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53화 (15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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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쉐라톤 라구나의 폐허, 일루전 큐브로 감춰졌던 공간에는 백두산에 있던 것과 똑같은 풍경이 있었다.

대형 몬스터들의 시체를 재료 삼아서 만든 그로테스크한 건축물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일곱 개의 빛 덩어리가 떠 있다.

“이건 고성능 통신 중계기 같은 거지.”

용우는 백두산에서 확보한 샘플을 권희수 박사에게 맡겼다. 권희수 박사는 어렵지 않게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파악해 냈다.

이것은 군단이 지구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 중계기다. 이것을 세계 곳곳에 배치하는 것으로 군단의 전략적인 약점, 정보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게이트 발생 지점을 정할 수 있는 좌표 지정기이기도 할 것이고.”

게이트를 발생시킬 수 있는 기능은 없다. 그러나 지구에 발생할 게이트를 원하는 지점에 발생하게 만들 수는 있다.

거기까지 알게 되자 소름이 끼쳤다.

이놈들이 이런 거점을 여럿 만들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군단은 정보를 수집해서 인류 사회에 대해서 이해하고, 무엇을 타격해야 더 치명적일지를 알게 될 것이다.

충분한 수의 거점을 만들고, 타락체들과 지휘관 개체들을 배치한 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벌인다면?

그럼 인류를 끝장낼 수도 있다.

팀 섀도우리스가 막아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인류가 구축한 방위 시스템의 핵심들을 타격해서 붕괴시킨다면, 그때부터 인류는 게이트 재해를 막지 못하게 된다.

‘역시 시간이 없었다.’

이쪽이 죽기 전에 저쪽을 죽여야 한다.

용우는 새삼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일단은…….”

용우는 완벽하게 제압당한 지휘관 개체들을 보며 말했다.

“고문부터 좀 할까?”

“…….”

순간 사방에서 못 볼 걸 보는 시선이 쏟아졌다.

유현애가 투덜거렸다.

“아저씨, 지금 꼭 그런 농담을 해야겠어요?”

“농담 아닌데.”

“그럼 더 나쁘잖아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려는 거야.”

그 말에 동료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용우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왜? 이런 잔챙이들 고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휴고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용우가 대답했다.

“지난번에 백두산에서 잡은 놈들을 고문해 봤는데…….”

“아, 그래. 이미 해봤구나. 그래서 뭘 얻었는데?”

“이놈들, 무슨 절대적인 충성심의 화신 같은 건 아니더라고.”

“음?”

“군단의 숙원을 위해서라면 내 존재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 나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더라도 군단의 적인 네가 원하는 정보는 한 조각도 얻을 수 없으리라! 뭐, 그런 불꽃같은 의지의 소유자들이 아니라고.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를 배제한 게임 감각으로 침략을 하고 있어서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지.”

군단의 언데드들의 정신세계는 지구 인류와 비교할 때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용우가 처음 느낀 것처럼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의 인간 정도의 차이만 있다.

물론 언데드의 특성상 그보다 더 이질적이긴 하지만 그건 디테일의 문제다. 행동 원리 자체는 쉽게 이해 가능 한 수준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가르쳐 주는 거지, 고통과 공포를.”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순한 양이 될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있는 전원이 그런 정신의 소유자일 수가 있을까?

“그래야 일을 시킬 거 아냐?”

“그러니까… 캡틴, 네가 수립한 작전은 애당초 이놈들 고문해서 말 듣게 만드는 게 전제 조건이었던 거야?”

“그렇지. 안 그럼 무슨 수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타이밍에 일이 터지게 만들 건데?”

“음…….”

휴고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적을 쳐 죽이라고 하면 한 점의 주저도 없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무력화한 후에 고문하는 건 상당한 거부감이 일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고, 용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다들 물러나 있어. 준비가 끝나면 다시 부를 테니까.”

“아니, 같이 지켜보겠어.”

“네가 그러면 물러나려고 한 사람들도 물러나기 힘들어질 텐데?”

그 말에 휴고가 움찔하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용우가 피식 웃었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젠장…….”

“됐으니까 물러나라, 응?”

용우는 굳이 그들에게 고문이라는 불쾌한 행위를 감당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건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사람이 하면 된다.

결국 휴고는 짜증을 내며 몸을 날렸다. 다른 팀원들도 그 뒤를 따라서 물러나자 용우가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뭘 바라는지부터 알려주지.”

쿠웅!

동시에 용우의 아공간이 열리며 거대하고 새카만 도끼가 떨어졌다.

<열쇠?>

일곱 아티팩트 중에 하나, 굉음의 도끼였다.

놀라는 지휘관 개체들에게 용우가 말했다.

“너희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지. 그리고 이것만이 아니야.”

이번에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헤드가 인간의 머리통보다도 두 배는 큰 전투 망치가 떨어졌다.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였다.

“이걸 줄 테니까 당장 군주들을 강림시켜. 어때, 멋진 제안이지?”

* * *

타락체는 지휘관 개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종말의 군단 입장에서 지휘관 개체는 대단히 유용한 전투 자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타락체보다 더.

그것은 그들에게만 가능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지휘관 개체는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 고등급 몬스터는 무리지만 지휘관 개체 하나만으로도 수백의 몬스터를 무리 지어서 특정 지점을 타격하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지휘관 개체는 아티팩트를 열쇠로 삼아서 군주를 강림시킬 수 있었다.

“망설일 필요가 있나? 굉음의 군주도, 새벽의 군주도 건재하지.”

용우는 그 둘을 동시에 강림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미친 짓이다.

아티팩트를 열쇠로 써서 강림한 군주 개체는 9등급 몬스터를 초월하는 재앙이다. 그런 존재 둘을 한꺼번에 감당해 내겠단 말인가?

“아, 물론 의심스럽겠지. 이놈이 대체 무슨 꿍꿍이속을 갖고 이러는 걸까? 정말 저 요구를 들어줘도 되는 걸까?”

용우는 빙긋 웃으며 지휘관 개체, 오우거 로드에게 다가가서 그 머리를 잡는다.

<그아아아아악!>

순간 오우거 로드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신경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격통이 덮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그냥 내가 원하는 걸 해주면 돼.”

종말의 군단에 소속된 존재로서의 의무감, 군주를 향한 충성심보다 당장 자신에게 덮쳐 온 지옥 같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하고 싶어진 놈은 얼른 말해. 알겠지?”

용우는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

* * *

[시작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던 팀 섀도우리스의 일원들에게 통신으로 용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구구구구……!

괌의 하늘이 격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때랑 똑같군.’

차준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70미터급 게이트 내부 필드에서 빙설의 군주 하스라가 강림할 때와 똑같다.

하늘이 뒤흔들리며 한 지점에 시커먼 구멍이 발생한다.

“하…….”

그것을 보는 차준혁은 어이없어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다니엘 윤이 죽었던 그날의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기지 마라.”

차준혁은 이를 악물었다. 가슴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일어나 공포를 떨쳐내었다.

쿠구구구구!

괌 쉐라톤 라구나의 폐허에서 거대한 마력이 꿈틀거린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뻗어나가는 그 마력이 비현실적인 현상을 일으켰다. 분명 중력은 그대로인데 폐허의 잔재들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하스라 때보다 강하다. 훨씬 더…….’

용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에 강림한 두 군주의 마력은 70미터급 게이트 안에 강림했던 하스라를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군주끼리 딱히 서열이 있지는 않았다고 하니 두 군주가 하스라보다 더 강한 존재라서 그런 것은 아니리라.

‘군단의 영적 자원을 투자하면 출력을 더 올릴 수 있었던 건가.’

예전에 광휘의 군주 데바나가 군주 개체로 강림했을 때 그렇게 강화된 모습을 보인 바 있었다. 그런데 아티팩트를 열쇠로 삼아 강림한 경우에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는 모양이다.

‘이건 내 예상이 좀 물렀군.’

아무래도 적을 너무 얕본 모양이다. 용우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태도를 반성했다.

그때 강림을 완료한 군주들이 입을 열었다.

<설령 네게 우리가 모르는 의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관측한 그 어떤 괴물보다도 거대한 마력이다.

세계 각지에 자리 잡은 9등급 몬스터들을 훨씬 능가하는 힘을 가진 존재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괌에 등장했다.

<네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군주 사냥꾼.>

굉음의 군주 소우바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굉음의 도끼를 코어로 삼은 그의 모습은 허우룽카이를 닮았다. 서양의 드래곤을 형상화한 것 같은 새카만 갑옷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는 무기를 들지 않았고, 키가 2미터를 넘는 거구라는 것 정도였다.

<이미 네 수법은 파악되었다.>

새벽의 해머를 코어로 삼은 새벽의 군주 두라크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그는 마치 정교하게 세공된 유리 공예품처럼 보인다. 그 안쪽으로부터 물결치는 빛이 흘러나와서 그 실루엣을 밝히고 있었다.

<강림한 우리를 약화시켜서 제압하고, 매개체로 삼아서 우리의 본체에 도달해 왔겠지. 그것도 이제는 안 통한다.>

하스라에 이어 볼더까지 당한 지금, 군주들은 자존심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들은 용우가 자신의 본체 앞에 나타나는 순간 대등한 조력자를 부를 것이다. 그러기 위한 연계 시스템을 갖춰두었다.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도 알겠구나.>

“그래? 어디 맞혀보시지.”

<네놈에게 당한 우리가 강림을 피해서 안달이 난 것 아니냐? 이만한 미끼가 아니면 우리는 결코 강림하지 않았을 테니까.>

새벽의 두라크가 웃었다.

<하지만 어리석구나. 하나도 아니고 둘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군주 살해자, 여기가 네 무덤이 될 것이다.>

“뭘 근거로 확신하지? 그렇게 강림한 너희도 본체만은 못한데?”

용우는 그 점이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굉음의 소우바와 새벽의 두라크, 그들은 분명 9등급 몬스터조차 훨씬 능가하는 마력을 지녔다. 게다가 무수한 스펠을 보유했으니 실질적인 전투 능력을 비교하면 마력의 차이 이상으로 크나큰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본체에 비해 현격히 약화된 상태다.

그들의 세계로 침입해서 군주의 본체를 둘이나 사냥한 용우를 앞에 두고 이만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허세가 심하구나, 군주 사냥꾼.>

새벽의 두라크가 웃었다.

<다른 놈은 몰라도 내 눈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네놈은 나약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제약을 받듯 네놈도 우리 세계에서만 진정한 힘을 펼칠 수 있는 것이겠지.>

“아하, 그런 건가.”

아무래도 새벽의 두라크는 특수한 감지 능력을 가진 모양이다. 용우의 본신 마력을 읽어냈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잔챙이들뿐.>

그사이 팀 섀도우리스가 집결했다.

차준혁, 휴고, 브리짓, 리사, 이미나 모두 변신한 채로 굉음의 소우바와 새벽의 두라크를 포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군주는 그들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잘됐군. 이 자리에서 모든 열쇠를 손에 넣어주지. 우리 다섯 모두가 강림해서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어주겠다.>

팀 섀도우리스가 구축한 포위망의 바깥에서 새로운 기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유현애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속속 텔레포트해서 나타나는 것이 타락체들이었기 때문이다.

휴고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벌써 이렇게 많이 침투해 있었나?>

지구 곳곳에 침투해서 거점을 만들고, 정보 수집을 하고 있던 타락체들이 두 군주의 부름에 응해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숫자는 18명이나 되었다. 팀 섀도우리스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새벽의 두라크가 용우를 비웃었다.

<어떠냐? 아직도 우리를 함정에 빠뜨렸다고 착각하느냐?>

“생각보다 머릿수가 많긴 하군.”

용우가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것은 예상 범주 내였다. 게이트 밖에서 군주들을 강림시키는 시점에서, 그들이 지구 곳곳에 침투해 있을 타락체들을 아군으로 불러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버틸 수는 있겠지?”

<버티긴 무슨. 전부 해치울 수 있어!>

휴고가 강한 척했다.

용우는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자신감을 믿지. 이제부터는 나도 바빠서 신경 못 써줄 테니까 우는 소리 하지 말고.”

<누가…….>

“죽지도 마라.”

<…….>

생각지도 못한 격려에 휴고의 말문이 막혔다.

용우가 칠흑의 양손 대검을 새벽의 두라크에게 겨누며 선언했다.

“어느 쪽이 착각을 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지.”

그리고 한때는 남국의 꿈으로 불렸던 바다 한복판의 섬, 괌을 뒤흔드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Chapter48 누구를 위한 함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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