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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인류가 인식하는 위기는 패턴화되어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몬스터에게는 영역 의식이 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해도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뻗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맞닥뜨린 게이트 재해의 위험은 한 번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패턴에서 벗어난 상황이 다가오자 비상이 걸렸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들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남하만 하는 게 아닙니다. 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놔두면 계속 불어날 겁니다.”
재해 지역의 몬스터들이 영역을 벗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마치 통일된 의사를 가진 것처럼 무리 지어서.
“8등급 은갑옷거북도 남하 중!”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남하하는 몬스터 중에 고등급 몬스터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구 북한 영토에 자리 잡았던 7, 8등급 몬스터들이 다른 몬스터들과 함께 남하해오고 있었다.
“젠장, 지휘관 개체인가?”
헌터관리부는 그 이유를 쉽게 특정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는 게 가능한 존재는 지휘관 개체뿐이었으니까.
그들은 개성에 긴급 대피령을 내리고, 헌터 전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사태 앞에서도 한국 정부는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비교적 침착한 대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8등급 몬스터는 대적 불가의 재앙이 아니다.
한국의 최정예 헌터들이라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팀 섀도우리스가 있지.’
그들이 있는 한 한반도 북부의 8등급 몬스터가 모조리 내려오더라도 막아낼 수 있다.
그런 믿음이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헌터관리부는 군 사령부와 연계해서 방어전에 들어갔다.
헌터들이 개성에 집결하는 동안 저등급 몬스터들의 수를 줄이고, 고등급 몬스터들의 남하를 늦추기 위해 폭격을 가했다.
북쪽을 향하는 원거리 포들이 쉴 새 없이 포탄을 쏘아내고, 폭격기들이 몬스터 무리가 있는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뭐?”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시 말해봐. 뭐라고?”
[폭격기 전기 격추당했습니다.]
“설마 악마숲인가?”
폭격기로 노린 곳은, 사전에 악마숲처럼 장거리 대공능력을 가진 몬스터가 없는지 정찰을 마친 지점들이었다. 그런데도 전부 격추당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보고하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공포를 맞이한 것처럼.
[지휘관 개체입니다. 말도 안 되는 놈이 나타났습니다.]
9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과 헌터 업계 최상급 각성자보다도 다양한 스펠을 구사하는 특수 지휘관 개체가 몬스터들을 이끌고 있었다.
* * *
재해 지역의 몬스터들이 진군하기 시작한 곳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와, 타이밍 진짜 예술이네요.”
유현애가 탄식했다.
서용우와 이비연이 구세록 문제를 종결짓기 위해 사라진 지 4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타이밍에 이런 전 세계적 재난이 덮쳐오는 것은 도저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군단은 이 타이밍을 노리고 대공세를 펼친 게 분명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정말 온갖 음모론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군.”
차준혁이 혀를 찼다.
사실 구세록의 의지와 군단은 한패가 아닐까? 루가루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만큼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문득 유현애가 물었다.
“얼마나 죽을까요?”
“…….”
차준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현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재난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지금, 팀 섀도우리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했다.
하지만 팀 섀도우리스의 수는 고작 여섯 명이다. 이들만으로 전 세계를 일제히 덮친 대공세를 어쩔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초인이지만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었다. 누구를 구할지 선택해야만 한다.
당연하게도 브리짓과 휴고는 미국의 수호를 선택했다.
차준혁, 유현애, 이미나, 리사는 한국을 우선적으로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북쪽에 등장한 특수 지휘관 개체는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개성에 도착한 그들에게 김은혜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유럽 공동체에서 긴급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유럽? 무슨 일입니까?”
[영국의 폭풍용이 유럽 본토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 이동속도로 계산한 바로는 앞으로 30분 후에 도착합니다.]
“…….”
다들 충격으로 굳어 버렸다.
영국을 멸망시킨 9등급 몬스터, 폭풍용.
팀 섀도우리스가 아니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류에게 있어서는 대적 불가의 재앙이다.
거의 몬스터들은 비행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비행능력을 갖춘 몬스터들도 비행 거리가 짧아서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하지만 폭풍용은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좁은 바다, 영국 해협을 건널 수 있는 비행 능력이 있었다.
[뿐만 아닙니다. 저쪽에서 한반도 북쪽에 출현한 놈처럼 9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을 가진 특수 지휘관 개체가 관측되었습니다.]
“9등급 몬스터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지휘관 개체란 말인가…….”
차준혁이 신음했다.
잠시 기다리던 김은혜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원을 나누겠습니다. 그쪽으로 두 명이 가도록 하죠.”
[괜찮겠습니까?]
“한국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한국에는 팀 크로노스와 팀 블레이드, 팀 이그나이트라는 최정예 헌터 전력이 있다.
그동안 서용우에게 스펠 스톤을 공급받아서 성장한 그들의 전투능력이라면 8등급 몬스터 사냥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다.
“지금의 우리라면, 9등급 몬스터를 잡는 것도 두 명이면 충분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차준혁의 전투능력은 요 며칠 새 급락했다.
서용우에게 성좌의 무기를 넘겼으니 어쩔 수 없었다.
서용우가 차준혁을 계승 후보로 설정하고 아티팩트 광휘의 검을 통해 셀레스티얼로 변신할 수 있게 됐지만, 마력이 감소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그럼에도 차준혁은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 결성 이후 차준혁의 성장은 서용우조차도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브리짓과 휴고하고는 수시로 연락하십시오. 자국을 우선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로 급한 불은 결국 우리가 끄는 수밖에 없으니까.”
김은혜에게 그렇게 당부한 차준혁이 리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리사, 먼저 프랑스로 가라. 그쪽에서 좌표를 보내줘. 할 일은 김은혜 씨가 말해줄 거야.”
“준혁 오빠는요?”
리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닌 경험 덕분에 유럽 곳곳의 공간좌표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차준혁은 유럽의 공간좌표가 없다. 하지만 굳이 리사를 먼저 보낼 것 없이 동반 텔레포트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우희 씨를 피신시키고 따라가지.”
“네?”
“캡틴이 만든 비밀 피신처로 보낼 거야.”
“알겠어요.”
리사는 곧바로 텔레포트 해서 사라졌다.
유현애가 물었다.
“갑자기 왜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
예지능력자의 불길한 예감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
“혹시라도 우희 씨가 어떻게 되면… 우린 뒷감당을 할 수 없어.”
서용우가 세상을 파멸시키는 사태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취해야 하는 조치였다.
“아직 작전 투입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두 사람도 가족을 피신시킬 수 있으면 피신시키고 와. 사정 설명하고 물건 챙길 그런 여유까지는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하지만… 이런 때에요?”
유현애가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세상 전부가 위험한 상황에서 특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혈육만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하다니, 비도덕적이지 않은가?
차준혁이 말했다.
“어차피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큰 싸움을 해야 하는 건 우리다. 마음이 흐트러질 요소를 배제하는 쪽이 오히려 공익을 위하는 길이지.”
“…….”
“다녀와. 후회하지 말고.”
유현애와 이미나는 그 말에 따랐다.
잠시 혼자 남은 차준혁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피신시킬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모르겠지.”
차준혁의 혈육은 행정 데이터상으로는 실종자로 되어 있는 동생뿐이다.
하지만 다니엘 윤의 신분을 가진 동생은 이런 때 안전지대로 도망칠 수가 없었다. 형도, 아우도 위험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 * *
곧바로 서용우의 집으로 가서 서우희를 피신시킨 차준혁은, 리사가 보내준 좌표를 따라서 유럽으로 날았다.
“도버 해협인가.”
차준혁은 헬멧 안쪽에 표시되는 전술 시스템의 데이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영국 도버와 프랑스 칼레 사이에 자리한 좁은 바다, 도버 해협의 길이는 불과 35킬로미터.
멸망의 땅을 불과 35킬로미터 앞에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칼레는 완전히 군사 기지화되어 있었다.
후우우우우!
난리가 난 그 칼레 군사기지 위로 엄청난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인간을 하늘로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풍속이었다.
폭풍이 도버 해협을 지나 칼레로 상륙하고 있었다.
“상황은?”
차준혁은 리사를 발견하고 물었다.
전파탑 위에 서 있던 리사가 말했다.
“안 좋아요. 폭풍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갈 길이 막혔어요.”
이 폭풍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도버 해협 저편에서 다가오는 재앙, 폭풍용의 권능이었다.
“통신상태도 좋지 않아요. 드론도 날 수 없고.”
초속 30미터로 다가오는 폭풍은 인류가 자랑하는 시스템을 무력화하기에 충분했다. 드론은 날 수 없었고, 전파 통신도 장애를 겪고 있었으니까.
리사가 말했다.
“물자는 미리 받아놨어요. 벙커버스터는 우리 권한으로 발화시킬 수 있도록 설정 변경 후에 넘겨준다는군요.”
“잘했어.”
차준혁은 그녀에게 전투용 물자를 나눠 받았다. 아공간을 가진 그들에게 있어서 위력적인 무기와 탄약은 아무리 많아도 나쁠 게 없었다.
“여기 사람들을 살리려면, 결국 도버 해협을 건너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거군.”
“가능할까요?”
“모르겠다.”
9등급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다. 인류가 파악한 폭풍용의 전투 능력은 극히 일부였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의 여파가 어느 정도로 퍼져나갈지는 예측 불허였다.
“캡틴한테 들어뒀으면 좋았을걸.”
서용우와 이비연이라면 폭풍용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두 사람에게 지구상에 존재하는 9등급 몬스터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폭풍용, 도버 해협 진입.]
그리고 칼레 기지의 전문가들이 황급히 설정을 바꾼 벙커버스터를 두 사람에게 전했을 때, 타임 리미트를 알리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볼까?”
“네.”
차준혁과 리사는 곧바로 셀레스티얼로 변신해서 도버 해협으로 진입했다.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이 불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아간다. 멀리서 보면 등 뒤로 분출되는, 펄럭이는 망토처럼 보이는 빛 때문에 마치 빛의 칼날이 태풍을 뚫고 나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전진하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강풍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폭풍의 중심지에 도달한 것이다.
두 사람의 눈앞에 바다 위쪽, 10미터 정도 높이로 날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해마를 닮은 실루엣, 검은 암석 같은 외피에 어둠 그 자체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진 괴물.
9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을 가진 9등급 몬스터, 폭풍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