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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51화 (1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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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구세록의 계약자, 사다모토 아키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처에 처박혀 있었다.

더 이상 전투에 나서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해오던 은퇴한 만화가로서의 그림 방송도 아무런 공지 없이 멈춰서, 인터넷에서는 그의 구독자였던 사람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가면 같은 어둠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 루가루가 물었다.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 줘야 하지?”

루가루의 몸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일본인 소년, 타카야마 준이치의 것을 양도받은 것이다.

몽상가의 자질을 타고난 그 소년은 팬텀의 실험체가 되어 그 재능을 개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정신적 상처가 너무 커서, 구출된 후로도 광기에 시달리면서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다.

루가루는 그런 타카야마 준이치에게 접근했다.

그가 가진 능력, 꿈의 세계를 유영하는 능력을 통해서였다.

살아 있는 것 자체를 힘겨워하던 타카야마 준이치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루가루는 타카야마 준이치의 몸을 차지하는 대신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피의 레지스탕스, 우리 아빠를 죽인 그 살인마를 죽여줘.’

타카야마 준이치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 사다모토 아키라를 죽여 달라는 소원을.

하지만 루가루는 그 소원을 곧바로 들어주지는 않았다. 어렵지 않게 사다모토 아키라를 찾아냈고, 얼마든지 그를 죽일 능력이 있음에도 그랬다.

“내가 당신을 배려해 주는 것도 슬슬 한계야.”

사다모토 아키라가 구세록의 계약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세계를 지켜왔기에, 그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죽은 후에 어떤 꼴을 당할지 알기에 그를 배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몸의 주인, 타카야마 준이치의 의지가 루가루에게 계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흘이면 될 것 같군.”

“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후에는 죽어주지.”

스스로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다모토 아키라는 무덤덤했다. 말문이 막힌 루가루에게 그가 물었다.

“하지만 너는 괜찮은 건가? 아직 새벽의 해머를 계승받지도 않았으면서 그들과 접촉해도?”

사다모토 아키라는 루가루가 팀 섀도우리스와 접촉한 건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괜찮아. 위험한 놈들이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루가루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내가 주겠다고 한 것은 지금의 놈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

* * *

차준혁의 말은 팀 섀도우리스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

침묵이 그 자리를 지배했다.

분명 차준혁이 전한 루가루의 제안은 지금의 팀 섀도우리스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구로 침입할 타락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보면 골치 아프다 못해 절망적인 것들이 넘쳐났으니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인류의 방위 시스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놈들이다. 그리고 이런 공격을 상대로는 팀 섀도우리스조차 사건이 터지고 나서 막으려 나서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 때에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는데도…….

“지나치게 타이밍이 좋군.”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브리짓이 말했다.

“우연은 아니겠죠. 우리를 살피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군단의 움직임 또한.”

“양쪽 모두를 웃도는 정보력을 가졌다, 그런 뜻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 말에 용우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용우가 이비연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내가 인지하는 한에는, 우리를 엿보는 시선은 없었어.”

이비연은 결계 구축에 있어서는 용우를 훨씬 능가한다.

그리고 이 결계는 종류가 다양하고 응용 폭이 넓었다. 모든 스펠을 통틀어 봐도 지속성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이비연은 늘 자신이 관측당하는 경우에 대비하고 있었다. 지금 모인 장소만 하더라도 그녀가 관측을 막는 결계를 쳐둔 상태다.

용우가 물었다.

“너조차 인지 못 하는 관측 방법이 있을까?”

“일단 인공위성이랑 고고도 정찰기. 오빠한테 이야기 듣고 인지하려고 노력해 봤는데… 안 돼. 일단 의지가 없고, 너무 멀어.”

현대 문명의 힘은 놀라웠다. 마력도 다루지 못하는 인류지만 어떤 면에서는 군주들조차 못 하는 일을 해낸다.

“그 둘을 빼면?”

“텔레파시 계통의 탐지, 관측 기술은 다 걸리고… 멀리보기 계통도 마찬가지.”

“그거 빼면 남는 게 없잖아?”

“있긴 있어. 일단 예지.”

“예지? 막았잖아?”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비연의 결계 스펠은 예지조차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용우나 이비연에게 있어서 예지는 별로 대처하기 어려운 능력이 아니다.

“단기 예지는 그런데 장기 예지라면 막기 힘들잖아. 그냥 막연한 예감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파편화된 꿈을 보는 경우도 있고 하니까.”

“하지만 장기 예지는 정확성이 높을 수가 없지.”

“그럼 딱 한 가지만 남네.”

“뭔데?”

“몽계유영(夢界遊泳).”

용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게 뭔데?”

그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무언가였으니까.

유현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저씨도 모르는 스펠이 있어요?”

“…누가 들으면 내가 모든 걸 다 아는 줄 알겠다? 모르는 거 천지야.”

용우가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유현애만이 아니라 다들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비연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얼마 안 봤지만 이 팀에서 오빠 이미지가 어떤지 알겠네.”

“그건 됐고. 몽계유영이 뭔데?”

“아마 어비스에는 보유자가 없었던 것 같아. 군단의 타락체 중에 딱 한 명 있었어.”

이비연이 설명하는 몽계유영은 한 가지 묘한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인류의 꿈은 같은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의 꿈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런 꿈들이 모두 같은 영역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공유 영역이 일종의 정보 세계라는 전제였다.

“몽계유영은 그 정보 세계… 꿈의 세계를 유영하는 능력이야. 그리고 만약 그 루가루라는 작자가 이 능력의 소유자라면, 한 가지는 확실해.”

“뭔데?”

“그는 제1세계의 존재야.”

“초월권족?”

“응. 제2세계의 존재는 이 특성을 가질 수가 없대.”

“왜?”

“그들은 꿈을 안 꾸거든. 군단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들은 꿈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다고 해. 군단에 들어온 후에도 그런 게 있다고만 알지 이해는 못 하는 모양이고.”

인류와 대화가 성립할 정도로 비슷한 의식 세계를 가진 놈들인데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용우는 그 사실에 흥미를 느꼈지만 지금은 이계 인류학을 연구할 때가 아니었다.

“그 꿈의 세계에서 타인의 꿈을 통해서 정보를 얻기 때문에, 정보를 감추는 게 불가능하다?”

“응. 이것저것 제약이 있긴 한 모양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골치 아프군. 그리고 루가루라는 놈이 보여준 능력하고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그놈이 말한 몽환 영역이라는 건 꿈의 세계의 일부, 그의 의지에 의해 구체화되고 통제되는 영역이 아닐까? 현실과 꿈의 세계 양쪽을 오갈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설명이 되지.”

“잠깐만요.”

가만히 듣고 있던 브리짓이 끼어들었다.

용우와 이비연이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자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무슨 가능성?”

용우와 이비연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 있지요. 미국과 한국의 정보 담당자에게서 정보를 빼내면 됩니다. 우리와 관계가 있는 요인들을 찾고, 그들에게서 텔레파시로 정보를 빼낸다면 어떻습니까? 텔레파시를 제로, 당신보다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다면 그랬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수 있겠죠. 그리고 그 흔적을 잘 감춘다면 제로 당신이라고 해도 굳이 텔레파시로 조사를 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지 않습니까?”

“…….”

용우와 이비연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루가루가 보여준 능력이라면 그건 아주 손쉬운 일일 것이다.

“맹점이었군. 우리 경험에 기대서 생각하다 보니 그런 당연한 방식을 생각 못 했어…….”

용우가 신음했다. 확실히 현실적인 시나리오였다.

브리짓이 말을 이었다.

“표적이 될 만한 사람은 꽤 있지요. 정부 요인 몇 명만 뒤져봐도 우리와 연결 고리가 있는 사람들을 특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백원태 사장, 오성준 사장, 김은혜 매니저…….”

그들에게는 허공장을 비롯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기는 했다.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경호원들도 붙어 있었다.

하지만 루가루 정도 되는 능력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브리짓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들이 말한 가능성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제가 말한 가능성은 희박하겠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루가루라는 자가 우리에게 접촉한 방식을 보면 아마 두 사람과 사고방식이 비슷할 것 같군요.”

“…….”

용우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무식한 놈이라는 욕을 들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가 말한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봅니다. 이참에 내부적으로 점검을 한번 하고 대책을 세워두는 편이 좋겠지요. 혹시 대책은 있습니까?”

“있지.”

“어떤 대책입니까?”

“비연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러자 이비연이 한숨을 쉬었다.

“귀찮은 건 다 나한테 떠넘기는 거 아냐? 일 너무 많아…….”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그 말에 이비연은 정말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진 않았다.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용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브리짓이 지적한 경우에 대한 가장 적합한 대응책은 이비연의 결계였으니까.

“알았어. 그리고 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뭔데?”

“리사 좀 빌려줘.”

그 말에 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이비연의 말에 다들 납득했다.

“몽상가에 대해서 같이 연구 좀 해볼게.”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리사, 협력해 줘.”

리사의 불안한 표정을 본 용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인체 실험 같은 거 하자는 이야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비연이는 나보다 기술을 연구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 너희들한테 가르쳐 주는 기술 중 몇몇 개는 얘가 만든 거야.”

마력 증폭 기술 워 드레스만 해도 이비연이 개발한 기술이었다. 약점이 없는 만큼 원리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기에 순식간에 분석당해서 당시의 생존자들에게 널리 퍼졌지만.

그때 차준혁이 말했다.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나?”

“음? 놈이 더 말한 게 있었나?”

“그 방법이 뭔지도 말해줬다.”

“뭐였는데?”

“구세록의 기능 하나를 더 개방해 주겠다는군. 즉, 나와 브리짓이 놈들을 탐지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순간 그 자리의 분위기가 변했다.

용우가 표정을 굳혔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무섭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용우는 어이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 뭐야. 쪽 팔리게. 완전히 헛다리 짚고 있었잖아?”

“왜?”

이비연이 고개를 갸웃하자 용우가 말했다.

“루가루, 그놈의 정체를 알았어.”

“응? 어떻게?”

“놈은 히든 페이지와 관련이 있군. 그리고…….”

용우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내 가설을 증명해 줬어. 이거 감사의 마음을 듬뿍 전해야겠는걸?”

“혹시 그거 때문에 스케줄 바꿀 거야?”

이비연이 물었다.

팀 섀도우리스는 지금 특수한 작전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전 준비의 핵심이 이비연의 몫이기에 스케줄 변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차준혁, 혹시 루가루 그놈이 거래 조건이나 일시를 말했나?”

“말하지 않았다. 가까운 시일 내로 자기가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까지 대답을 준비해 두라고만 하더군.”

“주도권을 잡고 우리를 자기 뜻대로 끌고 다니고 싶다는 속셈이 아주 노골적이군.”

용우의 말에 차준혁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그랬다. 루가루는 차준혁에게 악마의 속삭임처럼 불길한 유혹을 던지고 사라졌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파문에 괴로워하라는 것처럼.

‘선생님…….’

다니엘 윤을 살릴 수 있다.

놈은 그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차준혁은 그 가능성을 깨끗하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비연.’

서용우가 그녀를 구한 과정은 사실상 죽은 자를 되살린 것과 같지 않은가?

“뭐, 좋아. 자기가 게임 마스터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걸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나 본데… 주제를 가르쳐 줘야겠군.”

차준혁을 상념에서 깨운 것은 용우의 목소리였다.

“찾아오기 두려워서 벌벌 떨거나, 아니면 당장에라도 만나고 싶어서 안달이 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게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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