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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74화 (17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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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구……!

용우의 공격이 몇 번이나 이어졌을까?

모르는 사람을 불러다 놓으면 불과 수십 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처참한 폐허 위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며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정말 쉽게 죽네.”

지구에서였다면 민간인 학살로 비난받을 전쟁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그러나 이비연은 그 광경을 끔찍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은 모두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다른 세계의 비극을 양분으로 삼아 살아온 괴물들이었으니까.

“이렇게 쉽게 죽이다니, 허무하게시리.”

“일일이 고통을 줘가면서 죽여도 딱히 복수심이 충족되진 않을걸. 처음에야 즐거울지 몰라도 금방 지겨워지고, 괴로운 노동이 되고 말 거야. 우두머리들이나 제대로 족치는 게 낫지.”

“그건 그렇겠네.”

이비연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쉽게 죽네. 마력이 저렇게 큰놈들이 뭐 저렇게 약해?”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용우의 무차별 공격으로 죽어 나간 숫자가 600명이 넘었다. 도시 곳곳에서 의식을 진행하던 놈들도 싹 쓸려 버려서 위협도 사라졌다.

이 사실이 어이없는 부분은, 그렇게 죽어 나간 초월권족 전원이 초전에서 몰살시킨 66명과 비슷한 마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민간인들도 9등급 몬스터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용우가 강하다고 하지만 기습적으로 날아든 일격 이후 이어지는 공격들에서는 사망률이 급감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냥 싹 쓸려 버리다니…….

“이놈들은 전부 근육 없는 슈퍼 헤비급이야.”

“고도 비만이란 소리잖아, 그거.”

“그런 거지. 천 년 동안 체중만 늘렸지 그걸 근육으로 만드는 과정을 안 거쳤으니 이렇게 털릴 수밖에.”

이들에게 있어서 전쟁은 언제나 남의 일이었다.

언젠가 자신들이 싸울 날이 오겠지만, 그 언젠가는 아득히 먼 훗날이다.

이곳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그 누구도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한다.

다른 세계의 비극과 파멸을 즐겁게 구경하며 언젠가, 그 언젠가를 대비하면 된다…….

그런 사고방식에 푹 절어 있는 놈들이 전투기술을 단련할 리가 없지 않은가?

본래 전투원이었던 자들조차 시간 속에서 녹슬어갔을 뿐이다.

“방어막 중심부는 저기야. 보기만 해도 알겠지?”

이비연이 한 지점을 가리켰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파괴되었는데도 멀쩡한 두 장소가 있었다.

하나는 산을 등지고 도시의 북쪽에 웅장하게 솟아있는 왕궁.

또 하나는 도시의 중심부에 솟아난, 투명한 느낌이 드는 상앗빛 탑이었다.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서도 멀쩡한 것만 봐도 탑이 얼마나 강력한 힘에 수호받는지 알 수 있다. 이 탑이야말로 도시를 감싼 ‘불굴의 벽’의 중심이었다.

쿠과과광!

용우는 곧바로 필멸자의 세계를 발동, 상앗빛 탑을 부숴버렸다.

그러자 아직까지도 도시를 감싸고 있던 불굴의 벽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저 궁전은 별개의 힘으로 보호받고 있나 본데.”

“그래 봤자…….”

용우가 말할 때, 주변에 무수한 기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수의 초월권족 전투원들이 텔레포트 해서 나타난 것이다.

완전 무장한 서른다섯 명의 초월권족 전사들이었다.

“이 악적들!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거냐?”

“고작 서른다섯인가? 방금 전에 날아간 병력이 꽤 뼈 아팠나 보군.”

분기탱천한 지휘관의 말을, 용우는 싹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멋대로 나불거리는 것도 거기까지다.”

지휘관이 서늘한 분노를 실어 말했다.

“호오. 이런 걸 감춰두고 있었나?”

용우가 눈을 빛냈다.

서른다섯 명에 이어 또 한 명이 나타났다.

백은의 머리칼을 지닌 화려한 용모의 여전사였다. 황금색 눈동자에는 붉은빛이 어른거렸고, 전신을 이글거리는 불꽃이 휘감고 있었다.

“천 년 만의 적이여.”

그렇게 말한 여전사는 다른 초월권족을 훨씬 능가하는 마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마력이 상승한다.

그녀는 황금빛을 띤 검으로 용우를 겨누며 말했다.

“나는 탈라. 왕을 수호하는 일곱 검의 일원이다.”

탈라를 본 용우가 피식 웃었다.

“이놈들, 종말의 군주에 대응하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비술을 감추고 있었던 거였군.”

탈라의 마력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원래의 그녀를 몇 배나 능가했는데도, 아직도 끝을 모르고 상승해간다.

“성좌의 화신이라고 한다.”

“뭐?”

“너희들을 심판할 존재의 이름이다.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분노한 탈라의 살기가 신호가 되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불굴의 벽이 무너지다니…….”

왕의 앳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사실이 가져온 충격은 컸다.

“괜찮겠나? 탈라가 저들을 막을 수 있을까?”

“그녀는 이미 성좌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성좌의 의식을 받아들인 존재, 성좌의 화신.

그것은 구세록의 초월권족이 종말의 군주를 쓰러뜨리기 위해 준비한 결전 병기였다.

구세록에 비축된 영적 자원을 대량으로 소모하여 발동, 한정된 시간 동안 종말의 군주를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된다.

그 대가는 죽음.

하지만 구세록의 초월권족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감수할 만한 리스크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치 못하죠.”

성좌의 화신에게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마력이 최고점에 도달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두 번째는 사용자가 그 힘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당연한 일이다. 본래 자신이 다루던 힘보다 아득히 큰 힘을 갑자기 떠안게 되는데 그걸 갑자기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겠는가?

탈라는 마력이 최고점의 3할에 달한 타이밍에 나섰다.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지만, 서용우와 이비연을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니 그녀가 막아주는 동안, 확실한 수단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어떤 수단 말인가?”

“시험 운용이라고 말씀드렸지요. 하는 김에 일곱 명 전원이 나서겠습니다.”

한꺼번에 구현할 수 있는 성좌의 화신은 일곱 명.

“저도 나서겠습니다.”

라무스 장군도 한 번의 죽음을 감수하며 싸울 것을 결단했다.

그런 그가 믿음직스러워서였을까? 침착함을 되찾은 왕이 말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겠는가?”

“우리의 명운이 걸린 일입니다. 확실하게 해둬야 합니다. 만약 헛수고로 끝난다면… 그건 오히려 기뻐할 일이겠죠.”

라무스는 곧바로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 * *

탈라가 벼락처럼 용우에게 달려들었다.

쾅!

용우와 탈라가 격돌하자 그 여파로 도시의 폐허 전체가 뒤흔들렸다.

‘아직이군.’

탈라의 눈이 빛났다.

그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은 용우가 밀리지 않았다. 그녀가 다음 공격을 취하기 전에 반격해오고 있었다.

현재 그녀의 마력은 성좌의 화신 최고 도달점의 3할을 넘었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초월권족 전사들을 한참 능가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용우를 전혀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우의 마력 또한 그 수준은 된다는 뜻이다.

‘조급해하면 안 된다. 승부를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싸워나가자.’

탈라는 제1세계에서 이름난 전사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마지막으로 실전을 겪은 지는 너무나 오래되었다.

당장의 위기감이나, 치열한 목적의식이 없었기에 훈련도 설렁설렁 해왔다. 그런 세월이 천 년 이상 누적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목숨이 칼끝에 걸린 듯한 실전의 긴장감은 탈라가 냉정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시간은 내 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유리해져. 어차피 이 싸움은 내 승리로 끝난다.’

탈라는 열심히 자신을 달래며 싸움에 임했다.

-공허 가르기!

탈라가 공간을 뛰어넘는 검격을 날렸다.

여기서는 카운터 스펠로 봉쇄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용우는 그렇게 하는 대신 가볍게 몸을 흔들어 피해버렸다.

쾅!

그리고 거리를 좁히면서 날린 검격이 탈라의 돌진을 저지했다.

-염동충격탄 동시다발!

탈라는 미련 없이 뒤로 빠졌고, 그 틈으로 다른 초월권족의 공세가 날아들었다.

-이레귤러 바운드!

용우는 불규칙적으로 공간을 도약하는 에너지탄 다발에 카운터 스펠, 공허 문지기를 날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공허 문지기!

초월권족 일곱 명이 동시에 똑같은 스펠을 발하는 게 아닌가?

‘이런!’

이 상황에는 용우도 놀랐다.

날아오는 화살을 화살로 쏴 맞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묘기.

하지만 강대한 마력의 소유주 일곱 명이 아주 근소한 시간 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같은 스펠을 발하면 어떻게 될까?

그중 하나는 카운터로 들어가게 된다.

콰콰콰쾅!

타이밍을 빼앗긴 용우에게 에너지탄 다발이 작렬했다.

“훗! 어떠냐?”

탈라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공격을 날렸다.

-폭염구(暴炎球)

불꽃의 구체 수십 발이 용우를 추격했다.

화아아아악!

한발 한발이 폭발할 때마다 주변이 불꽃으로 뒤덮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죽어버릴 초열지옥이다. 그러나 탈라는 초월권족을 수호하는 성좌-불꽃의 활의 권능을 받은 화신.

불꽃은 그녀의 편이었다. 불꽃이 지배하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열기가 강해질수록 그녀도 강해진다. 또한, 그녀가 아군으로 인식한 존재들은 그 가호를 나눠 받아 불꽃에 의한 피해로부터 자유로웠다.

용우는 폭발하는 불꽃을 뚫고 솟구쳤다. 그런 그에게 초월권족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한다.

콰과과과과……!

어마어마한 대공 포화가 쏟아지면서 하늘이 온통 섬광과 불꽃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서 마력을 집중한 탈라가 아공간에서 다섯 자루의 창을 꺼냈다.

-초열투창! 이레귤러 바운드!

초음속으로 쏘아진 다섯 자루 창이 불규칙하게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용우를 노렸다.

막강한 화력에 떠밀린 용우 입장에서는 도저히 회피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공간 간섭계 스펠은 발하는 순간 봉쇄당할 터.

하지만 용우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프리징 필드!

일순간 용우를 중심으로 한기 파동이 폭발했다.

“음?”

탈라가 놀랐다.

그녀가 초열투창으로 쏜 창은 하나하나가 도시 하나를 꿰뚫고도 남을 관통력이 담겼다. 그런데 용우가 한기 파동을 폭발시키자 얼어서 멈춰 버리는 게 아닌가?

“어떻게?”

방금 전의 방어법은 용우의 마력이 그녀보다 월등히 위여야 가능하다.

‘그럴 리가?’

이 시점에서 탈라의 마력은 최고점의 4할에 이르렀다. 아무리 용우의 마력이 강해도 그녀를 압도하는 수준일 리는 없지 않은가?

‘융합체의 힘인가?’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기적의 산물, 성좌의 무기 융합체.

그 위력은 아직 미지수였다.

용우는 계약자가 아니기에 성좌의 무기에 내재된 힘을 제대로 끌어낼 수 없다. 하지만 성좌의 무기 다수와 군주 코어 다수를 융합시킨 결과물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확실히 좀 싸울 줄 아는 놈들이군.”

용우는 적의 실력을 인정했다. 초전에서 전멸시킨 66명보다는 훨씬 잘 싸우는 놈들이다. 게다가 마음가짐이 달라서 용우와 이비연을 전혀 얕보지 않고 잘 연계해가면서 싸우고 있었다.

“좀 더 놀아줄까 했는데…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니 안 되겠군. 탈라라고 했나? 일단 너는 죽어줘야겠다.”

“뭐?”

황당할 정도로 오만방자한 용우의 말에 탈라는 어이가 없었다.

-형상복원!

영롱한 빛을 발하는 새벽의 망치 모조품이 용우의 손에 나타났다. 용우가 그것을 던지자 일순간에 극초음속으로 가속하면서 탈라를 급습한다.

꽈아아아앙!

탈라가 펼친 방어막이 그것을 튕겨내었다.

곧바로 탈라가 준비했던 스펠을 펼쳤다.

-초열결계(焦熱結界)!

사방을 집어삼킨 화염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감싸는 장막으로 화한다.

그리고 그 안은 숨 쉬는 순간 몸 내부부터 불타 죽어버릴 정도의 초고열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화했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불꽃이 탈라의 힘이 된다. 탈라가 초열결계의 힘을 일거에 용우에게 퍼부으려는 순간이었다.

용우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탈라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눈빛이었다. 지금은 용우에게 있어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눈에서는 위기감이나 두려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용우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마력을 개방했다.

“……!”

순간 탈라는 경악한 나머지 공격 발동을 멈추고 말았다.

마치 댐이 무너져서 최고 수위로 고여 있던 물이 일거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탈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조절되고 있던 용우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성좌의 화신보다도, 마력이 위였다고?”

탈라가 경악했다.

심지어 용우의 마력 상승 속도가, 탈라의 마력이 상승하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그녀가 놀라서 굳어있는 동안에도 둘의 마력 격차가 죽죽 벌어진다.

“성좌의 화신이라, 좀 놀랐다. 너희들은 확실히 종말의 7군주와 맞설 만한 히든카드를 갖고 있었군.”

용우는 성좌의 화신이라는 미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곧바로 승부를 내는 대신 적당히 놀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놀아줄 여유가 없어졌다. 왕궁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여섯 개의 기척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실수를 알려주지.”

용우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눈앞에서 과정을 다 보여주면서 변신하는데 멀뚱멀뚱 지켜봐 주길 기대하는 게 잘못이다.”

이대로 두고 보면 종말의 군주와 대등한 수준까지 상승할 것이다. 어쩌면 능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용우는 탈라가 완전체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익……!”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에 얼어붙어 있던 탈라는 흉흉한 살기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녀가 멈췄던 공격을 가하는 것보다 용우가 빨랐다.

“죽어라.”

용우가 한줄기 섬광이 되어 탈라를 지나쳤다.

“어……?”

탈라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용우가 양손 대검을 휘두른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뻗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

주인도 모르게 갈라진 심장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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