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77화 (17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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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계의 인류는 지구 인류보다 훨씬 수가 적었다. 불과 8천만 명 정도였다.

게다가 막 침략전쟁을 시작한 종말의 군단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위험성이 어마어마했다.

왜냐하면 제1세계를 침공할 당시만 해도 군단에게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정보세계와 물질세계를 오갈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 힘으로 제1세계를 침략해서 산 자들을 죽이고 그 영혼을 수탈했다.

그럼에도 군단에게 있어서 제1세계와의 전쟁은 지구를 침략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일단 제1세계의 인류는 전원이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지배계층인 초월권족은 날 때부터 강대한 마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지만 초월권족에게는 한 가지, 어쩔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그들은 수가 너무 적었다.

제1세계의 인류 8천만 명 중에서 초월권족의 수는 40만 명에 불과했다.

총인구의 0.5%만이 날 때부터 격이 다른 마력을 지닌 채 특권계층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 전원이 전투 요원인 것도 아니었다.

과거에 지구의 귀족이 전원 전투 요원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가 강대한 마력을 타고났을 뿐, 전투에 적합한 정신을 갖고 전투기술까지 연마한 자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 적은 수의 전사들이 전선에서 죽거나, 타락체가 되어가자 제1세계는 점차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군단과의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

그것은 승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월권족은 이기지도 지지도 않은 채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네놈들은 뒷일을 다른 세계에 떠넘기기로 했지.”

용우가 경멸의 눈초리로 라무스를 노려보았다.

초월권족은 자신들을 가호하는 성좌의 힘으로 일곱 개의 구세록을 만들고, 군단에 ‘거울상의 저주’라 불리는 강력한 저주를 걸었다.

그것은 자신들과 군단, 양쪽을 모두 봉인하는 저주이기도 했다.

“너희들도, 군단도 정보세계에 틀어박히게 만드는.”

정보세계에서 물질세계로 나가기 힘든 것은 군단만이 아니다. 구세록의 초월권족 역시 동일한 제약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구세록을 만들어놓은 너희들이 유리했고.”

구세록의 정보세계는 군단의 정보세계보다 훨씬 안정된 곳이다.

이 세계는, 군단의 세계와 달리 혼돈의 침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그게 너희들을 배부른 돼지로 만든 셈이기도 하지만.”

안전한 곳에 자신을 가둔 구세록의 초월권족은 천 년 넘게 실전을 겪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군단은 침략전쟁을 벌이지 않을 때도 혼돈의 침식과 싸워야 했다. 혼돈은 군단에게 있어서도 치명적인 위협이기에, 그들의 전투능력은 늘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 세계에는 또 다른 이점이 있었다.

군단이 침략으로 수탈하는 영적 자원의 일부를, 구세록의 초월권족도 얻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네놈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뭐, 네놈들이 죽일 놈들인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지만. 말하다 보니 화가 나는군.”

용우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푸욱!

그의 양손 대검, 네뷸라가 라무스의 몸을 꿰뚫었다.

“커억……!”

라무스는 순간적으로 의식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고통은 익숙지 않았다. 천년 넘게 그래왔는데 이런 고통에 내성이 있을 리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왜 네놈을 멀쩡히 놔두고 이야기를 했을까? 팔다리부터 꺾어놓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용우는 네뷸라로 라무스를 땅에다 고정시키고, 지연성 에너지 드레인을 걸었다. 그러자 라무스의 마력이 서서히 네뷸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악……!”

라무스가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다. 마력의 흐름을 구속당한 상태로, 온몸의 에너지가 빨려 나가는 감각은 끔찍했다.

“억울해하지 마. 너만 이렇게 고통스럽진 않을 거야.”

용우가 잔혹하게 웃었다.

고통은 라무스만의 것이 아니다. 구세록의 초월권족 모두가 고통스럽게 파멸할 것이다. 용우는 그들을 위한 지옥을 준비해왔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해볼까. 틀린 게 있으면 교정해달라고. 네게 발언권을 허락한 시간 동안에는 고통을 멈춰주지. 네놈들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자비로운 조건이지?”

종말의 군단과 구세록의 초월권족의 차이는, 침략전쟁에서 얻은 영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있었다.

군단은 그것을 자신들의 세계를 안정화시키고, 침략전쟁에서 행동 권한을 얻기 위해 소모해왔다.

그에 비해 구세록의 초월권족은 그것을 구세록을 유지하는 데 쓴다. 이 유지비용은 군단의 안정화 비용의 백 분의 일 정도로 적다.

그럼 남은 영적 자원은?

일부는 성좌의 무기 운용을 위해 비축하고, 나머지는 개개인의 마력을 늘리는 데 사용되었다.

구세록의 초월권족 개개인의 마력이 군단의 상아인 타락체보다 훨씬 강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군단의 손에 제2세계가 파멸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막대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참으로 무의미한 힘이지. 하다못해 생존자 전원이 그동안 전투훈련이라도 열심히 했다면 의미가 있었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몇 안 되는 전투원들조차도 녹슬어가기만 했으니. 너희들은 말하자면 근육 없는 헤비급이야.”

무작정 살을 찌워서 체중만 늘렸을 뿐, 그 체급에서 싸우기 위한 내실은 전혀 갖추지 못한 격투기 선수나 다름없다.

“그 힘이 인류에게 주어졌다면, 인류는 지금쯤 열 배는 많은 각성자를 보유하고 있겠지. 평균 마력도 지금보다 훨씬 높을 것이고. 게다가…….”

용우는 전에 한 가지 의문을 품은 바 있었다.

구세록의 계약자가 줄어드는 것은 군단에게 있어서 행동 제약이 풀리는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왜 군주가 줄어들었는데 인류는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 것일까?

“네놈들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당연히 우리 인류에게 주어졌어야 할 이득까지 멋대로 횡령했다.”

그 답은 루가루였다.

본래대로라면 아무리 몽계유영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다 해도, 이 시점에서 초월권족이 지구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루가루가 지구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군주들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이익이었던 것이다.

“네놈들이 머릿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는지도 뻔하지. 적당한 때가 오면 구세록에서 나가 그 세계의 인류를 정복하고, 그들로 머릿수 차이를 해결할 생각이었겠지?”

“아아악……!”

용우가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자 라무스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더욱 강해졌다.

“너희들에게 있어서 우리 인류는 전부 벌레처럼 보이겠지. 아니, 자기 세계의 인류도 마찬가지였던가? 안 그랬으면 4천만이 넘는 백성을 제물로 바치지도 않았을 테니까.”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분명 초월권족은 강대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은 군단에게 멸망할 뻔했던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군단에게 구세록을 통한 족쇄를 채울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만한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월권족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불리는 극소수만을 구세록이라는 ‘방주’에 태우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전부를 구세록을 탄생시키고, 군단을 구속하기 위한 제물로 바쳤다.

‘거울상의 저주’는 4천만의 목숨을 대가로 완성된 것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것들이 영원히 부귀영화 누리겠다고 4천만 명의 목숨을 강탈하다니 대단해! 이런 놈들이니까 어비스 같은 걸 만들 수 있었겠지!”

“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라무스는 용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점점 더 강해지는 고통이 그에게서 사고력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우는 상관없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기 세계의 4천만 명도 희생시킨 너희들에게 다른 세계의 24만 명을 지옥으로 처넣는 것 따위, 조금도 고민할 거리가 아니었겠지.”

루가루에게 들은 어비스의 진실은, 용우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황당했다.

어비스는 군단의 침략을 막는 선행부대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구세록과 군단이 합작하여 다음 침략전쟁을 위한 영적 자원을 생산하는 의식에 불과했다.

24만 명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영적 자원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하나하나를 더욱 가치 있는 제물로 만들기 위해 몬스터가 투입되었다.

제물들은 몬스터를 죽이고, 그 시신으로부터 추출한 마력석을 흡수해서 강해졌다. 그것은 즉 제물로서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구세록 입장에서는 더욱 많은 영적 자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군단 입장에서는 침략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쓸모도 없는, 혼돈과의 싸움으로 얻는 몬스터의 재료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은 서로를 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다른 세계를 잡아먹기 위해 협력하는 관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들은 서용우라는 복수자를 탄생시키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너희들의 가장 큰 실수는 자기들이 만든 어비스의 위험성을 모른 거였지.”

단순히 24만 명이 서로 죽고 죽이는 구조였다면 어땠을까?

그럼 어비스에는 딱히 스펠이나 특성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서로 죽임으로써 강해지면 충분했으리라.

하지만 인간이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죽이고, 더욱 가치 있는 제물이 되려면 특별한 권능이 필수였다.

그래서 어비스에는 희생자들의 영적 자원을 이용해서 스펠과 특성을 생성하는 기능이 탑재되었다.

그 과정은 원본을 스펠 스톤이라는 형태로 복제하여 투입되었다.

원본은 구세록에 내재된 권능이었다.

구세록의 생존자 1,322명이 가진 권능만이 아니다. 구세록을 만들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4천만 명이 품고 있던 무수한 가능성이 무작위로 어비스에 투영되었다.

그 결과 어비스에서는 수많은 스펠과 특성, 특수능력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을 통해 단 한 명의 생존자, 용우에게 모인 것이다.

“어때? 뭔가 말해봐. 덧붙이거나 정정해줄 거 없어?”

“오빠.”

이비연이 말했다.

“그놈, 죽어 버렸어.”

“아.”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용우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라무스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통제할 의지가 사라진 마력이 급격히 네뷸라로 빨려 들어가면서 라무스의 시신을 말라 비틀어지게 했다.

“분명 이놈이 원흉 중 하나였을 텐데 너무 빨리 죽였군.”

“좀 섬세하게 조절하지 그랬어. 뭐, 어차피 이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지.”

용우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지금 떠들어댄 이야기는 라무스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살아남아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에게, 그들에게 닥쳐올 증오를 이해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자, 그럼 끝을 내볼까?”

용우와 이비연은 느긋하게 최후의 목적지로 향했다.

이제는 폐허조차 아닌, 그저 대파괴의 흔적만이 남은 이곳에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으로 남은 왕궁을.

-필멸자의 세계!

왕궁을 지키는 방어막이 가차 없이 갈라졌다.

“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왕궁에 있는 생존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전투다운 전투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이 계속될 뿐.

장구한 세월 동안 자신들이 초래한 타인의 비극을 즐겨왔던 괴물들은, 자신들이 낳은 증오의 괴물들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다.

절망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목숨의 불빛이 하나씩 하나씩 꺼져갔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이 주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자도 속출했다.

용우와 이비연은 자살자는 그냥 방치했다. 일일이 신경 쓰기에는 너무 많았으니까.

저벅…….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발길이 왕궁의 심장부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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