! 저격으로든 뭐로든 도와줘!>

이미나의 대답이 다급하게 들려왔다.

중장거리의 스페셜리스트인 유현애와 격투전의 스페셜리스트인 이미나의 콤비네이션이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는 강력했다. 그렇기에 타락체들은 두 사람을 분단시킨 후에 몰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크, 진짜 안 되겠네. 그냥 한꺼번에 몰아쳐서 끝내야…….”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하던 지구인 타락체는,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섬광이 번쩍였다.

콰과과과광……!

그리고 2킬로미터 저편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저격! 근데 이 위력은 대체 뭐야?’

그의 옆에 있던 암석인 타락체가 단 일격에 죽어 버렸다. 섬광이 그의 상반신을 잘라버리듯 소멸시켜서 그 아래쪽이 휘청거리다가 주저앉는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군.”

그리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애와 마찬가지로 M슈트를 입고,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서용우였다.

“그동안 지구인 타락체는 하나도 안 보여서 그런지 반가운 기분마저 드는데. 게다가 한국인이라니…….”

“넌 뭐야? 날 알고 있나?”

지구인 타락체가 혼란스러워했다. 용우가 그를 아는 사람의 태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지. 이름이 구성기였나?”

“박성춘이다.”

“아, 그랬나? 미안, 별로 비중 없던 이름이라 잘 기억이 안 났어.”

뻔뻔한 대꾸에 박성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곧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비스 출신인데 타락체가 아니라고? 설마…….”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군단에서도 용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왕의 섬을 공격해서 열쇠를 탈취했을 때 기록된 영상 정보를 지구인 타락체들이 보았기 때문이다.

“군주살해자 서용우?”

“서용우가 맞긴 하지. 듣다 보니 0세대 각성자보다는 군주살해자가 좀 더 그럴싸한 별명이긴 하군. 앞으로 온라인 아이디로 써먹어야겠어.”

어깨를 으쓱한 용우가 말했다.

“그런데 내가 좀 바쁘니까 이만 끝내자. 그래도 어비스 출신이라 이야기 좀 들어줬으니까 억울해하지 말고.”

“크윽, 내가 그렇게 쉬워 보이냐?”

“아니라고 생각했냐?”

용우가 비아냥거리면서 돌진하자 박성춘도 가만있지 않았다. 현란한 기술로 용우를 저지하려 들었다.

파악!

그러나 부질없는 발버둥이었다. 박성춘은 채 10초도 못 버티고 왼팔이 잘려버렸다.

“자, 잠깐만!”

그가 다급하게 외치자 용우가 검을 멈췄다.

용우 입장에서는 참 드문 일이었다. 이비연 말고는 처음 보는 지구인 타락체라서일까? 정말 특별 취급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같이 어비스에서 고생한 사이잖아. 살려줘. 나 정도면 분명 지구에 도움이…….”

“네가 그 녀석이냐?”

“뭐?”

“네가 어비스의 박성춘이냐고.”

용우의 말은 얼음장보다도 차가웠다.

“넌 어비스의 박성춘이었던 타락체일 뿐이야. 그리고 사실 본인이었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어. 기억에서 감정이 날아가서 모르는 모양인데, 어비스에서는 다들 사이가 나빴거든.”

웃으면서 서로의 목을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최악의 관계였다. 용우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뭐, 추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다. 그러니까 이만 가라.”

그리고 휘둘러진 양손 대검이 박성춘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 * *

서용우와 이비연이 돌아오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타락체가 정리되기까지는 30분이면 충분했다.

구세록의 전권을 손에 넣은 두 사람은 지구를 침략한 모든 존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즉 그들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타락체만이 아니다. 지휘관 개체 역시 구세록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타락체에 이어 지휘관 개체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죽이고, 그들이 진군시켰던 재해 지역 몬스터들도 막아냈다.

그렇게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위협이 저지되고,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 * *

팀 섀도우리스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용우와 이비연을 제외하면 다들 피로한 기색이었다. 여기서 회의를 할 게 아니라 당장 휴식이 필요한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은혜 씨, 이 상황이 수습되긴 할까?”

“당분간은 어려울 거예요.”

용우의 물음에 김은혜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워낙 고생을 해서인지 그녀도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겨나 있었다.

“행정부도, 군부도 통째로 증발했고 헌터관리부도 날아갔으니까요. 이 셋 말고도 많은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었고.”

타락체들은 팀 섀도우리스를 잡기 위해 집결하기 전, 주변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도시의 시설들이 파괴되었다.

“우리나라는 당장 이 상황을 수습할 사람 자체가 없어요.”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중앙정부가 소멸해도 각 주가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 게이트 재해를 막는 시스템도 제대로 안 돌아갈 거라는 게 문제군.”

“그거야 헌터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문제긴 해요. 실제로 그러고 있고.”

한국 헌터계에서 가장 큰 힘을 쥐고 있는 백원태와 오성준, 다니엘 윤은 이번 공습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생존한 대가로 한국의 게이트 재해 대응 총괄을 요구받고 있었다. 이번 일로 각성자 헌터들도 다수 사망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꽤나 힘들어질 것이다.

“행정과 치안이 문제죠. 도지사나 시장들의 통제에도 한계가 있고, 구조 작업도 문제고…….”

“총체적 난국이군.”

용우가 한숨을 쉬었다.

강대한 힘을 지녔으니 적을 처치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나마 두 사람이 그쯤에서 돌아온 게 다행이에요. 안 그랬다면 중국 붕괴 때, 어쩌면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만큼이나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겠죠.”

어제 하루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적어도 군단이 막대한 영적 자원을 손에 넣은 것만은 분명했다. 31명이나 되는 타락체를 잃었지만, 그 이상의 성과를 얻었을 터.

그것도 서용우와 이비연이 그 타이밍에 돌아와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이다. 두 사람의 귀환이 두 시간만 더 늦었다면 팀 섀도우리스는 전원 살해당하고, 타락체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세계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김은혜가 정리한 보고서를 읽어본 용우가 물었다.

“특수 지휘관 개체란 놈들은 갑자기 무너졌다고 했지?”

“네.”

리사가 대답했다.

한반도 북부, 도버 해협, 그리고 멕시코 세 곳에 나타났던 특수 지휘관 개체.

팀 섀도우리스는 그들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들은 격전을 치르던 도중 갑자기 자멸해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지.”

특수 지휘관 개체가 계속 버텼다면 사태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타락체들의 합공까지 맞이했다면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아직 생존한 군주들의 힘을 쓰는 특수한 지휘관 개체 셋, 그들이 승패가 가려진 것도 아닌데 일제히 붕괴했다라…….”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난다. 군단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Chapter56 유언장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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