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37화 (13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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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군단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전멸이라니, 말도 안 돼…….”

라지알이 중얼거렸다.

작전 결행 후 48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번 작전을 위해 유능한 타락체 네 명이 투입되었다.

우회 전략을 실행할 작전병 역할의 두 명, 그리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통해서 아티팩트가 있는 지점에 강림할 전투 능력이 특히 출중한 두 명.

군단 사령부는 이들을 투입하면서 작전의 완전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설령 아티팩트를 회수하지 못한다 해도, 그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는 지구의 적들의 전투 능력에 대한 데이터를 파악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전투를 담당할 두 명은 모두 강력한 타락체였고, 그중에서도 벙어리 공주라 불리는 이비연은 군단의 타락체 중에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에이스 카드였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전멸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도주조차 못 하다니, 그럴 수가 있나?>

군주들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비연은 물론이고 다른 타락체 세 명도 모두 유능한 자들이었다.

그들이라면 데바나가 볼더와 함께 강림했을 때 맞닥뜨린 적들, 팀 섀도우리스의 일원들과 맞닥뜨린다 해도 충분히 몸을 빼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에 투입한 것이다.

하지만 네 명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얻은 성과라고는 만약을 대비해 투입한 지휘관 개체들을 통해서 얻은 관측 데이터밖에 없었다.

그 데이터를 군주들과 함께 살펴본 라지알이 짜증을 냈다.

“역시 도움이 안 되는 데이터군.”

군주 개체들이 그렇듯 지휘관 개체들 역시 빙의할 때는 능력이 크게 저하된다.

마력이 저하되고 스펠이 제한된다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관측병으로서의 능력도 크게 떨어진다는 소리다.

초인의 전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력과 스펠의 활용이 필수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한 번 격돌할 때마다 시야를 전부 가리는 폭발을 일으키는 자들의 싸움을 어떻게 파악하겠는가?

“관측병 노릇을 해줘야 할 놈들이 죄다 당해 버렸으니…….”

라지알은 짜증이 솟구쳤다.

작전병 역할을 맡은 두 명은,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시점부터는 관측병 역할을 수행해 줬어야 했다.

전투는 전투 능력이 출중한 두 명에게 맡기고, 그들이 싸우는 것을 관측해 줬어야 하는 것이다. 빙의로밖에 지구로 갈 수밖에 없는 언데드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관측 도구도 있었고, 출중한 관측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빙의한 육체가 죽어도 괜찮은 언데드와 달리 타락체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면 관측 데이터를 전해줄 수가 없다.

지휘관 개체들은 나고야 폐허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는 아예 제대로 된 관측을 하지도 못했다.

게이트 브레이크 후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팀 섀도우리스는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 시점에서 지휘관 개체를 찾아서 죽여 버렸다. 그들 전원이 지휘관 개체를 탐지하는 스펠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의 정보 수집 수단을 처리한 후에야 나고야 돔에 집결해서 작전병 역할의 타락체를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비연을 처리한 서용우가 나고야로 돌아오자, 그들 전원이 40미터급 게이트로 진입했다.

그들이 진입하고 나서 30초 만에 지휘관 개체들이 살해당했다.

그래서 군단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게이트 브레이크도 일어나지 않았고, 타락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뻔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비연이가 당하다니…….”

라지알은 그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비연은 설령 군주의 분노를 산다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다. 군단의 일원이 된 초창기에 그 사실을 증명한 바 있었다.

예전에 라지알과 불꽃의 볼더 사이에 정치적 마찰이 생겨서 결국 무력 분쟁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라지알의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사자로 세 명의 타락체가 파견되었고, 이비연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사실상 볼더에게 바치는 제물이나 다름없었다. 라지알도 자기 휘하에서 통제가 안 되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자들 중에 선택했고,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셋 중 이비연만은 격노한 볼더의 손에서 살아남아서 귀환했다.

라지알이 이비연에게 흥미와 애착을 느낀 것도 그때부터였다.

<유감스럽지만 이렇게 된 이상… 당분간은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겠군.>

하스라와 볼더가 당한 시점에서 군주들은 조심스러워졌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명도 전선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우회 전략이 가능해졌으니 그걸 이용한 거점 만들기에 집중하지.>

<우리가 나서지 않는 이상 놈들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의 균형을 유지한 채로 여덟 번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몽상가를 쓸 수 있게 되는 시점부터 반격한다. 그때부터는 판도를 바꿀 수 있어.>

미지의 위협 앞에서 종말의 군단은 소극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로 괜찮을까?’

단 한 명, 라지알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비연이가 당했다. 놈들은 비연이를 도주조차 못하게 붙잡아놓고 죽일 능력이 있다는 뜻. 그런데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건가?’

그 역시도 군단이 받는 제약 때문에 손발이 묶인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한 방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

* * *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살아온 인생의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보게 된다고 한다.

이비연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긴 꿈을 꾸듯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스스로 기억해 내고자 하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 예를 들면 말도 못하는 아기였을 때의 기억에서부터 서용우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그녀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빠르게 눈앞을 지나갔다.

그 기억들은 마치 타인의 기록을 보는 것처럼 낯설면서도 묘하게 생생했다. 하지만 눈앞을 지나간 기억 중에 인상 깊은 것이 있어 돌아보려고 하면 그때는 저 멀리 사라진 후라서, 이 파노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그러했듯이 흐릿한 망각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좋은 꿈 꿔라.’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용우의 속삭임이었다.

자신을 살해하는 사람의 말에 담긴 상냥함이 가슴 아파서, 이비연은 쓰게 웃으면서 생각했다.

이건 과연 좋은 꿈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꿈이 끝났다.

* * *

일본 최고봉, 후지산 정상의 밤바람은 얼어붙을 듯 싸늘했다.

적어도 얇은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있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용우는 추위를 개의치 않고 밤의 운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한 거냐니까?>

그 옆에 꽂혀 있는 투명한 창에서 이비연의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용우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역시 보고 듣는 건 되는 모양이네. 시각이랑 청각은 기능하는 건가?”

<확실히 보고 듣는 건 되는데 후각, 촉각, 미각은 없어. 아니, 근데 내 말에 대답을 해줘야지!>

이비연이 빽 소리를 지르자 용우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 창은 볼더를 죽이고 획득한 전리품이야.”

<볼더?>

“만 단위의 영혼을 담을 수 있더군. 원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걸 얻는 순간 다 필요 없어졌어.”

<그러니까… 내 영혼을 여기다 담은 거라고?>

“비슷해.”

<비슷하다니?>

혼란스러워하는 이비연에게 용우가 설명했다.

“넌 타락체가 되었으면서도 인간일 적의 인격을 유지하고 있었지. 난 그게 일종의 이중인격 상태라고 봤어.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어떤 것인지, 그런 정신 분석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대체로 이중인격이라고 하면 어느 한쪽 인격이 주도권을 갖는 경우가 많잖아?”

<…보통 그렇긴 한데, 현실에 적용하려면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진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해결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뉘앙스로 이해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였으니까 상관없지.”

<말이나 못하면…….>

“지구로 돌아온 후로는 그런 소리를 자주 듣고 있지.”

피식 웃은 용우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정의한 ‘영혼’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축적한 기억과 의념으로 구성된 일종의 정신체였어. 그럼 네 영혼은 어떨까? 과연 인간 이비연의 영혼과 타락체 이비연의 영혼, 두 개의 영혼이 한 몸에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

이비연은 용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과연 이비연의 영혼은 두 개였을까?

“굳이 내가 어려운 싸움을 한 건… 뭐, 안 그랬어도 어려웠겠지만, 위험 부담을 크게 지는 길을 간 건 그걸 파악하는 과정이기도 했어.”

용우가 소멸한 90미터급 게이트 내부 필드에 준비해 둔 것은 이비연을 잡기 위한 함정만이 아니었다.

전투 중에는 진행하기 어려운 것, 이비연에 대한 관측과 분석을 위한 지속성 스펠을 장치해 두었던 것이다.

“분석 결과는… 내가 예상한 대로 네 영혼은 하나였지.”

그렇다면 영혼을 다른 그릇으로 옮겨봤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래 내가 추진하던 계획은, 인격 데이터를 옮길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거였어. 알아보니 인공지능 연구 중에서 비슷한 게 있었거든.”

권희수 박사의 능력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추진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볼더에게서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창을 빼앗는 순간, 그 연구는 불필요해졌다.

“그 정도로 많은 영혼을 담아서 그들의 의지를 통합할 수 있는 힘이 깃든 장치야. 하나의 인격을 재생하는 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지.”

권희수 박사도 용우의 협력을 받아가면서 볼더의 창을 분석해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한 첨단 하드웨어 기술을 비웃는 엄청난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용우의 요구 사항을 해결해 주었다.

볼더의 창의 기능을 조정해서 용우가 지정한 인격 데이터만을 추출해서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의외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분신을 만들어내는 능력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용우라고 해도 머리가 두 개는 아니다. 고속으로 사고할 수는 있지만 동시적으로 사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분신을 만들어서 원격조종할 때는 본신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위 스펠에 의해 형성된 분신체는 독립성을 부여받는다.

제한된 시간 동안만 활동하는 일종의 복제체가 되는 것이다. 용우가 전투에서 애용하는 분신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 난… 진짜 이비연이 아니라 복제된 거야?>

이비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 복제되었을 뿐인 가짜인지를 묻는 것이다.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생각은 했지만… 다행히 준비한 게 성공했어.”

용우는 이비연의 영혼에서 인격 데이터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추출’했다.

“분석해 본 결과, 인간 이비연과 타락체 이비연은 공유하는 영역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영역도 있었지.”

이 부분부터는 용우도 확실히 파악한 것이 아니라 추측할 뿐이지만, 아마도 객관적인 기억 데이터 자체는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몽환포영(夢幻泡影)으로 정보 세계를 형성해서 내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 ‘인간 이비연’의 부분만이 꿈을 꾸라는 명령에 반응하도록.”

몽환포영은 정교하게 세공된 텔레파시로 상대에게 너무나도 리얼한 환각을 제공하는 스펠이다.

하지만 이 스펠의 위력은 단순히 텔레파시로 상대를 속여 넘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지정된 영역에 정보 세계를 구현해서 사용자가 의도한 법칙을 강제하는 힘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혼돈, 확률적인 문제가 자신에게 무조건 유리하게 적용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공간 속에서는 주사위를 던지면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숫자만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부터는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도박이었어.”

과연 영혼을 찢어서 원하는 부분만 추출한다고 해서 인간 이비연을 구할 수 있는 것일까?

“사고 능력을 가진 자아가 없는 기억은 그저 데이터일 뿐이지.”

용우는 이비연의 의식이 깨어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제부터 이비연의 영혼을 복원할 방법을 연구할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지.”

<…….>

용우의 말에 이비연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용우도 그녀의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이비연이 말했다.

<오빠.>

“말해.”

<우리 언니 좋아했지?>

순간 용우는 사레가 들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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