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17화 (117/225)

2

잠시 생각하던 용우가 말했다.

“타락체를 투입하는 전술적 목표는, 아티팩트 확보를 제외하고 본다면 역시 게이트 브레이크겠지.”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목적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에게 위협이 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영혼의 수확’ 쪽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요?”

“그럴 것 같군.”

적들은 정보 세계에 근본을 둔 언데드들이다. 타락체는 일종의 외인부대 같은 개념일 것이고.

적들의 1차적인 목적은 인간의 영혼을 수확하는 것이다.

몬스터에게 살해당한 인간들의 영혼은 적들… 이비연의 표현대로라면 ‘군단’의 소유가 된다. 그리고 군단은 인간의 영혼을 자원으로 소모함으로써 지성체를 지구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놈들에게는 각성자의 영혼이 일반인의 영혼보다 더 가치 있을 거야. 어비스 때도 강한 사람의 영혼일수록 가치 있다고 했었으니까. 타락체를 내보내는 데 꽤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켜서 다수의 인간을 죽일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는 거겠지.”

그 말에 휴고가 혀를 차며 물었다.

“짜증 나네. 아, 지금까지 나온 타락체 중에 타이베이에서 싸운 그 여자를 제외하면 네가 아는 놈은 없었던 거지.”

“없었지.”

“네가 얼굴을 아는 타락체가 몇이나 되는 거야? 죽지 않은 놈 중에서.”

“생사를 모르는 놈들까지 합치면 열다섯. 전부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하지만 이비연이 살아 있는 시점에서, 전원이 살아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중에 인간도 있나? 그러니까 암석인이나 상아인 말고 지구인.”

“다섯 명.”

“혹시 그 다섯 명은 전부 그 여자와 같은 수준인가?”

“…….”

용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모두가 대답을 기다리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진 않아.”

“듣기 싫은 질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휴고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이비연이라는 타락체에 대해서는 우리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용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휴고를 노려보았다.

“이비연과 만나면 싸울 생각을 하지 마. 보는 순간 알리고 도망쳐. 블링크나 텔레포트는 카운터를 맞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다른 이동 스펠을 쓰는 게 나을 거야. 연속 도약이라거나.”

“브리짓과 프리앙카가 둘이 붙어서 상대도 안 됐다고 하니까 위험하다는 건 알겠는데…….”

휴고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브리짓의 눈치를 보았다. 브리짓의 심기가 눈에 띄게 불편해지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미안해, 브리짓…….’

하지만 브리짓의 기분을 배려하느라 중요한 정보를 빼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네가 빙설의 창 하나만 들고 막았다면서? 그럼 전력을 다하면 승산이 충분한 거 아닌가?”

용우는 이비연과의 전투에서 끝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끝까지 버텨냈으니 하스라 코어로 융합시킨 성좌의 무기를 쓴다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 후로 프리앙카에게서 불꽃의 활을 넘겨받고, 허우룽카이에게서 굉음의 도끼를 강탈하지 않았던가?

용우가 고개를 저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건 서로 마찬가지야.”

“뭐? 진짜야?”

브리짓이 팀 섀도우리스에 제출한 전투 기록 보고서만 봐도 이비연의 전투 능력은 불가해한 수준이었다. 헌터들이 맞서 싸울 때의 난이도는 70미터급 게이트에서 강림했던 하스라 이상, 즉 9등급 몬스터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력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비연이 전력을 다했으면 내가 전력을 감추고 있을 수가 없었어. 그랬다가는 거기서 죽었지.”

용우와 싸울 때의 이비연은 명백히 힘을 억제하고 있었다.

“아마 이비연의 의식이 표층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용우와 만남으로써 내면에 깊숙이 잠들어 있던 인간 이비연의 의식이 나타났다.

그 의식은 육체를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안 그랬으면 일단 그 싸움에서 브리짓부터 죽었을걸.”

“…….”

브리짓의 안색이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우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싸움에서 이비연은 용우를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넘쳤다. 하려고 했다면 용우를 지원하던 브리짓부터 처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혀 브리짓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용우가 말했다.

“추측해 보자면… 아마도 타락체로서의 자신을 설득할 만한 이유가 존재했던 게 아닐까?”

타락체가 지구에 강림해서 활동하는 것은 군단이 수집한 영혼을 소모하는 행위였다. 타락체가 힘을 쓰면 쓸수록 활동 시간이 짧아진다.

그렇다면 그 활동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힘을 제한하는 것은 타락체로서의 자신을 설득할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타락체가 된 시점을 기준으로, 이비연은 어비스를 통틀어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강자였어. 당시의 나는 그녀를 이길 수 없었지.”

이비연이 타락체가 된 것은 어비스 종말까지 불과 15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용우가 마지막까지 본 어비스의 각성자들 중에서도 그녀만 한 강자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휴고가 어이없다는 듯 용우를 보다가 물었다.

“아니, 그럼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력을 숨기고 싸운 건데? 그거 완전 뒈지고 싶어서 환장한 짓 아니냐?”

“네가 상식적인 소리를 하다니… 왠지 마음이 아프군. 처음부터 그렇게 상식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야?”

휴고가 발끈하자 용우가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그녀의 전력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였어.”

“가늠할 수가 없다니?”

“전에도 말했다시피 타락체의 전투 능력은 인간일 때와 다르지 않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럴까? 그걸 알 수가 없었거든.”

이비연이 타락체가 된 후로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변했을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갖고 있던 검만 해도 평범한 검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고.”

이비연이 입은 교복은 어비스에서는 너덜너덜했었지만 타이베이에서 봤을 때는 새로 만들어진 것처럼 깔끔했다.

그리고 그녀가 차고 있던 서양식 장검은 어비스에서는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차준혁이 물었다.

“그럼 그 여자는 타락체 중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이지?”

“이비연보다 강한 타락체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한으로는 없어.”

“…….”

그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용우의 말은 즉, 이비연이야말로 최강의 타락체란 소리 아닌가?

“하지만 그 라지알이라는 놈도 꽤나 위험해 보였고, 내가 모르는 놈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니 단정 짓지 않는 게 좋겠지.”

어비스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타락체와 언데드는 군단 전체의 규모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어쨌든 타락체가 나타나는 건 우리가 얼마나 빨리 감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군. 이번에는 두 곳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투입되면 그것도 문제고…….”

“놈들을 처치해서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게이트에 진입했던 헌터들이 죽어나간다면 이겼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

각성자 헌터는 희귀한 전력이다. 타락체가 그들을 죽여대는 것만으로도 인류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이쪽은 돌입할 때 조건이 까다로운 게 문제입니다. 빙의를 하려면 각성자 헌터가 한 명은 죽어야 하고, 비축한 스페어는 그리 많지가…….”

“아, 그러고 보니 거기에 대해서 말하는 걸 잊고 있었군.”

용우가 브리짓에게 말했다.

“빙의는 이제 그만둬.”

“네?”

“꼭 계속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만두길 권고하지.”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브리짓이 설명을 요구했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 있어서 각성자들의 시신에 빙의해서 싸우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들이 무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되어 온 바였다. 그렇다면 사망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죽음을 유사 체험 할 때마다 정신이 망가져 가긴 하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

용우는 설명하기 전에 차준혁을 보며 말했다.

“차준혁, 너는 왜 빙의를 쓰지 않지?”

“선생님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다니엘 윤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브리짓이 깜짝 놀라자 차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유언이었다.”

다니엘 윤은 차준혁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빙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빙의는 분명 유용한 수단이고, 선생님 입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

다니엘 윤을 포함한 구세록의 계약자 1세대에게 있어서 빙의는 필수적이었다. 그들 말고는 대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용우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한번 빙의할 때마다 무언가에 사로잡히는 기분이었다고. 그건 정신적으로 괴로운 것과는 별개의… 마치 저주라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하시더군.”

구세록의 계약자들도 멍청한 이들이 아니었다. 다니엘 윤만이 아니라 모두들 일찌감치 구세록의 계약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그들은 절망적인 가정을 부정하고 애써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죽어도 나를 대신할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어깨를 으쓱한 용우가 브리짓에게 말했다.

“죽음의 리스크를 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그 리스크를 질 수 없다면, 너는 휴고 스미스와 자리를 바꾸는 게 나을 거야.”

“…….”

그 말은 브리짓의 가슴에 통렬하게 꽂혔다.

휴고가 발끈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해도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어!”

“…아냐, 휴고.”

브리짓이 휴고의 어깨를 잡고 그를 말렸다.

“나도 죽 생각해 왔던 문제니까.”

브리짓은 뛰어난 전투 능력의 소유자였다.

성좌의 힘을 제외하고 각성자로서의 전투 능력만 따져 봐도 분명 일류급이다.

하지만 그녀보다 한 세대 늦게 각성자가 된 휴고는 그야말로 천재였다. 헌터 업계에서 세계 최고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용우가 나타나기 전이었다면, 그래서 기존의 상식이 통용되던 때였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가 없었다.

구세록의 계약자로서의 역할은 더 강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구세록의 계약자들 또한 이제는 인류를 지키는 전력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면 전력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일단 아티팩트 문제부터 해결하지. 놈들에게 우리를 상대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고, 그러고 나면…….”

용우가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고는 말했다.

“치팅한 게임을 즐기는 기분으로 노는 침략자 놈들에게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걸 보여주자고.”

* * *

세상이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또다시 한 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 때 팀 이그나이트의 CEO, 다니엘 윤은 전세기를 타고 일본 큐슈에 와 있었다.

“확실히 일본은 따뜻하군.”

다니엘 윤이 중얼거렸다.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나오자 한창 혹한이 몰아치는 한국보다 훨씬 따뜻한 공기가 반겨주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던 두 대의 차량 중에 한 대에 경호원들을 태우고, 자신은 다른 차량에 탔다.

“형.”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오느라 수고했어.”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헌터, 차준혁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언론에 알려진 모습이 아니었다. 뿔테 안경에, 머리에는 긴 검은 머리칼의 가발까지 써서 변장하고 있었다.

“나야 고생이랄 게 없었지. 전세기 타고 왔는데. 형은 어떻게 온 거야?”

“텔레포트로.”

“…아, 그랬으면 내가 고생한 게 맞긴 하군.”

다니엘 윤, 정확히는 다니엘 윤의 대역이 쿡쿡 웃었다.

그의 정체는 행방불명 처리된 차준혁의 동생이었다.

은혜를 갚기 위해 다니엘 윤의 대역으로 살아갈 것을 결정했고, 다니엘 윤이 죽은 후에는 팀 이그나이트 CEO로서의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해 내고 있었다.

차준혁은 운전을 자율 주행 모드로 바꾸고 물었다.

“일본 정부하고 협상은?”

“제로가 준 재료 덕분에 잘 처리했어. 흑막이 없는 동네다 보니까 일이 편했지.”

일본의 구세록의 계약자, 사다모토 아키라는 정치에도, 권력에도 관심이 없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문화를 검열하고 탄압하고자 하는 움직임만 보이지 않으면 그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행동 원리가 명확히 밝혀져 있으며, 그가 일본의 헌터 전력이 감당할 수 없는 게이트 재해를 막아온 일본의 수호신이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나고야 수복 작전에 참가해 달라고 할 것 같아.”

“그래도 도쿄를 수복해 달라고 하진 않는군.”

“그쪽은 작전 규모의 차원이 달라지니까. 하지만 정말 사다모토 아키라가 개입하지 않을까?”

“캡틴은 문제없을 거라고 했어. 아티팩트는 그의 관심사가 아닐 거라고.”

차준혁과 다니엘 윤이 일본에 온 이유는 일본인 각성자가 보유한 아티팩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아티팩트 광휘의 검.

차준혁이 가진 성좌의 무기의 마이너 카피라고 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일본인 각성자의 손에 있었던 것이다.

서용우가 차준혁에게 그것을 손에 넣으라고 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타이베이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적들이 아티팩트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할 이유는 충분했다.

차준혁이 말했다.

“그리고 사다모토 아키라가 개입해 오면 알아서 두들겨 패주라고 하더군.”

“하하하. 제로답군.”

유쾌하게 웃은 다니엘 윤이 물었다.

“하지만 형, 그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그 말고는 아무도 답을 갖고 있지 않아.”

“…….”

“나는 선생님의 눈을 믿어.”

때때로 차준혁은 서용우를 보며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더 이상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차준혁이 원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다니엘 윤이 괴로워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서용우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의 기분이 떠올라서 괴로워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마땅히 안고 가야 하는 것이지.’

아마도 평생 동안 이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차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