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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과 휴고는 각각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본래부터 국토면적에 비해 군사력이 약했던 두 나라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는 미국에 군사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멕시코는 초창기부터 게이트 재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잃었고, 많은 재해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캐나다는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은 데다가, 지리 조건상 게이트 재해를 완전히 막기가 어려웠다. 인구밀도가 낮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지역이 많다는 것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는 그만한 재해 지역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소리인 것이다.
퀘벡 주에는 실로 광활한 재해 지역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재해 지역에 존재하던 무수한 몬스터들이 일제히 인간의 영역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캐나다의 헌터 전력과 캐나다군으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규모였다.
‘끝이 없군.’
휴고가 짜증을 냈다.
몬스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퀘벡이 넓다지만 이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었단 말인가?
콰과광! 콰과과광!
퀘벡 주방위군도 놀고 있지 않았다.
휴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쉬지 않고 치밀한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휴고 스미스. L-22 포인트 세팅을 완료했다.]
지휘부가 휴고에게 작전 진행을 알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휴고는 곧바로 지휘부가 알려준 포인트로 텔레포트 했다.
그곳에는 퀘벡 주방위군이 포격과 폭격을 통해서 한 지점으로 몰아넣은 수백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선다운 버스트!
그 위로 휴고가 대규모 파괴 스펠을 떨어뜨렸다.
콰아아아아아!
대폭발이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수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처치하다 보면 아무리 휴고라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등급 몬스터는 주방위군의 공격으로 처리하고, 현대무기로 처리하기 난감한 등급부터는 한곳으로 몰아넣은 뒤 휴고가 처리하고 있었다.
<브리짓, 그쪽 상황은 어때?>
휴고가 멕시코의 긴급 상황을 해결하러 간 브리짓에게 텔레파시로 물었다.
<이쪽에도 나타났어.>
<뭐?>
<한국과 영국에 나타난 놈들과 같아. 특수 지휘관 개체가 분명해.>
그 말에 휴고가 깜짝 놀랐다.
<기다려! 내가 당장…….>
<그쪽 상황은?>
싸늘한 브리짓의 물음에 휴고가 움찔했다.
퀘벡의 몬스터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많았다. 지금 그가 빠지면 퀘벡 주의 방어선은 얼마 못 버티고 붕괴한다.
퀘벡 주가 광활한 재해 지역이라고 하나, 퀘벡 시와 몬트리올 시는 여전히 인구가 많은 대도시였다.
이 몬스터 대군을 막지 못하면 수백만 명이 죽을 것이다.
<크윽……!>
<걱정 마. 여긴 9등급 몬스터는 없으니까.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그동안 다른 쪽이 해결되면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거야.>
<브리짓…….>
<아마 지금 지구상에 나타난 특수 지휘관 개체는 셋뿐일 거야.>
차준혁과 리사는 도버 해협에서, 유현애와 이미나는 한반도 북부에서 특수 지휘관 개체와 교전 중이었다.
정보를 종합해본 결과, 도버 해협에 나타난 리자드맨은 뇌전의 에우라스의 힘을 사용한다.
한반도 북부에 나타난 오우거는 광휘의 데바나의 힘을 사용한다.
멕시코 중서부에 나타난 늑대인간은 대지의 트라드의 힘을 사용한다.
<무리하지 마.>
<내가 할 말이야.>
<부탁이야.>
<…….>
간절한 휴고의 말에 브리짓은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무리할 이유가 없잖아. 순차적으로 하나씩 격파하면서 전력을 집중하면…….>
브리짓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휴고와 브리짓에게 긴급 통신이 날아들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국 대통령 서거.’
뿐만 아니었다.
백악관과 펜타곤이 초토화되면서, 미국의 행정 시스템과 군사 시스템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몰살당했다. 이 긴급 상황에서 미국의 컨트롤 타워가 붕괴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타락체라니…….>
브리짓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리 철통같은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의미가 없었다. 지구 인류 중에는 팀 섀도우리스를 제외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들, 타락체들이 테러를 가했기 때문이다.
<설마…….>
브리짓은 절망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양동작전을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고?>
* * *
미국을 향한 타락체들의 테러는 백악관과 펜타곤을 날린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거의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두 개의 발전소가 파괴당했고, 워싱턴과 뉴욕의 시내에서 대폭발이 일어나며 어마어마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미국만 타락체들의 테러를 당한 게 아니었다.
일본, 대만, 인도, 유럽도 미국과 동시에 공격당했다.
한국도 공격 대상이었다.
청와대와 헌터관리부를 비롯해서 행정, 군사 시스템의 최정점이 날아가 버렸다.
불과 몇 분 만에 미국 대통령, 한국 대통령, 일본 총리, 대만 총통, 인도 총리, 프랑스 대통령, 이탈리아 총리가 모조리 사망하는 사태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완전히 당했어…….”
김은혜는 파랗게 질린 채로 중얼거렸다.
팀 섀도우리스는 용우와 이비연이 구세록의 의지와 결판을 내는 동안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사실 타락체들의 공격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군단은 거점을 만들 때 지휘관 개체와 타락체를 함께 보냈으니까.
하지만 특수 지휘관 개체들이 등장하고, 전 세계의 재해 지역 몬스터들이 일제히 인류의 영역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타락체들까지 염두에 둘 수는 없었다.
‘완벽한 양동작전.’
먼저 특수 지휘관 개체의 존재를 드러내고, 재해 지역의 몬스터들을 움직여서 팀 섀도우리스를 끌어내었다.
그리고 손쓸 틈도 주지 않고 타락체들로 테러를 저질렀다.
‘놈들은 여력을 감추고, 이 한 번의 공격을 노리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던 거야.’
타락체들을 인류 사회에 잠입시켜서 정보를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리라.
지금의 공격 대상에 대한 정보원은 민간인으로 충분하다. 적당히 텔레파시로 정보를 캐낸 다음 잊게 만들면 수상한 행적이 드러날 일도 없다.
‘예측했다면… 아니, 그래 봤자 막을 수는 없었겠지.’
타락체는 팀 섀도우리스만이 막을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것은 특수 지휘관 개체도, 팀 섀도우리스가 투입된 전장의 몬스터 대군도 마찬가지다.
팀 섀도우리스의 인원이 한정된 이상, 적들을 저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 기습 자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캡틴…….’
정신없이 전화를 돌려서 가족의 무사함을 확인한 김은혜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서용우와 이비연이 구세록의 의지와 결판을 내기 위해 떠난 지 5시간이 지났다.
고작 5시간 만에 세상이 뒤집어진 것이다.
‘빨리 돌아오라고요. 안 그러면 지구가 멸망해버려. 죽을 때 죽더라도 번 돈은 써보고 죽어야 할 거 아냐!’
울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는 김은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전화를 받자 절망적인 소식이 전달되었다.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가 파괴당했습니다.]
* * *
치직, 치지지지직…….
무참하게 파괴당한 연구소 건물에서 전기가 방전되고 있었다.
무너진 연구실 한구석에 처박혀서 의식을 잃고 있던 사람이 눈을 떴다.
“아…….”
권희수 박사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옆에 떨어져 있는 안경을 주워서 썼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에는 연구원들의 처참한 시신이 널려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살아남은 이유는 간단했다. 서용우가 그녀를 허공장 보유자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소를 날려버린 폭발의 폭심지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민수.”
그녀가 속삭이자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가 삐빅 소리를 냈다.
권희수가 주머니에 처박아두었던 무선 이어폰을 꺼내서 끼자 그녀의 인공지능 비서 민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박사님.]
“시스템은?”
[메인 프레임과 서브 프레임 제1, 2, 3, 7, 9, 10파트가 파괴되었습니다.]
“데이터 손실은?”
[현재 점검 가능한 영역에서는 없습니다. 제2데이터 센터에 백업 완료되었습니다.]
“상황 보고해줘.”
[마력에 의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스펠-염동충격탄으로 추정됩니다.]
무지막지한 위력의 염동충격탄 수십 발이 곳곳을 때렸다. 드넓은 부지를 차지한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를 폐허로 만들기에 충분한 공력이었다.
권희수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허공장 보유자라고 해도, 염동충격탄이 떨어진 그 지점에 있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공격자를 특정했습니다. 상아인 타락체라 불리는 존재입니다.]
“…….”
[신속한 탈출을 권합니다. 상아인 타락체는 생존자들을 하나하나 확인 사살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민수.”
권희수는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147번 연구 데이터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제로에게 전하도록 해.”
[박사님?]
“마지막으로 녹화한 그것도 함께.”
[박사님. 탈출하셔야 합니다.]
“탈출 방법은? 그리고 성공 확률은?”
[…….]
민수는 침묵했다.
탈출할 방법은 없었다. 인공지능의 힘으로 시스템 전부를 살펴봐도,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속도로 생존자를 찾아내어 사살하는 상아인 타락체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존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로라면 반드시 이곳의 소식을 듣고 찾아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살 수 있습니다.]
“제로에게 연락이 됐어?”
[지속적으로 시도 중입니다.]
“다른 팀 섀도우리스는?”
[그들의 현재 위치는…….]
민수는 빠르게 팀 섀도우리스의 현재 위치와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군. 우리가 완벽하게 당한 거네.”
권희수는 민수의 짧은 설명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했다.
아아악……!
그때 조금 먼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민수, 적의 목적은 뭐지? 왜 굳이 저런 작업을 하고 있지?”
권희수는 상아인 타락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정도로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존재가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것일까? 대규모 파괴 스펠 한 방이면 모든 생존자가 정리될 텐데?
잠시 후, 민수가 대답했다.
[박사님입니다.]
“나?”
권희수가 놀랐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네. 박사님을 찾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에게 일일이 텔레파시로 박사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수는 아직 기능하는 카메라를 통해서 상아인 타락체의 행동을 파악했다.
상아인 타락체는 ‘권희수’를 찾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찾다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상관없다는 건가?”
권희수를 생포할 생각이었다면 연구소에 무차별 공격을 가해선 안 되었다.
“여긴 생존자가 없으니까… 나를 특정할 수 없게 하면 되겠어.”
권희수는 가운에 붙어있는 명찰을 떼어내서 부순 다음 파편을 곳곳에 던져버렸다.
“아하하. 완벽하네.”
문득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완벽했다.
그녀는 살면서 이렇게 완벽한 상황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민수, 제로에게 전해줘.”
그렇게 말하는 권희수는 웃고 있었다. 죽음을 결의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련한 미소였다.
“뒷일은 부탁해요.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저 할 만큼 한 거 인정하죠? 욕하지 마세요. 당신 과거 이야기를 못 듣고 가는 건 아쉽네요.”
권희수는 민수에게 유언을 남기고 연구실 한편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실험을 위해 가져다 놓았던 위험물 중 하나, 마력 반응 탄두였다.
그녀는 마력 반응 탄두를 여럿 꺼내서 빠르게 작동 세팅을 하고 주변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자기 머리 위에 얹어놓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후우…….”
힘겨운 삶이었다.
그녀는 살고 싶어서 살아오지 않았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죽고 싶었다. 죽을 만큼 힘내지 않으면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완벽한 상황을 만났다. 자신의 양심도 자살을 비난하지 못할 상황을.
그녀가 자살하는 것은 삶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적에게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난 도망치는 게 아냐. 그렇지?”
권희수는 민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조용히 발한 스펠이 마력 반응 탄두를 폭발시켰다.
제일 먼저 마력 반응 탄두에 닿아 있던 그녀의 머리통이 날아가고, 그리고 주변에 있던 마력 반응 탄두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면서 연구실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Chapter54 성좌의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