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38화 (138/225)

2

용우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뭐?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좋아했지? 맞지?>

“아니, 그러니까 지금 왜…….”

<말해봐.>

이비연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그렇기에 용우도 구시렁거림을 그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랬었지.”

용우는 이비연의 언니, 이하연을 좋아했다.

모두가 모두를 미워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 지옥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줬던 그 사람을, 누나라고 부를 수 있었던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날 구해준 거야?>

“난 말이지.”

용우는 이비연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로 말했다.

“사실은 지구로 온 지 아직 2년도 안 됐어.”

<뭐? 설마 그럼 그때까지 어비스에서…….>

“네가 그렇게 되고 나서 한 달도 안 걸려서 모든 게 끝나 버린 건 맞아. 다만 내가 SF에 나오는 시간 여행자 같은 처지가 됐을 뿐이지.”

용우는 이비연이 타락체가 된 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이 어떻게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고,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지구로 와서는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긴 이야기였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려 가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용우는 자신이 채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다 들은 이비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제 오빠는, 오빠가 아니네? 내가 더 나이가 많다는 거잖아!>

“…….”

하필이면 그런 결론으로 빠진단 말인가?

“어, 뭐… 살면서 체감한 시간만으로 따지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행정 데이터상으로는 내가 더 나이 많거든? 올해로 40대가 되어버렸다고. 중년이다, 중년.”

<아저씨라고 불러줄까?>

“그러든지 말든지. 이미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하나 있어.”

투덜거리던 용우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데 너도 남 말 할 처지 아니잖아? 타락체 된 다음부터는 나 만나기 전까지 계속 내면에서 잠만 잤다면서? 그럼 딱히 나이 먹었다고 하기도 그렇지 않냐?”

<난 그래도 그동안의 기억이 다 있어.>

“그래서, 꼭 30대 대접을 받아야 속이 시원하시겠다?”

<…….>

이비연의 말문이 막혔다. 용우가 의기양양해하며 물었다.

“30대 대접받을래 아니면 그냥 나이 안 먹은 걸로 치고 열아홉 살 취급받을래?”

<으으으음……!>

악마의 유혹이었다.

용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너랑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순간이 그렇게까지 먼 과거로 느껴지지 않았어.”

<그게 굳이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나를 구한 이유야?>

“누나도 널 살릴 수 있는데 죽여주길 바라진 않았을 테니까.”

이하연과의 약속은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던 때의 일이다. 언젠가 그 절망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때.

하지만 용우는 모두가 반드시 도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절망을 뛰어넘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지구에서 이비연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문득 이비연이 말했다.

<오랜만에 생각났어.>

“뭐가?”

<누군가와 웃고 떠드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거. 이렇게 시시한 이야기로 열 올린 거, 정말 오랜만이야.>

“그렇겠지. 네가 마지막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던 때 이후로 흐른 세월이 중학생 한 명분인데.”

<…그거 참 절묘한데? 너무 절묘해서 막 화나.>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시시한 화제로 열을 올리며 웃고 떠들었다.

문득 이비연이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오빠, 내가 뭘 해주면 돼?>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은 정보가 필요해. 지금 우리는 이 전쟁의 규칙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그걸로 충분해.”

<헛소리하지 말고. 오빠가 잘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이면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게 뻔히 보이는데? 나처럼 유능한 전력이 정말로 필요 없다고?>

이비연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용우가 웃었다. 그녀의 톡 쏘는 말투가 추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너 지금 자기 처지는 알고 말하는 거지?”

<어차피 다 준비해 놨을 거 아냐.>

“…….”

<오빠 성격에 안 준비해 놨을 리가 없어. 나 살리겠다고 그렇게 공들여서 준비를 했으면, 나를 이런 물건 속에다 가둬두는 걸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지. 이미 몸도 다 준비되어 있는 거 아냐?>

날카로운 추측이다. 용우는 새삼 이비연이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긴 한데 지금 당장은 아냐. A안과 B안이 있어서 둘 다 시험해 봐야 해. 일단 네가 깨어날지도 확실하지 않았으니까.”

<역시.>

“하지만 몸을 준비한다고 해도 문제는 있지.”

<내 전력이 얼마나 깎일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그래.”

<확실히 그건 전혀 장담할 수 없는 문제네. 나 완전 일반인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는 거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력으로 써먹기에는 무리일 가능성이 높지. 재활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재활을 한다 해도 전력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고.”

<그렇게 되면 슬프겠는걸. 아주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이 날 거야.>

“왜?”

용우가 묻자 이비연은 왜 그걸 모르냐는 듯 말했다.

<그야 복수는 오빠한테 다 맡겨놓고 난 뒤에서 응원만 해야 한다는 거잖아. 생각만 해도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지.>

“…….”

<왜 그런 눈으로 봐?>

“너답다 싶어서. 아니, 너답다기보다는… 우리다운 건가.”

어비스에서는 다들 그랬다. 남의 뒤에 숨어서 싸우기를 포기한 자는 중반 이후로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으니까.

<오빠.>

“왜?”

<날 살려줘서 고마워.>

“누나하고 약속을 지키자니 내 마음이 너무 찜찜하더라고. 그래서 힘 좀 썼을 뿐이야.”

<폼 잡기는.>

피식 웃은 이비연이 말했다.

<기왕 살려놨으면 끝까지 책임져 줘. 같이 복수할 수 있게 제대로 된 몸을 준비해 봐.>

“최선을 다해보지. 당분간은 그걸로 참아.”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와 함께 후지산을 떠났다.

* * *

일본 정부는 나고야 수복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팀 섀도우리스에게 계약대로 마력석 2톤과 2,000억 엔을 지불했다.

뿐만 아니다. 나고야 수복 작전의 부산물 역시 전술 시스템이 판정한 기여도에 따라서 배분해 주었는데 이 수익 또한 어지간한 대기업 분기 매출급으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적자라니.’

그럼에도 용우에게 있어서 이번 의뢰는 적자였다.

일단 일본 정부에서 받은 대가는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팀원들과 분배했다. 그리고 이비연과 싸울 때 소모한 마력석이 너무 많아서 적자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용우는 그 사실에 마음 아파하지는 않았다.

‘비연이를 구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그 결과는 감히 손익을 따질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용우는 리사와 한국에서 데려온 우희까지 셋이서 이틀 동안 교토의 근사한 찻집들을 돌아다니면서 관광을 즐기고는 귀국했다.

정체를 밝히고 활동하는 유현애와 이미나, 차준혁, 휴고는 그 후로 나흘간 이런저런 행사 초청에 응해서 일본 언론의 취재에 응해주고는 돌아왔다.

* * *

모두가 귀국한 다음 날, 용우는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나고야 수복 작전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브리짓을 포함해서 모든 멤버가 모이자 용우가 유현애에게 물었다.

“스시가 그렇게 맛있었냐?”

유현애는 계획한 대로 일본의 유명한 스시 전문점들을 즐기고 왔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들은 그녀를 대접하지 못해 안달이었기에 정상적인 루트로는 예약조차 어려운 가게들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먹으러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채팅 앱으로 실시간으로 자랑을 해댔기에 용우가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요. 끝내줬어요. 사진만 봐도 느껴지지 않아요? 내가 찍었지만 참 잘 나왔는데.”

유현애가 만면에 미소를 짓자 용우가 쳇 하고 혀를 찼다.

“그런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에요?”

“중요한 안건이 몇 있어.”

“아저씨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불안하다고요.”

“딱히 널 불안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놈의 세상이 풍전등화(風前燈火)라 어쩔 수 없군.”

“종종 생각하는 건데 역시 내 인생 최대의 실패는 이런 망할 시대에 태어나 버린 거야…….”

유현애의 투덜거림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용우가 말했다.

“이번 전투로 몇 가지 파악된 게 있지. 일단 놈들이 재해 지역을 이용하는 우회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하지만 이게 의외로 제약이 많아서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일은 아니라는 점.”

하스라가 50미터급 게이트 안에 강림했을 때, 모두가 그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이 인류의 최후가 되리라 생각했다.

군주 개체가 세상에 나와서 재해 지역에 자리 잡은 몬스터들이 일제히 인류의 주거지역을 덮치도록 통제한다면 대책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재해 지역을 이용하면서도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점.”

빙설의 하스라와 불꽃의 볼더가 용우에게 살해당했다.

그 이후로 군주 개체가 모습을 드러낸 적은 한번도 없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언제까지 위축되어 있을지는 모르겠군. 상황이 변하는 게 확실한 시점은 분명 8세대 각성자들이 탄생하는 시점이겠지.”

“그때 그 ‘몽상가’가 나타난다면 확실히 골치 아프게 되겠지요.”

브리짓이 거들자 용우가 말했다.

“그래서 그 전에 놈들을 좀 흔들어놓으려고 해.”

“흔들어놓는다니? 어떻게?”

“놈들은 방심하고 있어.”

군주들이 빙의해서 나서지만 않으면 공격받을 일이 없다.

지금까지의 움직임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빤히 보였다.

“언제나 우리가 방어하는 입장이고, 자기들은 얼마든지 때와 장소를 골라서 공격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그게 사실이잖아? 유감스럽게도.”

휴고가 말한 대로, 지금까지 인류는 한결같이 수비자의 입장을 강요받고 있었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공격자의 입장에 섰던 것은 용우가 유일했던 것이다.

“방법은 있어. 놈들의 방심을 찌르는 방법이라 한 번밖에 쓸 수 없겠지만… 뭐, 놈들에게 뜨거운 맛도 보여주고, 지금보다 한층 더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지.”

용우가 그 방법을 설명하자 다들 납득했다.

이미나가 물었다.

“확실히 캡틴은 할 수 있겠네. 하지만 우린 불가능하잖아요?”

“그 건은 실험을 좀 해볼 생각입니다. 차준혁, 브리짓, 휴고 세 사람은 안 될 게 뻔하니까 빼야겠지만.”

그 말에 세 사람이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용우가 말을 이었다.

“그것 말고도 준비한 방법이 또 있긴 한데… 그 전에 소개할 사람이 있어.”

“소개할 사람? 누구?”

다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애당초 소멸한 게이트 내부 필드, 그것도 주변이 탁 트인 높은 산 정상이다 보니 누가 문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올 일도 없다.

의아해하는 팀원들 앞에서 용우가 옆의 바위에 기대어두었던 창을 들어 앞에다 꽂으며 말했다.

“소개하지. 우리의 새로운 동료야.”

<안녕하세요.>

창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팀원들이 놀라는 가운데 단 한 사람, 브리짓의 표정만이 이상했다.

휴고가 물었다.

“브리짓? 왜 그래?”

“설마…….”

<아, 당신은 뇌전의 사슬의 주인이군요. 타이베이 때 내 목소리를 들었죠?>

“…….”

추측에 확인 사살을 날려주는 말에 브리짓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그녀는 바짝 긴장한 채 한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제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어째서 타락체 이비연이 여기에, 이런 물건을 통해서 우리한테 말을 거는 겁니까?”

“뭐? 타락체 이비연?”

“진짜예요?”

당연하게도 팀원들 모두가 경악했다.

용우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진정해. 설명은 지금부터 할 거니까.”

“…….”

“브리짓, 쓸데없이 상상력을 부풀리지 마.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어.”

“마인드 리딩이라도 쓴 겁니까?”

“그건 아니고. 뻔히 보여서 그래. 당신이 생각할 만한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지난번 전투에서 사실은 내가 비연이를 쓰러뜨린 게 아니라 그녀에게 정신을 장악당한 상태라거나, 뭐 그런 거 아니겠어?”

브리짓이 작게 신음했다. 용우의 추측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용우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