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65화 (16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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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비연은 리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몽상가의 특성에 대해서 파악하는 연구를 함께 해서이기도 했고, 또 종종 리사의 개인적인 활동을 도와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 으윽…….”

험악한 인상의 백인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시체가 널려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와 천박한 농담을 나누던 동료들이었다.

벌레처럼 땅을 기던 그의 몸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남자가 흠칫 몸을 떨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놈이 마지막이야.”

검은 단발머리의 동양인 소녀가 백인 남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시체가 널려 있는 이곳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들이라도 나온 것 같은 차림새였다. 그런 그녀를 보는 백인 남자의 눈동자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히이익……!”

그 옆에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검은 쇼트커트를 해서 언뜻 보면 소년처럼 보이기도 하는, 중성적인 외모의 소녀였다.

“그래? 생각보다 수가 적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는 무기, 얼음처럼 투명한 질감의 창을 들어 올렸다.

콰직!

그리고 그 창으로 가차 없이 백인 남자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것으로 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마약상 노릇을 하던 범죄조직의 조직원은 전부 죽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어?”

그렇게 물은 것은 단발머리의 소녀, 이비연이었다.

쇼트커트의 소녀, 리사가 대답했다.

“다섯.”

리사는 허우룽카이를 죽여서 복수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복수가 완결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여전히 팬텀과 협력했던 존재들이 남아 있었다. 각국의 정부 인사, 기업체, 아니마를 받아서 유통하던 범죄조직 등등.

리사는 팬텀의 통합 관리 데이터에 기록된 모든 존재를 찾아서 파멸시키고 있었다.

그 행위가 세상에 던진 충격은 컸다. 허우룽카이가 지배하던 대만은 물론이고 미켈레와 엔조 모로의 영향 하에 있던 유럽의 정치인이나 경제인들도 리사에게 살해당했으니까.

하지만 리사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이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이나 난처해 하는 사람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리사는 스승인 서용우의 가르침에 동의했다.

복수자는 복수 대상의 입장을 배려해줘야 할 이유가 없다.

대안을 준비할 의무도 없다.

힘없는 약자에게 온갖 가혹한 짓을 저지르고 그것으로 이득을 취한 놈들에게 복수를 하는데 왜 그들의 입장이나, 그들이 쥐고 있는 무언가를 고려해줘야 한단 말인가?

“이제 거의 다 끝났어.”

허우룽카이를 죽인 시점에서 리사의 복수심은 해소되었다. 지금 하는 일들은 딱히 그녀에게 성취감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아니마를 제조하던 곳이나 인체실험을 하던 시설은 모두 파괴했기에 더 이상 구출해야 할 이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리사는 리스트에 존재하는 모든 이름을 파멸시키고자 했다.

그것은 일종의 의무감이었다. 자신과 함께 지옥 같은 고통을 겪고 죽어간 이들에 대한.

이비연이 물었다.

“오늘이라도 끝낼 수 있겠네. 말 나온 김에 아예 오늘 끝낼래?”

“언니는 왜 날 도와주는 거야?”

허우룽카이가 죽은 시점에서 용우는 리사의 복수를 돕는 일을 중단했다. 나머지는 리사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지구상에서 리사가 뭔가를 하고자 하면 막을 수 있는 것은 팀 섀도우리스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비연은 굳이 리사를 도와주겠다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리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전에 한 번 대답했잖아?”

“그거 말고, 진짜 이유가 있잖아.”

“거짓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때 이비연은 리사와 친해지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알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진짜 이유라…….”

이비연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겠지.”

“뭘?”

“오빠가 그러는데, 몇몇 나라들은 게이트 재해가 사라진 후를 대비하고 있다고 해.”

이비연의 동문서답에 리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비연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게이트 재해가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질 테니까. 현기증 날 정도로 많은 문제가 몰려오겠지.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영토 문제 아닐까? 지금 재해 지역이 된, 자원이 묻혀있는 곳이라거나…….”

“땡. 정답은 에너지 문제래.”

인류에게 있어서 게이트 재해는 끔찍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 수급처이기도 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재해 지역이 확장되면서 인류는 과거에 의존했던 화석 자원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마력석을 이용한 상온 핵융합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인류 문명은 파멸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 재해가 사라지면 인류는 마력석이라는 기적의 에너지 자원을 잃게 된다.

전 세계 인구는 줄어들었고, 인류의 영토는 좁아졌다. 그럼에도 방위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로 인류의 전력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과연 이제 와서 다시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전으로 회귀할 수 있을까?

시스템을 구식으로 교체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고, 그 와중에 전쟁을 포함한 참혹한 트러블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해결책은 마력석이 없어도 상온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내는 것뿐.”

그 연구 자체는 예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전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대. 우리 때문이겠지.”

특히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다.

서용우의 본거지인 한국이 이 문제에 적극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은 애비게일 카르타가 움직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이 둘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가는 중이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냐 하면… 나는 때때로 궁금해지거든.”

“뭐가?”

“이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과연 나는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

“세상 모든 것들이 나만 버려두고 다 어딘가 먼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아. 어딜 가도 낯선 여행지에 혼자 내던져진 것처럼 불안한 기분이야. 가끔 그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하지.”

이비연은 세상이 무서웠다. 예전에는 그토록 거대해 보였던 세상이, 이제는 자기가 잠깐 이성을 잃고 날뛰면 부서져 버리는 연약한 존재로 격하되었다는 사실이.

“복수는 좋아. 날 지옥으로 처넣었던 원흉들을 찾아서 하나씩 박살 낼 때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인생의 의미가 뭔지 알 것 같고 행복감이 가슴 속에서 솟아나. 하지만 그건 마치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같은 거야.”

밤을 밝히며 타오르는 불꽃놀이의 불꽃처럼, 그 순간에만 의미가 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비연은 다시금 공허함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토록 돌아오길 갈망했던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비연은 이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알던 시대는 사라졌다. 이 시대는 온통 낯설기만 해서,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달라진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그리워하던 사람은 모두 죽었다.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남지 않았다.

정말로 남아있길 바랐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어떻게 되건 상관없었던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때때로 이비연은 그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운명의 부조리함에 분노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것이 이비연의 두려움이었다.

세상은 사랑스럽지 않았고, 그녀의 변덕만으로도 부서질 정도로 연약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세상을 향한 파괴적 충동이 존재하고 있었다.

“난 알고 싶어. 복수가 나를 치유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더 이상 싸워야 할 적이 남지 않았을 때도 내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언니한테는 선생님이 있잖아.”

가만히 듣고 있던 리사의 한마디에 이비연이 움찔했다.

“두 사람은 참 닮았어. 날 보면서 하는 소리까지 똑같은걸.”

그렇게 말하는 리사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용우가 자신을 거두고, 복수를 도와주면서 품었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용우가 그 마음을 말한 적은 없지만, 그가 보이는 태도, 자신을 보는 눈, 가끔 흘리는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선생님도, 언니도… 서로가 있는 한은 괜찮을 거야.”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오로지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과거를 가졌고, 두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상처를 공유했다.

리사는 그 닮아있음을 느낄 때마다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오싹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묻는 이비연을 리사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처참한 파괴와 살육의 현장 속에서, 그녀는 기괴하게도 그 나이 또래의 소녀처럼 보였다.

그 사실이 우스워서, 리사는 웃고 말았다.

“응. 내가 장담할게. 내가 이래 봬도 선생님도, 언니도 롤모델로 봤던 사람이잖아.”

이비연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미소 지었다.

“고마워.”

* * *

4월 말.

용우는 대만의 대도시, 타이중에 와 있었다.

물론 관광차 온 것은 아니다. 대만 정부에서 50미터급 게이트 공략을 팀 섀도우리스에게 의뢰했기에 온 것이다.

대만의 헌터 전력은 작년 말에 터진 타이베이 게이트 브레이크 때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45미터급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투입된 헌터 전력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물론 대만은 허우룽카이의 비호하에 세계 7대 헌터 강국으로 발전한 국가였고 아직도 여력이 있었다. 용우와 스펠 스톤을 거래해서 자국의 전력을 강화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은 이 시점에서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싶어 하지 않았다.

또다시 최정예 헌터 전력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팀 섀도우리스를 불러들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은 용우, 이비연, 유현애, 이미나 네 명 뿐이다.

하지만 전원이 참가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대규모 작전이 되어야 할 50미터급 게이트 공략 작전이라도 팀 섀도우리스 중 네 명만 나서면 충분하다. 그 사실을 대만 측에서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우는 게이트 진입 전에 김은혜와 통화하고 있었다.

“거기서 더 올렸다고?”

[네. 선금으로 지급할 계약금 500억 달러, 성공 보수 500억 달러를 제시하고 있어요.]

“총 1,000억 달러 베팅이라니, 이건 확실히 미친 금액이군.”

[영국인들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난 그 집착보다도 재력이 더 놀라운데.”

용우가 혀를 내둘렀다.

김은혜가 이야기하는 것은 영국에 자리 잡은 9등급 몬스터, 폭풍용 공략 의뢰였다.

인류가 공략불가라는 결론을 내린 폭풍용의 존재로 인해, 영국은 멸망한지 14년이 지난 지금도 재해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서 살아남았다. 어떻게 해서든 영국을 되찾고 싶어 하는 그들은 어떻게든 팀 섀도우리스를 움직이고자 했다.

“내 대답은… 알지?”

[그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왜죠? 마력석 때문만은 아니실 듯한데…….]

용우는 탐욕스럽게 마력석을 모으고 있었다. 아무리 대량으로 모아도 중요한 전투를 한번 치를 때마다 펑펑 날아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돈은 이미 넘치도록 많으니, 아무리 큰 금액이라도 돈만을 대가로 제시하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의뢰를 받아들인다면 마력석 수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9등급 몬스터 폭풍용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영국 전역을 점령한 몬스터들도 대량으로 처치하게 될 테니까.

[9등급 몬스터 사냥은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물론 가능하지. 이유는 두 가지야.”

당장이라도 영국 한복판으로 텔레포트한 뒤 영국 전역의 몬스터들을 싹 쓸어버리고, 폭풍용도 손쉽게 요리할 수 있다.

“일단 영국을 수복하는 건 급한 일이 아니지.”

영국은 이미 멸망한지 오래된 땅이다.

그리고 폭풍용 역시 영역의식이 강하기에 영국을 나와서 유럽 본토를 공격하진 않는다. 폭풍용을 잡는 것은 긴급성이 없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폭풍용을 처치하면, 그 후폭풍이 장난 아니겠지.”

팀 섀도우리스는 규격 외의 초인집단이다.

그들이라면 9등급 몬스터를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다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해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인류가 대적불가로 여겼던 9등급 몬스터를 처치한다.

그 사실이 세계에 던지는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우린 사실 힘든 고비를 넘는 중이다.”

[하긴 끝이 멀지 않았다고 했었죠. 9등급 몬스터 사냥을 힘든 척 하면서 할 때는 아니겠네요.]

김은혜는 팀 섀도우리스의 이미지 관리도 책임지고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가 9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더라도, 그들에게 9등급 몬스터가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그림이 연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인류의 염원을 받은 그들이 힘겨운 전투 끝에 절망적인 재해를 물리치는 게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그리고 용우가 그녀에게 말해준 시나리오대로라면 지금은 그런 이미지 마케팅에 심력을 소모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의뢰를 거절하는 건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진짜 국가 경제급 의뢰인데…….]

“확실히 1,000억 달러쯤 되니 지금의 나한테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군. 하지만 돈은 이미 넘칠 정도로 벌고 있으니까.”

용우는 실소하며 통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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