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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등급 몬스터와의 전투는 차준혁에게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1세대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은퇴자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죽은 현재, 9등급 몬스터와 싸워본 현역은 서용우와 이비연 밖에 없었다.
<크긴 크네요.>
리사가 해수면을 밟고 선 채로 중얼거렸다.
90미터라고 하면 고층빌딩 수준의 덩치였다. 거기에 에너지로 이루어진 검은 날개가 펼쳐져 있으니 체감되는 크기는 훨씬 더 거대하다.
<예전 같았으면 공포로 아무것도 못 했을 것 같은데…….>
차준혁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니, 내가 제정신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군.>
이성적으로는 이 자리에 오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토록 거대한, 폭풍우를 끌고 다니는 괴물을 앞에 두고도 전혀 공포감이 들지 않는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차준혁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 정도 마력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니까요.>
리사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들은 이미 폭풍용 정도의 마력은 수도 없이 접해왔다.
<간다.>
차준혁의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이 좌우 양쪽으로 찢어졌다.
꽈광!
직후 그 자리를 뇌격이 관통했다.
폭풍용의 공격이었다. 두 사람은 변신한 시점에서 본신 마력이 8등급 몬스터 수준에 이르렀기에 폭풍용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콰콰콰콰콰!
거짓말처럼 고요했던 폭풍의 중심부가 폭음으로 진동했다.
폭풍용의 뿔에서 뿜어져 나온 뇌격이 그물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인설레이트 필드!
그러나 차준혁과 리사는 완벽한 뇌전 대응책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을 감싼 빛의 구체가 뇌전을 미끄러뜨린다.
-염마용참격(炎摩龍斬擊)!
차준혁의 손에 들린 빛의 검이 스펠의 힘을 받아서 불타올랐다. 50미터 길이로 뻗어 나간 초고열의 에너지 칼날이 폭풍용을 후려갈겼다.
크아아아아아!
폭풍용이 울부짖었다.
차준혁의 공격은 폭풍용의 허공장을 뚫지 못했다. 그저 커다란 흠집을 내면서 뒤로 밀어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직후 또 한발의 공격이 그 흠집을 때린다.
-초열투창!
상공 1킬로미터 지점으로 텔레포트 한 리사가 아공간에서 벙커버스터를 꺼내서 점화, 초열투창으로 발사했다.
붉은 궤적을 그려내며 초음속으로 낙하한 벙커버스터가 폭풍용에게 직격했다.
꽈과과광!
폭풍용의 거체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인류의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한 성과였다. 이 백 배의 물리적 충격을 가한다 해도 폭풍용의 허공장을 뚫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폭풍용을 대적 불가의 재앙으로 판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준혁과 리사의 모든 공격은 철저하게 마력으로부터 비롯된다. 몬스터를 상대로는 전략핵을 직격하는 것보다 두 사람의 공격이 훨씬 강했다.
-염동염마탄(念動炎魔彈) 동시다발!
기다렸다는 듯 차준혁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초고열의 에너지탄 24발이 극초음속으로 폭풍용을 강타했다.
한발 한발이 항공 폭탄에 필적하는 파괴력이다. 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강타당한 폭풍용의 허공장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진짜 공격을 내기 전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선다운 버스트!
빛의 검이 불타오르며, 하늘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섬광 한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버 커넥트!
폭풍용의 머리 위로 워프 게이트가 나타나면서 선다운 버스트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폭풍의 장벽 너머, 오래전에 폐허가 된 도버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믿어지지 않는군. 고작 일곱 번째 문이 열린 시점에서, 제3세계의 인류가 이런 힘을 지녔다니. 기둥의 제물이라면 모를까 열쇠 사용자에 불과하거늘…….>
폭풍용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그 외형은 3등급 몬스터, 리자드맨이었다. 청회색의 비늘을 가진 키 2미터의 도마뱀 인간.
폭풍용에 비하면 파리처럼 초라한 존재다. 그러나 몬스터의 강약은 얼마나 거대 하느냐로 정해지지 않는다.
<확실히 특별한 놈이군.>
차준혁이 중얼거렸다.
리자드맨의 마력이 폭풍용을 능가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지만 사실이었다.
한반도 북부에 나타난 놈과 마찬가지로, 특수 지휘관 개체가 분명했다.
<넌 뭐냐? 뇌전의 에우라스와 무슨 관계지?>
차준혁이 그렇게 물은 것은 리자드맨에게서 독특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군주 개체, 뇌전의 에우라스를 봤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대리자.>
리자드맨이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뇌전을 다스리는 위대한 군주의 대리자로서 너희들 인류에게 왔다.>
그의 주변에 무수한 뇌전의 구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전광(球電光) 무한연쇄!
폭풍용이 발하는 뇌전이 리자드맨의 힘이 되었다. 뇌전의 구체 수백 개가 일제히 폭발했다.
꽈과과과과……!
절연성을 띠는 방어막으로도 다 막을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폭발이 폭풍의 벽조차 찢어발기면서, 도버 해협을 하얗게 불태웠다.
[통신이… 지지직… 지지지지지직!]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발생하면서 전술 시스템 네트워크가 마비되었다.
그러나 차준혁과 리사의 소통은 인류의 기술에 의지하지 않는다.
공간을 뛰어넘은 리사가 리자드맨에게 빙설의 창으로 찌르기를 날렸다.
-오버 커넥트!
그러나 그 공격은 눈앞에 열린 워프 게이트를 찌르고 말았다.
-염동충격탄 동시다발!
뒤이어 날아든 24발의 에너지탄이 리사를 강타했다.
쾅! 콰콰콰콰쾅!
에너지탄들은 절묘하게 시간차를 두고 리사를 강타해서 바다에 처박았다.
파지지지직!
리자드맨이 추가타를 날리려는 순간, 그 뒤에 나타난 차준혁의 검격이 그를 저지했다.
<하하하! 조금은 싸울 줄 아는 놈이로구나!>
<큭……!>
광소하는 리자드맨을 보며 차준혁이 이를 악물었다.
다음 순간, 둘의 모습이 공간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쾅!
상공에서 둘이 충돌했다.
콰콰콰쾅!
어지럽게 위치를 바꿔가면서 충돌하고, 또 충돌한다.
<예지능력자였느냐?>
리자드맨이 싸늘하게 웃었다.
파지지지직!
차준혁의 예지와 현실이 어긋났다.
‘이런! 벌써?’
이토록 빠르게 예지능력을 간파하고 대응해오다니!
동요한 차준혁의 검격이 리자드맨의 핀포인트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꽈광!
직후 리자드맨의 발차기가 예술적인 카운터로 차준혁에게 꽂혔다.
<커억!>
맹렬하게 날아간 차준혁의 몸이 해수면을 들이받고 튕겨 올랐다.
그런 그에게 리자드맨이 발한 에너지탄들이 따라붙는다. 차준혁은 블링크로 그것들을 피했지만…….
-공허 문지기!
기다렸다는 듯 리자드맨이 카운터 스펠로 그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콰콰콰콰쾅!
연달아 두들겨 맞은 차준혁이 바닷속에 처박혔다.
<제법이다. 아무리 이런 버러지의 몸을 쓰고 있다지만, 기둥의 제물도 아닌 자가 내 적수가 될 줄이야. 놀랍군.>
리자드맨이 감탄했다.
파지지직…….
그의 허공장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완전히 끝장을 내려는 순간, 차준혁이 날린 카운터가 그를 때렸던 것이다.
리자드맨은 뇌전의 에우라스가 신임하는 고위 언데드였다.
그가 지구에서 이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군단의 영적 자원이 대량으로 투입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락체들의 우두머리, 라지알이 군주들에게 전수한 비술 덕분이었다.
리자드맨은 그의 군주, 에우라스의 힘을 받고 있다.
군주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힘의 낭비가 심한 행위다. 하지만 군주 개체로 강림했을 때처럼 허를 찔릴 위험은 피할 수 있기에, 세 군주는 이 비술의 사용에 동의했다.
<제기랄. 정신이 확 드는군.>
차준혁이 바다 위로 솟구치면서 말했다.
‘확실히 강하다.’
저 리자드맨은 마력만 강한 게 아니다. 전투기술 자체가 지금까지 싸워본 적 중에서 최상급의 실력이다.
‘하지만 최강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
지금의 차준혁은 타락체와의 전투경험도 상당했다. 그리고 타락체 중에는 순수하게 전투기술만으로 보면 리자드맨보다 더 뛰어난 자도 있었다. 예전에 휴고의 팔을 날려 버렸던 상아인 타락체가 그랬다.
‘게다가 캡틴이나 비연이하고 싸워본 경험이 얼만데.’
실전이 아니라 훈련 경험으로 치면 훨씬 강력한 존재들과 수도 없이 싸워본 몸이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리사. 격투전은 내가 전담한다. 서포트에 전념해.>
<네.>
리사는 곧바로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팀 섀도우리스는 연계 플레이를 날카롭게 다듬어왔다.
리사의 격투전 능력은, 차준혁의 그것보다 훨씬 떨어진다. 하지만 서포터로서는 아주 강력한 존재였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게냐?>
리자드맨이 오만하게 웃었다.
그가 올라탄 폭풍용의 눈이 흉흉하게 빛나면서 뇌전이 끓어오른다. 리자드맨은 그 힘을 능숙하게 지배해서 스펠의 파괴력을 끌어올릴 양분으로 삼고 있었다.
꽈아앙!
그러나 그 작업이 완료되기 전에, 폭풍의 장벽 너머에서 날아든 섬광이 폭풍용을 강타했다.
<음?>
놀라는 리자드맨에게 차준혁이 돌진했다.
<이제 와서 뭘 놀라지?>
빛의 검이 현란한 궤적을 그려내면서 리자드맨을 위협한다. 리자드맨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달라진 차준혁의 움직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팟!
리자드맨의 손톱에서 분출된 에너지 칼날이 차준혁의 갑옷을 긁고 지나갔다.
파밧!
동시에 차준혁의 검격이 리자드맨의 피부에 생채기를 내었다.
<예지능력에 의존하기만 하는 놈이 아니었구나!>
조금 전에 차준혁이 허를 찔린 것은 리자드맨의 예지능력 대응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지능력에 의존하는 경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상대방이 예지능력 대응법을 들고 나온다면…….
‘그것 자체를 상대에게 부담으로 만든다!’
순간순간 예지능력의 On/Off를 통제한다. 그로써 상대방에게 예지능력을 쓰는지, 쓰지 않는지 혼란을 주고 지속적으로 예지능력 대응법을 쓸 수밖에 없는 부담을 지운다.
꽈앙! 꽈아아앙!
그렇게 리자드맨의 움직임이 격투전에 묶인 동안, 리사는 마음 놓고 장거리 저격으로 폭풍용을 두들겨대고 있었다.
<이 위력은…….>
리자드맨은 오한을 느꼈다.
폭풍용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친다. 리사의 공격이 죄다 폭풍용에게 유효타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사의 본신 마력은 폭풍용에 미치지 못하는, 8등급 몬스터 수준이다. 다루는 힘의 규모에 있어서도 도저히 못 미친다.
그럼에도 리사의 순간 공격력은 폭풍용을 훨씬 능가한다.
스펠을 통한 효율화 때문이다. 각성자와 몬스터의 출력이 비슷하다면, 스펠을 쓰는 각성자의 공격력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있기 때문이다. 공격할 때마다 그녀의 마력이 폭풍용과 동격으로 증폭된다.
꽈아아앙!
충격이 폭풍용을 관통한다.
철컥…….
탄피가 배출되는 소리가 울렸다.
리사는 새 탄을 장전하는 대신 소총을 버리고, 새 소총을 들었다.
서용우가 그렇게 하듯, 그녀도 무수한 소총과 총탄을 아공간에 비축해두고 있었다.
각성자 저격수용 소총은 리사의 마력을 버티지 못했다. 한 발만 쏴도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일회용으로 충분하다.
그녀의 마력이 마력탄두로 증폭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탄은, 9등급 몬스터 폭풍용에게도 유효타로 꽂힐 정도니까.
<이제 알겠나?>
게다가 리사의 역할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리사는 폭풍용을 두들겨대면서, 차준혁에게 강화 스펠과 가속 스펠을 걸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차준혁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줄이고 격투전에 전념함으로써 리자드맨을 밀어붙였다.
<으음……!>
리자드맨이 신음했다.
하지만 그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차준혁의 공세를 잘 받아내면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감탄을 금할 수 없군. 이 시점에서, 제3세계의 인류가 이런 경지에 도달하다니.>
서용우라는 이레귤러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기에, 군단은 더 이상 지구 인류를 얕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차준혁의 전투능력에는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 같은 존재가 많지는 않겠지. 그게 너희들의 한계다.>
<무슨 소리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리자드맨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차준혁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