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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죽음과 같은 것일까?
세상에서 사라졌던 사람은 변해 버린 세상을 보며 생각한다.
‘학교라…….’
이비연은 학교 맞은편 건물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서 턱을 괴고 있었다.
아찔한 광경이다. 바람만 세게 불어도 추락사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비연은 위기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얼굴로 학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학력은 중학생 시절로 끝났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녀가 다녔던 학교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없어져 버렸다. 그녀와 동급생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거나…….
‘죽었겠지.’
그동안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물론 살아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비연은 굳이 그들을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역시 재미없네.’
이비연은 자신의 생각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아침부터 5교시 수업이 진행되는 지금까지, 학교의 유령이 되어 보았다.
모습과 기척을 감춘 채로 학교에 침입해서 학생들이 지내는 모습을 구경해 보았다. 그녀의 은신 능력은 신묘한 것이라 바로 앞을 지나가도, 심지어 앞자리에 앉아서 얼굴을 빤히 알아보고 있어도 학생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의 학교는 그녀가 기억하는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분필을 쓰는 칠판 따위는 없고 칠판 크기의 디스플레이 보드가 있었다. 학생들도 딱히 받아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디스플레이 보드에 뜨는 내용이 바로바로 그들의 개인 기기에도 떠서 저장되고 있었으니까.
실로 미래적인 광경이었다.
이비연은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교실 한구석에 앉아서 수업 내용을 보고, 학생들이 시시덕거리는 걸 보고, 교무실 등등을 돌아다녀 보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역시 재미없다고.
다만 그것은 학교를 구경하는 행위에 대한 감상은 아니었다.
‘그래. 학교 다니는 게 재밌을 리가 없잖아?’
지구로 돌아오게 되자 잃어버린 학창 시절을 동경하는 마음이 일었다.
지금이라도 강제로 끊어져 버린 과거의 시간을 다시 이어서, 학생 신분을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구경하고 있자니 깨달음이 찾아온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학교생활은 전혀 재밌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추억을 더듬어봐도 학교생활이 재밌었던 적도 없었다.
어비스에 끌려가기 전, 중학생이었던 그녀에게 학교는 세상의 거의 전부였다. 모든 게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래서 그녀는, 중학생 이비연은 학교를 좋아했던가?
“하하하…….”
이비연은 공허하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학창 시절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렀구나. 흘러 버렸어…….’
자신이 놓친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되찾고 싶었던 것뿐이다.
실로 미래적인 학교의 풍경을 보면 볼수록 쓸쓸함이 밀려왔다. 모든 것이 자기만 놔두고 저 멀리 가버린 것 같아서.
‘이방인이구나, 나는.’
자신은 저 안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변해 버린 세상을 보면 볼수록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용우 오빠가 왜 그러고 있는지도 알겠어.’
이비연도 PTSD에 시달리고 있기로는 서용우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각은 용우가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녀는 돌아온 후로 용우가 하는 짓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잦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그들이 입은 상처가 똑같은 상처일까? 상처가 다르고, 상처를 대하는 법도 다르다.
당장 용우와 리사만 해도 서로 군중을 보는 감각이 정반대이지 않던가?
그럼 이비연이 군중을 보는 감각은 어떨까?
‘무서워.’
이비연은 빌딩 위에서 군중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번화가를 채운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비연은 섬뜩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이유는, 리사가 군중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세상이 포테이토칩 같아.’
저 수많은 목숨이 자신의 손짓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자신이 무의식중에 힘 조절을 실수하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다.
그런 공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비연은 초인이다. 현대사회의 기반 그 자체를 엎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팀 섀도우리스를 제외하면, 지구상에 그녀와 대적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지구는 타락체 이비연이 강림하는 것만으로도 멸망할 수 있는, 유리잔처럼 연약한 세계였다.
‘포기하는 건 익숙해.’
이비연이 빌딩을 박차고 훌쩍 날아올랐다.
도약 스펠과 경이로운 신체 능력, 그리고 마력 컨트롤이 더해지자 한 번의 도약만으로도 1킬로미터 상공에 도달해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고도가 떨어지면 재차 허공을 밟고 뛰어오르면서 도시를 굽어본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와서도 그래야 할 줄 몰랐어. 오빠도 참 많이 아팠겠구나.’
그래도 용우에게는 동생 서우희라도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분명 용우에게 크나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이비연은 자신이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분명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난리 통 속에서 숨졌으리라.
부모의 죽음을 추모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보면서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해봤자 공허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비연은 부모님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으니까.
어떻게 중학생 시절 이별한 부모 얼굴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싶은데,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려고 할 때마다 좋은 기억들 대신 어비스에서의 일들만이 선명하게 떠오를 뿐.
그리고 돌아온 지구에는 부모의 얼굴을 알려줄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 한 장, 동영상 파일 하나조차도.
그래서 친척들을 찾아가 보려고 했다. 명절 때 말고는 본 적도 없어서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부모님의 사진은 갖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망설이는 그녀를 대신해서 김은혜가 알아봐 준 바로는 그들도 사진 한 장 갖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 웹 앨범에 저장했던 사진도 난리 통에 데이터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렇게나 발달한 세상인데도, 하루에 생성되는 사진 데이터가 수천만 장은 될 텐데도 그녀가 찾는 부모님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이비연은 그 사실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있잖아.”
한편 파괴되었다가 더 높게 재건된 남산 타워 꼭대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던 이비연이 문득 입을 열었다.
“이러다가 언니 얼굴도 잊어먹을까 봐 무서워.”
“…….”
어느새 그녀의 뒤에 용우가 서 있었다.
높은 곳에 불어오는 센 바람을 맞고 있던 용우는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말했다.
“미술 학원에 다녀봐. 초상화 잘 가르치는 곳으로 알아봐 줄게.”
“풋.”
이비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하!”
“웃겼어?”
“응. 크큭, 미술 학원이라니… 푸훗, 그 분위기에서 나올 대답이 아니잖아?”
이비연은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웃었다.
“하지만 참 긍정적이네. 그래, 사진이 없으면 그리면 되지. 기억하고 있는 동안에. 하지만 나 예전에도 미술은 꽝이었는데 괜찮을까?”
“괜찮을걸. 딱히 미술적 영감이나 창의력이 필요 없는 일이니까.”
“아, 하긴. 초상화는 그냥 기억 속의 언니를 모사하면 되는 거니까… 그럼 배워서 해볼 만할지도.”
이미 존재하는 것을 모사하는 것이라면 나름 자신이 있었다. 기억을 환영 스펠로 재현해 본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하루 종일 우울했는데 그런 기분이 싹 가시네. 오빠한테 이런 재주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람이 절망에 머리끝까지 푹 담그고 있을 때랑 그렇지 않을 때랑 같냐?”
“오, 그 대답 좀 괜찮았어.”
용우가 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되돌려 주자 이비연이 키득거렸다.
“너무 울적해하지 마. 나도 참 이 세상이 엿 같다고 느꼈지만 살아보니 의외로 살 만하더라고.”
“오빠한테는 그래도 우희가 있었잖아. 나한테는 아무도 안 남았는걸.”
“내가 있잖아.”
“…….”
말문이 막힌 이비연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용우가 말했다.
“네가 세상이 엿 같다고 부숴 버리지 않을 이유 정도는 되잖아, 내가.”
그 말에 이비연이 또다시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도대체 뭔 자신감인데?”
“내 목숨과 인류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걸고 널 구해준 은인으로서의 자신감.”
“우와, 비겁하다. 그러면 내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
“알고 있으면 다행이다.”
피식 웃은 용우가 이비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이비연이 입을 삐죽였다.
“이거 나오기 전에 공들여서 세팅한 머리거든?”
“네가?”
“아니, 우희가.”
행정 데이터상으로 이비연은 서우희보다 두 살 연상이었다. 하지만 언니 소리를 듣자니 불편해서 그냥 서로 말을 놓고 지내고 있었다.
용우가 코웃음을 쳤다.
“그 공들인 세팅 다 무의미해진 지 몇 시간은 지나지 않았냐?”
“그렇긴 해.”
이비연이 순순히 인정했다. 머리칼을 휘날리며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다시피 했는데 공들인 세팅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이비연이 서울 풍경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게이트 안은… 마음이 편했어.”
“…….”
“내가 거기 있어도 된다고 누군가에게 허락이라도 받은 기분이었어.”
군사작전의 분위기가 익숙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세상이 숨 막힐 정도로 이질적이라서, 전장으로 향하는 순간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편안해졌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당연히 괜찮지.”
용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벌써 잊어먹었냐? 넌 지금 지구 방위대야. 네가 게이트 싫다고 안 가면 인류 망한다.”
그 말에 이비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용우에게 팀 섀도우리스에 대해서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게. 적어도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가,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구나.”
“없지. 세상을 엿 먹이는 건 세상이 너를 엿 먹인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네가 세상보다 더 세잖아.”
“사실이긴 한데 표현이 참 그렇다. 그래서 오빠한테는 세상이 엿을 안 먹였어?”
“그럴 리가 있냐? 이놈저놈 엿 먹이겠다고 덤비는 놈이 많아서 다 엿 먹여줬지.”
“역시 오빠가 조용히 살았을 리가 없지. 그 이야기 좀 해줘봐.”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하긴 여긴 불편하네. 다른 데로 갈까?”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그 말에 이비연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백두산.”
“하필이면 거기?”
“일본에서 후지산에 갔었잖아. 백두산도 한번 가보고 싶어. 북한 망했다는 소리 듣고 얼마나 황당했는데.”
“하긴 나도 안 가봤군. 그럼 가보지, 뭐. 전투 준비나 해둬.”
“왜?”
이비연이 의아해하자 용우가 피식 웃었다. 지구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당시의 자신이 그렇듯 이비연이 아직 상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 재해 지역 된 지 오래야. 백두산 천지가 가이아 드래곤의 영역인데, 그래도 갈래?”
“아, 그래?”
이비연이 씩 웃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활력에 찬 눈빛으로.
“기분도 울적한데 잘됐다. 거기 있는 놈들 좀 때려잡고 경치나 즐기다 오자, 응?”
* * *
그날, 광활한 재해 지역이 된 한반도 북부의 몬스터 세력 구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