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19화 (11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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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모토 아키라는 오사카의 조용한 골목을 걷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남자처럼 보였다. 몸은 약간 말랐고 얼굴은 평범했다. 인상에 남는 점이라면 머리가 부스스하고 면도를 하지 않아서 지저분해 보인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사다모토 아키라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미국의 정보망을 총동원했는데도 그의 본거지를 특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딱히 스스로를 감추고 살지 않는데도 그랬다. 그는 은퇴한 만화가라는 신분을 숨기지 않았고, 가끔 구독자들의 리퀘스트에 응해서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리는 개인 방송을 하는데도 미 정보부가 그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소상의 주거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다모토 아키라는 문화에 대한 것을 제외하면 일본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않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사다모토 아키라에게는 특정한 주거지가 없다. 대신 그에게는 일본 전역에 천 개가 넘는 주거지가 존재한다.

현재 일본 정재계의 인물들이 그를 위해 마련하고, 관리하는 주거지였다.

그들 중 사다모토 아키라의 존재를 아는 자들은 불과 다섯 명.

하지만 그들과 연결된 수많은 인물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 누군가가 언제든지 와서 쓸 수 있는 주거지를 자신의 명의로 준비하고 관리하고 있다.

사다모토 아키라는 그중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나를 골라잡아서 사는 곳을 바꾼다. 그것도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텔레포트하면서.

“음…….”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서 돌아오던 그가 갑자기 비틀거렸다.

주택가의 벽에 기대어 주저앉은 그가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했다.

“으윽…….”

환각 증상이 그를 덮쳐 오고 있었다.

극도의 불안 증세로 인해서 몸이 덜덜 떨리고, 기분이 안정되지 않는다. 비명과 원망의 소리가 저주처럼 귓가에 울리고, 당장에라도 몸이 갈가리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해 왔다.

당장에라도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다.

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하하하…….”

대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웃는다.

그에게는 슬플 정도로 익숙한 일이었다. 지난 13년 동안 잠들 때마다 되풀이되어 온 악몽이 현실을 침범한 것뿐이다.

정말로 그뿐이었다.

죽은 아내와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두 사람의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어땠는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들려오는 것은 실제로는 들어보지도 못한 소리였다. 그의 죄책감과 상상력이 자아낸 두 사람의 비명과 살려달라는 애원, 그리고 왜 구해주지 않았냐는 원망의 말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가 일어났을 때, 사다모토 아키라는 한창 잡지 연재 마감을 위해 작업실에서 마무리 작업을 한 뒤였다.

꼬박 밤샘 작업을 하고 어시스턴트들을 돌려보낸 그는 작업실 한구석에 처박혀서 잠들어 있었다. 그가 깨어난 것은 몬스터들에 의한 파괴 행위가 작업실 주변까지 미쳤을 때였다.

깨어난 사다모토 아키라는 자신에게 거대한 권능이 허락되었음을 깨달았다. 구세록과의 계약으로 얻은 진정한 힘이, 새벽의 해머라는 형태로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갓 권능을 얻은 그는 약하고 서툴렀다. 지금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몬스터들을 악전고투 끝에 쓰러뜨릴 수 있었고, 당장 눈앞에 닥친 위협을 물리친 후에야 가족들에 대해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어 있었다.

“…….”

꺽꺽거리며 웃는 사다모토 아키라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코트를 입고 후드를 눌러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소년이었다.

“왜 계속 싸우는 거지, 당신은? 정말 이해를 못 하겠군.”

그 물음에 사다모토 아키라가 웃음을 그쳤다. 그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올려다보자 소년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게 괴롭잖아? 숨 쉬며 살아 있는 시간 자체가 괴로우면서, 왜?”

“…….”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기계적인 습관에 불과하면서…….”

소년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고 있었다.

“왜 포기하지 않는 거지?”

“…글쎄.”

사다모토 아키라는 양팔을 끌어안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잔인하게 진실을 관통하는 소년이 물음을 듣고, 생각에 잠기자 환각이 잦아들었다.

“모르겠군. 예전에도, 지금도…….”

사다모토 아키라는 스스로가 단 한순간도 그 답을 알았던 적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소년이 말했다.

“이유조차 모르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나?”

“…….”

“다 놔버려. 이젠 알았잖아. 당신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걸.”

“그게 그 애가 원한 건가?”

사다모토 아키라의 물음에 소년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이 몸의 주인은 그저 약속을 지켜서 너를 죽여 달라고 했을 뿐이야.”

“곧 그 부탁을 들어주게 될 거다.”

사다모토 아키라가 벽을 짚고 힘겹게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게 남았어.”

그가 편의점 봉투를 들고 힘겹게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은, 어느 순간 꺼지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 * *

용우의 집에서 신년회를 치르고 이틀 후, 백원태가 집으로 찾아왔다.

“용우 씨도 신년회 같은 걸 하는군요.”

“동생이 하고 싶어 해서요.”

용우네 집에는 아기자기한 파티용 장식들이 다 치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백원태가 울상을 지었다.

“나도 좀 불러주지 그랬습니까.”

“거 중년 아저씨가 젊은 사람들 노는 데 끼고 싶으십니까?”

“모여서 논 사람 사람들 평균 연령 생각하면 용우 씨도 딱히 다르지 않잖습니까?”

“그래도 전 아직 30대고 사장님은 40대입니다.”

“어휴, 나이 먹은 사람 서러워서, 원.”

투덜거린 백원태가 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뭐가 그렇게 바빴습니까? 얼굴 보기 힘들군요.”

“미국이랑 독일에 좀 다녀왔습니다.”

“해외 출국을 했었다고요?”

백원태가 놀랐다.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정규 출입국 루트로 다녀온 건 아닙니다.”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아티팩트를 가지러 갔었습니다.”

용우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백원태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아티팩트를… 가지러?”

“앞으로의 일에 필요해서요. 아티팩트 보유자들과 거래했습니다.”

“…….”

백원태는 눈만 껌뻑거렸다. 용우가 하는 말이 너무 황당해서 따라갈 수가 없었다.

“미국과 독일의 아티팩트라면… 굉음의 도끼와 대지의 로드입니까?”

“예. 두 나라 모두 아티팩트 보유자의 헌터 활동을 금지시킨 상황이라 일이 쉬웠습니다.”

한국 정부는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에서 알게 된 진실, 아티팩트가 군주 개체를 9등급 몬스터 수준으로 강림시키는 열쇠가 된다는 정보를 각국에 공유했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아티팩트 보유자들은 헌터 활동을 금지당하고 정부에 감시받는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과 교섭하기 위한 사전 작업은 애비게일 카르타가 처리해 주었다.

그래서 용우는 각국의 정부하고는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아티팩트 보유자 본인들만 만나면 되었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유망주로 대접받는 그들이었기에, 그런 상황에 대해서 다들 크나큰 불만을 안고 있었으니까.

유현애가 그랬듯 그들도 아티팩트를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용우가 아티팩트를 넘겨주면 몇 가지 유용한 스펠을 주고, 헌터 활동 금지를 풀어주겠다고 하자 둘 다 순순히 거래에 응했다.

독일의 아티팩트 보유자는 정부의 태도에 진저리가 났는지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주하길 원했고, 이 또한 애비게일 카르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백원태가 혀를 내둘렀다.

“…이제 용우 씨는 필요하면 미국도 마음대로 움직이는군요.”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용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애비게일 카르타와 동맹을 맺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백원태가 물었다.

“혹시 광휘의 검도 확보한 겁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일본 정부에서 재미있는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아티팩트 광휘의 검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상할 필요가 있었다.

애비게일 카르타가 협상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다니엘 윤의 대역이 일본 정부와 협상을 마쳤다.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김은혜가 처리할 것이다.

“그럼 이제 아티팩트 중에 남은 건 뇌전의 사슬입니까?”

“그것도 확보했습니다.”

“벌써?”

“동시에 움직였으니까요. 일단 지구상에 존재하는 아티팩트는 전부 우리 팀이 확보했습니다.”

일본에 있었던 아티팩트 광휘의 검은 차준혁이, 호주에 있었던 아티팩트 뇌전의 사슬은 휴고 스미스가 손에 넣었다.

“나머지는 다 제 손에 있고요.”

“일단 적들에게 강탈당할 염려는 없겠군요.”

“그것도 기간 한정입니다만.”

올해 9월이면 8세대 각성자들이 탄생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을 통해서 또다시 일곱 개의 아티팩트가 나타날 터.

“그때가 되면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아티팩트를 양도받을 수 있도록 진행해야겠죠.”

“재작년에는 아티팩트가 이런 취급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입니다.”

백원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7세대 각성자들이 아티팩트를 들고 왔을 때만 해도, 다들 그것을 인류를 위한 새로운 희망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다 갖다 버릴 수도 없는 폭탄 취급이다.

백원태가 물었다.

“그런데 아티팩트를 수집한 이유는 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것 하나뿐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용우가 나쁜 꿍꿍이속을 품은 것처럼 웃었다.

“이걸로 놈들과의 싸움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갈 겁니다.”

* * *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는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들 중에 기한이 짧은 것들은 거의 없다. 아무리 짧아도 2년 정도로 기한이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프로젝트만은 달랐다.

마력학의 한국 최고 권위자, 권희수 박사가 전력으로 매달린 그 프로젝트는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미국하고 협력하게 해준 건 고마워요. 공동 연구를 하니까 확실히 진행이 빠르더라구요.”

용우를 부른 권희수 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권희수 박사가 특별히 꾸린 연구 팀이 미국에서 파견된 연구진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권희수 박사와 함께 세계 마력학 최고 권위자 중에 하나로 불리는 인물, 마력반응 탄두와 마력반응 코팅을 만들어낸 미국의 닥터 브래드가 연구원들을 이끌고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로 왔던 것이다.

닥터 브래드는 미국 정부 측에서 미국 밖으로 출국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연구를 위해 한국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애비게일 카르타가 힘을 써준 덕분이었다.

“덕분에 예정보다 빨리 시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권희수가 용우에게 보여준 것은 헌터 슈트의 목 보호대였다.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띠가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 이것은 M수트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선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왜 목 보호대로 만든 겁니까?”

“텔레파시를 차단해야 하는 핵심 부위는 머리니까요. 참고로 헬멧도 만들었어요. 둘 모두를 장비하면 상승효과가 나는 구조예요.”

이 목 보호대는 바로 정신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장비 시제품이었다.

“테스트는 끝난 겁니까?”

“목 보호대만 착용하면 30분 작동을 기준으로 봤을 때, 마력이 페이즈6인 각성자의 텔레파시 능력을 완벽하게 차단해요.”

“헬멧까지 차면?”

“그럼 마력이 페이즈10인 각성자의 텔레파시까지도 막을 수 있어요.”

“훌륭하군요.”

용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권희수가 텔레파시 대응책 연구에 들어간 것은 지난 8월 초의 일이다.

그로부터 고작 5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이만한 결과를 낸 것이다.

“닥터 브래드가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진 못했을 거예요. 둘이 힘을 합쳐보니 생각 이상으로 효율이 좋더라고요.”

권희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와 닥터 브래드의 조합은 단순히 대단한 연구자 두 명의 조합이 아니다. 마력의 구조를 미세 영역까지 보고 컨트롤할 수 있는, 마력 연구에 있어서는 사기적인 특수 능력을 가진 두 명의 조합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단기간에 용우가 요구하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셋이나 넷이 모이면 더 효율이 올라갈 것 같습니까?”

권희수는 용우의 물음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흠, 글쎄요. 그건 장담 못 하겠는데요? 저랑 닥터 브래드는 죽이 잘 맞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렇군요. 이거, 양산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좀 걸릴 것 같은데요. 일단 비용 문제가…….”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미국도 대량 구매 해줄 거고, 생산 라인 문제는 크로노스 그룹에 오늘 내로 사람을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와.”

권희수가 입을 벌렸다.

“반해 버릴 뻔했어요. 세상에. 연구비는 걱정 말라는 말 이후로 가장 강렬하네요.”

“반하지 마세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용우가 몸을 돌리려 하자 권희수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보여줄 게 하나 더 남았어요.”

“헬멧 시제품은 굳이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거 말고요. 더 재밌는 거예요.”

권희수는 우후후, 하고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용우를 한국 게이트 재해 연구소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 공간으로 안내했다.

“놀랐죠?”

“…….”

용우는 이번만큼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정말 놀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겁니까?”

게이트에 강림했던 하스라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던 아티팩트, 빙설의 창이 완벽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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