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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3월 중순.
과거 일본 중부 지방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대도시, 나고야를 수복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나고야가 재해 지역이 된 이유는 8등급 몬스터들의 존재 때문이다.
폐허 위에 숲이 형성되고 있는 나고야 시내에 두 마리의 8등급 몬스터가 포진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은 지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도시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고야 시가 재해 지역이 된 후로는 아이치 현에 방위 라인을 형성하고 몬스터 개체수를 관리하면서 지역 간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만이 일본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확실히 강원도보다 훨씬 좁은 지역에 몰려 있군…….”
강원도의 경우는 강원도 전역에 띄엄띄엄 8등급 몬스터 세 마리가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 나고야 시내로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작전 지역이 좁아지는 건 환영이지만, 골치 아픈 부분도 있었다.
두 8등급 몬스터의 서식지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전투를 벌이면 반드시 다른 한 놈도 같이 상대하게 된다고 봐야 했다.
뿐만 아니다. 나고야 전역이 8등급 몬스터들의 인지 거리다. 어디서 무엇과 싸우든 놈들을 자극해서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일본 입장에서는 난공불락으로 보이겠어.’
얼마 전부터 용우는 일본에도 스펠 스톤을 공급해 주고 있다.
하지만 설령 일본의 최정예 헌터 전력이 8등급 몬스터를 상대할 만한 수준이 된다 해도 나고야 수복은 무리다.
필연적으로 난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8등급 두 개체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니까.
용우가 일본 쪽에서 제공한 브리핑 자료를 보고 있을 때, 유현애가 말했다.
“이거 잘하면 하루 만에 끝날지도 모르겠는데요?”
넓은 지역에서 작전을 펼칠 때는 서포트를 맡을 이들이 작전에 따라서 배치될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범위가 나고야 시내로 한정된다. 단 한 번의 작전으로 8등급 몬스터 두 개체를 제거하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팀 섀도우리스가 8등급 몬스터 제거에 실패하지 않는 한 작전 기간이 길어질 이유가 없었다.
“후딱 끝내고 일본 관광이라도 하죠? 요즘 해외여행도 하기 힘든데.”
“일본 정부가 우리를 그렇게 조용히 놔둘 리가 있겠냐? 특히 너는 아마 이런저런 자리에 참가해 달라고 난리가 날걸?”
“그거야 뭐, 이런 일에 나처럼 미소녀가 있으면 대중한테 이미지 마케팅하기 좋으니까 어쩔 수 없죠.”
“…….”
“왜요?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잖아요?”
“인정하고 싶지 않군. 그게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을…….”
둘 다 나고야 수복 작전은 이미 성공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사실 강원도 수복 작전이 얼마나 수월하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그 후로 팀 섀도우리스의 전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8등급 몬스터 때문에 형성된 재해 지역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유현애가 킥킥 웃었다.
“근데 이거, 나랑 미나 언니랑 준혁 오빠만 완전히 손해 보는 역할인데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휴고는 왜 빼?”
“휴고는 그런 거 즐기잖아요.”
“너는 안 즐기고?”
“뭐, 아주 안 즐긴다고 하진 않겠는데, 높으신 분들이랑 웃으면서 언론에 나갈 사진 찍는 게 즐거울 리가 없잖아요.”
유현애는 과거에는 프로 게이머였고, 헌터가 된 후로는 연예인 생활은 하지 않아도 종종 개인 방송도 하고 언론의 취재에도 응하고 있었다.
용우와 달리 대중의 관심을 즐기는 성격인 것이다. 팀 섀도우리스가 된 후로 인지도가 더더욱 올라서 인터넷 포탈에서 검색 키워드 순위 1위를 했다고 희희낙락하면서 단체 채팅방에다 자랑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세상은 원래 단물만 빼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지. 어쨌든 열심히 해라. 난 리사랑 둘이서 교토의 찻집에라도 가볼 테니까.”
“와, 너무해. 뭐, 마음대로 해요. 난 작전 끝나면 미슐랭 쓰리 스타 받은 스시집들을 다 돌아보고 싶다고 할 거예요. 전에 한번 예약해 보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더라고요. 하지만 나고야를 수복해 준 영웅한테 그 정도야 해주겠지.”
“…….”
용우가 움찔했다.
나고야 수복 작전을 성공하기만 하면 일본 정부는 저런 요구는 얼마든지 들어줄 것이다. 정체를 감추고 있는 용우와 리사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이었다.
‘젠장, 저건 좀 부러운데.’
용우는 지구로 돌아온 후로 식도락의 즐거움에 눈을 떴다. 그래서 종종 가격을 신경 쓰지 않고 맛있는 곳에 우희, 리사와 함께 먹으러 다니는 것이 소소한 삶의 낙으로 자리 잡았다.
“헤헹. 부럽죠? 세상은 원래 단물만 빼먹고 살 수는 없는 법이랍니다.”
“…….”
자기가 한 말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용우는 흥,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 * *
나고야 수복 작전에는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추진한, 권희수 박사가 중심이 되어 완성한 비밀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팀 섀도우리스.
그들은 인류가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반으로 설정한 한계를 초월하는 전투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의 골칫거리였던 재해 지역 강원도를 수복한 그들이, 이번에는 일본의 나고야를 수복하기 위해 나선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나고야가 수복된다면 세계 각국은 앞다퉈서 팀 섀도우리스에게 재해 지역 수복을 의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전 과정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7등급 바람용 소멸.]
[뭐? 벌써?]
작전은 나고야 북쪽과 동쪽의 포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8등급 몬스터들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8등급 몬스터들이 무인 병기들을 부수는 동안 일본 최정예 헌터들이 나고야로 돌입, 대규모 화력 지원을 받아가면서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작전 참가자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나섰다. 8등급 몬스터들이 언제 다시 시내로, 자신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릴지 알 수 없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나고야 시가지에는 7등급 몬스터까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보다 늦게 진입했을 텐데?]
나고야 외곽에서 6등급 몬스터와 교전 중이던 헌터 팀이 어이없어했다.
그들보다 늦게 나고야에 진입한 팀 섀도우리스가, 훨씬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7등급 바람용을 잡아버렸다.
지휘부가 상정한 베스트 시나리오보다 훨씬 빠르게 바람용이 침묵했다.
통신이 술렁였다.
[진짜냐?]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7등급 몬스터를 무슨 저등급 몬스터 처리하듯이 해치우다니, 아무리 뛰어난 헌터들이라도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실시간으로 그 과정을 지켜본 지휘부도 경악과 불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로 고스트보다 더 강한 것 같군.”
“피의 레지스탕스, 그라도 저렇게는 못하겠지.”
이런 작전에서 지휘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면 당연히 고스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공포의 살인자로만 알려진 사다모토 아키라가 실은 일본인의 수호신 같은 존재라는 것 또한.
하지만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팀 섀도우리스의 전투 능력은 충격적이었다.
지금 팀 섀도우리스는 전원 변신조차 하지 않고 작전을 수행 중이다.
바람용은 인지 거리 밖에서 날아든 서용우와 유현애의 저격에 난타당해서 허공장이 관통당했다.
당연히 바람용도 자신의 권능, 기상을 바꾸는 권능으로 저격수들을 쓸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자 휴고와 차준혁, 이미나가 뛰어들어서 접근전으로 바람용이 거대 규모의 권능을 쓰는 것을 막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서용우와 유현애의 저격이 계속되면서 착실하게 허공장을 깎아먹었고…….
상공에 나타난 리사가 용우가 즐겨 쓰는 수법, 벙커버스터를 초열투창으로 발사하는 것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바람용의 허공장이 구멍이 뚫리면서 승패의 저울이 결정적으로 기울어졌고, 근접전을 담당한 세 명은 손쉽게 바람용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뿐만 아니었다.
[6등급 메탈 드레이크 소멸.]
다시금 통신망이 술렁였다.
전술 시스템의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었다. 팀 섀도우리스는 교전을 시작하고 단 3분 22초 만에 7등급 바람용을 잡았다.
그리고 2인 1조로 흩어져서 주변의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그렇다. 학살이었다.
그들의 근처에 포착된 몬스터들이 줄어드는 속도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 * *
나고야 중심가에는 높이 180미터의 방송탑, 나고야 테레비탑이 있었다.
과거에는 전망대 역할을 수행했던 그 건축물은 나고야 시내에서 터진 게이트 브레이크 때 중간이 잘려서 꺾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높은 곳은 80미터가 넘었고, 용우가 저격을 위한 포인트로 삼기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용우는 부서진 방송탑의 철골 위에서 중얼거린다.
“순조롭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대(對)몬스터 저격총 제우스의 뇌격으로 저격을 가한다.
하늘이 뻥 뚫려 있기에 위성 시스템의 지원은 물론, 드론들이 도심을 날면서 디테일하게 데이터를 보정까지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초장거리 저격을 가해도 명중률이 높았다.
“시간 끌지 말고 폭격 시퀀스로 넘어가는 게 나을 텐데.”
여기까지 작전 개시 후 21분.
지휘부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게 빠른 페이스다. 설마 이 타이밍에 바람용 제거가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팀 섀도우리스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전개였다.
분명 지휘부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작전을 입안하고, 진행하고 있다. 일본 최정예 헌터들의 작전 수행 능력 역시 훌륭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헌터 업계의 상식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규격을 초월한 강자들, 팀 섀도우리스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용우 옆에 있던 리사가 말했다.
“우리가 단독으로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다 필요한 일인 거 알잖아?”
사실 팀 섀도우리스는 단독으로도 나고야 수복 작전을 해낼 수 있다. 전원이 변신하고 보이는 몬스터는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좋은 일 해주고도 좋은 인식을 얻을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을 던져줄 이유는 없다고 그랬죠.”
용우가 생각한 바는 아니었다.
김은혜가 그렇게 용우를 설득했다. 그녀는 팀 섀도우리스의 대변인으로 외부와 접촉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그저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기만 해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팀 섀도우리스는 각국 정부에 있어서 대화가 가능한 상대여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인간과 협력할 수 있는 존재임을 지속적으로 각인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용우도 김은혜의 의견이 옳다고 여겼다.
나고야 수복 작전이 팀 섀도우리스라는 소수의 초인에 의한 업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세계의 상식에 속하는 자들이 팀 섀도우리스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서 쟁취한 결과가 되어야만 했다.
“예전이었으면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리사가 전투의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폐허를 보며 말했다.
팬텀에서 구출된 후로 리사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느꼈다. 오로지 용우와 우희만이 특별한 존재일 뿐, 세상에 나가면 모두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감정이 남아서, 리사는 자신과 상관없는 군중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들 사이에 괴물이 숨어 있다가 자신을 덮칠 것만 같은 불안감을 느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들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설령 다시는 새로운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 살아간다 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필요했다.
[전 병력, 시가지 밖으로 후퇴. 5분 후에 폭격이 시작된다.]
용우와 리사가 TV탑의 폐허에서 저격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 지휘부의 명령이 들려왔다.
“이제 결정이 났군. 그래도 생각보다는 판단이 빠른데?”
“그냥 물러나실 건가요?”
“물론 아니지. 헌터들이 빠지기 쉽게 도와주자.”
“네.”
용우와 리사는 텔레포트로 공간을 뛰어넘어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 * *
나고야 수복 작전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순조롭기만 하면 모르겠는데 진행이 굉장히 빠르다. 너무 빨라서 지휘부의 판단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7등급 바람용, 그리고 6등급 몬스터 일곱 개체가 처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7분.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휘부는 비교적 빠르게 현실에 적응했다. 그들은 6등급 몬스터가 전부 침묵한 시점에서 전 병력을 시가지 밖으로 후퇴시키고, 항공 자위대에 폭격을 요청했다.
그리고 항공 자위대의 폭격기들이 날아와서 폭격을 시작했다.
육상 자위대 역시 구 나고야 시가지 외곽에 배치한 포들로 쉴 새 없이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콰과과과광……!
폭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도시 전역에 서식하는 몬스터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들어 간다.
캬아아아아아!
당연하지만 이 폭격은 8등급 몬스터들을 자극했다.
자신들을 도시 밖으로 끌어내서 귀찮게 하던 무인 병기들을 모조리 때려 부순 8등급 몬스터들이 도심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작전을 시작한 순간, 주사위는 던져졌다.
일본에 있어서 나고야 수복 작전의 리스크는 엄청나게 크다.
자극받은 8등급 몬스터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 작전이 실패하면 나고야를 둘러싸는 형태로 구축된 방위 라인이 붕괴할 수도 있다.
즉, 일본 정부는 아이치 현을 비롯한 주쿄권 전역의 운명을 판돈으로 걸고 도박에 나선 셈이었다.
물론 그 도박은 승산이 넘치는 도박이었다. 한국 정부가 넘겨준 강원도 수복 작전의 전투 데이터는 그들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음?”
전용으로 준비된 막사에서 태블릿으로 실시간 영상을 보고 있던 용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곧바로 지휘부와 무전을 연결했다.
“지휘부, 폭격 중지를 요청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제로?]
“당장 게이트 탐지기를 돌려. 사카에 역 포인트에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
[뭐라고?]
용우의 지적에 지휘부가 경악했다.
곧바로 게이트 탐지기를 돌린 그들이 깜짝 놀랐다.
[공격 중지! 작전 변경한다! 서포트 팀, 지금부터는 8등급들을 지정하는 포인트로 유인하는데 전력해라!]
지휘부는 그런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카에 역 포인트에 40미터급! 나고야 돔 포인트에 45미터급! 게이트 두 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긴급사태가 덮쳐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