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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애와 리사는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적들이 둘을 포위하고 공격을 퍼부어댄다.
처음에는 육박전을 노렸지만 번번이 격파당하자 포위진을 형성, 화력전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흥!>
하지만 유현애도, 리사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프리징 필드!
아티팩트 빙설의 창을 지닌 리사가 극저온의 파동을 폭발시켰다.
일순간에 주변이 하얗게 얼어붙으면서 언데드 병사들의 공격이 멈춘다.
-초열광(焦熱光)!
직후 아티팩트 불꽃의 활을 지닌 유현애가 초고열의 섬광을 쏘아냈다.
화아아아악!
불꽃이 폭발하면서 포위망에 구멍이 뚫렸다.
유현애와 리사는 서로에게 가속 스펠을 걸면서 그 구멍으로 탈출, 곧바로 반전하면서 포위망 바깥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언데드 병사들도 응전하지만 둘의 출력을 따라잡지 못한다.
-염동빙결탄 동시다발!
리사가 한기가 응축된 에너지탄 12발을 한꺼번에 발사했다.
콰과과과광!
언데드 병사들은 방패로 막으면서 물러난다. 지휘관을 중심으로 한 연계가 잘되고 있어서 방어가 단단했다.
<만만치 않네요.>
유현애의 말에 리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하나의 힘은 그녀들에게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훈련된 군대의 연계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 온 건지는 아직 모르나 보네.’
유현애와 리사는 이미 지켜야 할 존재, 오우거 로드에 빙의 중인 언데드를 내팽개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적들은 그 언데드를 없앨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유현애와 리사가 그의 존재를 닻으로 삼아서 정보 세계에 정박하는 배와 같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것들.>
그 앞에 새로운 언데드 하나가 나타났다.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중세 서양의 기사처럼 육중한 갑옷을 입은 해골 기사였다.
<와.>
본능이 위험 신호를 보낸다. 해골 기사의 마력은 유현애의 그것을 확실히 웃돌았다.
‘어비스에는 우리보다 강한 언데드가 수두룩했다더니.’
정말로 그랬던 모양이다. 유현애는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언니, 튀죠.>
<그래.>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이 안티 텔레포트 필드를 펼쳐서 텔레포트로 도망칠 수는 없지만 상관없었다.
콰콰콰콰콰쾅!
두 사람은 마력 관리를 내팽개치고 최대 출력으로 화력전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적들과 거리가 생기자마자 유현애가 최후의 스펠을 발동했다.
-선다운 버스트!
그리고 두 사람은 스펠이 발동하자마자 정보 세계에서 이탈했다.
<아니?!>
둘의 존재감이 꺼지듯이 사라지자 해골 기사가 경악했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가 펼쳐져 있는데 이런 식으로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대폭발이 그 자리를 집어삼켰다.
* * *
용우가 어비스에서 만난 타락체는 기본적으로 못하는 게 없는 올라운더들이다.
그에 비해 언데드들은 각자 실력과 특기 분야가 천차만별이었다. 격투전에 뛰어난 놈이 있는가 하면 대규모 화력전에 뛰어난 놈도 있다.
그중에서는 인간이든 괴물이든 죽어서 시체가 되는 순간, 자신의 꼭두각시 병사로 삼아버리는 가공할 능력의 소유자들도 있었다.
사령술사.
죽음이 범람하는 전장에서 그 위력이 극대화되는 존재.
‘재밌군. 시체가 없어도, 오직 죽은 자의 영혼만으로도 이게 성립한다니.’
하지만 그것은 ‘시체’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용우는 만나는 적들을 죄다 산산조각으로 박살 내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도 영혼을 소재로 꼭두각시 병사를 만들어내다니, 어비스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패턴이다.
‘정보 세계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이놈이 특별한 건가?’
볼더와 싸울 때는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용우와 볼더의 격돌이 빚어내는 여파가 워낙 어마어마해서 이런 재주가 끼어들 여지가 없기도 했다.
‘볼더가 영혼을 모조리 거두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이 의문은 같은 재주를 가진 다른 놈을 만나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그리고 지금의 용우에게는 의문의 답이 무엇이든 별로 상관이 없었다.
지금의 그는 눈앞의 적이 무슨 수단을 쓴다 해도 분쇄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니까.
<죽인다!>
그렇게 외치며 달려든 것은 새카만 어둠으로 이루어진 실루엣이었다.
인간을 닮은 그 실루엣, 고위 언데드가 죽은 자의 영혼으로 만들어낸 사령병사(死靈兵士)가 원한에 찬 외침을 내지르며 용우에게 뛰어들었다.
쾅!
그리고 용우의 일권에 분쇄당했다.
하지만 사령병사는 하나가 아니었다. 자욱하게 깔린 검보랏빛 안개 속에서 우후죽순으로 일어나는 실루엣은 적어도 백 개체를 넘는다.
투콱!
용우가 한 걸음 내디디면서 앞에 있던 놈을 쳐서 박살 냈다.
<크악!>
옆에서 뛰어들던 놈이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한 용우의 팔꿈치에 맞고 터져 나가고.
콰콰콰콰콰콰!
소나기처럼 쏘아져 나가는 펀치 연타가 손이 닿는 거리에 들어온 모든 개체를 분쇄한다.
<…….>
그 광경에 사령술사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워서 꼭두각시 병사로 쓰는 사령술사의 재주는 굉장히 효율이 높다. 특히 그들의 원한이 향하는 적과 싸울 때의 효율은 최고다. 굳이 그들을 지배하느라 마력을 낭비할 것도 없이 전폭적인 협력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너는 뭐냐?>
사령병사 한 개체보다도 약한 마력을 지닌 존재가 사령병사들을 학살하면서 다가온다.
<대체 뭐냔 말이다!>
강대한 마력을 지닌 존재가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격해 온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면을 쓴 적은 공격 수단 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것, 신체에 의한 타격만으로 사령병사들을 분쇄하고 있지 않은가?
-염동…….
위협을 느낀 사령술사가 화력전으로 전환하려는 순간이었다.
콰직!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용우의 손이 그의 몸통을 꿰뚫었다.
<이, 이런 짓이 가능하다고……?>
그 순간 사령술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허공장을 버터처럼 갈라 버린 용우의 일격에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놀이는 이쯤 해둘까?”
용우가 잔인하게 웃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용우가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잘 빠져나갔나.’
그의 뒤쪽, 성채의 일부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가고 있었다.
유현애와 리사가 이탈하면서 남긴 선다운 버스트가 폭발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이 정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한 닻으로 삼고 있었던 언데드도 박살 났지만…….
‘나도 적당히 하다 빠져야겠군.’
용우는 상관없었다.
군단의 정보 세계에 진입하는 것도 벌써 세 번째, 이제는 지구의 존재에 빙의한 자의 연결을 닻으로 삼지 않아도 존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쿠르르릉……!
폭발의 여파는 용우가 있는 곳까지도 닿았다.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고, 지반이 붕괴하면서 용우가 있는 지점도 땅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그러나 용우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그의 손에는 조금 전까지 전투를 벌인 사령술사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크, 어억…….>
몸을 잃고 머리만 남은 사령술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옛날 생각나서 좀 재밌었다.”
어비스에서 싸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렇게 쉽게 해치우지 못했다. 한 번 한 번의 싸움이 칼날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용우에게 있어서 이 사령술사는 잔챙이일 뿐이다.
‘이걸 성장이라고 해야 할까?’
스스로도 그 의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재미있어서 용우는 히죽 웃었다.
“그럼 잘 가라.”
용우는 사령술사의 머리를 박살 내버리고는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쿠구구구궁……!
결국 지반이 무너지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도 무너져 내린다.
용우는 도약 스펠로 하늘 높이 도약한 채로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놈들의 심장부인가.”
그곳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였다.
하지만 그 섬부터가 특이했다. 끝없이 펼쳐진 운해 한복판에 떠 있는 천공섬이었으니까.
면적은 제주도의 두 배쯤 될 것이다. 그 면적의 7할은 도시로 채워져 있었다.
도시는 구획에 따라서 군사시설로 보이는 것들로 차 있는 구획과 거주 구획,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시설들로 가득한 중심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용우가 나온 곳은 군사시설로 보이는 구획이었다.
‘엄청난 마력.’
용도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시설들로 가득한 중심 구획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느껴졌다. 군주들보다도 더 거대한 힘, 거대한 시설이기에 집약될 수 있는 힘이다.
그 위로 거대한 구조물들이 보였다.
길이가 1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은 기둥 일곱 개가 원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 기둥의 표면에서는 기이한 문자와 문장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그 빛의 색깔은 기둥마다 달랐다. 그리고 원진을 따라 서서히 회전하고 있는 그 기둥들 중에 두 개는 다른 다섯 개에 비해 빛이 약해져 있었다.
‘비연이 말대로 누가 봐도 종말의 7군주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군.’
기둥 하나하나가 각각의 군주들에게 대응하는 것 같았다. 빛이 약해진 두 개는 하스라와 볼더의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광경은 이비연이 말해준 것과 동일했다.
종말의 군단의 심장부, 왕의 섬이다.
‘저게 주인 없는 왕궁인가?’
일곱 개의 기둥 위에는 웅장한 궁전이 있었다. 영롱한 빛이 궁전 주변을 휘돌면서 그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고, 궁전을 중심으로 구름이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소용돌이치면서 펼쳐져 있었다.
시각을 압도하는 장관이지만 저것은 분명 그 자체로 강력한 마력으로 통제되는 결계일 것이다.
파파파파파……!
그때 지상에서 빛이 번뜩이며 무수한 섬광과 에너지탄이 날아올랐다.
군사 시설의 소동 때문에 병력이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용우의 존재를 포착하고 공격을 가해오고 있다.
“왔나. 대응이 늦군.”
용우는 도약 스펠로 허공을 밟고 뛰면서 곡예에 가까운 회피기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텔레포트로 지상에 내려서면서 주먹을 날렸다.
퍼엉!
위를 보고 있던 해골 병사 하나가 산산조각 나서 터져 나갔다.
퍼퍼퍼퍼펑!
그리고 연달아 내지르는 주먹의 충격파가 확산되면서 주변을 쓸어버렸다.
<이놈!>
하지만 전부 잔챙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척 봐도 사령술사로 보이는 고위 언데드를 공격하는 순간, 그 앞을 사관의 제복을 입은 언데드가 가로막았다.
‘제법.’
순간순간 폭발적인 파괴력을 내는 용우의 주먹을 잡아낸 것만으로도 언데드 사관의 힘은 증명되었다.
하지만 제법일 뿐이다.
콰앙!
폭음이 울리며 언데드 사관이 터져 나갔다.
주먹을 잡힌 채로 발한 충격이 그의 허공장을 가뿐하게 관통한 것이다.
<……!>
그리고 그 뒤에서 규모가 큰 스펠을 준비하던 사령술사가 급히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 스펠이 용우를 폭격한다. 진행하던 스펠을 즉시 취소하고, 용우를 저지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 고른 것이다.
콰직!
그러나 다음 순간, 사령술사의 팔이 부러졌다.
“가까이 붙는 거, 싫어하지?”
용우가 속삭였다.
이런 타입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봐왔다. 거리를 두고 벌이는 화력전에는 능하지만 접근전에는 취약한 타입이다.
<이……!>
사령술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용우의 주먹이 머리통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용우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몸을 완전히 으깨서 부활의 여지를 없애려고 했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때 극초음속으로 날아든 에너지탄이 옆에 떨어져서 폭발했다.
정확히 용우를 겨냥한 공격이었다. 용우는 악의를 통찰하는 능력으로 사전에 그 조짐을 눈치채고 피했다.
콰쾅! 콰과과광!
저편에서 극초음속으로 날아든 에너지탄이 연달아 폭발했다. 심지어 그 공격의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
공간 이동을 봉쇄해서 그가 도망치는 것을 막는다.
‘흡력 필드.’
피격 지점으로부터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력이 발생해서 그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건방진 놈. 설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의 건물 위에 해골 기사 하나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해골 기사는 접근하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갖가지 언데드들이 나타나서 포위망을 형성하고…….
콰콰쾅! 콰과과과광!
극초음속의 포격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관측병들이 위치를 지정하면 포병들이 그 지점을 때린다.
지극히 단순한 전법이었다.
‘재밌군. 어비스에서는 저런 거 쓰는 놈이 없었는데?’
관측병들과 포병들은 맨몸으로 스펠을 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관측용 도구와 포격용 무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스펠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이놈들, 아직도…….’
용우는 포격에 직격당하는 걸 피하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군주나 타락체를 부르지 않는 건가? 급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것은 용우의 장난질이 아직도 들통 나지 않고 먹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당장 이 자리에 집결한 놈들만 해도 위험했다. 포위망을 형성하는 언데드의 숫자가 1천을 넘었고, 그중에서는 9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을 가진 놈들도 있었으니까.
“어디 군단의 심장부는 얼마나 방어가 단단한지 볼까?”
용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
그리고 언데드들 역시 하나둘씩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저 너머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터무니없이 불길한 것이.
용우는 이곳에 진입하는 순간, 볼더와 싸울 때와 똑같은 스펠을 발동해 두었다.
일부러 지연 작업을 걸어서 타이밍을 조절해 둔 그 스펠이 지금 이 순간 하늘 저편에서 구현되었다.
-눈보라의 용!
하늘에서 거대한 백색의 용이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