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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록의 계약자가 서용우보다 앞서는 점이라면 바로 관측 능력이다.
구세록이 제공하는 관측 능력은 게이트와 몬스터가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든지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적나라하군.”
사다모토 아키라는 오사카의 맨션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도 나고야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놈들이 손을 썼을 거야.”
실내인데도 코트를 입고 후드까지 눌러쓰고 있는 소년이 대답했다.
“하지만 40미터급과 45미터급이라니, 8등급 몬스터를 쉽게 상대하는 자들 상대로는 별 의미가 없을 텐데…….”
“노림수까지는 알 수 없지. 직접 가서 알아보든가.”
사다모토 아키라는 의식을 정보 공간에 둔 채로 고민했다.
“아니, 이번에는 지켜볼 거다.”
“저들의 능력은 너보다 훨씬 뛰어나. 이제 더 이상 네가 쓸모없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은 소년의 말에 사다모토 아키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퍼스트 카타스트로피로부터 14년.
인류는 게이트 재해를 대하는 것에 능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게이트가 발생하면 곧바로 탐지할 수는 있어도, 어디에 어떤 게이트가 출현할지 예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작전 중에 작전 지역에 게이트가 발생할 확률은 희박하나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천문학적인 불운이었다.
심지어 8등급 몬스터 공략을 앞둔 상황에서 가까운 지점에 40미터급, 45미터급 두 개의 게이트가 출현하다니, 이건 복권 당첨보다도 희박한 확률이 아닐까?
[고지가 코앞이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아직 포기하지 마! 게이트 브레이크부터 막는다!]
[제기랄! 너무 가깝습니다!]
서포터들이 절규했다.
가깝다. 모든 것이 너무 가깝다.
당장 게이트가 출현한 사카에 역 포인트와 나고야 돔 포인트는 직선거리로는 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4킬로는 인간이 도보로 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지만, 8등급 몬스터와의 전투 상황에서는 전혀 먼 거리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8등급 몬스터들은 각각 이 게이트에서 340미터와 500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당연하지만 8등급 몬스터들은 게이트 안에 있을 때는 코어 몬스터였던 존재들이다. 그 특성은 지금도 건재하기 때문에, 이들이 게이트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다!
[드론의 탄이 떨어졌습니다! 젠장, 전혀 돌아보지 않아요!]
[드론으로 들이받기라도 해봐!]
[무인 전차!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
게이트가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에 있다. 8등급 몬스터들은 무인 병기들의 공격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고 게이트로 향하고 있었다.
“지휘부.”
그때 무전으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격 중지를 요청한다. 포격을 멈추고, 무인 병기도 전부 물리도록.”
음성 변조기를 통해서 나오는 용우의 목소리였다.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긴급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겠지? 이제부터는 우리가 한다.”
[뭐라고?]
“우리가 8등급을 막는다. 게이트의 상황을 파악해. 조짐도 없이 열렸으니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팀원들에게 텔레파시로 말했다.
<간다. 안 되겠다 싶으면 변신해도 상관없어.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지.>
<좋았어!>
휴고가 흥분해서 외쳤다. 지금까지 그들은 아티팩트를 소환한 채로 싸우고 있었다. 용우가 형상변화로 모습을 바꿔주었기에 그들 말고는 아무도 아티팩트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우연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하다면… 필연이겠지.”
용우는 이 사태가 천문학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보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농간이다. 아마도 종말의 군단의 노림수이리라.
‘왜 굳이 이 타이밍을 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용우는 엎드려쏴 자세로 대(對)몬스터 저격총 제우스의 뇌격을 겨누었다.
그 역시 아티팩트를 쓰고 있었다. 형상변화로 팔 보호대 형태로 만든 새벽의 해머였다.
우우우우!
용우의 마력은 아직도 꾸준히 회복 중이라 이미 페이즈24에 도달했다. 거기에 아티팩트의 증폭 능력을 쓰자 출력이 현저히 높아진다.
-워 드레스!
그리고 푸른 불길이 몸을 휘감자 용우의 마력이 8등급 몬스터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사냥꾼의 축복 3연쇄!
빛의 고리 세 개가 총구 앞에 나란히 배치되었다.
-염동뇌격탄!
용우가 방아쇠를 당기자 청백색 에너지탄이 극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갔다.
꽈아아앙!
용우가 노린 것은 40미터급 게이트를 향해 접근하던 8등급 몬스터, 은갑옷거북이었다.
정체불명의 외계 금속으로 이루어진 비늘이 전신을 덮은, 전장 60미터를 넘는 거대한 거북이 형태의 몬스터.
단단하기로는 8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고, 마력 증폭 탄두로 위력을 끌어 올린 용우의 저격이 명중하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서고 만다.
꽈앙! 꽈아아아앙!
용우는 한 발로 그치지 않고 계속 저격을 가했다.
섬광이 은갑옷거북을 때려 폭발할 때마다 주변의 건물들이 터져 나간다. 은갑옷거북은 거북이의 습성대로 등껍질 안쪽으로 숨은 채로 죽죽 밀려났다.
‘단단하긴 하군.’
용우가 지금 성좌의 무기가 아니라 아티팩트를 쓰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그가 성좌의 무기를 쓰면 출력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어떤 총기류라 하더라도 단 한 발만 쏘면 부서져 버렸다. 권희수 박사의 역작인 윙 슈트의 포신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 기술이 집약된 헌터 장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티팩트보다도 더 뛰어난 도구들이다. 그러나 인류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자가 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치이이익……!
심지어 제우스의 뇌격조차도 이 정도로 위력을 끌어 올려서 쏘면 두 발만 쏴도 총신이 과열되어서 더 이상 연속 사격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용우는 두 발 쏜 다음 곧바로 새 총으로 바꾸고 있었으니까.
아공간에 동일한 총기를 수백 정이나 보관하고 있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어차피 돈이 많아서 썩어 넘칠 지경이기에 용우는 거의 전략 물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와 탄약을 아공간에 저장하고 있었다.
[맙소사.]
[저격으로 은갑옷거북이 저지되고 있잖아?]
지휘부가 경악했다.
일개 저격수의 저격에 8등급 몬스터 은갑옷거북이 죽죽 밀려나다니, 저게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뿐만 아니다. 용우가 쏜 에너지탄이 한 발 명중할 때마다 은갑옷거북의 허공장이 가파르게 깎여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은갑옷거북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콰과과광……!
등껍질 속으로 숨은 채로 빙글빙글 돌면서 폐허를 뚫고 가속한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부수면서 돌진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그만큼 방어력이 상승해서 용우의 저격이 튕겨나가는 게 아닌가?
우우우우우!
그리고 용우와의 거리가 1킬로 미만으로 줄어들자 등껍질이 빛나면서 무수한 육각형의 문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육각형의 문양들이 에너지탄이 되어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간 그 에너지탄이 곡선을 그리면서 용우가 있는 지점을 폭격한다.
콰과과과광……!
일순간에 거리 하나만큼의 면적이 초토화된다.
엄청난 화력인데 그런 공격이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제1파가 표적에 도달하기도 전에 제2파, 제3파를 연달아 발사되었다.
은갑옷거북의 반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등껍질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입을 벌리고 포효했다.
그러자 입에서 원뿔형으로 퍼져 나가는 진동파가 뻗어나갔다.
쿠과과과과과!
1킬로미터 저편까지 뻗어나간 진동파가 그 궤적에 걸려든 것들을 모조리 바스러뜨린다. 건물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주저앉았다.
‘그래도 8등급 몬스터라고 제법 하는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용우에게 터럭 하나만큼의 대미지도 입히지 못했다.
왜냐하면 용우는 에너지탄 폭격 제1파가 도달하는 순간 하늘 높이 텔레포트했으니까.
용우는 고도 3킬로미터 지점을 날며 지휘부에게 고했다.
“벙커버스터를 쓰겠다. 점화 준비.”
용우가 즐겨 쓰는, 벙커버스터를 초열투창으로 날리는 수법은 이미 전술 회의 때 설명을 해두었다. 그렇기에 일본의 서포터들 역시 빠르게 대응했다.
-초열투창!
벙커버스터가 점화하는 순간, 용우가 초열투창으로 지상을 향해 발사했다.
콰아아아아앙!
극초음속으로 쏘아져 나간 벙커버스터가 작렬하자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던 은갑옷거북의 허공장이 뚫려 버렸다.
키에에에엑!
등껍질이 깨져 나간 은갑옷거북이 고개를 쳐들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용우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염마용참격!
텔레포트로 그 앞에 나타난 용우가 양손 대검에서 전개한 초고열의 에너지 칼날로 은갑옷거북의 목을 베어버렸다.
“하나 끝났고.”
용우가 굉음과 함께 쓰러지는 은갑옷거북의 위에서 중얼거릴 때였다.
[아, 안 돼!]
[뭐야! 저게 어떻게 된 거야?]
통신으로 일본인 서포터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음?”
용우도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쿠우우우웅……!
순간 공기 그 자체가 몸을 찍어 누르는 것 같은 둔중한 굉음이 울렸다.
용우가 경악했다.
“설마…….”
아직까지 직접 눈앞에서 겪은 적은 없다. 그러나 헌터로 활동해 왔기에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졌다.
“어떻게 된 거지?”
용우가 즉시 텔레파시로 질문을 날리자 휴고가 대답했다.
<우리가 아니야!>
“그럼?”
<우리는 게이트에서 멀찍이 떨어뜨려서 마무리 작업 중이라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용우가 은갑옷거북을 처리하는 동안 다른 이들도 다른 하나의 8등급 몬스터와 싸워서 숨통을 끊기 직전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나고야 돔 포인트에 출현한 45미터급 게이트가 급격히 확장하면서,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현실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귀찮아졌군.”
용우가 사태를 보는 시각은 지휘부와는 달랐다.
지휘부는 게이트 브레이크가 곧 작전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8등급 몬스터 둘을 다 잡았으니 작전은 성공한 셈이었다.
즉시 전술 데이터를 살펴보던 용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텔레포트했다.
“이런 수작이었냐?”
은갑옷거북과 가까이 있던 사카에 역 포인트의 40미터급 게이트.
그 앞에 5등급 몬스터 암석거인이 갑자기 나타나 있었다.
당연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놈이다. 전술 데이터에 기록된 영상을 보니 텔레포트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크워어어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암석거인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게이트 앞을 가로막고 선 용우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쾅!
용우의 손에 홀연히 나타난 소총에서 에너지탄이 발사되었다.
쾅! 콰쾅! 쾅!
용우는 적당히 위력을 죽인 사격만으로도 암석거인의 관절을 파괴해서 주저앉혔다.
-라이트닝 블로!
곧바로 뛰어든 용우가 그 심장부에 발차기를 꽂아 넣자 암석거인의 에너지 코어가 부서지면서 몸통이 폭발했다.
지금의 용우에게 5등급 몬스터 정도는 잡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였다.
팍!
갑자기 용우가 손을 들더니 뭔가를 붙잡았다.
파지지지직!
그 자리에서 격렬한 스파크가 일어나서 공간을 뒤흔들었다.
“역시 네놈들의 수작이었군.”
용우가 붙잡은 것은 시퍼런 빛을 발하는 휘어진 칼날이었다.
“타락체.”
그것을 붙잡고 용우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상아빛 피부에 화사한 백금발, 그리고 핏빛 눈동자를 가진 타락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