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29화 (129/225)

3

2월 중순.

사다모토 아키라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인터넷에 뜬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다.

‘나고야 수복 작전 결정.’

일본 정부가 나고야 수복 작전을 발표했다.

과거 일본의 중심이기도 했던 도쿄가 일본 열도 관동 지역의 심장부라면, 나고야는 중부 지방의 심장부였다. 나고야가 재해 지역이 되면서 잃은 것이 너무 컸기에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이 수복 작전을 꿈꾸고 있었다.

“결국 나고야인가.”

사다모토 아키라가 중얼거렸다.

일본 정부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도쿄일 것이다.

하지만 도쿄 수복은 나고야 수복보다 훨씬 리스크가 크다.

일단 전장의 면적부터가 달랐고,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위험도도 현격하게 높다.

그리고 탈환한 후의 일도 문제다. 게이트가 끊임없이 발생하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시대, 국토를 수복한다는 것은 가혹할 정도로 무거운 유지 보수 문제를 짊어진다는 뜻이니까.

“도쿄가 아니라서 아쉬워?”

그렇게 물은 것은 방의 한구석, 가장 어두운 부분에 기대어 앉은 소년이었다. 방 안인데도 코트를 입고 후드를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의 가족이 죽은 곳이니까.”

“…….”

다른 사람이 이런 소리를 했다면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원칙이 확실한 사다모토 아키라였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면 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다모토 아키라는 살의를 일으키지 않았다. 이 소년을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소년이 물었다.

“당신은 왜 재해지역을 내버려둔 거지?”

“나만 놔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은 딱히 다른 계약자들과 같은 이유로 내버려둔 건 아니잖아?”

“…….”

1세대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재해지역을 방치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이었다.

일단 되도록 구세록의 계약자들 스스로의 존재를 비밀스럽게 유지하고 싶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재해지역을 수복하면 국가가 방위 시스템을 확장해야 한다는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다모토 아키라가 일본의 재해지역을 방치한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재해지역의 수복에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전부 끝난 일이니까.”

도쿄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그 땅을 인류에게 되돌려준다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죽어 버린 그의 아내와 딸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끝나버린 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0세대 각성자는 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이럴 수 있는 걸까.”

소년은 사다모토 아키라가 보고 있던 기사를 빠르게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일본의 최정예 헌터 병력과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위대 병력이 중부 지방으로 집결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작전의 주역이 아니다.

팀 섀도우리스.

이미 한국의 재해 지역 강원도를 수복한 그들이 올 것이다.

“좀 나갔다 올게.”

소년이 방문을 열자 사다모토 아키라가 물었다.

“어딜 가려고?”

“한국.”

“이 타이밍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이 텔레포트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일본 정부는 팀 섀도우리스에게 나고야 수복 작전을 맡기기 위해서 마력석 2톤에 더해서 2,000억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배팅했다.

대신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공 보수다. 실패할 경우에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도록 계약을 맺었다.

‘아티팩트 광휘의 검을 온건하게 손에 넣은 걸 생각하면 이 정도쯤이야…….’

사실 용우 입장에서는 그 일만으로도 나고야 수복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김은혜는 강원도를 단기간에 수복한 팀 섀도우리스의 실적을 무기로 일본 정부에서 저만한 대가를 뜯어내었다.

‘이번 분기 인센티브도 든든하게 챙겨줘야겠군.’

이미 김은혜의 벌이는 공무원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놈은 나고야에 나올까?’

사다모토 아키라에게 새벽의 해머를 양도받는다. 그것이 용우의 당면 과제였다.

하지만 사다모토 아키라가 워낙 신출귀몰해서 미국의 정보망으로도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용우가 그와 접촉해서 공간 좌표를 따내야 하는 것이다.

“뭐, 일단은…….”

용우는 상념에서 깨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소멸한 게이트 내부, 광활한 사막 지형이 펼쳐진 곳이었다.

그 한복판에 용우를 중심으로 거대한 파괴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쿠르르르…….

열기와 연기가 끓어오르는 가운데 용우가 중얼거렸다.

“역시 안정화가 빡세군.”

그의 앞에는 푸른 에너지 코어와 붉은 에너지 코어가 떠 있었고, 각기 다른 색깔과 형태를 띤 성좌의 무기 네 개가 사방에 흩어져서 대지에 꽂혀 있었다.

<어이, 캡틴. 혹시 시간 있냐?>

그때 문득 휴고의 텔레파시가 날아들었다.

“왜?”

<괜찮으면 그쪽으로 텔레포트 유도 좀 해줘.>

용우는 거절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잘 안 되는 일 계속 붙잡고 있느니 잠깐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용우가 텔레파시로 공간 좌표를 공유해 주자, 휴고가 텔레포트해 왔다.

“으엑, 이게 뭐야?”

휴고가 오자마자 그의 허공장이 주변 환경에 반발했다.

수백도의 고온에 유독성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을 극악의 환경이었다.

“이런 건 오기 전에 말을 해줘야지!”

기겁한 휴고가 환경에 대응하는 스펠을 펼치면서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용우는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고 능숙한 영어로 대꾸했다.

“너한테는 위협이 안 되잖아? 그리고 예상치 못한 환경에 떨어졌을 때의 훈련이 된다고.”

“말이나 못 하면…….”

“그보다 무슨 일인데? 난 중요한 일을 하던 중이니까 시답잖은 용건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 난장판을 보니까 뭘 하고 있었는지는 알겠다.”

하스라 코어와 볼더 코어, 그리고 네 개의 성좌의 무기가 주변에 널려 있는 모습을 보니 용우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는 일목요연했다.

“맨투맨 트레이닝을 부탁하고 싶어서 온 건데… 이거 엄청 중요한 작업이잖아. 안 되겠군.”

용우는 볼더 코어와 하스라 코어를 이용해서 성좌의 무기 네 개를 융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왜 차준혁 놔두고 나한테 온 거야?”

용우도 자신에게 남을 가르치는 재주가 없음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용우는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서 지금의 경지에 도달한 게 아니다. 심지어 실전 경험조차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어비스의 불가사의한 법칙에 의해서 인간이 지닌 능력이 서로서로에게 융합되면서 지금의 그가 된 것인데, 그걸 어떻게 이론화해서 전수하겠는가?

휴고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하고 훈련하는 것도 별로야.”

“음?”

“네가 워낙 독보적이라 그렇지 그 인간도 남한테 설명하거나 가르치는 거 진짜 못하거든?”

차준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천재였다. 게다가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남들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의 감각과 기술은 철저하게 천성으로 완성된 것이고, 그는 그것을 남이 알아먹도록 설명하는 재주가 절망적이었다.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서라도 팀 이그나이트에 남아 있었을 거라고 그러던데?”

“…그랬나?”

가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더니, 그게 그런 이유였단 말인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용우는 차준혁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같이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훈련하기 좋은 건 현애하고 리 둘이지.”

“왜 현애는 이름으로 부르고 미나 씨는 성으로 부르는 건데?”

“둘 다 성으로 불렀더니 현애가 유, 유 하고 부르는 거 싫다고 그냥 이름으로 부르래서.”

유현애다운 이유였다.

“어쨌든 리는 원래 이론에도 강한 사람이라 분석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현애는 의외로 주관적인 감각을 잘 풀어서 설명하는 편이거든.”

“예전에는 프로 게이머였으니까 그럴 거야. 그때 자기 플레이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습관을 길렀을 테니까.”

“아, 현애는 각성자 되기 전에는 유명한 e스포츠 선수였다지? 확실히 스포츠 선수들 중에 전략적인 플레이를 하던 사람이 헌터가 되면 그런 면모를 많이 보이긴 해.”

휴고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는 슈퍼스타 취급을 받는 그는 업계 사정에도 밝았다.

“다음에 게임이나 같이하자고 해볼까? 프로 게이머였다가 각성자가 된 거면 게임 이야기 하는 거 싫어하려나?”

“전에는 게임 방송도 종종했던 모양이던데. 같이 게임하고 놀자고 하면 좋아할걸.”

그렇게 말하던 용우는 문득 이야기가 계속 다른 길로 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튼 나랑 맨투맨 트레이닝을 하려는 이유가 뭔데?”

“너는 남 가르치는 건 진짜 못하지만…….”

“그거 굳이 재방송해야 되냐?”

“앞으로는 생략하지.”

하지만 피식피식 웃는 휴고의 얼굴을 보니 앞으로도 써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어쨌든 타락체 모의전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건 너뿐이라고.”

“아, 그러니까 네 말은 그거지?”

“뭐?”

“나한테 타락체의 방식대로 맞고 싶다는 소리잖아.”

“…….”

휴고의 말문이 막혔다.

용우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협력해 주지. 네가 바라는 스타일이 어떤 건지 말해봐. 오더 메이드로 두들겨 패주마.”

“으음…….”

휴고는 자기가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한 게 아닐까 후회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물론 때늦은 후회였다.

* * *

리사는 불현듯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런 일을 겪었더라?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허우룽카이를 죽여서 복수를 달성하고 난 뒤, 용우에게서 아티팩트 빙설의 창을 받았을 때부터일 것이다.

“리사 언니?”

옆에서 유현애가 의아해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리사가 두 살 위였기에 유현애는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래. 그랬었지.’

오늘 리사는 유현애, 이미나와 함께 쇼핑을 나왔다.

용우나 우희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외출하는 건 팬텀에서 구출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불안 증세를 보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많이 했는데, 나와 보니 걱정했던 일은 전혀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실컷 옷을 쇼핑하고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소곤소곤.

백일몽이 리사를 집어삼켰다.

그녀는 흑백으로 녹아내리는 세상 속에 있었다.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주변에서 속삭이는 사람들만이 뚜렷하다.

하지만 리사는 그들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군중을 슥 훑어보고 나면 하나하나의 얼굴을 뚜렷하게 떠올릴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소곤소곤.

리사는 이것이 악몽의 파편임을 알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이 사람들은 전부 그녀의 기억 속 어디엔가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팬텀에 갇혀 있던 시절, 짧은 시간을 함께하고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갔던 사람들…….

왜 이런 백일몽을 꾸는 것일까?

리사는 그 사실이 궁금했다. 밤에 잠을 자면서 악몽을 꾸는 것은 끔찍할지언정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기괴한 백일몽은 이유도, 의미도 알 수 없었다.

“안녕.”

그런데 갑자기 녹아내린 세계 속에서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리사가 놀라서 물었다.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딱 한 사람만이 남았다.

코트를 입고 후드를 쓴, 그 후드 아래로 새카만 어둠만이 존재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소년이었다.

“나는… 음. 루가루라고 불러.”

“루가루? 프랑스어?”

“응? 알아?”

“전에 게임하다가 본 적이 적이 있어. 늑대인간이라는 뜻이지?”

“…….”

그러자 소년이 살짝 몸을 꼬는데,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으, 이미 말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루가루라고 불러. 네 이름은?”

“난… 리사.”

“리사? 어, 한국인 아닌가?”

얼굴 없는 소년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사가 살짝 부끄러워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자신의 본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소년은 리사가 왜 부끄러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리사가 애써 표정을 다잡으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

“너를 만나고 싶어서 온 사람.”

“…….”

“정말이야. 하지만 이상하군. 아직 일곱 번째 문이 열렸을 뿐인데 왜 이토록 강력한 몽상가가 존재하지?”

소년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이었다.

투학!

리사가 그를 기습했다.

전광석화 같은 기습이었다. 리사는 소년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이 백일몽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는 감각이 현실과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나자 즉시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 기습을 받아내고는 당황해서 외쳤다.

“난 적이 아니야!”

“내 선생님은 말씀하셨어.”

리사는 싸늘하게 대답하며 소년의 뒤를 점했다. 하지만 그녀가 공격을 가하는 순간, 소년의 몸이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멀어져 간다.

리사는 곧바로 그의 등을 쫓아가면서 발차기를 날렸다.

쾅!

폭음이 울리며 녹아내리는 백일몽의 세계가 뒤흔들렸다.

“와, 진짜 공격적이네. 몽상가는 다들 자존감이나 자의식이 바닥인 편인데 왜 이렇게…….”

“정보적으로 우위에 선 걸로 으스대면서 나를 아랫것 취급하면서 간을 보는 놈들은, 일단 두들겨 패서 무릎 꿇려놓고 아는 것을 탈탈 털어내게 하라고.”

“…….”

리사의 말에 소년의 말문이 막혔다. 뭐 저리 과격한 가르침이 다 있단 말인가?

소년이 졌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이더니 말했다.

“할 말만 하고 갈게. 일단 들어만 줘.”

“해봐.”

“넌 ‘몽상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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