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66화 (166/225)

3

팀 섀도우리스는 대만 타이중의 50미터급 게이트 공략 작전을 불과 1시간 40분 만에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것도 네 명만이 투입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적당히 한 결과였다. 유현애와 이미나는 변신을 하지 않은 채로 전투를 수행한 것이다.

대만 정부로부터 거금과 대량의 마력석을 성공보수로 받은 그들은 다시 긴급한 의뢰가 들어오기 전까지 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용우와 이비연 두 사람만은 곧바로 비공식적인 전투에 나서고 있었다.

* * *

지구 곳곳에는 재해 지역이 존재하고 있었다.

인류의 관리를 벗어난 땅.

그 땅에는 무수한 몬스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 순간에도 꾸준히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면서 그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용우는 그 한복판을 거닐고 있었다.

“역시 남아 있었군.”

마력석 수급을 위해 지구 곳곳의 재해 지역을 헤집고 다니던 용우는 군단의 거점을 발견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괌 전투 이후로 발견한 것만 세 번째다.

“골치 아프군. 그렇다고 이걸 다 정리하고 나서 움직일 수도 없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괌 전투 때는 18명의 타락체가 나타났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대여섯 개의 거점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타락체가 죽어도 그 거점 자체는 유지된다. 지휘관 개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를 샅샅이 헤집지 않는 한 찾을 수 없는 놈들이잖아. 다 찾기 전에 새로운 거점이 생길걸. 구세록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봐.”

“역시 그렇겠지. 이놈들도 이제 대응 매뉴얼이 확실해져서 거점 하나 줄이는 것 이상의 소득은 기대할 수 없으니…….”

처음에는 군단의 거점을 발견할 때마다 지휘관 개체들을 고문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군단은 극단적인 대응책을 내놓았다.

용우가 거점 근처에 나타나면 그 순간 곧바로 지휘관 개체들이 빙의를 풀고 이탈했던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은 용우가 어떻게 자신들을 발견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용우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생긴 시점에서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부르르…….

문득 용우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휴대폰을 본 용우가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누구야?”

“차준혁.”

차준혁이 용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아, 오늘이지 참.”

용우가 루가루에게서 진실을 알아내고 타카야마 준이치를 구한 그날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용우는 바쁘게 움직였다.

공식적인 일정은 대만 타이중의 50미터급 게이트를 공략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비연과 둘이서 전 세계의 재해 지역을 들쑤시고 다녔고, 곧 닥쳐올 싸움에 대비해서 비밀공간에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그런 한편 기다리고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에 발생한 문제의 원인이 된 팀원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를.

* * *

차준혁은 한국에서는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이 아니라 팀 섀도우리스의 멤버 중 얼굴을 드러낸 자들은 다들 그랬다.

팀 섀도우리스가 활동하기 시작한 후로 차준혁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백발 때문에 외모도 눈에 띄는 편이라, 어디 나가기만 하면 파파라치에게 사진이 찍혀서 기사가 뜨고는 했다.

차준혁은 유현애와 달리 대중의 관심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가진 능력을 써먹었다. 공식 석상처럼 꼭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은신과 텔레포트로 시선을 피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차준혁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그가 평범하게 집에서 차를 타고 나와서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카메라로 촬영하고 목적지에 먼저 모여든 기자들이 돌격해 와서 질문을 던져댔다.

“고생 많았어, 스타 양반.”

천신만고 끝에 팀 섀도우리스의 회의실에 도착한 차준혁에게, 용우가 씩 웃으며 음료수 캔을 던져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차준혁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죽겠군.”

차준혁은 문자 그대로의 초인이다. 그럼에도 몰려든 기자들의 등쌀에 진이 빠져 버렸다.

“현애는 어떻게 매일 이런 걸 견디고 사는 거지?”

“걔는 너처럼 꽁꽁 숨어 살지 않으니까. 적당히 자기를 노출해줘서 그런지, 한 번 한 번에 쏟아지는 관심은 덜하지.”

“당연하게 쓰던 능력들이 사라지니 정말 힘들긴 하군.”

차준혁이 괜히 평범하게 차를 타고 나온 게 아니다.

지금의 그는 은신도, 텔레포트도 쓸 수 없었다.

용우가 물었다.

“변장이라도 하지 그랬어?”

“나도 중간에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추적당해서 별 의미는 없었을 거다.”

“그건 그렇군. 어쨌거나… 결심은 섰어?”

용우의 물음에 차준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은 첫날 이미 정했다. 하지만 내가 그때 바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는 건, 브리짓과 휴고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기한까지 기다렸지.”

“그랬군. 그럼…….”

“광휘의 검을 넘겨주지.”

차준혁이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 * *

구세록의 사도를 자처하는 자, 루가루를 제압하고 나서 팀 섀도우리스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힘을 잃었다.

차준혁과 브리짓은 본신 마력과 스스로 보유한 스펠을 제외한 모든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성좌의 무기를 소환할 수는 있지만, 그 힘을 끌어내어 쓸 수가 없다.

당연히 변신도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정보 공간에도 들어갈 수 없고, 탐지 능력도 쓸 수 없었다.

구세록의 계약자로서 활용하던 모든 권능을 박탈당한 것이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구세록은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비밀로 감춘 채로 구세록의 계약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 제공된 권능을 뜻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너희들은 우리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존재다. 주제 모르고 기어오르지 마라.’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차준혁이 물었다.

“놈들이 바라는 건 뭘까?”

“통제겠지.”

“그 뜻을 전달하지 않고 침묵하는 이유는?”

구세록의 의지는 차준혁과 브리짓으로부터 힘을 거두어갔을 뿐, 직접적인 메시지는 전혀 전해오지 않았다.

“뻔한 수작이지. 힘을 잃고 초조해하게 만든 다음, 궁지에 몰렸을 때 구원의 손길이라도 내밀 생각 아니었을까?”

“길들이기라는 거군.”

“우리 모두를 길들이고 싶었겠지. 그럴 수 있다고 믿었을 거고.”

용우가 조소했다.

루가루의 태도를 보면 구세록의 의지가 어떤 놈인지도 짐작이 간다.

놈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권한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리라. 온라인 게임의 운영진이 유저에게 하듯, 자신들이 성좌의 무기를 가진 자들을 뜻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게 틀림없었다.

“확신하지 않았다면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

자신들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들은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루가루와 다를 게 없지. 수준이 똑같은 것들이야.”

용우와 이비연은 여전히 성좌의 무기를 멀쩡하게 쓸 수 있었다.

용우로부터 힘을 받는 세 사람, 리사와 유현애와 이마나 역시.

구세록의 시스템 권한을 쥔 존재들조차 성좌의 무기의 소유자일 뿐 계약자가 아닌 용우와 이비연을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차준혁이 말했다.

“그 사실이 증명된 시점에서 내 답도 정해져 있었다.”

용우는 차준혁과 브리짓에게 성좌의 무기를 자신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다.

차준혁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광휘의 검을 의미 있게 쓰는 길이었으니까.

“캡틴, 넌 왜 우리에게 굳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준 거지?”

“일단 난 네가 그렇게까지 광휘의 검에 집착이 없을 줄 몰랐어.”

차준혁 입장에서 보면 광휘의 검은 다니엘 윤으로부터 물려받은 결의의 상징 같은 물건일 것이다. 당연히 크나큰 애착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차준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애착이야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선생님이 내게 맡기신 뜻이지 무기가 아니니까.”

“그렇군. 어차피 구세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기도 해서, 내 나름대로는 배려한답시고 일주일을 기다린 거였는데…….”

“어설픈 짓이었다. 배려도 평소에 하던 사람이 해야지.”

“…….”

용우가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용우는 지구로 돌아온 지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도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었다.

차준혁이 물었다.

“만약 내가 광휘의 검을 안 넘기겠다고 했다면 어쩔 셈이었지? 브리짓과 휴고는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

브리짓과 휴고는 차준혁과는 입장이 달랐다. 그들은 미국을 수호한다는 의식이 확고했으니까.

그들 입장에서 용우와 이비연에게 모든 성좌의 무기를 몰아주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미국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할 최후의 수단을 넘겨버리는 셈이니까.

그리고 용우와 이비연의 정신 상태를 절대적으로 신뢰해도 되느냐의 문제도 있었다. 두 사람이 품은 불안정함이 폭주했을 때, 미력하나마 그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이 있느냐 없느냐는 천지 차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띠리리리리.

용우가 대답하기 전에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한 용우는, 휴대폰을 회의실의 시스템과 연결했다. 그러자 벽면의 대형 스크린이 영상통화를 위한 출력 장치가 되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제로.]

스크린에 출력된 영상에서는 브리짓 카르타와 휴고 스미스가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에 비춘 차준혁을 본 브리짓이 물었다.

[차준혁, 당신은 결정을 내린 겁니까?]

“난 넘기기로 했다. 너희는 어쩔 생각이지?”

브리짓은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용우에게 물었다.

[제로, 우리가 뇌전의 사슬을 넘기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럼 그 뜻을 존중해야지.”

[…….]

“왜?”

[아니, 어떻게든 넘기게 만들 줄 알았는데…….]

브리짓이 아니라 휴고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야, 넌 날 뭐로 보는 거야? 내가 무슨 양아치냐?”

용우가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곧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의 행동 방식이 과격함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적이라면 그랬겠지. 아니, 딱히 적은 아니더라도 애매한 관계 정도만 됐어도 그랬을지도 모르고.”

용우는 프리앙카나 사다모토 아키라가 딱히 그와 적대관계가 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에게서 성좌의 무기를 강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브리짓과 휴고는 지금까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온 동료였다. 용우는 고작 효율성을 좀 더 높이겠다는 이유로 그들과의 관계를 시궁창에 처박을 마음이 없었다.

“만약 그럴 마음을 먹었으면 일주일을 기다리겠다고 할 이유가 없잖아. 괜히 일만 복잡하게 만드는 셈이고.”

[그렇군요.]

“그럼 뇌전의 사슬은 그대로 갖고 있겠다는 것으로 알지.”

[아뇨. 넘겨드리겠습니다.]

“음?”

용우가 놀랐다.

“진심이야?”

[예.]

“왜지?”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휴고에게 넘겨서, 휴고가 계약자가 아닌 상태를 유지하면 괜찮지 않을까도 생각해봤습니다만…….]

하지만 휴고는 용우에게서 힘을 받는 리사, 유현애, 이미나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는 오래전부터 구세록의 계약자인 브리짓에게 힘을 받아서 셀레스티얼로 변신해왔다. 그 영향이 없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완전히 그들의 통제 밖에 벗어난 당신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게 승산이 더 높을 것 같았고요.]

“믿어줘서 고맙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많이 고민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당신과 손잡은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망설일 필요 없다고.]

“그거 욕이지?”

[글쎄요. 어쨌든 우리가 무능해진 관계로 이쪽에 와서 받아가 주십시오.]

“그러지.”

통화를 끊은 용우는 이비연과 함께 미국으로 텔레포트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좌의 무기 일곱 개가 서용우와 이비연, 두 사람의 0세대 각성자에게 모였다.

Chapter52 구세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