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30화 (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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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는 잠자코 얼굴 없는 소년의 말을 기다렸다.

“혹시 몽상가가 뭔지는 알아? 물론 사전적인 의미는 아니야.”

“구세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정도는.”

“역시 구세록에 대해서도 알고 있군. 너도 팀 섀도우리스 멤버지?”

“…….”

리사는 입을 다물었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몽상가라는 건 꿈을 통해서 세계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존재야. 꿈에서는 물리법칙 따위 무시하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잖아? 몽상가는 꿈을 매개로 현실의 규칙을 무시하는 힘이 있어.”

“지금 이것처럼?”

“그래.”

“그럼 루가루 당신도 몽상가겠네.”

“음, 일단은 그래.”

“일단은?”

“그것까지 지금 말해주긴 그렇고.”

소년은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기를 회피하고 말을 이었다.

“몽상가는 인류에게 잠재된 재능이야. 다만 그 재능은 인류에게는 별 가치가 없고 놈들에게만 가치가 있지.”

“놈들?”

“물론 종말의 군단을 말하는 거야.”

“놈들에게 가치가 있다는 건 무슨 뜻?”

“대체로 여덟 번째 문이나 아홉 번째 문이 열렸을 때… 그러니까 8세대나 9세대 각성자들이 탄생할 무렵에 그 재능이 개화하게 돼. 그러면 놈들은 몽상가를 찾아서 이용할 수 있게 되지. 그 재능이 어떤 건지, 너는 이미 비슷한 경우를 게이트 안에서 봤을 거야.”

종말의 군단이 휴머노이드 몬스터에게 빙의하여 지휘관 개체가 되는 것.

“놈들은 몽상가에게 빙의해서,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도 이 세계를 침략할 수 있게 돼.”

“그럼… 막을 방법이 없잖아?”

“내가 아는 한에는 없어. 다만 놈들이 몽상가를 이용하는 것에는 꽤 까다로운 제약들이 따라붙어. 지휘관 개체처럼 몬스터를 이용할 수도 없고, 모습이 빙의한 놈의 모습으로 변하거든. 눈에 띄는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보면 돼.”

“…….”

“본래 몽상가는 빨라도 8세대 각성자가 탄생한 후에나 그 재능을 개화해. 하지만 너는 이미 몽상가로서의 재능이 만개했어. 그 사실이 신기해서 만나러 온 거야.”

“그러는 너는?”

“나는… 너와는 다르지만 역시 특별한 경우지.”

소년이 어깨를 으쓱할 때였다.

콰직……!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응?”

소년이 놀라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녹아내리던 백일몽의 세계에 마치 유리가 깨진 것 같은 균열이 퍼져 나가면서, 그 너머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눈을 치켜뜨고 백일몽의 세계로 침입해 들어온 것은 유현애였다.

-영파탄!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소년을 향해 정신체를 공격하는 에너지탄을 쏘았다.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해낸 소년이 기겁했다.

“몽상 영역에 침입해 들어오다니, 넌 대체 뭐야?”

“내가 물을 말인데?”

유현애가 리사를 보호하듯 그 앞에 서면서 말했다.

소년이 난처한 듯 신음했다.

“으음,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군.”

“어딜 도망가려고?”

“아서라,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

유현애가 뛰어들자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어?’

순간 유현애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히 한 번의 도약으로 소년 앞까지 왔는데, 소년의 거리가 멀어진다.

‘블링크? 아닌데?’

마치 공간 자체가 갑자기 죽 늘어난 것 같았다.

소년이 말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꺼지듯 자취를 감추었다.

* * *

유현애와 리사, 이미나는 곧바로 용우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저씨!”

리사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간 유현애는 순간 움찔했다.

넓고 화사한 인테리어의 거실,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다시피 한 초대형 TV에 활달한 걸 그룹의 무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소파에는 용우가 혼자 늘어져 있었다.

“…….”

잠시 침묵이 흘러갔다.

용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갑자기 뭐야?”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우왕좌왕하던 유현애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아저씨도 걸 그룹 좋아해요?”

“뭐, 싫어하진 않지. 근데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 없는 동안 히트한 드라마나 가수나 예능이나 그런 걸 다 보고 있는… 잠깐, 내가 왜 변명을 하고 있지?”

용우가 짜증을 내면서 TV를 꺼버렸다.

그러자 유현애가 우후후, 하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남자가 걸 그룹 좋아할 수도 있지. 진즉 말하지 그랬어요. 나 알고 지내는 걸 그룹 언니들 많은데.”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런 게 어떤 건데요?”

“…….”

말로는 당해낼 수가 없다. 용우가 혈압이 오르는 걸 느끼며 화제를 돌리려고 할 때, 리사가 말했다.

“현애야, 정말 그런 거 아니야.”

“응? 언니?”

“선생님은 걸 그룹을 좋아해서 그러시는 게 아니라 매해마다 유명했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 보셔. 걸 그룹만이 아니라 보이 그룹도 자주 보시는걸? 지금 나오던 것도 요즘 걸 그룹이 아니라 2016년 걸 그룹이야.”

“…….”

옹호한다고 해주는 말이 어째 더 가슴에 아프게 박힌다.

‘뭐지? 내 취미 생활이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었나?’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 용우를 구원한 것은 이미나였다.

“불쑥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실은 밖에서 사고가 터져서…….”

“아, 그렇지. 리사 언니가 몽상가래요!”

유현애가 흥분해서 말했다.

“뭐?”

“이상한 놈이 이상한 방법으로 리사 언니를 찾아와서 이상한 짓을 하면서 그런 소리를 하더라니까요!”

“…….”

당연하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 *

잠시 후, 분위기가 좀 정리되고 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용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몽상가의 뜻이 그런 거였나.”

“죄송해요.”

“뭐가?”

갑자기 리사가 사과하자 용우가 물었다.

“백일몽에 대해서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거요.”

“그건 됐어. 네 입장에서는 당장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 만도 하니까. 설명을 들어보니 그 몽상 영역이라는 건 정보 세계로군.”

“정보 세계요?”

“뇌가 꿈을 꾼다는 행위를 매개체로 정보 세계를 자아내는 거지. 내가 보여준 스펠 중에도 그런 게 있잖아?”

예를 들어 불꽃의 군주 볼더를 끝장낼 때 썼던 ‘몽환포영(夢幻泡影)’은 그런 계통의 스펠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스펠이다.

유현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거 맞을 거예요. 훈련 때 기억 때문에 제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음…….”

“왜 그렇게 못마땅한 눈초리로 절 보는 건데요? 여기서는 칭찬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잖아요?”

“그건 그런데 칭찬하기가 진짜 싫어서 그런다.”

“에이, 삐지지 말아요.”

“됐고. 어쨌든 그놈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의 정보가 진실이라고 가정하면 몇 가지 수수께끼가 풀리긴 하는군.”

용우는 지금 떠올린 가설 몇 가지를 말했다.

리사는 몽상가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성좌의 힘에 대한 적성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팬텀의 실험체 중에 셀레스티얼의 그릇이 된 자들은 전부 몽상가의 자질을 가진 자들이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그 자질은 일종의 타이머가 달려 있었다는 소리고.”

이 세계에는 초능력이라고 불러야 할 특수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있었다. 권희수 박사와 차준혁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들은 퍼스트 카타스트로피의 순간 그 능력을 손에 넣었다.

“불특정 다수의 재능에 타이머를 달아놓고 원하는 때 각성시킨다……. 이건 너무 웃기는데. 각성자 튜토리얼의 선별 작업이라는 게 수상하군.”

각성자 후보자로 선택되어 각성자 튜토리얼로 소환되는 자는 2만 명.

하지만 그 선별 과정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단지 각성자 튜토리얼에 적합한 자를 골라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선별 작업이 일어날 때 내가 받아보면 실체를 파악하기 용이할 것 같은데… 이건 아직도 반년 이상은 남았군.”

어쨌든 용우는 그 과정에서 몽상가의 자질을 가진 자들에게 그 힘이 부여되고, 구세록의 규칙이 허용하는 때가 되면 활성화되는 것이리라 추측했다.

“그런데 그게 팬텀의 실험으로 인해서 미리 깨어났다는 건데.”

“그러면 팬텀의…….”

팬텀이 화제에 오르자 리사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흠칫한 그녀는 차분하게 심호흡을 해서 동요를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저 말고도 구출된 사람들 중에 몽상가의 능력을 각성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리사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팬텀의 연구 시설을 파괴하고, 그곳에서 모르모트 취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단순히 때려 부수기만 한 게 아니라 뒤처리도 확실하게 했다. 해방된 자들은 전부 애비게일 카르타와 백원태가 운영하는 재단에서 거두어서 돌보고 있었다.

“가능성은 있지. 뭔가 이유를 붙여서 테스트를 해보게 해야겠군.”

이 건은 애비게일 카르타와 백원태 사장에게 부탁하면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용우가 한숨을 쉬었다.

한 가지 해결했다 싶으니 또 다른 문제가 앞을 가로막는다.

“역시 구세록 문제를 해결해야겠는데… 하여튼 일단 걸리는 건 두 가지.”

첫 번째는 당연히 이 모든 정보를 알려준 얼굴 없는 소년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놈이 탈출자일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건가요?”

“어쩌면.”

그렇다면 반드시 만나서 정보를 캐내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리사의 몽상가로서의 능력이 통제가 안 된다는 부분.”

“제가 적들에게 빙의당할 수도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 대응책은 많으니까.”

용우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고한 자신감을 보였다.

“일단은 애비게일과 백 사장님한테 부탁부터 해야겠군.”

그리고 그들에게 연락을 한 용우는 뜻밖의 정보를 듣게 되었다.

* * *

크로노스 그룹은 한국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대기업이다.

당연히 그들은 가깝고, 국토방위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본에도 상당한 자본을 투입해서 여러 사업체를 굴리고 있었다.

팬텀의 연구 시설에서 구출된 소년, 타카야마 준이치를 돌보고 있던 병원은 크로노스 그룹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실종됐다고요?”

그 타카야마 준이치가 2개월 전에 실종되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그렇습니다. 그 전에 자살 기도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실종자는 그 소년뿐입니까?”

[우리 쪽에서 맡은 인원 중에서는 그렇습니다. 경찰에 신고도 했고,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써서 찾아보고 있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 특이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뭡니까?”

[일본 참의원이었던 아버지가 7년 전에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살해당했습니다.]

“…….”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치인이 사다모토 아키라의 타깃이 될 이유는 한 가지뿐이니까.

[그 일 이후로 본인은 학교에서, 가족 전체가 마을에서 이지메를 당하다가 한국으로 도망치듯 이민을 왔다는군요.]

하지만 타카야마 준이치는 어떤 루트인지는 몰라도 아니마에 중독되었고, 팬텀이 실험체를 고르는 기준에 걸려들어서 인체 실험 모르모트로 납치당하고 말았다.

“…꽤나 기구한 삶이군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용우가 기구하다고 말할 정도로 타카야마 준이치의 인생은 만신창이였다.

“추가로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주세요.”

[그러죠. 나머지 인원에 대한 테스트는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우는 전화를 끊고 나서 중얼거렸다.

“놈의 처우는… 사정을 들어보고 결정해야겠군.”

탈출자는 좋은 아군이 될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리사를 찾아왔을 때의 일로 미루어 보건대 전투 능력도 탁월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용우가 적과 아군을 가르는 기준은 능력이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만약 탈출자가 타카야마 준이치의 몸을 강탈한 거라면…….

‘도망쳐 온 곳이 지옥이었다는 걸 가르쳐 줄 뿐이지.’

Chapter41 나고야 수복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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