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44화 (14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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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냉기 그 자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늘에 끝없는 하얀 선을 그려내면서 지상에 가까워져 간다.

천공과 대지를 이을 때까지 계속될 그 선은 세상에서 가장 긴 얼음 기둥이었다.

<종말급 스펠?>

<말도 안 돼! 누가?>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용우는 그들이 충격에 빠지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순간 언데드들이 용우를 보며 놀랐다.

용우가 억눌렀던 마력을 일거에 개방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있는 가장 강대한 언데드를 월등히 상회하는 마력이 솟구쳤다.

-선다운 버스트 연속 투하!

종말급 스펠이 다가오는 것보다 빠르게, 하늘에서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

전술핵에 필적하는 위력이 도시 곳곳에서 폭발했다.

왕의 섬은 섬으로서는 대단히 넓다. 제주도의 두 배나 되니까.

하지만 그래봤자 전술핵이 연달아 터진다면 일순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할 크기에 불과했다.

그래야 정상이었다.

‘강력하군.’

용우는 해일 같은 마력으로 주변을 폭격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왕의 섬은 특별한 장소였다.

용우가 그토록 강력한 힘으로 폭격하고 있는데도 생각보다 파괴 규모가 적었다. 섬을 수호하는 강력한 결계가 스펠의 위력을 감쇄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점 집중형의 공격은 상관없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공격은 쓸모가 없어진다.

‘훌륭한 방어 시스템이다. 역시 심장부를 대책 없이 놔두진 않았어.’

용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공에 위치한 주인 없는 왕궁을 바라보았다.

언데드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종말급 스펠, 눈보라의 용이 그곳에 도달했다.

콰아아아아아아!

상공에서 어마어마한 냉기가 폭발했다.

그 힘은 이 왕의 섬보다 훨씬 광활한 땅이라도 일순간에 얼어붙은 세계로 바꿔놓고도 남는다. 일격으로 한 문명을 끝장낼 수도 있기에 종말급 스펠이라는 거창한 칭호로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했다. 기습으로 이놈들을 끝장내는 건 불가능하군.’

용우는 상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

눈보라의 용이 주인 없는 왕궁에 도달해서 폭발하는 순간, 그 주변에 무수한 광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광점들이 폭발하는 한기를 쉬지 않고 빨아들이는 게 아닌가?

눈보라의 용은 왕의 섬의 기온을 약간 떨어뜨리는 정도의 결과만을 남기고 소멸해 버렸다.

<이놈!>

그리고 적들이 다시금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사방팔방에서 갖가지 효과를 가진 에너지탄 포격이 쏟아진다.

폭염이 터지고, 뇌전이 퍼져 나가고, 텔레포트가 봉쇄되고, 대지가 뒤흔들리며 흡력 필드가 펼쳐진다.

뿐만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섞여서 날카로운 텔레파시 공격이 날아들었다.

다수의 고위 언데드가 힘을 합쳐 펼치는 텔레파시 공격은 용우조차도 지속적으로 심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

‘슬슬 때가 됐군.’

포위망이 점점 견고해지고 있다.

그 사실을 감지한 용우가 계획을 다음 단계로 넘겼다.

-일루전 큐브!

그러자 외부로부터의 관측을 막는 환영의 큐브가 펼쳐진다.

하나가 아니다. 연속적으로 펼쳐지는데 하나하나가 가로세로 500미터를 감쌀 정도로 컸다.

언데드 지휘관이 웃었다.

<눈을 가리겠다? 가소롭군!>

원거리 포격이 정확하게 날아드는 것은 관측병이 좌표를 설정해 주는 덕분이다. 그러니 눈을 가리면 포격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당연한 이치였다. 당연하기에 공격하는 측에서도 그 문제에 대비하고 있었다.

콰콰쾅!

일루전 큐브 안에서 폭음이 울려 퍼진다.

포격은 단 한순간도 주춤하지 않았다. 정확도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언데드 관측병들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작 눈을 가리는 것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그들의 관측 기술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5퍼센트 미만이다.

그들은 적의 마력을 감지한다. 적의 정신파를 감지한다. 적의 주변에 배치한 무수한 공간좌표 설정 포인트를 이용한다.

<하찮구나! 과연 미개한 세계의 버러지다운 발상이다!>

지휘관이 미친 듯이 웃었다.

* * *

하나의 세계와 전쟁을 마칠 때마다 군단의 적은 약해져 갔다.

제1세계의 초월권족은 신처럼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군단은 그들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 서로를 파멸시켰을 뿐.

제2세계의 신성한 돌은 단순하지만 강대한 존재들이었다. 군단은 치열한 전쟁 끝에 기어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엇비슷한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에 비해 제3세계는 어떤가?

군단이 보기에 그곳은 실로 기괴한 세계였다. 모든 것이 이상해서, 보고 있노라면 끔찍함을 느낄 정도였다.

지구의 인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제1세계의 인류는 1억 미만이었다.

제2세계의 인류는 그보다 많았지만, 그럼에도 1억 7천만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침공을 개시했을 때, 지구 인류는 73억 명을 넘었다. 그 숫자에 수뇌부가 자신들의 관측 결과를 의심하고, 몇 번이고 교차 검증을 한 후에는 질려 버렸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압도적인 숫자를 상대로 승산이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싸워야 했다. 그들을 속박한 저주는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머릿수 말고는 믿을 게 없는 버러지! 버러지답게 죽어라!>

제3세계의 인류는 마력을 다루지 못했다.

아무도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제1세계의 초월권족처럼 위대한 존재도, 제2세계의 신성한 돌처럼 강대한 존재도 없다.

뿐만 아니라 군단의 기준으로는 전투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단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세계가 존재한단 말인가? 마력조차 다루지 못하는 버러지만으로 구성된 문명이 이토록 어마어마한 규모를 이루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제3세계는 우리의 숙원을 이뤄줄 보물섬이다.’

비록 마력도 없는 버러지들뿐이라고는 하지만 73억을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영혼을 수확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73억이라는 숫자 중에 군단 기준의 전투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앞선 두 번의 전쟁보다 훨씬 적은 피해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흘러갔다.

개전(開戰)하기 전에 거쳐 가는 의식, 어비스에서 이상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제3세계를 지키는 의무를 부여받은 일곱 기둥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했고, 군단의 병력 손실은 전혀 없이 오로지 몬스터만으로도 20억을 넘는 영혼을 수확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행복한 상상은 어느 순간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 *

포격은 계속된다. 포위망이 견고해지면서 포격은 더욱 다양하고 강해져 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루전 큐브 안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아아!

일루전 큐브를 찢어발기며 뿜어진 빛이 둥근 막을 이루었다. 동시에 그 질감이 매끈하게 잘린 얼음판처럼 변화했다.

-오만의 거울 광역화(廣域化)!

시간 차로 쏘아지던 수백 발의 에너지탄이 모조리 되튕겨졌다.

콰콰콰콰쾅……!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고 있던 언데드들이 비명을 질렀다.

모든 포격을 에너지탄으로만 구성한 것은 실수였다.

오만의 거울은 에너지탄에는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한다.

‘광역화? 혼자서 이런 게 가능한가?’

언데드 지휘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용우가 펼친 기술은 여러 술자가 연합해서 펼쳐야만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혼자서, 그것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포격을 정신없이 피하는 와중에 펼치다니?

쩌저저정!

직후 오만의 거울이 깨져 나갔다.

에너지탄에는 절대적인 방어력을 발휘하지만 물리력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아무리 강대한 자가 펼쳐도 돌멩이 투척에도 망가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일어난 폭발의 충격파가 닿는 것만으로도 산산이 깨져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포격이 멈췄으니까.

<저건 설마?>

언데드 지휘관이 놀랐다.

용우의 손에 한 자루 양손 대검이 쥐어져 있었다. 얼음을 깎아 만든 것 같은 특이한 질감의 무기였다.

<…기둥?>

성좌의 무기, 빙설의 창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네놈, 군주 살해자로구나!>

그들은 비로소 하스라와 볼더를 죽인 군주 살해자가 눈앞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놈을 잡아!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려서 봉인해!>

언데드 지휘관은 방침을 바꿨다.

기둥이 눈앞에 있다. 이 전쟁을 그들의 승리로 끝낼 수 있는 보물이.

하지만 저 기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군주뿐이다. 그것도 저 기둥에 대응하는 군주만이 그럴 수 있다.

문제는 하스라가 소멸했다는 것이다.

애당초 군단에는 군주의 자리를 계승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하스라의 코어가 깨진 채라도 남아 있었다면 모를까, 남김없이 소실되었으니 대안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기둥을 확보하려면, 일단 현 소유주인 용우가 생존해 있어야 한다.

<머리랑 몸만 남겨주마!>

더 이상의 포격은 없었다. 동료들에게 가속 스펠과 강화 스펠을 잔뜩 받은 해골 기사들이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팍!

그들의 검이 용우에게 꽂혔다.

하지만 용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검을 몸으로 받아낸 채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워주지.”

<뭐?>

그들은 자신들의 공격이 용우의 허공장에 붙잡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콰쾅!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폭사(爆死)했다.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안다. 이것도 꽤나 기분이 더럽군.”

우우우우우!

동시에 용우의 마력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크윽, 본색을 드러내느냐?>

“이 악몽이 끝날 때까지 어울려 줘야겠다, 괴물들.”

용우는 가면 속에서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주인 없는 왕궁은 강력한 방어 시스템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외부의 공격으로 이 웅장한 건축물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말급 스펠조차도 그 방어 시스템을 어쩌지 못했다.

자격이 없는 자는 결코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종말의 군단을 통틀어도 그 자격을 가진 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방어 시스템 안쪽을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매끈한 가면을 쓴 흑발의 남자, 서용우였다.

‘요즘 마력석 소모가 너무 심하군. 뭔 일만 했다 하면 톤 단위로 날아가니, 이거야 원…….’

주인 없는 왕궁의 아래쪽, 왕의 섬에서는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성좌의 무기 빙설의 창을 든 서용우와 천 명을 넘는 언데드 군단의 격전.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 싸움이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모를까, 아무리 용우가 강해도 왕의 섬에서는 머릿수의 차이를 당해내기 어렵다. 만만치 않은 놈들도 꽤나 많았고, 적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화력이 큰 기술들이 봉쇄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싸우고 있는 용우는 진짜가 아니었으니까.

‘이렇게나 공들인 분신과 모조품은 처음인데, 10분은 버텨주겠지.’

용우가 일루전 큐브를 펼쳤던 것은 관측병들의 관측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잠시 눈을 가려놓고, 강렬한 존재감으로 적들의 마력 감지를 혼란시키며 분신과 교대하기 위해서였다.

‘시간과 물자가 주어지면 이렇게나 일이 편해지는 것을.’

그것은 용우가 이제까지 형성한 그 어떤 분신보다도 강력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신체였다.

그리고 그 손에 들린 성좌의 무기 빙설의 창도 진짜가 아니라 만든 모조품이었다.

하지만 그 완성도는 용우가 지금까지 즉석에서 만들어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저것은 용우가 군주들과 싸울 때를 대비해 만들어낸 결전 병기였다. 저 분신체와 모조품을 만들기 위해서 10톤 가까운 마력석이 투입되었으며, 완성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용우에게는 어비스에 있을 때 이상으로 막대한 물자가 있다. 어비스에서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과 여유가 있다.

그리고 적의 실체를 알고, 어떻게 싸워서 무엇을 이뤄야 할지가 명확하게 잡혀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니 용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치직…….

용우가 열린 문을 통과하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현대의 시큐리티 시스템을 닮은 보안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용우는 거침없이 주인 없는 왕궁을 걷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스라 코어가 있기 때문이다.

‘코어가 안 먹혔으면 골치 아팠겠어.’

용우도 주인 없는 왕궁의 결계를 어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든 뚫을 수야 있었겠지만 그동안 군주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을까?

‘아, 왔군.’

용우는 천장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다른 언데드들과는 격이 다른 무언가가 오고 있다.

군주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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