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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구구구……!
대기가 불길하게 진동했다.
딱히 뭔가 전투 행위가 일어난 결과가 아니었다.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라고 불릴 만한 존재들 수십이 한자리에 모여서 마력을 전개한 것만으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비연의 마력이 거침없이 상승한다.
본신 마력만으로도 9등급 몬스터를 능가하는 그녀다. 칠흑의 건틀릿과 칠흑의 장검이 그 마력을 현격히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초월권족들 역시 마력을 증폭시키는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갑옷도, 무기도 전부 그런 효과를 가졌다.
다만 그 성능에는 편차가 있었다. 아티팩트급 장비는 확실히 희소한 것 같았다.
-박제된 찰나!
용우가 초가속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과거에 사다모토 아키라는 신중하게 발동시켰던 권능이었다. 그만큼 마력 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우에게는, 정확히는 정보세계의 용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꽈아아아아앙!
직후 뛰어든 이비연과 초월권족들이 격돌했다.
충격이 폭발하면서 초월권족들이 튕겨 나간다. 초가속이 걸린 이비연이 너무 빨라서 제대로 힘을 연계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들 튕겨 나갔을 뿐이지 부상을 입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 전원이 이비연과 필적하는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크악……!”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반격하려던 초월권족들은 놀라서 비명이 터져 나온 지점을 바라보았다.
용우가 양손 대검으로 한 초월권족의 몸통을 꿰뚫고 있었다.
“실력이 별로군. 군단 쪽이 훨씬 나은데?”
동시에 양손 대검에 꿰뚫린 초월권족이 폭발했다.
“하나. 여기 총인구가 1,300명 정도라고 하던데, 다 죽일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볼까?”
“…….”
용우의 태도가 너무나 담담해서 초월권족들은 잠시 현실감을 못 느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곧 그들은 격노해서 공격을 가했다.
“버러지가 감히!”
“억만 번 죽어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아느냐!”
“아, 진짜 누가 천년 넘게 귀족 놀이한 것들 아니랄까 봐.”
용우가 짜증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의 그에게는 적들의 공격이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아직 초가속의 효과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용우의 말이 적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텔레파시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화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 말하는 속도가 달랐다.
“죽어라!”
초월권족들이 일제히 용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강력한 저주와 각종 에너지탄, 그리고 강력한 텔레파시와 공간 절단 공격이 날아들었다.
실로 위협적인 공격이다. 그러나 용우는 그 공격을 딱히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표적을 하나 정하고는 일직선으로 돌격했다.
“뭐야?”
초월권족들이 당황했다.
용우가 너무나 빠르게 그들의 화망을 돌파해서만은 아니었다. 아직 초가속 효과가 안 끝났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용우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돌진, 그대로 초월권족 하나를 정수리부터 두 동강 낸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이번에 당한 초월권족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용우가 양손 대검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서 충격파가 폭발,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둘.”
담담하게 숫자를 세는 용우의 목소리가 초월권족들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틈을 이비연은 놓치지 않았다.
파악!
칠흑의 장검이 오만하게 떠들어대던 지휘관의 목을 베어버렸다.
“셋.”
초월권족들이 당황했다.
“마, 말도 안 돼!”
“정보하고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
루가루가 그들에게 전달한 정보에 비해 용우와 이비연 둘의 전투능력이 너무나 높다.
파지지지직!
이비연과 초월권족 둘이 충돌하자 격렬한 스파크가 공간을 진동시켰다.
이비연이 허공장을 조작, 둘을 뿌리치면서 칠흑의 장검을 휘둘렀다.
-공허 가르기!
그러자 초월권족들이 곧바로 대응했다.
-공허 문지기!
한 명이 공간이동을 카운터로 봉쇄하고, 다른 한 명이 그 틈을 노려서 역습을 가한다.
“그래도 기본은 됐네.”
하지만 그것은 이비연이 판 함정이었다.
파악!
일부러 그들에게 맞춰서 느릿하게 움직이던 이비연이 급가속했다. 허점을 찌르러 들어온 초월권족은 방어조차 못 하고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기본만 됐지만.”
직후 쏟아진 뇌격이 다른 한 명을 불태웠다.
“끄아아아아악!”
그 뇌격은 이비연이 발하는 마력을 훨씬 능가하는 출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융합체는 하나가 아니었나!”
그 이유를 간파한 다른 초월권족이 경악했다.
용우가 만들어낸 성좌의 무기 융합체-트리니티의 존재는 루가루를 통해 그들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이비연이 지닌 검에 대해서는 루가루도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검이 탄생한 것은 이 세계에 진입하기 직전이었으니까.
굉음의 도끼와 뇌전의 사슬이 소우바 코어를 매개체로 융합된 결과물.
그것이 바로 이비연의 손에 들린 성좌의 무기 융합체-굉뢰(轟雷)였다.
“하나여야 할 이유가 없잖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비연이 초월권족을 수월하게 상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마력이, 실제로는 초월권족들이 감지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파악!
“이, 이럴 수가…….”
칠흑의 장검에 심장을 관통당한 초월권족이 경악과 불신으로 눈을 부릅떴다.
이비연은 마력을 적당선으로 유지하면서 공격 순간에만 폭발시키는 기술을 쓰고 있었다. 그 기술의 숙련도가 너무나 높아서 초월권족들은 아직도 이비연의 마력 한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농락당하고 있었다.
“여섯.”
이비연이 잔혹하게 웃는 것과 동시에 심장을 찔린 초월권족이 산산조각났다.
게다가 그들이 용우와 이비연에게 쉽게 당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전투기술의 수준 차이가 너무 심했다.
초월권족은 분명 강대한 마력을 지녔고, 다종다양한 스펠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들의 전투능력은 가진 것에 비해서는 평범함 이하였다.
‘천년 넘게 남이 싸우는 걸 보고 즐기면서 팝콘만 뜯었으니 안 그럴 수가 있나?’
루가루가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제1세계의 종말 이후로 한 번도 실전을 겪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구세록 내부 세계의 시간 개념이 지구와 다른 곳도 아니다. 이들은 정말로 천년 넘게 이 폐쇄된 세계 속에서 외부 세계를 관측만 하면서 보냈던 것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놀고먹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투기술을 단련하는 자들은 분명히 있었을 터.
하지만 천 년 넘게 싸울 일 없이 지냈는데, 그 행위에 얼마나 집념이 서려 있었을까?
이들에게는 실전이 막연히 ‘언젠가는 닥쳐올 일’이었을 뿐, 당장 대비해야 하는 현실이 아니었다.
그런 채로 천년을 보냈으니, 설령 천 년 전에 전투기술이 뛰어났던 자라 한들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일곱. 아직도 헛꿈을 꾸고 있군.”
용우는 충격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초월권족들을 비웃었다.
두 사람과 교전 중인 별동대의 수가 빠르게 줄어가는데도 결계가 해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계 안의 본대는 텔레포트 하지 못하고 날아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골렘들이 전개한 안티 텔레포트 필드를 해제시키고 텔레포트 하면 그만일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갇혔으면 좀 짜증 났겠는데?”
“응. 공간 간섭계 스펠을 완전히 봉쇄하는 게 분명해. 그거 말고도 다른 저주 효과들이 붙어있고.”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결계를 훑어본 이비연이 말했다.
어쨌든 본대의 이동속도도 빠르기에 도착하기까지 불과 수십 초면 충분할 것이다.
“여덟.”
그러나 그 수십 초조차도, 용우와 이비연을 상대하는 별동대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이런 상황인데도 본대가 결계를 해제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떻게든 용우와 이비연을 결계 안으로 붙잡아 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광활한 영역을 감싼 결계는 그만큼 그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게 틀림없었다.
“열.”
그리고 그 선택은 별동대의 죽음을 가속화시켰다. 별동대 한 명이 죽을 때마다, 다음 한 명이 당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열하나.”
“열둘.”
이번에는 이비연이 한 명을 베고, 채 3초도 지나기 전에 용우가 또 한 명을 죽였다.
“제기랄! 오지 마!”
“죽어! 죽으란 말이다!”
천년 동안이나 절대적인 안전을 누려왔던 자들이다. 죽음의 공포가 닥쳐오자 그들의 정신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별동대가 무지막지한 화력 공세를 퍼부었다.
-선다운 버스트 연속 투하!
전술핵급의 폭발이 연달아 터졌다.
-라이트닝 버스트 연쇄 폭발!
그에 필적하는 전격 에너지가 한 지점을 강타하면서 황금색 들판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었다.
-용암의 군단!
그 열기를 매개체로 무수한 불의 거인들이 나타나 포효했다.
온 세상을 불태울 것 같은 천재지변의 향연이었다. 만약 별동대 생존자 여덟 명이 지구에서 지금처럼 날뛴다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인류 문명이 끝장날 것이다.
그러나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는, 허무할 정도로 원시적인 수단에 죽었다.
파악!
사방팔방에 난사되는 대규모 파괴 스펠들을 유유히 피한 용우가 별동대 하나의 목을 날렸다.
“열셋.”
그리고 이비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넷.”
눈앞에서 격투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대규모 파괴 스펠을 난사하는 것은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만한 마력과 대인 전투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열일곱.”
남은 별동대의 수가 세 명이 되었을 때야 겨우 적들의 본대가 결계 밖으로 나왔다.
“멈춰라! 이 잔악무도한 놈들!”
본대가 급히 용우와 이비연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별동대에게서 떨어뜨려 놓기 위한 견제였다.
-공허 가르기!
하지만 이비연이 별동대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날린 공격이 공간을 격하고 본대 하나의 목을 날려버렸다.
“어……?”
완벽한 기습이라 카운터 스펠로 무효화 할 새도 없었다.
콰과과광!
대폭발이 뒤따르면서 본대가 혼란에 빠졌다.
“열아홉. 아니, 이제 저쪽까지 합쳐서 세야겠군. 스물이네.”
그리고 용우는, 본대가 급히 날린 견제공격을 무시하고 뛰어들어가서 별동대들을 연거푸 베어 버렸다.
“으, 으으으…….”
별동대 최후의 생존자가 공포로 몸을 떨었다.
부상은 대단치 않다. 마력도 충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덜덜 떨 뿐, 움직이지 못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괴물……!”
“칭찬으로 듣지.”
용우가 씩 웃으며 그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스물하나.”
이 전장의 초월권족은 본대와 별동대를 합쳐서 66명.
그중 21명을 처치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45명.
화르르륵…….
용우가 불길과 열기가 끓어오르는 대지 위를 느긋하게 걸었다.
“우리를 저 안으로 처넣을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미적거리며 나온 거겠지?”
용우가 거대한 돔 형태의 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자신감만큼 실력이 따라주는지 볼까?”
동시에 오싹한 감각이 초월권족들에게 엄습해왔다.
“이건……!”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보라의 용!
용우가 전투 중에 구현해두었던 종말급 스펠을 발동했다. 아득한 천공으로부터 거대한 백색의 용이 내려오고 있었다.
“종말급 스펠을 어느새?”
강력한 권능의 소유자라도 종말급 스펠을 보유한 경우는 희귀하다. 그리고 보유자도 제물을 바쳐가며 거창한 의식을 치러야 발동 가능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점에서는 구세록의 초월권족들도 종말의 군단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용우가 혼자서, 아무런 조짐도 없이 종말급 스펠을 발동한 것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도 군단하고 똑같군. 하긴 놈들과 수준이 달랐으면 굳이 이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겠지.”
구세록의 초월권족들도 군단의 세계를 엿볼 수는 없다.
당연히 그들은 용우가 군단의 세계에서 한 일들을 몰랐다. 그리고 그 정보 부재는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저게 내려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용우가 빙긋 웃으며 양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안티 텔레포트 필드!
동시에 용우를 중심으로 공간 간섭계 스펠을 봉쇄하는 에너지 필드가 펼쳐졌다.
“이런……!”
본대 지휘관은 한 박자 늦게 치명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용우가 안티 텔레포트 필드를 발하기 직전, 이비연이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너희들이라면 뛰어서 범위 밖으로 도망칠 수도 있겠지? 그래서 하나 더 준비했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그리고 또 하나의 종말급 스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땅 위의 태양!
용우의 모습이 빛에 삼켜졌다.
그를 중심으로 태양처럼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세상이 하얗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다시, 하얗게 얼어붙었다.
* * *
휘이이이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황금 들판은 온데간데없다. 온통 하얗게 얼어붙은 죽음의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 위에서 용우가 중얼거렸다.
“예순여섯.”
Chapter53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