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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용우에게서 지금까지의 경위를 다 들은 유현애가 입을 헤 벌리고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귀신 들린 창인 거죠?”
<부정할 수가 없네, 그거…….>
이비연이 뾰로통한 기색으로 말했다.
용우가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뭐, 지금 중요한 건 비연이가 사람인지 귀신인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정보 제공자라는 거야.”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너무 임팩트가 큰 일 같지만…….”
이미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데 심령 현상이 긍정된다고 해도 딱히 놀라울 일도 아니겠군요. 당장 적들도 그런 존재들이고, 구세록의 계약자들도 시신에 빙의해서 싸워왔으니…….”
생각해 보면 그들은 한참 전부터 오컬트 현상, 그중에서도 네크로맨시를 가까이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와서 귀신 들린 창에 놀라는 쪽이 더 이상하다.
“그럼 이제 종말의 군단에 대한 모든 걸 알 수 있는 겁니까?”
<모든 것까지는 아니고요.>
“음?”
<내가 타락체가 된 후로 군단에서 고위직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별명이 벙어리 공주였거든요. 다들 커뮤니케이션 대상으로 여기질 않았죠.>
아무리 전투 능력이 탁월하다 해도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구할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그녀는 전략이나 군단의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한 번도 불려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13년이나 지내다 보니까 보고 들은 건 꽤 많아요. 특히 라지알 장군이 나를 앉혀놓고 떠들어대기를 좋아해서…….>
“장군이라는 직위가 있는 건가?”
용우가 질문하자 이비연이 설명했다.
<직위라기보다는 별명에 가깝지만, 어쨌든 군주들과 동격으로 대접받는 존재야. 타락체는 군단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군단과 연합한 외인부대 같은 분위기거든. 군주들과 마찰을 빚는 적도 많았어.>
그리고 이비연은 그로 인해 발생한 분쟁에 투입되는 일이 잦았다.
몇 번의 전투로 타락체들과 언데드들 양쪽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벙어리 공주’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놈의 전투 능력은?”
<나보다 위야.>
이비연이 단언하자 모두들 신음했다.
브리짓이 경험한 이비연의 전투 능력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녀보다도 더 강하단 말인가?
<라지알은 확실히 격이 다른 존재야. 대신 군주만큼이나 큰 제약을 받고 있어. 이 세계에 나오기가 쉽지 않고, 나온다 해도 전력을 발휘하기 힘들겠지. 왕위 계승권자여서 그렇기도 한데…….>
“왕위 계승권자? 그건 또 뭐야?”
새삼 자신들이 종말의 군단에 대해서, 그리고 14년째 치르고 있는 이 전쟁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용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볼더와 싸웠을 때 왕의 길이 어쩌니 하는 소리가 있었는데…….”
<군단에는 종말의 7군주, 그리고 장군은 있지만 왕은 없지. 하지만 주인 없는 왕궁과 비어 있는 옥좌는 있어.>
종말의 군단에 왕이 존재했던 적은 없다.
따라서 왕궁도, 옥좌도 모두 과거의 누군가가 아니라 미래에 탄생할 왕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이 왕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어. 라지알의 말로는 왕이 탄생하면 군단은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해.>
“침략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그걸 위해서인가? 그 영원한 영광이라는 걸 얻기 위해서?”
<아마도. 왕위 계승권자들은 문자 그대로 왕이 될 자격을 가진 후보자들이고, 왕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어.>
“다른 세계를 침략하는 게 어떻게 영원한 영광으로 연결되는가, 그게 해답이겠군.”
<대충 짐작 가는 건 있지?>
“그래. 바로 내가… 정확히는 우리가 단서겠지.”
“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현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만이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만 생각해 보면 돼. 일단 군단은 인간의 영혼을 자원으로 쓰고 있지. 놈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지구를 침략해 오는 목적은 우리를 죽이고 영혼을 손에 넣는 거야.”
용우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어비스의 법칙은 그 안의 구성원이 죽을 때마다 죽은 자가 가졌던 것… 마력을 다루는 것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살아남은 자에게 녹아들어가서 더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내지.”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용우도, 이비연도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놈들이 수집한 영혼으로 어비스에서 우리가 겪은 일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들이 서로 싸우고 죽일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구에서 수확한 영혼을 통해서 어비스의 각성자들이 서로 죽이면서 겪은 ‘결과’만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왕위 계승권자라 불리는 존재 중 하나에게 그 과정을 몰아준다면?
“그럼 진짜 신을 자처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존재가 탄생하지 않을까?”
“확실히…….”
24만 명의 인간을 어비스에 몰아놓고 죽고 죽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서용우라는, 걸어 다니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권능의 소유자가 탄생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지구 전역으로 확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심지어 지구만도 아니지. 지구 이전에 두 개의 세계가 있었으니까.”
“그게 놈들이 말하는 ‘왕’이라는 건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놈들이 신적인 존재를 탄생시킬 방법을 갖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이 모든 일들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다는 거지. 하지만 어비스와 달리 그 일이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적용되진 않는 것 같고.”
<그건 맞아. 라지알이 군단의 전력은 제2세계 침략 때와 비교해도 별 차이 없다고 그랬으니까.>
“그래도 타락체는 더 늘어나지 않았나? 제2세계와 지구의 어비스에서 보충한 타락체보다 이때까지 죽은 타락체가 더 많은 건가?”
<아니, 타락체의 수는 확실히 증가해 왔어. 하지만 군단의 병력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
“음? 어째서지?”
용우가 의아해하자 이비연이 말했다.
<군단은 혼돈과 싸우고 있거든.>
“혼돈?”
<그들의 세계는 정보 세계잖아. 그 정보 세계는 혼돈이라 불리는 영역과 맞닿아 있어. 그리고 그 경계부터 끊임없이 세계가 잡아먹히고 있지. 그들의 세계가 지구라고 치면, 우주가 그들의 세계에 공격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서 대기권이 야금야금 깎여 나가는 그런 느낌?>
“죽어가는 세계라는 건가?”
<그래. 그 혼돈과 싸워서 침공을 위한 몬스터를 만들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나가는 자들도 있고.>
침략자들 또한 다른 무언가에게 공격받는 입장에 있다. 그것은 지구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이었다.
<군단은 영원불멸한 존재가 아니야. 자신들의 세계가 유명한 수명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지. 그들이 침략 전쟁을 벌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거야. 다른 세계의 영적 자원을 수탈하지 않으면 수명을 연장할 수 없으니까.>
* * *
팀원들에게 이비연을 소개하고, 중요한 정보를 논의하는 자리가 끝났다.
용우는 곧바로 이비연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텔레포트로 도착한 그곳은 어두컴컴한 터널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조명이 없어서 알아볼 수 없을 뿐, 그 실체는 상당히 묘하다. 천연 동굴은 아닌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제대로 된 건축 기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괴이함을 알아본 이비연이 물었다.
<여긴 어디야?>
“미국도 모르는 비밀 장소.”
<응?>
“내가 만들었어.”
용우는 남해 깊숙한 곳에 텔레포트가 아니고서는 출입이 불가능한 지하 공간을 만들었다.
반드시 용우 자신이 사흘에 한 번은 들러서 이 공간을 유지하는 스펠을 갱신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탐지도 침입도 불가능한 공간이다.
그 통로의 끝에는 돔 형태로 형성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둥근 얼음기둥 하나가 있었는데…….
<…오빠,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니야?>
그 얼음기둥 속에는 시체 하나가 있었다.
끔찍한 몰골의 시체였다. 일단 머리가 없었고, 양팔도 잘려 나간 채였다. 게다가 가슴팍에는 커다란 관통상이 존재해서 심장이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교복을 입은 소녀의 시체였다.
<화장이라도 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보존해 놓는 건 또 뭐야?>
이비연은 그것이 자신의 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었어. 일단 너를 추출하고, 머리를 날려서 죽인 직후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존해야 했으니까.”
<으음……. 오빠가 생각하는 A안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이 맞겠지?>
죽은 자신의 몸, 그것도 끔찍한 신체 훼손을 당한 시신을 본 이비연은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불쾌감과 별개로 이비연은 용우가 왜 이 시신을 보존해 놓았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확실히 머리와 심장이 파괴된 시점에서 타락체 이비연은 죽은 거지. 영혼도 확실히 추출했고.>
아무리 강력한 타락체라도 베이스가 인간인 이상 뇌가 파괴되면 죽는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신체가 죽어도 영혼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타인이 죽은 자의 신체를 고위 치료 스펠로 재생하고, 영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부활이 가능할 것이다.
어비스의 각성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만 가능했지 어비스에서는 불가능했던 건데, 오빠는 지구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했구나?>
문제는 어비스에서는 죽는 순간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서 성좌의 아바타를 불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부활을 경험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재생 그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까.”
어비스 중후반기까지 살아남은 자들에게 있어서 신체 일부를 잃는다는 것은 그렇게 절망적인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팔다리를 잃어도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후반기 생존자들은 심장이 파괴당한다 해도 죽지 않았다. 뇌가 파괴당하지만 않는다면 갖가지 방법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가 어떻게든 신체를 재생할 수 있었으니까.
<흥미롭네. 오빠가 생각하기에 성공 확률은?>
“3분의 1.”
<그 애매한 확률은 뭐야?>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어. 첫 번째는 당연히 성공할 경우고…….”
두 번째는 시신을 재생시켜 봤자 이비연의 영혼이 그 몸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경우.
세 번째는 시신을 재생시키면 타락체 이비연이 부활할 경우다.
<영혼에서 지금의 나, 인격과 기억 데이터를 추출했잖아? 타락체 이비연으로서의 부분은 소멸한 거 아니야?>
“그렇다고 보기는 하는데, 우리도 타락체라는 것의 본질을 다 파악하진 못했으니까. 그 본질이 우리가 파악한 것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면?”
<…그러지 않길 빌어야겠네.>
이비연은 자신에게 몸이 있다면 분명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우가 그녀가 든 창을 땅에다 꽂아놓고 얼음기둥으로 다가갔다.
“시작한다.”
콰지지직…….
갑자기 얼음기둥에 금이 가면서 산산이 깨져 나갔다.
그 속에 들어 있던 이비연의 시신에는 거짓말처럼 한 방울의 물도 묻어 있지 않았다. 용우는 염동력 스펠로 시신을 허공에다 고정해 둔 채로 마력을 일으켰다.
-생명의 축복!
지구상에서 오로지 용우만이 터득한, 치료 스펠의 정점에 위치한 최고위 스펠이 발동했다.
후우우우우우!
섬광이 휘몰아치면서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 같은 현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비연의 시신이 급속도로 재생한다.
잘려 나간 양팔이 빠르게 자라나고, 뜯겨 나간 심장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그 위로 새살이 돋아났다.
그리고 사라진 머리까지도 재생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세포분열이나, 인체가 지닌 치유 능력을 극대화하는 정도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이비연의 시신을 생전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자…….”
머리와 심장, 팔까지 완벽하게 재생된 이비연의 시신은 거의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머리칼까지도 용우가 기억하는 단발머리로 자라나 있다.
단 한 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면…….
<이거 성공한 것 같은데?>
눈동자가 핏빛을 띠고 있지 않았다. 약간 밝은 갈색이었다.
“최악의 사태는 피한 것 같군.”
용우가 중얼거렸다.
눈앞의 육신은 더 이상 시신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심장이 뛰면서 전신에 혈류를 공급하는 생명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눈빛은 공허했다. 아무런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이제… 마지막 작업만 남았군.”
용우가 손을 들자 이비연이 들어 있는 창이 그의 손으로 날아와서 잡혔다.
<오빠.>
그런데 그때 이비연이 물었다.
<미리 들어두고 싶은데, B안은 뭐야?>
“성공하면 알 필요 없고, 실패하면 어차피 알게 될 거야.”
<쩨쩨하게 굴지 말고. 응?>
이비연이 아양을 떨자 용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아니, 너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싶어서.”
<사람이 절망에 머리끝까지 푹 담그고 있을 때랑 그렇지 않을 때랑 성격을 비교하면 어떡해?>
“하긴 그렇군. 그래도 지금은 모르고 있는 게 좋아. 괜히 잡념만 생긴다.”
<치사하기는.>
용우는 피식 웃고는 물었다.
“이제 준비됐어?”
<응. 해버려.>
이비연이 단호히 말하자 용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푹!
텅 빈 그릇과도 같은 이비연의 육신에 그 창을 가차 없이 찔러 넣었다.
Chapter44 방심은 찔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