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59화 (15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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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광활한 재해지역들을 끌어안고 있다.

도쿄는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지역이었다. 한때 일본의 심장부였던 대도시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멸망했고, 지금까지도 재해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일본의 최정예 헌터들조차도 외곽 지역에 침투해서 몬스터 개체수를 줄일 뿐, 깊숙이 들어갈 엄두를 못내는 곳이다.

그런데 그 한복판, 한때 패션 스트리트라 불리며 화려함을 뽐냈던 하라주쿠의 폐허를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흑발에 캐주얼한 차림새를 한 남자, 서용우였다.

김은혜를 통해서 날아온 정체불명의 메시지.

그것이 자신을 향한 초대장이라고 생각했기에 지정한 날짜에 도쿄로 온 것이다.

<근데 도쿄 진짜 넓잖아? 여기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려고?>

텔레파시로 바로 옆에서 재잘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을 대비해서 철저하게 은신한 채로 따라오고 있는 이비연이었다.

용우가 말했다.

“부른 놈이 찾아오겠지.”

<오빤 의외로 아무 생각 없더라?>

“아니거든?”

<차라리 몬스터라도 잡아서 이목을 끄는 게 낫지 않아?>

용우는 은신은 하지 않았지만, 환영을 덧씌워서 얼굴을 바꾸고 몬스터와의 교전은 피하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폐허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건물들이 많은 곳에서는 어렵지 않았다.

“짚이는 게 있어.”

<뭔데?>

“부른 놈이 누군지 알 것 같거든.”

<근거 있는 거야?>

“감이야.”

<또 감이라니, 그 감 너무 믿는 거 아냐? 예지 능력자도 아니면서.>

이비연이 황당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용우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너 데려왔잖아.”

<그래도 그렇지.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굳이 이래야겠어?>

“함정이면 더 좋지. 의기양양해하는 놈들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겨 줄 수 있을 테니까.”

<못 말려.>

이비연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투덜거림일 뿐, 진짜로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음?”

문득 용우가 고개를 들었다.

소형 드론 하나가 빌딩 사이를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쿄를 돌아다니는 드론이라면 일본이 재해지역 모니터링을 위해서 운용하는 드론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용우는 굳이 몸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얼굴도 환영으로 바꿨고, 마력 패턴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소형 드론은 용우 앞에 착륙하더니 기동을 멈췄다.

“그렇군. 이런 방법을 쓰는 건가.”

용우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짓는데, 그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텔레포트였다.

용우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남자를 관찰했다.

남자의 몸은 약간 말랐고 얼굴은 평범했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면도를 하지 않아서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다.

남자가 용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로인가?”

“사다모토 아키라겠지?”

드론으로 위치를 특정한 뒤 텔레포트로 나타난 사람이 평범한 인간일 리 없다. 팀 섀도우리스의 일원들을 제외하면 지구상에 그런 일이 가능한 인물은 정말 몇 없다.

“그래.”

사다모토 아키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로 떠들고 있었지만, 텔레파시를 쓰고 있었기에 아무 상관 없이 대화가 통했다.

용우가 물었다.

“일본 정부를 움직인 건가?”

“아는 사람의 힘을 좀 빌렸다.”

김은혜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연락을 한 것도, 위성을 비롯한 관측 장비와 드론을 이용해서 도쿄에 온 용우의 위치를 특정한 것도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다모토 아키라의 정체를 아는 정부 인사의 힘을 빌렸다. 평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일본이라는 국가를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용우가 재미있다는 듯 사다모토 아키라를 보며 물었다.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그게 뭐지?”

“말로 할 수 없는 것.”

사다모토 아키라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용우를 보며 말했다.

“네 마음.”

“…….”

용우는 이놈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싶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사다모토 아키라는 그런 반응에 개의치 않고 물었다.

“혹시 외부에서 보고 들을 수 없는, 보안이 완벽한 곳이 있나?”

“있기야 하지.”

<구세록의 힘으로도 볼 수 없어야 한다.>

사다모토 아키라는 굳이 텔레파시로만 말했다.

용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에 담긴 뜻이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있어.”

“그곳으로 갔으면 좋겠군.”

“괜찮겠나?”

용우는 죽 사다모토 아키라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서 새벽의 해머를 넘겨받기 위해서였다.

사다모토 아키라도 용우가 자신에게 호의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도 이렇게 호랑이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짓을 한단 말인가?

사다모토 아키라가 말했다.

“내가 지금 도망친다 한들 의미가 있나?”

“…….”

“난 이미 너희들의 능력을 안다. 지금 내가 네 앞에 나타난 시점에서 내 목숨이 네게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

용우는 사다모토 아키라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여기에 나온 것이다. 용우가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면 목숨이 날아갈 것을 각오하고서.

‘아니, 각오가 아닐지도.’

용우는 사다모토 아키라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로 돌아온 후에 다른 누군가를 보면서 받았던 적이 있는 그런 느낌을.

“가지.”

용우는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다모토 아키라가 그 손을 붙잡았고…….

잠시 후, 그들은 남국의 해변에 서 있었다.

사다모토 아키라가 말했다.

“소멸한 게이트 내부 필드에 오는 것만으로는 구세록의 관측을 피할 수 없다. 금방 추적당할 거야.”

“따로 조치를 취해둔 곳이야.”

“그렇군.”

사다모토 아키라는 더 따지고 들지 않고 수긍했다. 용우의 능력이 자신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왜 이런 곳을 원한 거지?”

“용건부터 이야기해도 되겠나?”

“해봐.”

용우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니,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질답을 나누겠다는 의도라면 또 모르겠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니 선문답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텔레파시의 심도를 높여서 네 내면을 보고 싶다.”

순간, 찌를 듯한 살기가 사다모토 아키라를 덮쳤다.

용우가 흉흉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물론이다.”

“내가 그걸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냐?”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꼭 대단한 비밀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알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용우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역린(逆鱗)이나 다름없었다. 마인드 리딩으로 자신의 표층의식을 읽어내려는 시도조차도 충분히 상대를 죽일 만한 이유라고 생각했으니까.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너도 내 내면을 보게 되겠지만 그게 대가가 되진 않을 테니까.”

“그걸 잘 알면서 왜?”

“네가 받아들일 만한 제안을 준비할 수가 없었으니까. 시간이 더 주어졌어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없어. 그래서 무작정 온 거다.”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절한 김에 여기서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새벽의 해머를 내놓게 만들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날 죽인다 해도 새벽의 해머는 가질 수 없다.”

“과연 끝까지 그 생각이 바뀌지 않을지 볼까?”

용우가 한 걸음 다가섰다. 마력이 개방되면서 흉포한 괴물 같은 위압감이 사다모토 아키라를 덮쳤다.

그러나 사다모토 아키라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미 계승 후보는 정해져 있다. 한번 설정한 계승 후보는 바꿀 수 없어.”

그 말에 용우가 멈칫했다.

“네가 내게서 얻을 수 있는 건 2순위 계승 후보가 되는 것 정도다. 그리고 그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그리고 1순위 계승 후보가 누군지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겠지.”

“그것도 알려주지.”

“…….”

용우는 도무지 사다모토 아키라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다모토 아키라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는 익숙한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애비게일 카르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것과 똑같았다. 사다모토 아키라 역시 중증의 PTSD로 인해서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그럼에도 그가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오늘이 되기 전까지는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용우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단 말인가?

“이유가 뭐지?”

“나는 이제 내가 퇴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희들이, 아니 정확히는 제로 네가 나타났기 때문이지.”

0세대 각성자인 서용우의 등장이 지금까지 인류 문명을 지켜온 구세록의 계약자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니엘 윤과 애비게일 카르타는 네게 미래를 맡겼다.”

사다모토 아키라는 프리앙카와 허우룽카이, 엔조 모로와 미켈레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용우의 아군이 되기를 선택한 두 명의 이름만을 말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그 둘이 이 세계의 미래를 맡기겠다고 생각한 네가 품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네가 그걸 알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다. 죽기 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생겼을 뿐.”

용우는 사다모토 아키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찌를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었지만 사다모토 아키라는 공허한 눈으로 용우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한참 동안 침묵한 용우가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키겠지?”

“선불을 원한다면, 그러도록 하지.”

“아니, 그건 됐어.”

그렇게 말하는 용우에게 당황한 이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제정신이야?>

그녀가 아는 용우라면 절대로 할 리가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제정신이지.>

<대체 왜?>

혼란스러워하는 이비연의 물음에, 용우는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말하는 것처럼 입을 열어서 대답했다.

“궁금해졌어. 네가 그렇게까지 해서 알고 싶어 하는 게 대체 뭔지.”

지금까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사다모토 아키라는 다니엘 윤이나 애비게일 카르타처럼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망가진 지 오래되었으면서도 기계처럼 자신이 정한 원칙대로 게이트 재해와 맞서고 있는 자였다.

마음이 부서진 자에게 갈망을 부여한 의문, 그것도 용우 자신을 향한 호기심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럼 시작해볼까?”

용우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 * *

라지알은 마음이 파괴당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분이 어땠는지는 떠올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때의 마음은 깨끗하게 표백되었으니까.

오직 감정이 거세된 기억만이 남아서 타락체 라지알의 자아를 이루는 토양이 되었다. 그리고 타락체로서의 목적의식을 중심으로 구축된 새로운 자아는 생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누군가였다.

“…역시 모르겠군.”

문득 그가 중얼거렸다.

라지알의 본거지에는 오래전, 그가 타락체가 아니었던 시절의 소장품들이 많았다.

그가 거닐고 있는 궁전도, 갤러리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정원 곳곳에 있는 석상 같은 것들도 전부 그 시절의 소장품들이다.

타락체가 되기 전, 제1세계의 지배계층인 초월권족 라지알은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뛰어난 연주가의 소문을 들으면 꼭 자신의 궁전으로 초대해서 연주를 들었고 이름이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하길 즐겼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과거의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디가 아름답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는 갤러리에 걸린 그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억 속의 자신은 이 소장품들을 보며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아무리 봐도 그 평가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소장품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기계적인 습관이다. 과거의 마음이 전부 표백되었는데도 그 집착과 습관이 남아 있었다.

“왜였을까?”

라지알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비연.

벙어리 공주라 불리던, 기묘한 타락체.

오직 그녀만이 라지알에게 집착과 소유욕을 일깨워준 존재였다.

그리고 라지알은 그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이비연이 추측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였다.

“라지알은, 왜 그랬을까?”

라지알이 스스로를 3인칭으로 부른 것은 타락체가 되기 전, 과거의 자신을 지금의 자신과 구분 지어 지칭하기 위함이었다.

라지알의 기억 속에는 한 초월권족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의 외모는 이비연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종족의 차이 때문에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묘하게 서로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이었다.

라지알은 이비연을 보는 순간 그녀를 떠올렸다. 동시에 묘한 불편함을 느꼈고, 그것이 이비연을 죽을 곳으로 보낸 이유였다.

하지만 이비연은 당연히 죽을 거라고 생각한 임무에서 살아 돌아왔다. 라지알은 그녀가 불편해서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반감과 호기심을 느꼈다.

자신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왜 후회했을까?”

이비연을 보고 떠올린 소녀는, 과거의 라지알의 손에 죽은 소녀였다.

마음이 거세된 기억은 책에 기록된 타인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그저 정보량이 많을 뿐이다.

그래서 라지알은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가 느낀 냄새, 그의 손에 닿은 감촉, 그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까지 아는데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라지알은 그 소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연인으로서의 사랑은 아니었다. 그 소녀는 라지알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하지만 결국 과거의 라지알은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여동생을 죽였다.

그래야 할 이유는 있었다.

라지알은 제1세계의 지배계층인 초월권족, 그중에서도 왕위를 두고 다투는 상위 계승자 중에 한 명이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초월권족인 왕이 비천한 신분의 여자를 품어 태어난 사생아였다. 라지알은 고대의 의식에 그녀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스스로의 권능을 보다 강화할 수 있었다.

왕위에 대한 야망을 불사르던 과거의 라지알은 결국 아끼고 사랑하던 여동생을 죽이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타락체가 되는 순간까지, 그의 마음은 한 가지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 감정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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