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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36화 (13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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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연은 희망을 영영 잃어버렸던 날을 기억한다.

어비스는 지옥이었다. 그곳에서 보낸 나날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에 있는 동안, 이비연의 마음 한구석에는 먼지처럼 하찮은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믿음 따위는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해피엔딩이 기다릴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즐거운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죽이고, 죽고, 죽이고, 죽고…….

그런 끔찍한 일들만 계속되는 시간 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어깨를 맞단 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기적이었다.

어비스는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라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세계였으니까.

불신과 증오를 강요하는 세계 속에서, 서로의 앞에서 무방비하게 잠들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까?

‘다들 무서웠던 거야.’

그리고 그 기적의 뿌리는 두려움이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누구하고도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들은 자신의 죽음보다도 고독함을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고독함을 치유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줄 수 있었다.

‘거기서 죽었어야 했어.’

타락체가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그런 운명에 사로잡혔음을 깨달았을 때, 이비연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바랐다.

누구든 좋으니까 자신을 죽여주기를.

인간 이비연으로 죽을 수 있게 해주기를.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는 살아남았다. 심지어 인간 이비연의 인격조차 끈질기게 살아남고 말았다.

그리고 한 점의 희망조차 없는 지옥이 시작되었다.

차라리 다른 타락체처럼 인격이 완전히 표백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지도 못하고 육체의 주인으로서의 자격만을 상실해 버렸다.

그녀는 그저 육체의 감각으로 세계를 살필 뿐, 직접 관여할 수 없는 관찰자로 전락했다.

내면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이비연은 견디기 어려운 진실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지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워했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선택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비연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자 노력했다. 영원히 내면에서 잠들어 있고 싶었다.

그날 서용우와 13년 만에 재회하지 않았더라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용우 오빠가 살아 있었어.’

그와 재회하는 순간, 마음속 깊숙한 곳에 가라앉았던 이비연의 의식이 깨어나 현실을 바라보았다.

‘오빠라면 나를 죽여줄 수 있을 거야.’

일그러진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세상에서 이비연의 전투 능력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을 한 명만 꼽으라면, 그건 분명 서용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용우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비연은 얼마나 변했을 것인가?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용우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왔다.

이 전장도, 땅에 매설해 두었던 전술급 레이저 수소폭탄도, 그리고 강력한 저주의 올가미도 모두…….

이비연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강해졌을 경우를 상정하고 준비한 것이다.

투학!

이비연이 자신의 멱살을 쥔 용우의 손을 뿌리쳤다.

우우우우우우우!

하지만 곧 그녀는 그것이 실수임을 깨달았다.

멀어지는 용우의 마력이 폭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마력을 더 상승시킬 수 있었어?’

이비연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현대 병기와 달리 M-링크 시스템만은 규격을 초월한 용우의 힘에 망가지지 않는다. 이미 발산된 마력을 증폭시켜서 최종적인 출력을 높이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권 박사, 당신은 최고야.’

이 순간 용우는 이비연을 완전히 압도하는 출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길어봐야 2분.’

그동안 버전 업된 M-링크 시스템은 세밀한 출력 조정이 가능해졌다.

보다 저출력으로, 길게 작동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 반대로 보다 고출력으로 짧게 작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연히 용우는 고출력 모드로 승부를 걸었다.

꽈아앙!

섬전처럼 달려든 용우의 검격이 이비연을 강타했다.

이비연이 포탄처럼 튕겨 나가는 가운데, 용우가 양손 대검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광휘의 세계수는 확실히 귀찮지.”

용우는 이곳을 전장으로 삼는 순간, 이비연이 광휘의 세계수를 결전용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가 비연이 네가 저거 쓸 줄 몰랐을 것 같아?”

그렇기에 그것을 봉쇄할 준비도 해뒀다. 그저 드넓은 전장 곳곳에 흩어서 설치해 둔 것들을 발동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바다 깊숙한 곳이 빛을 발하더니 거대한 빛기둥들이 분출되었다.

쿠과과과과!

특정한 세팅을 해둔 마력석 더미들이 연소하면서 초고밀도의 마력 광선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 광선들이 빛의 결계를 뚫고 그 너머에서 기다리는 무언가에게로 집결했다.

“저건……?”

놀라는 이비연의 시야에는 빛의 결계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이 보이고 있었다.

지구로 치면 성층권에 해당하는 고도를 거대하고 새카만 도끼 한 자루가 날고 있었다.

성좌의 무기, 굉음의 도끼였다.

마력석이 분출한 광선이 굉음의 도끼에 집결하자 용우가 미리 장전해 둔 스펠을 발했다.

-봉인(封印)!

굉음의 도끼를 중심축으로 삼아 발동한 봉인 스펠이 하늘을 집어삼켰다.

……!

일순간에 하늘을 가득 채웠던 거대한 빛무리가 소멸했다.

“하…….”

이비연이 어이가 없어서 입을 뻐끔거렸다.

9등급 몬스터를 포함한 몬스터 대군조차도 학살할 수 있는 거대한 힘.

그녀의 결전 병기라고 할 수 있는 스펠이 한순간에 무력화된 것이다.

심지어 그 봉인은 타깃 지정형이다.

이비연은 몇 번이고 다시 광휘의 세계수를 펼칠 수 있지만, 펼치는 족족 저 봉인에 집어삼켜질 것이다.

이것은 즉시성 스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우는 정말로 이비연을 잡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마친 것이다.

“아하하하하!”

이비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실을 깨닫자 방금 전까지의 비통함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았다.

이걸로 승패의 저울추는 다시금 용우에게 기울었다.

그리고 용우의 철두철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죄인의 자리!

드넓은 전장 곳곳에서 투명한 사슬 수십 개가 날아들어 이비연을 결박했다.

역시 대량의 마력석을 투입해서 준비한 저주였다.

전장 곳곳에 박혀 있는 저주의 쐐기가 이비연의 움직임과 마력 컨트롤을 둔화시킨다.

이비연의 눈이 빛났다.

‘드디어…….’

이 절망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이비연의 육체가 발버둥 친다. 몰아치는 용우의 맹공을 받아내면서 어떻게든 활로를 찾으려 한다.

그것은 집념이 아니었다. 감정이 거세된 존재가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발버둥 치는, 열기라고는 전혀 없는 차가운 처절함이었다.

파악!

이비연의 양팔이 잘려 나갔다.

팍! 파박!

용우가 날린 단검이 이비연의 몸통과 허벅지에 꽂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머리가 용우의 왼손에 붙잡힌 이비연이 그대로 대지에 내리꽂혔다.

“…….”

용우는 이비연을 제압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폭음이 잦아드는 가운데,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야?”

이비연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왜 이러는 거야?”

용우에게는 살의가 없다.

옛정 때문에 마음이 흔들려서 망설이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이비연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

이비연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혼란스러워했다.

“난 타락체야.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 따위 없어. 날 봉인하고 시간을 벌어봤자 마찬가지야. 이미 군단에서는 타락체에 대한 연구가 끝난…….”

“난 세상을 구할 거야.”

문득 용우가 말했다.

말이 잘린 이비연이 그의 말을 기다렸다.

“지구 인류 전부를 빚쟁이로 만들 생각이지. 그러니까 이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다.”

“뭘?”

“알게 될 거야.”

용우가 아공간에서 뭔가를 소환해서 쥐었다. 그것은 투명한 빛을 발하는 창이었다.

“좋은 꿈 꿔라.”

용우는 그 창으로 이비연의 심장을 꿰뚫으며 속삭였다.

‘아.’

이비연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파괴당하면서 급격하게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죽는구나.’

이비연은 그 사실에 미소 지으며 어둠에 녹아들었다.

* * *

나고야 수복 작전이 끝났다.

그 결과는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고야 시내에서 8등급 몬스터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40미터급 게이트와 45미터급 게이트가 동시에 열렸고, 그중 하나는 결국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작전 데이터 대부분은 기밀로 감춰졌지만, 대략적인 사항들은 일본 언론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피해 없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난리도 아니군.”

차준혁이 창문으로 호텔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첫날 작전이 끝난 후, 팀 섀도우리스가 머무는 호텔 주변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언론만이 아니라 수많은 일본 국민들이 모여서 오늘의 성과에 대한 찬사와 감사를 보낸다. 호텔의 고층 스위트룸에 있는데도 그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차준혁은 그 사실에 기뻐하지 않았다.

“불안해?”

용우의 물음에 차준혁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불안해.”

“뭐가 불안하지?”

“우리한테 쏟아지는 관심은 언제든지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지. 넌 그래서 정체를 감추고 사는 건가?”

“난 그냥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 자체가 싫어.”

용우는 딱 잘라서 말했다. 그런 마음은 지구로 귀환한 후로 지금까지 한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런 것치고는 코드네임 제로니 뭐니 하는 것부터가…….”

“그건 백 사장님 센스였다. 내가 정한 거 아냐.”

“그랬나.”

차준혁이 피식 웃더니 음료수 캔을 땄다. 그리고 탄산음료를 홀짝거리더니 말했다.

“우리가 능력을 과시하면 과시할수록… 우리에게 의존하기도 하겠지만, 왜 이 힘을 공유하지 않느냐는 비난도 쏟아지겠지.”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래서 그런 헐렁한 핑계를 마련해 둔 거고.”

“힘을 내놓으라고 하는 놈들한테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말 따위는 안 먹히겠지. 테러 걱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네 일이지 내 일 아니라는 태도가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캡틴?”

차준혁의 투덜거림에 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 마.”

“안 할 수가 있나?”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우리를 상대로는 안전한 곳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진리를 알려주면 그만이니까.”

“…….”

“우리를 툭 건드릴 때마다 실행한 놈은 물론이고 관여한 놈 전부,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명령권자에 이르기까지 조직 전부가 증발한다. 그런 일이 두 번만 반복되어도 죄다 찌그러질걸.”

이미 용우는 팬텀이라는 글로벌한 범죄 조직을 상대로 그 진리를 실천해 보인 바 있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차준혁에게 피식 웃어준 용우가 몸을 일으켰다. 차준혁이 물었다.

“어디 가려고?”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오려고.”

차준혁은 바깥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쩔 거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밖에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었으니까.

용우는 그대로 텔레포트해서 사라졌다.

“보복이라…….”

혼자 남은 차준혁은 용우의 말을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 * *

“절경이군.”

용우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로는 아무도 등반하지 못한 곳, 후지산 정상에서 지상을 굽어보며 말했다.

밤이라 끝없이 펼쳐진 운해가 달빛에 꿈틀거리며 흐르는 광경은 이 세상의 풍경이라기보다는 신화의 일부처럼 아름다웠다.

“어때? 너도 보여?”

용우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곳에는 한 자루 창이 꽂혀 있었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진 창이다. 창에다 대고 다정하게 말을 걸다니 미친놈이나 할 법한 짓이었지만…….

<…오빠, 도대체 뭘 한 거야?>

얼떨떨해하는 이비연의 목소리가 텔레파시로 들려왔다.

Chapter43 꿈에서 깨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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