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용우는 권희수 박사에게 부서진 아티팩트 빙설의 창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수리하거나, 뭔가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티팩트는 앞으로 2년에 한 번, 7개씩 생산될 물건이다. 아티팩트 빙설의 창은 올해 탄생할 8세대 각성자들을 통해서 손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권희수는 아티팩트 빙설의 창을 수리하는 데 성공했다.
권희수가 말했다.
“지난번에 연구 협력해 줬을 때 있잖아요.”
용우는 권희수와의 약속을 지켰다. 프리앙카에게서 계승한 불꽃의 활을 그녀가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줬던 것이다.
아직 데이터가 많이 쌓이지는 않았다. 용우가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준 시간을 전부 합쳐도 5시간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권희수는 그 경험에서 아티팩트 빙설의 창을 수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던 것이다.
“성좌의 무기와 아티팩트의 가장 큰 차이는 코어의 유무예요.”
“코어? 몬스터의 에너지 코어처럼 말입니까?”
“네. 성좌의 무기에는 그런 코어가 없어요. 이건 제 추측이지만 성좌의 무기는 어지간한 손상으로는 기능이 망가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아티팩트에는 코어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코어가 손상되면 망가진다.
“아티팩트 코어의 성질에 대한 연구 데이터는 충분했고요.”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온 불꽃의 활 연구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성좌의 무기의 데이터가 더해지니까 약간 감이 잡혔어요. 그걸로 코어를 복원한 거죠.”
“…….”
용우가 멀뚱멀뚱 권희수를 바라보았다.
“…뭔가 중간에 심하게 생략된 거 같습니다만?”
“그게 중요해요?”
“별로 안 중요합니다. 박사님이 아티팩트를 수리할 수 있다. 해냈다. 그걸로 충분하죠.”
“중요하다고 말해줘야죠.”
권희수가 멍한 표정 그대로 용우의 어깨를 팡팡 쳤다.
“사실 데이터는 참고하기에는 너무 빈약했고… 제가 직접 느낀 게 주효했어요.”
“결국 설명하시는군요. 저 그냥 가면 안 됩니까?”
“이런 깜짝 선물도 해줬는데 당연히 끝까지 들어줘야죠.”
“…알겠습니다.”
용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권희수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실험 때 제가 직접 느낀 게 있잖아요. 이게 제가 광휘의 검 계승 후보라서 그런지 더 민감하게 느껴졌는데…….”
데이터는 부족했지만, 그녀는 스스로 체감한 경험으로부터 필요한 답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결정적인 퍼즐 조각이 또 하나, 팬텀의 연구 데이터였어요. 아니마에 대한 것.”
“그게 말입니까?”
용우가 놀랐다.
엔조 모로와 허우룽카이를 죽이는 과정에서, 용우는 팬텀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손에 넣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그들이 금단의 인체 실험을 통해서 얻은 데이터도 있었다.
연구자가 아닌 용우에게 그 데이터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보고 이해할 만한 기반 지식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권희수 박사라면 다를 거라는 생각에 넘겨줬던 것인데…….
“아니마는 두 종류였지요.”
권희수 박사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우리가 B타입이라고 명명한 아니마, 마약으로서의 아니마 데이터는 쓸모가 없었어요. 하지만 팬텀의 전투원들이 쓰던 A타입은 달랐죠.”
용우는 팬텀을 궤멸시키는 과정에서 다량의 아니마를 수거해서 권희수에게 제공했다.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A타입 아니마를 대량 입수한 것은 권희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A타입은 중독성이 없었어요. 장복하다 보면 의존 증상이 생길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A타입은 각성자가 쓸 경우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약효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마력이 높아지고, 마력 컨트롤도 향상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헌터들에게 투입되었던 각성제보다 효과가 월등한, 심지어 부작용도 거의 없는 각성제인 셈이에요. 아직 안전성 검사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는 실전 투입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어요.”
“제가 수거해서 넘긴 게 대량이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B타입일 텐데… 복제가 가능한 겁니까?”
“정말 연구 데이터를 안 봤군요? 거기에 제법도 나와 있어요.”
팬텀의 연구 데이터, 그중에도 최고 등급의 기밀로 분류된 정보에 A타입 아니마의 제조법이 있었다.
“다만 이건 좀 이상해요.”
“뭐가 말입니까?”
“A타입 아니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연구 데이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전부 A타입을 재료로 써서 B타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것뿐이에요.”
확실히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A타입 아니마를 만드는 기술만이 뚝 떨어진 것 같지 않은가?
“다른 제약 회사 같은 곳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걸 만들어놓고 상품화를 안 했을 리가 없다고 보는데요.”
“하긴…….”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면 전투 소모품으로서는 마력 포션에 버금가는 베스트셀러가 될 약이지 않은가?
용우가 말했다.
“그건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정말요? 뭔데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인해 보고 말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A타입 아니마의 제조법은 좀 어이가 없거든요.”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통상적인 약 제조법으로는 제조가 불가능해요. 재료는 마력석만 있으면 되고요.”
“음? 마력석으로 어떻게 약을 만듭니까?”
“그게 불가사의한 부분이죠. 각성자들을 데려다가 마력석에 마력을 일정한 패턴으로 공명시키면 아니마가 돼요. 지금으로서는 수공업으로만 제조가 가능한 셈이죠.”
즉, 아니마는 마력석을 마력과 반응시켜서 형질을 바꾼 결과물이라는 뜻이었다.
권희수가 말했다.
“이건 한 방 먹은 기분이었어요. 진짜로 분하더라고요.”
“뭐가 말입니까?”
“마력석 하면 사람들은 에너지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일종의 고차원적 정보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차원에서 일으킬 수 있는 물리적 현상을 이용해서 이걸 다양하게 활용하는 게 가능한 거고요.”
그리고 인류가 확립한 마력석 활용법은 간접적으로 마력석의 형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그에 비해 A타입 아니마 제조법은 직접적으로 마력석을 가공해서 원하는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이니 훨씬 고도의 기술인 것이다.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이제 고지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답안지를 던져준 기분인 거죠.”
한숨을 쉰 권희수가 말했다.
“뭐, 덕분에 갈 길을 많이 단축하긴 했지만요. 아티팩트도 고칠 수 있었고.”
권희수는 마력의 구조를 미세 영역까지 보고 컨트롤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을 가졌다.
그녀는 그 능력을 이용, A타입 아니마를 실제로 제조해 봄으로써 마력석의 형질을 직접 바꾸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성좌의 무기를 연구하면서 제가 체감으로 얻은 감각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니 아티팩트 코어를 만드는 데 성공한 거죠.”
일단 코어의 형질을 재현한 결과물을 아티팩트 빙설의 창에 장착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력석을 일정 범위 안에 가져다놓는 것만으로도 아티팩트 코어가 그것을 흡수해서 기능을 복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용우는 할 말을 잃고 권희수를 바라보았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용우 역시 마력석의 형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장 그가 마력석을 연소시켜서 마력을 얻는 전투 자원으로 써먹는 것도, 마력석을 폭탄처럼 쓰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일이다. 그것 말고도 용우는 마음만 먹으면 마력석을 이용해서 다양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권희수가 해낸 일은 용우가 마력석을 활용하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인류의 이해를 뛰어넘은 기술로 만들어진 아티팩트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그 기능의 핵심이 되는 코어를 만들어내다니…….
‘이건 진짜… 천재로군.’
왜 그녀가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마력학이라는 학문의 기초 이론을,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확립해 낼 수 있었는지 알겠다. 논리를 초월해서 해답을 찾아내는 괴물 같은 천재성의 소유자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용우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아티팩트 그 자체를 복제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아,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요?”
“시간이 주어지면 가능하다는 겁니까?”
“아마도요.”
“…….”
용우는 할 말을 잃었다.
권희수가 은근히 물었다.
“해볼까요? 맡겨주면 제대로 해낼 자신 있는데.”
“…아니, 아닙니다.”
겨우 냉정함을 찾은 용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티팩트는 많아져 봤자 좋을 게 없는 물건이니까요.”
“아쉽네요.”
정말 아쉬운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말하는 권희수를 보면서, 용우는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곧바로 말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없다. 최대한 빨리 적들에 대한 대책을 완성하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실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에 권희수라는 경이로운 인적 자원을 다른 일로 소모하는 게 옳은 일일까?
“…….”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용우는 지금 뇌리를 스쳐간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 * *
대만 타이베이에서 터진 게이트 브레이크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헌터 전력은 분명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6세대 각성자들의 잠재력은 최고조로 꽃피고 있었고, 7세대 각성자들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특히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 선진국, 한국의 최정예 헌터들의 성장세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팀 크로노스 1부대는 파주에서 5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50미터급 게이트 공략 시에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 7등급 몬스터가 나타났지만 그들은 전혀 흐트러짐 없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전원 각성자로만 이루어진 1부대 전투요원들은 작년부터 서용우로부터 스펠 스톤을 공급 받았다.
그 결과 전원이 체외 허공장을 보유했으며, 올라운더에 가까운 존재로 거듭났다.
아직 그들 부대에 7세대 각성자는 단 한 명도 합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1부대를 구성하는 5, 6세대들은 7세대의 잠재력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전투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왔군.”
부대장이 이를 악물었다.
“저게 타락체라는 놈인가?”
갑자기 출현한 상아인 타입의 타락체가 알파 분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전원 방어에 전념하면서 후퇴해! 서포터들은 무인 병기로 두들겨 주고!]
[얼마 못 버팁니다. 저거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이 7등급 몬스터 수준이에요!]
이런 사태를 처음 경험하는 서포터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상관없으니까 어떻게든 막아! 알파 분대, 조금만 버티면 된다!]
팀 크로노스 1부대는 백원태 사장에게 타락체의 존재를 미리 귀띔받아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타락체가 출현했을 시의 대응책에 대해서도 미리 훈련을 해둔 터였다.
“잡병들 주제에 성가시군.”
낡은 황동색 갑옷을 입고, 손에는 양손 대검을 든 상아인 타락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붉은 눈동자에 짜증이 가득했다.
알파 분대는 전원이 하나로 뭉쳐서 허공장과 방어막을 전개하는 것으로 타락체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콰쾅! 콰과과광!
그리고 무인 병기들이 다가와서 타락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찮은 것들이!”
타락체가 노성을 지르며 양손 대검을 휘둘렀다.
-용참격!
검격의 궤적으로부터 뻗어나간 섬광이 50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는 드론들을 가르고 지나갔다.
콰과광……!
4기의 드론이 순식간에 파괴되어 추락했다.
-염동충격탄!
그리고 연속적으로 발사된 에너지탄이 무인 전차들을 강타해서 격파해 버렸다.
[제길! 역시 못 버팁니다!]
[어떻게든 버텨. 이제 곧 올 거다.]
[대체 누가 온다는 겁니까?]
[팀 섀도우리스.]
그 말에 무전이 충격으로 술렁였다.
그들의 전투 능력을 현격히 끌어 올려준 존재, 제로가 이끄는 분대 규모의 헌터 팀.
부대장은 강원도 수복 작전을 너무나도 쉽게 처리해 버리면서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른 그들이 온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오오오오오오!
먼 곳에서 터져 나온 포효가 공기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서포터들이 깜짝 놀라서 그 소리의 진원지를 살폈다.
[아, 이건…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또 뭐야? 뭐가 나온 거지?]
[군주 개체가 나왔다.]
전신에 화염을 휘감은 존재, 불꽃의 볼더가 울부짖고 있었다.
[이놈도 7등급 수준입니다. 빌어먹을, 이게 말이 돼?]
서포터가 비명을 질렀다.
지휘관 개체도, 군주 개체도 오로지 휴머노이드 몬스터에게만 빙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휴머노이드 몬스터는 3, 4등급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고등급 몬스터에 빙의해서 나타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이 50미터급 게이트라는 게 문제였다.
5등급 몬스터, 암석거인이 볼더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지금의 볼더는 7등급 몬스터 수준의 마력을 분출하며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콰과과과광……!
볼더가 쏘아대는 에너지탄의 사정거리는 2킬로미터를 가뿐히 넘었다.
접근하던 드론들이 공격조차 못 해보고 격추당하기 시작했다.
<팀 크로노스 1부대.>
그때였다.
모두의 뇌리에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텔레파시로 전달되어 왔다.
<우리는 팀 섀도우리스다. 협력에 감사한다. 이제부터 군주 개체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 주변에 접근하지 말길 권고하겠다. 무인 병기들도 물려주면 고맙겠군.>
그리고 알파 분대를 공격하던 상아인에게 한 줄기 섬광이 꽂혔다.
“어떤 놈이지?”
상아인은 저격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방어막을 펼쳐서 그것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 한 발의 섬광이 그를 덮쳤다.
“흥!”
그가 양손 대검을 휘둘러 그것을 쳐내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공간을 뛰어넘어서 그 앞에 나타났다.
-라이트닝 블로!
그리고 상아인이 막 양손 대검을 휘두른 그 타이밍을 노려서 일권을 꽂아 넣었다.
꽈과광!
도저히 회피 불가능 한 타이밍에 날아든 일격이 타락체에게 정타로 꽂혔다. 뇌광이 폭발하면서 타락체가 튕겨 날아갔다.
“크윽, 건방진 놈!”
<멋지게 맞아놓고 할 소린가?>
텔레파시로 말한 것은 새하얀 갑옷을 입은 존재였다.
머리 위에는 빛의 고리가 있고 등 뒤 분출되는 빛이 펄럭이는 망토처럼 보이는 존재, 셀레스티얼.
팀 섀도우리스의 이미나가 상아인을 급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