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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는 하스라를 해치웠을 때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한 가지 이질감을 느꼈다.
종말의 7군주의 힘은 인류가 규격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토록 거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지구상에 출현한다면, 용우는 설령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스라를 죽였을 때, 용우가 맞이한 적의는 그의 영지에 살고 있던 언데드들의 것뿐이었다. 다른 군주들의 개입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하스라를 해치우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용우와 하스라가 격돌한 시점에서, 그것을 군주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이상을 눈치챈 그들이 관측 수단이라도 배치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조치조차 없었던 건 어째서였을까?
‘놈들의 세계는 하나가 아니다.’
군주들의 영지는 각각이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정보 세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군주들의 영지는 단지 물리적인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였고, 서로의 영역을 엿보거나 오가는 데 크나큰 제약이 존재했던 것이다.
* * *
대장 해골 기사가 외쳤다.
<일단 피하십시오! 영지 전체를 봉쇄하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습니다! 구멍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판단이야.”
그 앞에 용우가 나타났다. 대장 해골 기사가 폭염의 검을 휘둘렀지만, 용우는 마치 그 공격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피해서 품으로 파고들었다.
-라이트닝 블로!
천둥소리가 울리며 대장 해골 기사의 갑옷이 터져 나갔다.
<어, 어째서……?>
경악하는 대장 해골 기사에게 용우의 발차기가 꽂혔다. 대장 해골 기사는 텔레파시로 용우를 압박하면서 반격하지만…….
쾅!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느새 그의 공격을 피해서 거리를 좁힌 용우의 검격이 몸통을 가르고 지나갔다.
“약자가 되어본 적이 없으니 그렇지.”
용우가 그를 비웃었다.
볼더도, 대장 해골 기사도 그저 힘만 믿고 날뛰는 무식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힘을 세련된 기술로 활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술이 편중된 경험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철저한 약자가 되어본 적이 없다.
부족한 힘으로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를 쓰러뜨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적이 없다.
그들의 기술은 강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데 특화되어 있다. 변칙이 필요 없는 자들이 정공법을 날카롭게 갈고닦은 것이다.
그에 비해 용우의 기술은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 근본을 두고 있다.
게다가 약자의 입장만을 아는 것도 아니다. 용우는 서로 대등한 자들끼리의 싸움을 알고, 강자로서 약자를 찍어 누를 때의 싸움도 안다.
무엇보다 용우의 기술은 그 혼자만의 역사가 아니다.
어비스의 불가사의한 법칙은 용우를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올려놓았다.
어비스에서 누군가를 죽일 때마다, 살아남은 자는 강해졌다.
그저 힘이 모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인간 그 자체를 녹여서 다른 인간에게 합쳐놓은 것 같은 과정이다.
그 결과 용우는 그저 타고난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다.
그저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능력을 얻었다.
그저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감각을 얻었다…….
최후의 생존자인 용우야말로 어비스에 존재했던 24만 명이 이룬 성과의 정수였다.
-공허 가르기!
공간을 뛰어넘은 용우의 검격이 대장 해골 기사를 끝장내고 그 뒤의 볼더까지 덮쳤다.
볼더가 아슬아슬하게 텔레포트로 몸을 피했다.
콰과과과과과과!
공간을 뛰어넘은 에너지 칼날이 대지에 2킬로미터에 달하는 상흔을 남겼다.
찌이이잉!
그리고 5킬로미터 상공으로 도망친 볼더의 사고에 날카로운 노이즈가 발생했다.
<이… 런……?>
볼더는 용우가 걸어둔 텔레파시 함정에 걸렸음을 깨닫고 전율했다. 텔레포트로 회피하는 것을 방아쇠 삼아서 발동하도록 설정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이, 이놈은 대체?’
그리고 그가 주춤하는 틈에 그 위에 나타난 용우가 양손 대검을 내려쳤다.
꽈아아아앙!
5킬로미터 상공에서 천둥소리보다도 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초음속으로 튕겨 나온 볼더가 대지에 처박히고, 그 위로 용우가 쏘아낸 극저온의 한기가 농축된 광선이 내리꽂혔다.
콰콰콰콰콰……!
한기가 원형으로 퍼져 나가면서 수십 킬로미터 일대를 다시금 동토로 바꾼다.
-에너지 컨버전!
대지에 처박힌 채 한기 광선을 직격당하던 볼더가 반격했다.
퍼져 나가던 한기가 열기로 바뀌고, 그 열기가 공간왜곡장 안에서 한 지점으로 집중되더니 초고열의 광선으로 화해 용우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파아아아아!
그 광선이 단번에 하늘의 구름을 관통했다. 구멍이 뚫린 지점으로부터 퍼져 나간 열기가 온 하늘을 불태웠다.
하지만 용우는 연속 블링크로 회피하면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놓치지 않는다!>
볼더는 안티 텔레포트 필드를 펼쳐서 용우의 회피 기동을 차단하고, 하늘을 관통한 초고열의 섬광을 검처럼 휘둘렀다.
콰과과과과과!
하늘을 둘로 갈라 버리는 일격이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그어진 빛의 선이 폭발하면서 세계가 뒤흔들렸다.
-필드 디스펠!
그러나 그 폭발이 다 퍼져 나가기도 전에, 용우가 발한 스펠이 안티 텔레포트 필드의 중심축을 때려서 와해시켰다.
-공허 가르기!
공간을 뛰어넘어서 날아든 참격이 볼더의 다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허공장이 뚫리면서 그의 왼다리가 반쯤 잘려 나갔다.
그리고 그 앞에 용우가 나타나서 칠흑의 양손 대검을 내려쳤다.
볼더는 불꽃의 창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냈고…….
콰아아앙!
폭음이 울리는 가운데, 자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가짜!’
분명히 용우가 뛰어 들어와서 그에게 검을 내려쳤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막지 않으면 그대로 두 동강 날 것 같은 그런 위력이 담긴 일격이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옅었다.
-몽환포영(夢幻泡影)!
그 모든 것이 정교하게 세공된 텔레파시가 빚어낸 환각이었기 때문이다.
‘당했다! 완벽하게…….’
볼더는 손쓸 도리 없는 절망감을 느끼며 옆을 돌아보았다.
불꽃과 연기가 혼돈을 채색하고 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종말의 군주인 볼더의 눈은 그 너머에서 자신을 보는 자를 본다.
‘이것이…….’
푸른 불길을 휘감은 서용우가 그를 향해 검 끝을 겨누고 있었다.
‘내 마지막인가.’
그 앞쪽에 배치된 광륜이 24개라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검 끝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유성의 화살!
그리고 빛의 탄환이 볼더를 꿰뚫었다.
……!
일순간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었다.
색도, 소리도, 윤곽조차도 없는 모든 것의 공백.
그 속에서 볼더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 하하하하하!>
빛이 흩어지면서 다시금 세계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한복판에 볼더가 있었다.
<너는 대체 뭐냐, 군주 사냥꾼?>
승패는 갈렸다.
파지지직……!
볼더의 몸통 한복판, 인간이라면 심장이 있을 위치에 존재했던 코어가 깨져서 그로부터 누출된 에너지가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는 알겠다. 너는 1세계나 2세계의 탈출자 따위가 아니야…….>
“처음부터 아니라고 했는데. 진실을 말해도 듣는 놈이 멍청해서 믿어주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지.”
공간을 뛰어넘어 나타난 용우가 볼더를 비웃었다.
볼더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의복은 전부 소멸했으며, 두개골은 반쯤 깨져 나갔고, 그 아래로는 반도 안 남은 뼈의 조각들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얼기설기 붙어 있을 뿐이었다.
쾅!
용우는 가차 없이 그 뼈들을 부숴 버리고, 부서져서 에너지를 누출하고 있는 코어를 쥐었다.
생사여탈권이 용우의 손에 쥐어진 상황에서도 볼더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절망한 채로 눈앞의 의문에 매달리고 있었다.
<너는 완전히 규칙 바깥에 있다…….>
“…….”
<누구도 그럴 수 없었다. 이 규칙을 만들어낸 1세계의 초월권족 놈들조차도!>
“…….”
<너는, 너는 대체 무엇이냐?>
용우는 볼더의 정신파에 가득한 절망을 만끽하며 미소 지었다.
“인류.”
<그럴 리가 없다! 제3세계의 인류는 1, 2, 3세계를 통틀어 최약체! 그런 버러지가 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리가……!>
“그 규칙대로라면, 너희들이 소멸하는 일도 없었겠지? 규칙 좋아하는 착한 어린이.”
<…….>
“자, 이제 착한 어린이는 죽을 시간이야.”
<잠깐……!>
용우는 볼더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필멸자(必滅者)의 세계!
그러자 용우를 중심으로 주변 반경 10미터가 흐릿해졌다.
모든 것이 열화된 것 같은 세계 속에서 용우가 손을 뻗었다.
<……!>
볼더가 마지막으로 뭐라고 외친 것 같았다.
용우는 그 외침에 실린 분노를 느꼈다.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절망을 느꼈다.
‘그래.’
자신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고 확신하던 자들이 파멸하는 순간.
‘이게 너희들이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다.’
그들에게 그 순간을 선사했다는 사실에 용우는 더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 * *
하스라가 파멸했을 때 코어에서 터져 나온 에너지가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었듯, 볼더의 파멸은 주변을 불타게 만들었다.
화르르륵…….
볼더의 세계는 다른 의미로 죽음의 세계가 되어 있었다. 온통 황폐해져서 불타오르고, 그 열로 인해서 격렬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곳은 무언가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니까.
‘살아남은 놈은… 없는 것 같군.’
언데드에게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쓰는 건 이상하지만, 달리 적합한 표현이 생각나지도 않았다.
하스라를 죽였을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종말의 군주와 그를 능가하는 힘의 소유자가 전력으로 전투를 벌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곳에 존재하던 언데드들은 전원이 파멸했다.
‘이걸로 두 개째.’
용우는 온통 불타는 세상 한복판에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조각조각 깨진 볼더의 코어가 그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타오르는 노을빛처럼 주홍빛을 띤 그 코어는 볼더의 의지가 소멸하는 그 순간 그대로 용우에게 제압되었다. 그로써 하스라 때보다 손실을 줄이고, 산더미 같은 마력석 속에서 그 파편을 골라내는 작업을 생략할 수 있는 것이다.
투둑…….
모든 것이 불타는 세계 속에서 암석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두두두두둑!
뒤이어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석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스라를 쓰러뜨렸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볼더가 파멸하면서 발생한 마력석과 그가 아공간에 보관해 놓고 있었던 마력석이 한 자리에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마력석 걱정은 없겠군.”
지구에서는 마력석을 전투 자원으로 펑펑 써대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대량의 마력석을 획득한 것이 반가웠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스라 때와는 획득량의 차원이 달랐다.
해골 기사들이 죽으면서 발생한 마력석들도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도시의 주민이었던 수만 명의 언데드도 죽으면서 마력석을 남겼다.
마력석은 고열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불지옥으로 변해 버린 환경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소실되어 갔지만, 그럼에도 아직 엄청난 양이 남아 있었기에 용우는 스펠을 동원해서 온전한 것을 탐지하고,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진짜 어마어마한 양이군.’
그 양은 용우도 질려 버릴 정도로 엄청났다. 아무리 쓸어 담아도 끝이 안 날 것 같았다.
“이건… 완벽한 샘플이군.”
용우는 볼더가 언데드들의 영혼을 담아서 만들어낸 불꽃의 창도 잊지 않고 챙겼다.
파지지지직……!
그러나 불꽃의 창은 용우가 쥐자 격렬하게 반발했다.
제각각의 자아를 가진 수만 명의 영혼을 용우에게 복수한다는 목적으로 통일시켜둔 것이다. 용우에 대한 반발력이 발생하는 게 당연했다.
“어차피 너희들은 필요 없어.”
지금의 용우는 그 반발력조차 힘으로 누를 수 있었다.
공간의 진동이 잦아드는 가운데, 용우가 손을 뻗었다.
-필멸자(必滅者)의 세계!
모든 것을 파괴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스펠이 펼쳐졌다.
-아스트랄 플레어!
종말의 군주의 코어조차도 멸한 필멸의 영역 속에서, 용우가 정신체를 불태우는 투명한 불길을 발했다. 지구에서 발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대한 불길이었다.
“해방.”
순간 불꽃의 창이 폭발적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 욱여넣어졌던 언데드 수만 명의 영혼이 한꺼번에 해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영혼들 입장에서 보면 해방되자마자 불지옥으로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필멸의 영역에 펼쳐져 있기에 그들은 불에 뛰어든 부나방처럼 덧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수만의 영혼을 소멸시켜 버린 용우가 필멸의 영역을 해제하며 중얼거렸다.
“몇 개는 남겨두는 게 좋았을지도… 아니, 지구에서 놈들의 영혼을 끌어다 가둬보면 되나?”
갇혀 있던 영혼이 모조리 해방된 불꽃의 창은 처음 볼더가 꺼내 들었을 때처럼 투명한 창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쿠우우웅……!
그런데 그때 문득 폭음이 들려왔다.
쿠우우우우우웅!
용우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한층 더 큰 폭음이 울리면서 세계가 뒤흔들렸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 원인을 파악한 용우가 코웃음을 쳤다.
볼더의 영지 바깥에서 누군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용우가 대지의 로드로 펼친 결계를 거두지 않았기에 힘으로 들이받고 있는 것이다.
‘군주인지 아니면 타락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계에 가해지는 충격으로 보건대 꽤나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선물을 주지.’
볼더와의 전투로 용우도 지쳤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군주와 일전을 치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냥 물러나 주는 건 재미가 없지 않은가?
-형상 복원!
용우가 대량의 마력석을 투입해서 빙설의 창의 모조품을 만들어내었다.
우우우우우!
그리고 거기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고, 스펠을 걸기 시작한다.
‘평생 받아보지 못한 종합 선물 세트일 거다.’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도 쉽게 물리칠 수 없는 저주의 스펠들이었다.
다만 그 효과는 즉시성이 아니라 서서히 상대방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거는 입장에서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데, 용우는 그것을 대량의 마력석을 투입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대지의 로드.”
용우가 하늘로 손을 뻗자, 대지의 로드가 결계를 거두고 공간을 뛰어넘어 되돌아왔다.
대지의 로드를 아공간에 넣어둔 용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볼더!>
결계가 사라지자마자 하늘을 불태우는 불꽃을 가르며 거대한 빛의 손이 나타났다.
‘데바나라는 놈이군.’
볼더와 함께 게이트에 출현했던 군주, 광휘의 데바나가 나타난 것이다.
<볼더, 대답해라!>
하늘에서 불타는 구름을 헤치고 내려오는 빛의 손은 정확한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아직 고도가 5킬로미터 이상인데도 눈앞의 산처럼 거대해 보여서 원근감이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용우는 눈에 보이는 모습에 현혹되지 않았다.
저것은 거대한 마력을 지닌 군주가, 세계 너머에서 자신을 투영한 허상일 따름이다.
<네놈은……?>
데바나가 이 세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 용우를 발견하고 당혹스러워했다.
다소 무리해서 볼더의 세계로 들어왔거늘, 볼더는 물론이고 그의 영지민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지옥의 불꽃과 의념의 공허만이 가득한 세계 속에 지금의 침략 대상인 지구 인류가 기다리고 있다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설마 네놈이?>
데바나가 믿기 어려운 가능성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선물이다!”
공격 준비를 마친 용우가 하늘을 향해 빙설의 창 모조품을 투창했다.
콰콰콰콰콰……!
데바나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워 드레스로 마력을 증폭하고, 사냥꾼의 축복을 12연쇄로 걸어서 투창의 위력을 현격히 높였다. 그 결과 제3우주속도보다도 빠르게 가속한 빙설의 창 모조품이 데바나가 이 세계에 뻗은 손을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악……!>
전략핵 수준의 대폭발이 하늘을 불태우는 것을 보면서 용우가 손을 흔들었다.
“바이, 바이.”
그리고 용우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Chapter40 히든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