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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교묘하게 잠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암살자라니, 놀랍군.>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거구의 해골 기사였다. 두꺼운 중장 갑옷을 입고 길이가 2미터를 넘는 양손 대검을 든 그 역시 전신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용우는 그를 보는 순간 느꼈다.
‘강하군.’
지구에 나타난다면 재앙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힘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다. 불타는 알현실에 도열한 백여 명의 해골 기사들 전원이 강력한 마력을 뽐내는 고위 언데드들이었다.
“머저리만 있는 건 아니군그래.”
자신을 노려보는 언데드들을 보며 용우가 차갑게 웃었다.
‘역시 무작정 쳐들어오지 않길 잘했지.’
군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군주 중 하나가 소멸했는데 이들이 경각심을 갖지 않을 리가 없다. 하스라가 어떻게 소멸했는지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만약 용우가 하스라 때처럼 무작정 쳐들어왔으면 위험했을 것이다. 이 언데드들과 싸우는 동안에 볼더도 돌아왔을 테니까.
‘하지만 길어봐야 5분.’
그 정도면 볼더도 용우의 구속을 떨치고 돌아올 것이다.
물론 그대로 봉인되어 준다면 최선의 결과다. 하지만 용우는 아직 군주 개체를 완전히 봉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어디 종말의 군주를 호위하는 최정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볼까?”
용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거구의 해골 기사, 호위 기사들의 대장이 양손 대검을 겨누며 명령했다.
<쳐라!>
그리고 백 명의 해골 기사들이 일제히 용우를 덮쳤다.
* * *
어비스에서 언데드와 타락체의 위험도는 동급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위험도 분류가 그럴 뿐, 둘이 위험이 되는 이유는 서로 달랐다.
타락체는 개개인의 전투 역량이 뛰어난 만능 전사들이었다. 당장 지구인 중에 타락체가 된 사례만 봐도 전부 어비스 하반기까지 살아남은 자들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들은 대인전에도 강하고, 몬스터 상대로도 강하다. 격투전은 물론이고 저격, 은신 잠입, 화력전에 이르기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올라운더들이었다.
그에 비해 언데드들은 실력과 특기 분야가 천차만별이다.
타락체가 협동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데 비해 언데드들은 조직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군대의 병과가 나뉘듯이 전문 분야가 확실히 나뉘어 있어서 격투전에 뛰어난 놈이 있는가 하면 대규모 화력전에 뛰어난 놈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전장에 있을 때 발휘된다.
인간이든 괴물이든 죽어서 시체가 되는 순간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기 때문이다.
‘즉, 시체가 없는 곳이라면 네놈들의 위험성은 크게 줄어든다는 소리지.’
용우는 코웃음을 치며 가장 먼저 뛰어든 해골 기사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프리징 필드!
동시에 자신을 중심으로 강렬한 한기 파동을 전 방위로 폭발시켰다.
콰콰콰콰콰……!
막대한 압력으로 방출된 한기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
불꽃을 휘감고 있던 해골 기사들이 일제히 얼어붙는다.
-어스 바운드!
뒤이어 지면이 원형으로 터져 나가면서 바닥을 이루고 있던 석재가 해골 기사들을 덮쳤다.
지이이이이잉!
그때 날카롭게 정련된 정신파 공격이 날아들었다.
“음……!”
용우가 주춤했다. 고위 언데드들이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춰 발한 날카로운 정신파의 칼날 수십 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해골 기사들은 동료들이 만들어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용우가 뿜어낸 한기 파동에 얼어붙었던 놈들도 금세 그 구속을 떨쳐내면서 뛰어들었다.
쾅!
그러나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용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자동으로 발동하는 스펠들을 함정으로 깔아두었던 것이다.
해골 기사 둘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염동빙결탄(念動氷結彈) 동시다발(同時多發)!
동시에 용우가 극저온의 한기를 농축한 에너지탄 24발을 한꺼번에 발사했다.
-이레귤러 바운드!
극초음속으로 쏘아진 24발의 에너지탄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불규칙한 궤도로 공간 이동 하는 에너지탄들이 해골 기사들을 덮쳤다.
콰과과과과광……!
새하얀 충격이 폭발하면서 주변 가득한 불꽃을 날려 버린다.
화재 현장의 한복판 같았던 궁전이 일순간에 얼음 궁전으로 화하면서 터져 나갔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광포한 눈과 얼음의 괴물이 날뛰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놈! 잘도 설쳐대는구나!>
<목을 베어주겠다!>
그러나 해골 기사들은 전원이 고위 언데드였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의 파동이 거세게 터지는데도 빙결당하는 자들은 소수였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내면서 용우에게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용우가 그들을 비웃었다.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끝없는 미궁!
공간왜곡장이 충격파와 한기의 축제와 어우러져서 해골 기사들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었다. 해골 기사들은 이 놀라운 조합조차도 뚫고 용우에게 도달할 방법을 찾아내지만, 그렇게 하기까지는 최소한 5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의 용우에게 있어서 5초는 꽤나 여유로운 시간이다. 홀로 충격파와 한기로부터 자유롭게 움직이는 용우가 오른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콰광!
폭음이 울리며 궁전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일순간 해골 기사들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들 모두가 초감각이 발달한 자들이다. 그렇기에 저편에서 무언가 터무니없이 불길한 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자, 이제 시간이 됐다.”
용우가 정보 세계에 진입한 순간 시작되게 만든 무언가가 완성되었다.
쿠구구구구구!
그 결과가 나오는 타이밍을 조절하기 위해 걸어둔 지연 효과를 해제하자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고요함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눈보라의 용!
그리고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진 하늘에서 한 마리의 용이 내려오고 있었다.
냉기 그 자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백색의 용이 조용히 지상에 가까워진다.
소리는 없다. 광포한 기세도 없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그것은 공포 그 자체다. 백색의 용이 지나온 궤적은 하얗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백색의 용은 까마득한 천공과 대지를 잇는 흰색의 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은 백색의 용이 대지에 닿는 순간 파열될, 세상에서 가장 긴 얼음 기둥이었다.
<종말급 스펠!>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
해골 기사들이 경악했다.
종말급 스펠.
그 명칭 그대로 한 문명에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는 스펠이다.
강력한 권능의 소유자들이 즐비한 종말의 군단 내에서도 사용 가능 한 자가 거의 없고, 사용한다 해도 제물을 바쳐가며 거창한 의식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아무런 조짐도 없이 발동하다니?
<전원 방어 태세!>
대장 해골 기사의 필사적인 외침에 해골 기사들이 일제히 한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용우의 공격으로 빙결당한 자들이 여럿 있지만 여전히 70명 이상이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훈련이 잘되어 있는데? 내가 본 언데드 집단 중에서는 최고야.”
용우 입장에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리고 용우는 그렇게 강력한 놈들이 뭉치는 것을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헤븐스 디바이드!
순간 그들이 있는 공간이 분리되었다.
<이런! 공간 분할 필드인가?>
<당장 중심축을 찾아!>
해골 기사들이 당황했다.
이곳에 오기 전, 게이트 안에서 볼더와 데바나와 타락체를 분리해 놓은 것과 똑같은 스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곁에 있어야 할 동료들이 대여섯 명 정도밖에 안 남았다.
마치 같은 장소 위에 종이를 겹겹이 포개어놓은 것 같은 상황이다. 용우가 의지를 가진 개체들을 좌표로 삼아서 나눠놓은 공간들은 서로 연속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빨리!>
그리고 그들은 결국 3초 만에 공간 분할 필드를 파괴하고 집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또한 용우가 계산한 대로였다.
-보이드 바운드!
용우가 주먹을 지르자 타격 지점의 공간이 깨져 나가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쩌저적!
그리고 균열로부터 쏟아져 나온 열기가 폭발하는데…….
콰과과과광!
타격 지점부터 용우가 있는 지점, 반경 3미터 정도에는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고 그 너머만을 휩쓸었다.
<빌어먹을! 이런 수작에!>
해골 기사들은 온 힘을 다해서 그 폭발을 막아내야 했다.
집결한 고위 언데드들의 힘은 막강해서 항공 폭탄을 훨씬 능가하는 파괴력마저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주춤한 시간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마침내 백색의 용이 그려내는 하얀 궤적이 하늘과 땅을 이었다.
……!
순백의 해일이 궁전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얼려 버리면서 폭발했다.
* * *
하얗다.
어딜 봐도 흰색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시간조차 얼어붙은 풍경이었다.
저벅…….
그 속에서 작은 발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용우는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궁전은 처음의 모습을 흔적도 없이 잃어버렸다. 알현실은 충격으로 산산이 터져 나갔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산처럼 거대한 얼음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바깥으로는 거대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원뿔형으로 돌출된 고지대에 위치한 볼더의 웅장한 궁전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구축된 도시였다. 규모는 하스라의 도시와 비슷한 수준인 것 같지만 극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도시 전체가 볼더의 알현실처럼 불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형이었다.
종말급 스펠, 눈보라의 용이 지상에 도달해서 일어난 폭발의 규모는 전략핵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그만큼이나 거대한 빙결 에너지가 터지자 불꽃의 도시는 얼음의 도시로 변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도시 바깥으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도 모조리 하얗게 얼어붙었다.
쩌저적!
그때 얼음에 균열이 생기면서 진동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버텨낸 놈들이 이렇게 많은가?”
용우가 놀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마 도시의 주민들은 거의 몰살당했을 것이다. 언데드니까 ‘몰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나하나가 강한 존재라고 해도 전혀 예기치 못한 재앙이 인식할 새도 없이 모든 것을 휩쓸었는데 대책이 있겠는가?
하지만 폭심지에 있던 볼더의 호위들은 절반 이상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윽……!>
텔레포트로 얼음 밖으로 나온 대장 해골 기사가 경악했다.
<믿을 수가 없군. 정말 군주에게 도전할 만한 실력자란 말인가?>
빙설의 군주 하스라가 소멸한 것은 군단을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하스라가 죽은 것이 정말 그를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적에게 당해서라고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지구에 강림해 있는 동안 허를 찔려서 암살당한 것이다. 무서운 암살자니까 앞으로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대장 해골 기사는 용우가 정말로 군주와 자웅을 겨룰 만한 힘의 소유자임을 알고 전율했다.
<네 이놈! 대체 정체가 뭐냐?>
“인류.”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인류가 아니면 뭘로 보이지?”
<그건 3세계의 인류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다. 어떤 가능성을 쥐었어도 불가능해. 어느 쪽의 탈출자냐?>
“탈출자? 그건 뭐지?”
용우가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해하자 대장 해골 기사가 이를 갈았다.
<시치미 떼봐야 소용없다. 종말급 스펠을 아무런 제물도, 매개체도 없이 쓸 정도라면 1세계의 초월권족, 아니면 2세계의 신성한 돌이겠지. 잘도 멸망을 피해서 3세계로 간 모양이군. 2세계의 멸망 때 이번에야말로 그런 사태가 없을 것이라고들 자신하더니만.>
“…….”
용우는 무표정하게 대장 해골 기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