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52화 (15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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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군단은 재해 지역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방위 시스템이 뛰어나다 하나 지구 전역을 커버하지는 못한다. 재해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게이트가 발생하고, 그리고 손쓸 도리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진다.

현 시점에서 인류가 재해 지역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나 몬스터 개체수를 줄여가면서 확산을 막는 것뿐.

그리고 그것조차도 인류의 거주 지역과 가까운 재해 지역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9등급 몬스터 서식지를 중심으로 광활한 영역이 잠식당한 구 중국령의 베이징, 그린란드, 아프리카 같은 곳들은 아예 손을 쓸 수가 없다.

군단은 이런 재해 지역에 게이트를 열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것으로 타락체와 지휘관 개체를 지구로 침투시켰다.

물론 그렇게 침투시켜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활동의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애당초 거창한 파괴 활동을 노리지 않기에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괌이에요?”

유현애가 물었다.

팀 섀도우리스는 재해 지역, 괌에 와 있었다.

괌은 미국 정부가 관리를 포기한 땅이었다. 과거 미국의 군사력은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를 커버할 정도였지만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괌에 방위 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미국 입장에서는 이미 멸망한 괌을 굳이 무리해 가면서까지 탈환할 이유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괌은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몬스터 아일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그곳은 재해 지역인 동시에 바다가 장벽이 되어서 그 이상 확장되지 못하는, 몬스터를 가두는 감옥이기도 했다.

군단의 특작부대가 침투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다.

“바다 한복판의 섬이니까.”

물론 괌 말고도 그런 조건을 갖춘 재해 지역은 많다.

하지만 괌은 미국령이라서 애비게일 카르타를 통하면 작전 지역으로 삼기 좋다는 이유로 괌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크기도 적당하고.”

괌의 면적은 제주도의 절반도 안 된다. 용우가 괌을 선택할 때는 그 점도 고려되었다.

“일단은… 보이는 족족 다 없애.”

용우가 지시를 내렸다.

표면적으로 팀 섀도우리스는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고 재해 지역 괌을 청소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미국 정부가 과거에 괌에서 회수하지 못한 뭔가를 수색하고 싶어서 팀 섀도우리스에게 청소를 의뢰했다는 시나리오였다.

팀 섀도우리스는 미화 1억 달러, 그리고 3톤의 마력석을 대가로 받고 괌 정화 작전을 수행한다. 미국이 군사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몬스터의 부산물은 전부 팀 섀도우리스가 갖는 조건이었다.

‘일일이 명분을 만들자니 귀찮군. 하지만 이렇게라도 마력석을 수급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미국의 마력석 비축량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전략 자원이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용우에게 그것을 주기 위해서는 팀 섀도우리스가 미국을 위해 일해준 것에 대한 대가를 준다는 명분이 필요했다.

휴고가 용우에게 물었다.

“놈들은 어떻게 찾지? 아니, 그보다 여기 있긴 있는 거야?”

“모르지.”

“…….”

“워낙 잘 숨어서 통상적인 탐지 수단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지금까지 몇이나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재해 지역을 하나씩 하나씩 뒤집어보자고 한 거야.”

“야, 너무 무식하잖아…….”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허탕을 쳐도 마력석 수급은 할 수 있는 작전을 잡은 거지.”

“이런 식으로 괜찮겠냐? 놈들이 언제 행동에 나설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건 어쩔 수 없고.”

“야.”

심드렁한 용우의 대답에 휴고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수많은 인명이 걸린 일인데 용우가 너무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용우의 말에 휴고는 움찔했다.

“우린 신이 아니니까.”

“…….”

“네가 세상 전부를 책임질 수 있다고 착각하진 마라. 그런 인간은 없어.”

용우는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의 혹독함을 영혼에 새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악의와 살인을 강요받는 어비스라는 지옥에 납치당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한 자들을 죽였다. 그 행위는 불가피하다고, 정당방위라고 변명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용우의 마음속에는 무수한 상처가 나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정당한 행위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용우는 그 죄책감을 씻어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비스에서 누군가를 죽일 때 용서를 구해본 적도 없고, 속죄를 바라지도 않았다.

죄책감은 죄책감일 뿐이다. 누군가 강요한 지옥 속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죄. 그 사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앞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다.

속죄할 이유도, 미안해할 이유도 없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 용우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지키는 것에는 복수심만이 아니라 죄책감 또한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니엘 윤.’

용우는 불현듯 다니엘 윤을 떠올렸다.

마지막 순간, 용우는 그에게서 놀랍도록 자신과 유사한 감정을 발견했다. 죄책감의 이유는 서로 다르겠지만 용우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분명 그 역시 죄책감에 기대어 사명감의 무게를 견뎌왔으리라.

용우는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개시한 차준혁을 보며 생각했다.

‘부디 네 후계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

* * *

팀 섀도우리스는 놀라운 속도로 괌의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렇다. 학살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꽈르릉! 꽈광!

시퍼런 뇌전이 달리면서 몬스터들을 찢어발긴다.

전신에 뇌전을 휘감은 휴고와 브리짓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주변을 휩쓸었다. 두 사람은 변신도 안 한 채였지만 그럼에도 그 앞에서 버텨내는 몬스터가 없었다.

‘확실히 우리는 강해졌다.’

그 광경을 보면서 차준혁은 생각했다.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분명 팀 섀도우리스의 전투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 성장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차준혁만 봐도 그렇다.

작년 9월에 팀 섀도우리스가 결성된 후로 7개월.

그 이전과 비교할 때 차준혁의 전투 능력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본신 마력만 해도 페이즈16으로 성장했고, 다종다양한 특성과 스펠을 터득하면서 올라운더로 거듭났다. 또한 광휘의 검의 잠재력을 훨씬 잘 끌어낼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용우에게 어비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서 전투 기술이 큰 폭으로 향상되었다.

이런 성장은 다른 팀원도 모두 마찬가지다. 다들 비정상적인 페이스로 강해지고 있었다.

2개월 전만 해도 실력 좋은 타락체와 싸우게 되면 다대일로도 꽤나 고전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차준혁과 휴고 둘은 일대일로도 그 타락체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재해 지역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준혁은 4등급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괌에서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긴 혹시… 괌인가?>

한창 몬스터들을 섬멸하고 있는 차준혁에게 텔레파시로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런 곳에 가 있는 거지?>

정체불명의 몽상가 루가루였다. 그는 차준혁이 괌에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었다.

<놈들을 찾기 위해서지.>

차준혁은 언제고 그가 다시 접촉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료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중에 연락이 오자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연락하는 건 위험하다. 동료들이 눈치챌 거야.>

<아니, 괜찮아.>

루가루는 자신 있게 단언했다.

<나는 지금 구세록의 히든 채널을 통해서 너와 연락하고 있는 거니까. 통상적인 텔레파시와는 다르지.>

<히든 채널? 그게 뭐지?>

<너희들이 애용하는 정보 공간의 다른 채널이지. 애비게일 카르타나 브리짓 카르타에게 들키면 곤란하잖아?>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차준혁이 헬멧 속에서 눈살을 찌푸리는데 루가루가 말했다.

<어쨌든 마침 잘됐어.>

<뭐가 말이지?>

<내 말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연락한 거니까. 네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타락체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했는데… 괌에도 딱 자리 잡고 있군.>

순간 차준혁의 뇌리로 어떤 이미지가 흘러 들어왔다.

괌의 지도에 특정한 위치가 빨간 점으로 반짝이는 이미지였다.

<거기에 타락체가 둘 있으니까 확인해 봐.>

루가루는 그 말을 끝으로 텔레파시를 끊었다.

차준혁은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루가루가 알려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놈들을 찾았다.”

일직선으로 몬스터들을 섬멸하며 나아가던 차준혁이 모두에게 통신을 보냈다.

* * *

놈들은 과거 괌의 이름난 리조트 호텔 중에 하나, 괌 쉐라톤 라구나의 폐허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세기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고전적인 남국의 꿈 그 자체였던 이 리조트 호텔은 지금은 낭만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콰콰콰쾅!

폭염과 뇌전, 고열고압의 섬광이 반쯤 주저앉은 리조트 건물의 한편을 폭격한다. 늪처럼 변해 버린 수영장이 폭발하고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워터 슬라이드가 산산이 부서져서 날아가 버렸다.

“크윽……!”

그리고 집중 공격을 받는 지점에는 타락체 둘과 지휘관 개체 일곱이 있었다.

서용우와 이비연이 백두산에서 발견했던 놈들과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일루전 큐브로 특정 영역을 감싸고, 그 안에 마력을 감추는 결계를 펼친 철저한 은신 상태였다.

하지만 막강한 화력으로 공격을 퍼붓자 은신이 깨지면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 개체들은 죽이지 마.>

그렇게 지시한 용우는 이미 지휘관 개체들이 이탈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둔 후였다.

그가 전개한 텔레파시가 일종의 족쇄가 되어서 지휘관 개체들이 빙의한 몸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빠르게 자살한다면 이탈할 수 있겠지만 저들은 거기에까지 생각이 닿지 않을 것이다.

“이놈들이!”

타락체는 둘 다 암석인이었다.

게다가 잔챙이가 아니다. 둘 다 8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을 갖고 있었다.

“죽여주마!”

암석인 타락체들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뛰어들었다.

서로 나뉘는 대신 하나의 표적을 노린다. 일행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존재를.

‘격세지감이 느껴지는군.’

바로 서용우였다.

암석인 타락체들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마력이었으니까.

팀원 전원이 변신하고 있는 지금, 성좌의 무기조차 꺼내지 않고 있는 용우는 최약체로 보이는 것이다.

쾅!

용우는 격돌의 순간, 블링크로 위치를 바꾸면서 양손대 검을 휘둘렀다.

암석인은 놀라운 반응속도로 그것을 막아내고는 곧바로 블링크한다.

쾅! 콰콰콰콰쾅!

용우와 암석인이 연속으로 블링크하면서 현란하게 격투를 벌였다.

또 하나의 암석인은 그 전투에 합세하지 못했다. 따라붙으려는 순간 차준혁이 그를 덮쳐서 지상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예지능력자이기에 가능한 순간 포착이었다.

그리고 용우와 일대일로 교전하는 암석인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그의 마력이 용우의 마력을 압도한다. 그런데 왜 우위를 점할 수가 없단 말인가?

파지지지직!

심지어 용우와 격돌할 때마다 그의 허공장이 고속으로 깎여 나간다.

그 역시 허공장 잠식을 시도하고 있지만 용우의 기술이 월등하다. 그렇다 해도 출력이 두 단계 이상 차이나는 데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감사하지.”

문득 용우가 말했다.

“괜찮은 연습 상대였어, 너는.”

“뭐라고?”

암석인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이었다.

파악!

용우의 양손 대검이 거짓말처럼 그의 몸통을 가르고 지나갔다.

“……!”

암석인의 허공장은 물론이고 검의 궤적을 가로막은 양팔과 몸통까지 잘라 버린 것이다.

‘아, 완전히 속았다……!’

암석인은 용우가 마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자신의 마력만이 아니라 무기의 마력까지도!

그의 손에 들린 양손 대검은 평범한 양손대검이 아니었다. 성좌의 무기 융합체, 트리니티였던 것이다.

용우는 교묘하게 마력을 감춰놓고 있다가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그 힘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암석인을 베어버렸다.

쾅!

용우는 암석인의 머리통을 부수고, 제어를 잃은 몸통을 산산조각 내서 숨통을 끊었다.

‘이젠 잘들 하는군.’

그사이 동료들 역시 다른 하나의 암석인을 손쉽게 끝장냈다.

용우는 그 자리에 굳어 있는 지휘관 개체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너희들이 뭘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다. 이제는 그 대가로 뭘 지불해야 할지 알려주지.”

* * *

루가루는 사다모토 아키라가 한동안 거주하고 있는 맨션 옥상에서 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구세록의 계약자가 쓰고 있는 관측 기능을 쓸 수 있었으니까.

그가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1순위 계승 후보로 설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구세록의 계약자들조차 모르는 구세록의 기능들을 쓸 수 있었다.

“뭐야?”

괌에서 일어나는 일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루가루는 어느 순간 경악해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런 미친 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서용우는 루가루가 상상도 못 한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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