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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18화 (11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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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정상급 헌터 팀, 가디언즈 윙의 지하에는 거대한 비밀 시설이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의 협력을 받아서 건설된 그 공간은 최첨단 연구소이며, 또한 각성자 훈련소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곳을 찾은 브리짓 카르타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지이이잉…….

그녀가 걸어가는 동안 수십 가지 방식의 스캔이 이뤄지면서 조명이 점등되고, 보이는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시큐리티 시스템이 해제되고 복도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휴고.”

브리짓 카르타는 새하얀 복도의 끝에 위치한 거대한 공간에 들어섰다.

지름 400미터의 거대한 돔 형태로 건축된 이 지하 공간은 벽면 전체가 몬스터의 시신으로부터 얻은 특수 소재로 코팅되어 있었다.

건설 당시가 아니라 먼 미래에, 당시의 최고 수준의 헌터들보다도 훨씬 강력한 헌터들이 날뛰어도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이다.

그 한복판에 휴고 스미스가 있었다.

“어, 브리짓.”

근육이 불끈불끈한 상반신을 드러낸 채로 주저앉아 있던 휴고가 반색하며 일어났다.

브리짓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옷은 왜 벗고 있는 거야?”

“힘 좀 주면 티셔츠가 자꾸 찢어져. 그래서 훈련할 때는 그냥 벗고 하려고.”

휴고가 근육을 불끈불끈하며 포즈를 취하자 브리짓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아티팩트는 어때?”

“최고야.”

휴고가 씩 웃었다.

파지지지직…….

그의 오른팔에 휘감겨 있는, 청백색을 띤 금속 사슬이 전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티팩트 뇌전의 사슬이었다.

브리짓은 서용우의 권유에 따라서 본래 아티팩트 뇌전의 사슬을 보유하고 있던 호주의 7세대 각성자와 협상했다.

그 과정에서 호주 정부의 요구를 이것저것 들어줘야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티팩트 뇌전의 사슬을 휴고에게 줄 수 있었으니 큰 이익을 거둔 셈이었다.

“다음번에 그놈들을 만나면 아주 박살을 내주겠어.”

휴고는 타이베이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사납게 웃었다.

그때는 정말 굴욕적이었다. 차준혁을 보조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물론 팀의 일원으로서 자기 몫을 해내는 것을 굴욕적으로 여기는 것도 좀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휴고는 목숨을 건 싸움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길 바랐다.

브리짓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하지만 정말 괜찮았어? 제로의 말대로 역시 네가 구세록의 계약자 자리를 계승하는 게…….”

“브리짓.”

휴고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럴 필요 없어. 이미 대안이 내 손에 쥐어졌잖아.”

“그 대안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한테는 충분해. 난 천재잖아. 약간 부족한 게 있어야 더 불타오른다고.”

브리짓은 휴고에게 성좌의 무기 뇌전의 사슬을 넘겨주려고 했다. 하지만 휴고는 그것을 거부하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난 계약자가 되면 별로 그 역할을 잘할 자신이 없어. 그런 건 역시 네가 해야지. 넌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난 말할 만큼 말했어. 걷어찬 건 너야.”

“그래그래. 근데 브리짓, 혹시 부끄러워하는 거야?”

“아니야.”

“근데 왜 눈을 피하는 건데?”

“네 몸이 징그러워서 그래.”

“이제 와서? 그리고 어디가 징그럽다는 거야. 나 헬스 잡지 모델도 했었다고.”

휴고가 근육을 불끈거리며 말하자 브리짓이 그의 팔뚝을 찰싹 때리고는 말했다.

“훈련이나 시작하자. 나 시간 별로 없어.”

살짝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피하는 그녀를 보면서 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 해보자고. 어제하고는 또 다를 거야.”

휴고가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이자 브리짓이 손을 들었다.

꽈르르릉……!

그리고 눈부신 전광이 직경 400미터의 돔 공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 * *

2028년이 끝나고, 2029년이 시작되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용우는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가 순식간에 갔네.”

한바탕 청소기를 돌린 우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정신없었어.”

용우도 피식 웃었다.

오늘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신년회를 열었다.

작년에는 남매 둘이서만 조용히 보냈었다. 하지만 우희가 올해는 리사도 있고 용우도 지인들이 생겼으니 다 같이 놀고 싶다고 해서 신년회를 기획한 것이다.

용우는 유현애와 이미나, 차준혁, 김은혜, 경호원인 김경숙까지 초대했다. 용우나 차준혁처럼 파티 분위기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현애처럼 활달한 사람들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재미있었어.”

용우는 빈 그릇들을 주방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어디까지나 우희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일 뿐, 용우는 내심으로는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잔뜩 불러서 노는 시간은 용우에게도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지구로 돌아온 후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쁘지 않아.’

어비스에 끌려가기 전에는 친구들과 모여서 놀거나, 대학의 과 학우들끼리 모여서 노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지금의 용우에게는 그런 기억들이 너무 멀고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어비스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3년이었지만, 그곳에서 용우는 일반적인 감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오늘의 경험은 놀랍기까지 했다. 자신이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웃고 떠드는 시간에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용우는 리사와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미소 지었다.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놀고 나서 뒷정리를 하는 기분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감을 주었다. 어비스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문득 용우가 리사에게 물었다.

“리사, 재밌었어?”

“네.”

리사가 활짝 웃었다.

“전 이렇게 모여서 노는 게 생전 처음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자주 모였으면 좋겠어요.”

“…….”

보이시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종종 용우도 헷갈리고는 하지만, 리사는 올해로 23세가 된 성인이다.

그런 그녀가 사람들과 모여서 떠들썩하게 노는 일이 처음이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 한 1년 치는 떠든 거 아니야?”

용우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리사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 리사는 팬텀에서의 괴로운 시간을 이야기할지언정 그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언급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언젠가 리사가 말하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조용히 들어줄 것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면 영영 몰라도 괜찮다.

“그러게요. 현애하고 있으면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걔는 확실히 사람을 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지.”

“좋은 애예요.”

부끄러운 듯 웃는 리사는 평범한 소녀처럼 보였다.

리사는 사교성 없기로는 용우와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의 모습을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웃고, 말도 많이 했다. 어디까지나 리사의 평소 모습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파티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는 차준혁 다음으로 말수가 적기는 했지만.

“다음에 같이 옷 사러 가자고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요. 가도 돼요?”

“물론이지. 그런 일을 나한테 허락받을 필요는 없어.”

“하지만 훈련 스케줄도 있고…….”

리사는 여전히 용우가 고용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훈련을 받고 있었다. 실전에 투입된 후로는 훈련 스케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배울 게 많았다.

“그거야 스케줄을 조정하면 되잖아. 약속 정해지면 언제인지 말해주기만 해.”

“네.”

리사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

문득 용우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지금까지 참 잘해줬어.”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까? 리사가 가만히 용우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요구하는 걸 다 해냈고, 복수도 해냈지. 그러니까 이제는…….”

“제가 싸우지 않으면, 선생님은 곤란하지 않나요?”

리사가 용우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늘 용우를 예의 바르게 대하는 그녀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괜찮아.”

“거짓말이죠?”

용우는 주저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리사 역시 다 안다는 표정으로 찌르고 들어왔다.

“언니가 부탁한 거죠?”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우희가 용우에게 부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리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으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하지만 리사에게 그만 싸워도 된다고 말한 것은 용우의 진심이기도 했다.

용우는 리사에게 자신을 대입해서 보고 있었다.

리사의 상처, 리사가 품은 증오…….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었다.

“너는 이제 괜찮잖아.”

하지만 리사는 복수를 이루었다. 가슴속을 새카맣게 물들였던 감정을 분출하고, 그 너머를 걷고 있었다.

용우가 리사를 팬텀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낸 지도 어느덧 8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리사는 변했다. 만났을 당시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용우, 우희 남매와 함께 살면서 리사는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복수를 이룬 뒤에는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강박에 사로 잡혀서 자신을 밀어붙이던 위태위태함은 사라졌다. 복수를 마친 그녀에게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이제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

더 이상 위험에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용우는 그런 확신이 드는 것이 쓸쓸하면서도 기뻤다.

하지만 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전 무서워요.”

“뭐가?”

“세계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무서워요.”

“…….”

“때때로 이상한 추락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악몽을 꾸는 것처럼.”

평온한 일상, 아무것도 문제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듯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았을 것이다. 무지한 채로 복수를 이뤘음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용우가 말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이제는 아는걸요.”

이 세계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포기할 수 없어요.”

용우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자신이 필요하다. 리사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잖아요.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그리고 분명 그게 저를 위한 길이기도 하겠죠.”

“죽을 수도 있어. 굳이 더 이상 그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을까?”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리사의 말에 용우는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저는 그 시간에 의미가 있었다고 믿고 싶어요.”

용우는 그 시간이 무슨 시간이냐고 묻지 않았다.

리사가 팬텀의 실험체였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았으니까.

“그 사람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죽어갔다고 믿고 싶지 않아요. 저한테 뭔가를 남겨줬다고, 그렇게 받은 걸로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무언가라…….”

“그게 뭔지는 아마 평생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지만요.”

리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분명 이전과는 다른 그 웃음을 보면서 용우는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Chapter38 사냥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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