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말의 군단의 침략은 멈추지 않는다.
매일매일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게이트가 열리고, 인간이 죽어 나간다.
그 전쟁에 침략자의 희생은 없다.
죽어가는 것은 언제나 침략당하는 인류뿐.
몬스터가 아무리 죽어도 군단에게는 피해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몬스터는 무인 병기 같은 것이니까. 몬스터가 죽는 것은 물자 손실이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손실은 손실이다. 어차피 손실을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값지게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지휘관 개체를 투입하고 있었다.
저등급 몬스터라는 값싼 자원을 이용, 병력이 전사할 위험 없이 작전의 효율성을 몇 배로 올릴 수 있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으음……!>
3등급 휴머노이드 몬스터, 오우거에 빙의한 언데드가 신음했다.
군단은 전술적 승리를 위해서 지휘관 개체를 투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등장한 초창기라면 모를까, 그 존재가 인지된 지금은 허를 찌르기는 힘들어졌다. 그저 부담이 늘어날 뿐.
지휘관 개체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워 게임이나 다름없다. 불리한 상황에서 적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출혈을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놀이는 이제 끝이다.”
그 앞에 팀 섀도우리스가 나타났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화력으로 몬스터들을 섬멸하고 지휘관 개체를 포박했다.
<날 어쩔 셈이지?>
지휘관 개체가 긴장하며 물었다.
이들은 자신을 오우거의 몸에 가두고 고통을 줄 수단을 가진 자들이다. 그 사실을 체감했기에 그는 게임 감각에서 벗어나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용우가 말했다.
“글쎄, 일단 고문이나 좀 할까?”
<뭐라고?>
“우웩, 아저씨. 그런 건 혼자 있을 때 하세요. 악취미잖아요.”
유현애가 투덜거리자 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이런 말단을 공들여서 망가뜨리는 건 시간이 아깝지.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그러자 유현애와 이미나, 리사 세 사람이 다가왔다.
용우는 결박한 오우거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들 내 손 위에 손을 얹어.”
세 사람이 그 말에 따르자 용우가 이비연에게 물었다.
“너는 안 갈래?”
“어차피 한 명은 남아서 여길 지켜야 하잖아? 어차피 나는 실험이 필요 없고, 조금이라도 노출을 줄이는 게 이득일 거야. 이번 일은 오빠 혼자서도 충분할 테니까.”
“그래.”
“내가 말해준 것들, 다 기억하지?”
“물론.”
이비연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군단에 대해서, 이제부터 용우가 가야 할 곳에 대해서.
그리고 용우가 그곳에서 무엇을 노려야 하는지까지도.
용우가 유현애, 이미나, 리사 세 사람에게 물었다.
“준비됐어?”
“아, 잠깐만요. 심호흡 좀 하고.”
유현애가 손을 들더니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극도로 긴장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기에 용우도 타박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 주었다.
“이제 됐어요. 가요.”
“그럼 간다. 정신 줄 꽉 잡아.”
용우의 의식이 또다시 종말의 군단의 본거지, 정보세계를 향해 날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 * *
종말의 군단의 병력은 각각의 세계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전략 수행을 통제하는 컨트롤 센터는 그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주인 없는 왕궁이 자리한 세계에 존재한다.
언데드 병력이 지구로 향한 게이트 안의 휴머노이드 몬스터에게 빙의하는 작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그 안에는 어떤 몬스터들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
혼돈의 괴물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가공해서 만들어낸 몬스터는 게이트라는 현상을 통해서 정보세계와 물질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지성 없는 괴물이다.
그렇기에 지성체에서 비롯된 언데드들이 위험 없이 빙의할 수 있는 대상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일단 휴머노이드 몬스터여야 한다. 그리고 휴머노이드 몬스터라 할지라도 고등급 몬스터는 안 된다. 고등급 몬스터일수록 생명체에서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7등급 몬스터인 암흑거인의 경우 생명체라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의념으로 통제되는 에너지 덩어리라는 점에서 언데드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지성이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의식 세계를 갖고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지휘관 개체가 저등급 휴머노이드 몬스터로만 나타난 이유였다.
“자, 그러면…….”
용우는 지휘관 개체의 정신적 연결을 이용, 정보세계로 날아왔다.
앞선 두 번은 군주 개체를 통해서였지만,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었다. 지휘관 개체도 동일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종말의 군단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휘관 개체를 계속 투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깨닫지 못했다.
“군사 시설이라는 느낌은 별로 안 드는 곳이군.”
용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로 크지 않은 방이었다.
그 한복판에는 둥근 석판이 놓여 있는데 그 석판에는 갖가지 스펠이 걸려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작용하는 것은 그 위에 앉아 있는 존재다. 검은색 위로 백색의 무늬가 들어간 제복을 입은 해골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게이트 안에서 마주하고 있었던 자, 오우거의 몸에 빙의해 있는 언데드다.
용우가 방을 살펴보고 있을 때 옆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발생했다.
그리고 허공을 일그러뜨리면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으, 윽…….”
유현애였다.
용우는 정보세계에 익숙해져 있어서 진입하자마자 적응할 수 있지만 다른 팀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지구에서 제한적인 정보 공간을 만들어내서 훈련을 하기는 했지만, 이 정보세계에 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우주 비행사들이 특별한 훈련 시설에서 훈련을 하는 것과 실제로 우주에 나갔을 때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거 진짜 인식을 고정하기가 힘들어요.”
유현애가 자신의 손을 보며 말했다. 용우에게 훈련받아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전에 나서니 뜻대로 안 된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노이즈가 발생하면서 몸의 형상이 흐트러진다. 그럴 때마다 마력 소모가 발생하고, 당장에라도 이 세계 바깥으로 날아가 버릴 듯 아찔한 감각이 엄습해 왔다.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용우는 그녀를 구박하지 않았다. 물질세계의 주민에게 있어서 정보세계에 진입해서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꽤나 난이도가 높은 일이니까.
“근데 아저씨, 그 가면은 뭐예요?”
용우는 매끈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총기류는 구현 못 해도 이런 단순한 물건은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놈들을 헷갈리게 만들려고.”
“의미가 있어요, 그거?”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비연이 말하길 광휘의 데바나를 통해서 용우의 정체가 군단에 알려졌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적들이 용우를 인식하면 곧바로 군주들과 최정예 타락체들이 달려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용우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잡스러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유현애가 말했다.
“근데 역시 배틀 슈트는 구현이 안 되네요. 뭐, 알몸이 아닌 게 다행인가?”
유현애의 모습은 전투에 나서기 위한 준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캐주얼한 셔츠와 재킷, 그리고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라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러 나온 것 같다.
“…….”
“왜요?”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미리 연습을 시켜두길 잘했다 싶어서.”
연습을 안 시켜줬으면 옷을 구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여성 3인방이 알몸으로 나타난다면 정말 민망하지 않았겠는가?
치지지직…….
그때 그녀의 옆에서 노이즈가 발생했다.
그리고 잠시 후, 리사가 나타났다.
“으윽…….”
리사는 쉽게 스스로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제 괜찮아요.”
리사는 유현애보다는 늦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완벽하게 안정화에 성공했다. 그녀는 좀 신기해하면서 스스로를 살펴보았다.
“훈련 때하고 비슷한 느낌이에요.”
“네가 몽상가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군.”
리사는 훈련 때도 정보세계를 그리 낯설게 느끼지 않았다.
“아티팩트는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아?”
“해볼게요.”
유현애와 리사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붉은빛이 일어나더니 유현애의 어깨에 붉은 갑옷 파츠 같은 것이 장착되었다. 용우가 형태를 바꿔준 아티팩트 불꽃의 활이었다.
“되네요.”
씩 웃는 유현애를 보며 용우는 생각했다.
‘확실히 이 녀석은 천재야.’
첫 실전인데 여기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정보세계에서 자신을 구현하고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약간의 마력 손실이 있었을 뿐 전투를 위한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녀보다 정보세계를 친숙하게 느끼는 리사보다도 적응이 빠르다. 그것은 분명 유현애에게 분명한 기준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력이라는 기준점이.
유현애는 마력 컨트롤 감각에 있어서는 휴고나 차준혁조차 능가하는 천재성의 소유자다. 물질세계와 정보세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힘, 마력에 대한 장악력이 뛰어나기에 이토록 빠른 적응이 가능한 것이다.
“저도 됐어요.”
그에 비해 리사는 천재성은 없지만, 남들에게 없는 특이성이 있다.
그녀는 정보세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은 걸릴지언정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일단 적응하고 나자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아티팩트 빙설의 창까지 구현해 냈다.
“캡틴.”
하지만 한참 늦게 나타난 이미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난 도움이 안 될 것 같군요.”
“진입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성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으, 자괴감이 드는데요.”
이미나는 좀처럼 스스로를 안정화시키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노이즈가 발생하면서 그녀의 마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이대로 가면 5분도 못 버티고 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정상이다. 그녀는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 구축한 실력을 안정적으로 발휘하는 타입이지,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니까.
“가설이 맞았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유현애, 이미나, 리사.
용우가 선택한 세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구세록의 계약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 사람은 용우가 지닌 성좌의 무기의 계승 후보로 설정되었고, 아티팩트를 매개체로 해서 그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용우가 구세록의 계약자가 아니기에, 그들 역시 구세록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사실은 이미 차준혁과 브리짓 카르타의 협력을 받은 실험으로 입증된 바였다.
‘이제 이곳에 쳐들어오는 것도 나 혼자가 아니다.’
이미나가 전력이 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유현애와 리사가 이곳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종말의 군단에 몇 배의 출혈을 강요할 수 있게 된다.
용우가 이미나에게 말했다.
“기왕이면 마력을 좀 써보기나 하고 이탈하세요. 그냥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겁니다.”
“어디다 쓸까요?”
“벽이라도 날려 버리시죠.”
“그럼 발각되잖아요?”
“어차피 발각은 됐습니다.”
“네?”
“진짜요?”
그 말에 세 사람이 놀랐다.
“아까부터 텔레포트해서 오는 걸 막고 있던 참입니다.”
침입은 맨 처음 용우가 진입하고 나서 채 5초도 지나지 않아서 들켰다. 군사시설이라 그런지 상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용우는 적들이 텔레포트해 오려는 것을 카운터 스펠인 ‘공허문지기’로 막고 있었다. 그러자 적들이 지속적으로 텔레포트를 시도해서 용우에게 압박을 가하는 한편, 병력을 모아서 복도를 통해 접근해 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일단 문이랑 벽을 날려 버리세요.”
이미나가 그 말에 따라서 스펠을 발했다.
콰과과광……!
문이 달린 벽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이거 마력을 열 배 넘게 낭비한 것 같은데.”
안정화가 어려운 상태에서 스펠을 발하자 낭비가 장난 아니다. 이미나는 새삼 자괴감을 느꼈다.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는 전투를 치를 수 없어요. 괜히 위험을 감수하지 말고 마력 다 될 때까지 다 때려 부수고 이탈하세요.”
“그러죠.”
이미나는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쾅! 콰과과과광!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스펠을 난사해서 벽과 천장을 때려 부수고는 마력이 위험수위까지 떨어지자 곧바로 물질세계로 돌아갔다.
“리사, 현애. 이놈을 지키고 있어. 내가 말해준 기준을 넘는 놈이 나타나면 고집 부리지 말고 바로 빠지고.”
용우가 오우거 로드에 빙의하고 있는 언데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사가 물었다.
“선생님은요?”
“계획대로 한다. 놈들에게 지금까지 불법으로 즐긴 게임의 요금을 받아내야지.”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서진 벽으로 걸어 나갔다.
<너는…….>
복도로 나가는 순간, 그 앞에 검과 방패로 무장한 해골 병사 하나가 나타났다.
쾅!
그리고 나타난 지 1초도 안 되어서 용우의 주먹에 머리통이 날아갔다.
일부러 텔레포트하도록 방치한 뒤, 나오자마자 기습을 가해서 끝장낸 것이다.
<네놈은 누구냐!>
조금 멀찍한 곳에 텔레포트한 적이 물었다.
척 봐도 지휘관처럼 보이는 놈이었다. 오우거 로드에 빙의한 놈처럼 검은색 위로 백색의 무늬가 들어간 제복을 입은 해골이었다.
‘사관인가?’
그 뒤로 검과 방패로 무장한 해골 병사들이 속속 나타난다.
용우는 잠깐 그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한 걸음 내디뎠다.
<말이 안 통하는 놈이군! 일단 꿇려놓고 차분하게…….>
해골 사관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초가속해서 뛰어든 용우의 주먹이 그의 상반신을 통째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꽈과과과광……!
주먹에 실린 뇌전이 타격 순간 폭발, 확산되면서 그 자리에 모인 해골 병사들을 모조리 박살 냈다.
“왔군.”
문득 용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유현애와 리사가 있는 곳으로 적들이 텔레포트한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잘하는군. 당분간은 괜찮겠어.’
뒤쪽에서 요란한 전투의 소음이 울렸다.
셀레스티얼로 변신한 유현애와 리사가 적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공격해 오는 언데드들은 제법 강력하다. 용우가 정보세계에서 최전성기의 힘을 되찾아서 쉽게 처리했을 뿐.
해골 병사들만 해도 지구의 최정예 헌터들을 상회한다고 봐도 좋았다. 하나하나의 마력이 6등급 몬스터 이상이었고, 전원이 텔레포트 스펠을 보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의 용우 앞에서는 잡병일 뿐이다.
<이놈은 대체 뭐냐? 마력도 별 볼일 없는 주제에…….>
적들은 용우의 정체를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용우가 아까 전까지 이비연이 했던 짓을 모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마력을 낮춰서 자신의 존재감을 줄인다.
또한 마력 패턴을 바꿔서 그들의 정보에 혼선을 준다.
어비스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언데드들은 시각 정보보다도 마력 정보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그러니 마력 패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발각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용우의 입장에서는 적들이 자신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시간이 귀중하다.
쾅! 콰광!
용우는 큰 파괴력을 내기보다는 접근전으로 언데드들을 박살 내면서 밖으로 나왔다.
“호오.”
높다란 벽이 존재하는 공간에 용우에게 익숙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의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검보랏빛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나가는 가운데, 그 한복판에 새카만 옷으로 전신을 두르고, 후드 아래로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가 있었다.
<일단 죽인다. 답을 듣는 것은 그다음이다.>
어비스에서 몇 번이고 싸웠던 고위 언데드, 사령술사였다.
거대한 마력이 전개되면서, 검보랏빛 안개 속에서 무수한 그림자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데드의 진정한 무서움은 시체가 널려 있는 장소에서 발휘된다. 그리고 용우는 조금 전까지 수십에 달하는 군단의 병력을 박살 내왔다.
이미 죽은 자들이 파괴당한 잔해를 시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고위 언데드에게는 그런 것 같았다. 그는 죽은 동료들의 영혼에 싸울 몸을 부여하며 선언했다.
<네가 죽인 자들이 곧 나의 군세. 너는 원한의 힘을 뼈에 새기게 될 것이다.>
용우는 가면 속에서 환하게 웃었다.
Chapter45 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