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33화 (13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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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상아인 타락체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완벽한 기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용우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막아낸 것이다.

쾅!

게다가 그걸로 끝나지도 않았다. 검을 붙잡은 채로 그를 끌어당겨서 복부에 일격을 가했다.

“큭……!”

그러나 상아인 타락체도 결코 잡병이 아니었다. 본신 마력은 7등급 몬스터 수준이었고, 용우를 기습한 휘어진 검은 아티팩트보다는 못해도 상당한 마력 증폭 효과를 갖고 있어서 거의 8등급 몬스터에 준하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그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말했다.

“…기왕 온 김에 열쇠까지 내가 처리하려고 했는데, 역시 호락호락하진 않군.”

“너 같은 상아인 타입을 초월권족이라고 하나?”

용우는 칠흑의 양손 대검을 소환해서 쥐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상아인이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그렇다. 세계의 형상을 뜻대로 조각하는 힘을 가진 종족이었지.”

말의 내용만 보면 자신이 초월권족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자부심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상아인의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없어서 그저 과거의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타락체니까.

스스로의 태생에 대한 자부심은 타락체가 되는 과정에서 깨끗하게 지워졌을 것이다. 지금의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과거에 그런 존재였다는 기억뿐이리라.

“그만한 힘이 있었는데도 종말의 군단에 패한 건가?”

“패배하지는 않았다.”

“음?”

“네가 알아봤자 의미 없는 일. 제3세계의 인간, 열쇠를 내놓으면 이 자리에서는 살려주마.”

그 말에 용우가 날카롭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둘이 격돌했다.

쾅!

초음속으로 부딪친 지점에서 뒤늦게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하, 훌륭하군.”

상아인 타락체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의 검이 두 동강 나고, 심장부터 복부까지 몸통이 깊숙이 베어져 있었다.

“이런 힘을 가졌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얼음처럼 차가울 수 있는가…….”

상아인은 치명타를 맞은 후에야 자신이 용우의 속임수에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서 쥔 칠흑의 양손 대검은 형상변화 스펠로 모습을 바꾼 성좌의 무기 빙설의 창이었던 것이다.

소환해서 쥔 후에 의도적으로 마력을 억눌러 두었기에 알아볼 수 없었을 뿐이다. 용우의 힘이 사실은 자신을 월등히 상회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부딪쳤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혹시 네가…….”

상아인 타락체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용우가 무심하게 검을 휘둘러서 그의 목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이놈들 이런 짓도 할 수 있었나.”

용우가 짜증을 내며 전술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곧 차분하게 사태 파악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왔군.”

지금의 용우조차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이 날뛰는 혼돈의 한복판, 교복을 입은 붉은 눈동자의 소녀가 단발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타락체 이비연이었다.

* * *

종말의 군단은 어떻게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켰는가?

그 답은 바로 우회 전략이었다.

그것은 본래 일곱 번째 문이 열린 지금 시기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전략이다.

하지만 서용우가 구세록의 계약자들을 죽이고, 본인은 계약에 구속되지 않음으로써 제약이 느슨해졌다.

그 결과 종말의 군단은 몇 가지 이득을 얻게 되었는데…….

하나는 이미 아티팩트들을 노릴 때 보여주었던 대로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게이트를 출현시키는 게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군단의 탐지 능력자가 지구를 엿보는 게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지구를 실시간 관측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아티팩트 보유자나 성좌의 무기 보유자의 위치를 포착할 수는 있게 되었다.

다만 이런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종말의 군단은 침략 대상이 되는 세계에 게이트를 발생시킬 때마다 자원을 소모한다.

랜덤하게 발생하는 자연 발생 게이트의 경우는 그리 많은 자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게이트를 출현시키려면 자연 발생 게이트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게다가 그런 게이트는 정확도가 형편없었다. 지구본을 돌리다가 손가락으로 원하는 도시를 짚는 격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지점에서 수십 킬로미터, 삐끗하면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능한 타락체들을 투입했다.

일단 재해 지역 중에서도 광활한 곳에 게이트를 출현시키고, 그 안에 타락체들을 보냈다. 각자에게 지정하는 좌표에 게이트를 발생시킬 권리를 쥐어준 채로.

인류의 방위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수시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당연히 타락체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지구로 나올 수 있었다.

지구로 나온 그들은 곧바로 5등급 코어 몬스터들을 제압해서 확보하고는 일본의 나고야로 향했다. 그리고 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은신한 채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타이밍에 자신들이 지정한 좌표로 게이트를 출현시키고, 확보한 코어 몬스터를 해방해서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것이다.

* * *

한때는 일본 중부지방의 심장부로 불렸던 대도시, 나고야의 폐허에 혼돈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과거에 수많은 관객들이 야구 경기나 가수의 콘서트에 열광했던 나고야 돔.

하지만 지금은 폐허의 일부일 뿐이다. 돔 지붕도 반이 부서져 나갔고 객석 한편도 터져 나가서 훤히 뚫려 있었다.

“…….”

괴물들이 수두룩한 그 장소를 한 사람이 말없이 걷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주변에는 괴물들이 날뛰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의 소녀가 무심한 얼굴로 천천히 걷고 있다. 하지만 괴물들은 마치 소녀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그녀를 피해가고 있었다.

“벙어리 공주.”

그때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의 소녀, 타락체 이비연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이계의 언어로 그녀의 별명을 부르는 것은 검푸른 암석을 울퉁불퉁하게 깎아놓은 것 같은 피부를 지닌 존재, 암석인이었다.

“나온 게 너라니 잘됐군.”

그는 이비연이 있는 게이트를 발생시키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타락체였다.

이비연은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종말의 군단의 타락체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력함을 자랑하는 자.

그런 그녀가 광휘의 데바나의 화신조차 쉽게 제압한 적들에게서 아티팩트를 탈환할 수 있도록, 군단은 상당한 자원을 투자해 주었다. 그래서 이비연은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길고 자유로운 활동 시간을 보장받은 상태였다.

“네게는 무의미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방심하지 마라. 저쪽을 담당했던 놈은 실패하고, 죽었다.”

암석인은 자신과 함께 작전 실행을 맡은 상아인 타락체가 용우에게 쓰러진 것을 감지했다.

“…….”

이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몸을 돌려서 돔 밖으로 향할 뿐이었다.

“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암석인이 움찔했다.

그녀가 향하는 저편에서 선명한 마력 파동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딱히 위압적인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뭐지, 이건?’

그가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꽈광!

나고야 돔의 지붕을 뚫고 날아든 섬광이 그를 강타했다.

저격이었다. 암석인이 정체 불명의 마력 파동에 시선을 빼앗기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든.

“으윽, 어떤 놈이…….”

상시 전개되어 있는 허공장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암석인이 고개를 들었다.

콰아아아앙!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하더니 그를 집어삼켰다.

뿐만 아니다.

-염동폭렬탄(念動爆裂彈) 동시다발(同時多發)!

수십 발의 에너지탄이 주변을 무차별 폭격하고 있었다.

콰콰쾅! 콰콰콰콰쾅!

관통력보다는 폭발력을 중시한 에너지탄들이 연거푸 터지면서, 나고야 돔 폐허에 우글거리는 몬스터들이 쓸려 나갔다.

“크윽!”

무차별 폭발 속에서 암석인이 솟구쳤다.

텔레포트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했지만 폭격과 동시에 안티 텔레포트 필드가 펼쳐져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필드 디스펠…….

암석인이 안티 텔레포트 필드의 중심축을 파악하고 필드를 깨려는 순간이었다.

-염동뇌격탄!

극초음속으로 날아든 에너지탄이 그를 강타했다.

“제기랄!”

방어막을 전개해서 그것을 막은 암석인이 짜증을 냈다.

대지에 내려선 그의 눈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셀레스티얼로 변신한 휴고 스미스였다. 그의 팔에 감긴 뇌전의 사슬을 보며 암석인이 붉은 눈동자를 빛냈다.

“열쇠인가? 그걸 믿고 시건방진 짓을 한 거냐?”

암석인이 으르렁거리는 말은 이계의 언어였지만, 텔레파시를 전개 중이었기에 휴고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휴고가 같잖다는 듯 뇌전의 사슬을 풀어내며 말했다.

<온 김에 지구에 뼈를 묻게 해주마, 돌덩어리.>

“주제 파악을 못…….”

쾅!

하지만 암석인은 이번에도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또다시 날아든 저격이 그를 쳐서 날렸기 때문이다.

“한 놈이 아니었나!”

짜증을 내는 암석인 앞에 이미나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암석인도 공격을 막아내고 스펠을 연타해서 이미나를 뿌리쳤다.

“으음……!”

암석인이 침음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입장에서는 휴고와 이미나만으로도 난적이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강한 마력을 지닌 차준혁까지 다른 방향을 점하고 있었다.

“네놈들이 광휘의 군주의 화신을 막은 놈들이군.”

이미 종말의 군단은 광휘의 데바나를 통해서 팀 섀도우리스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렇기에 차준혁도 굳이 자신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그리고 너도 우리 손에 죽는다.>

“…….”

암석인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 * *

이비연의 등장을 알아차린 순간, 용우는 마력 파동을 넓게 흩뿌렸다.

그것은 부름이었다.

‘비연아, 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비연은 그 부름에 응했다.

나고야 중심가의 명물이었던 선샤인 사카에 빌딩.

이 건물은 도심 한복판에서 관람차를 탈 수 있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빌딩은 반쯤 부서져서 주저앉았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관람차는 녹이 슬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기울어진 관람차 꼭대기에서 두 사람이 마주했다.

검을 든 남녀였다.

한 사람은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미래적인 디자인의 배틀 슈트를 입고 칠흑의 양손 대검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또 한 사람은 교복을 입고 서양식 장검을 들고 있는 소녀였다.

지독히도 이질적인 광경이다.

“오빠.”

방금 전까지의 무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비연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가 열쇠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다른 열쇠 보유자를 덮쳤을 거야.”

“아티팩트를 목적으로 투입된 거군.”

“응.”

용우는 아티팩트를 소환해 두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비연이 자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동료들을 덮쳤다면, 한두 명 정도는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지난번하고는 전혀 다를 테니까.”

이비연이 최선을 다해서 육체의 움직임을 억누르면서 경고했다.

“지난번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싸우면… 순식간에 죽을 거야.”

“얼마나 다르지?”

“그때의 나는 주어진 활동 시간도 짧았고, 마력 제한도 걸려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마력 제한이 풀려 있고 무기도 사용 허가가 나와 있어.”

“…그 부분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제약이 걸려 있었나.”

용우는 이비연과의 전투를 수도 없이 반추하면서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비연의 본신 마력은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약한 수준까지만 발휘되었고, 끝까지 검을 쓰지 않은 것도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이비연의 설명으로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 검은 열쇠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어비스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너는 어떻지?”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

“그건 의외군.”

“타락체로서의 나는 인간성이 없는 존재거든. 군단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존재로 알려져 있어. 당연히 향상심도 없지.”

“그래서 지난번의 정보가 놈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건가?”

“맞아. 다행이었지?”

“정말 그랬지.”

용우는 이비연의 인격이 육체를 억제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아내고자 하고 있었다. 이비연 또한 용우의 승산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주기 위해서 빠르게 대답한다.

“전투 시의 버릇이나 성향도 다르지 않아. 그때까지 익힌 것만을 합리적으로 발휘해서 싸우는 나. 그게 오빠가 싸울 타락체야.”

“그렇군.”

“그럼…….”

이비연이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죽지 마, 오빠.”

그 말을 신호로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Chapter42 피와 살로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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