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13화 (11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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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우는 재미있다는 듯 허우룽카이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도망쳤지?”

앞뒤를 다 자르고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허우룽카이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나, 나는… 나는…….”

“타이베이 한복판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넌 뭘 했지?”

“…….”

허우룽카이는 입을 뻐금거릴 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부정하진 않는군.”

용우는 그 사실이 신기하다는 듯 허우룽카이를 관찰했다.

“사실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리사에게는 충분히 복수를 만끽할 자격이 있었기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타이베이 사태로 인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여유 부리면서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역겨우니까 그만 죽어줘야겠다.”

용우의 눈에 경멸과 혐오감이 떠올랐다.

허우룽카이가 충동적으로 저지른 살인의 희생자들을 보자 더 이상 그의 존재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웃기지 마라.”

겁에 질려 있던 허우룽카이의 눈이 독기를 발했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지금도 삶에 대한 집착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호락호락 죽어줄 것 같으냐?”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냐.”

용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파악!

그 직후 허우룽카이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

순간 허우룽카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왼팔이 어깨부터 깔끔하게 잘려서 떨어지고, 그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시끄러워.”

용우가 짜증을 내면서 그를 걷어찼다.

콰장창!

허우룽카이가 벽면을 채운 거실 유리창을 뚫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오버 커넥트!

허우룽카이가 날아가는 기세 그대로 워프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워프 게이트를 통과하자 곳곳에 대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숲이 그를 반겼다.

헌터들과 몬스터들의 전투 흔적이 남아 있는, 소멸한 게이트 내부의 필드였다.

“크악……!”

날아오는 기세 그대로 땅에 충돌해서 튕겨 나간 허우룽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용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악!

그리고 그의 오른팔마저도 잘려 나갔다.

이어지는 대량의 출혈이 대지를 새빨갛게 물들었다.

일반인이라면 쇼크로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좌의 힘을 가진 허우룽카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광기와 술로 피폐해진 사고 능력은 뒤늦게 필요한 행동을 선택했다.

공기가 진동하며 육중한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둥! 투우웅! 쿠우우우우웅!

그 소리가 점차 커져가면서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으로 화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거대하고 새카만 도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든지 네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서양의 드래곤을 형상화한 것 같은 생김새의 검은 갑옷을 입은 허우룽카이가 외쳤다.

“하하하.”

용우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제발 그렇게 만들어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걸로 끝은 아니겠지, 응? 아직 남은 게 있잖아?”

그 말에 허우룽카이가 흠칫했다.

용우가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더 맞아야 내놓을 거냐?”

<원래는 브리짓 카르타에게 쓸 생각이었지.>

허우룽카이는 심호흡을 하면서 말했다.

<네놈이 좋은 테스트 상대가 되겠군, 제로.>

순간 용우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한 것을 애써 참았다.

‘이 상황에서 저따위로 말할 수 있다니, 확실히 맛이 갔군.’

용우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본래 허우룽카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닐 것이다. 정말 멍청하다면 팬텀 같은 조직을 만들어서 악마 같은 연구를 진행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허우룽카이는 냉정한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정신이 파탄 난 상태에서 술에 찌들어서 폐인 생활을 하던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두 팔이 잘렸는데 냉정하고 침착한 사고가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리스토어…….

투학!

허우룽카이가 치료 스펠을 발하려는 순간, 용우가 그 앞에 나타나서 일격을 먹였다.

“회복해도 좋다고 허락한 적 없는데.”

<이 자식……!>

“네가 해도 되는 건 비장의 패를 꺼내는 것뿐이야. 빨리 해보라고.”

용우가 차가운 눈으로 허우룽카이를 쏘아보며 말했다.

<소원대로 해주마!>

허우룽카이의 주변이 급변했다. 한순간에 수십의 그림자가 나타나서 그를 에워싸는 게 아닌가?

“아하.”

용우는 그 그림자들을 보며 웃었다.

“네놈이 믿는 구석이 고작 이거였나?”

변신을 완료한 셀레스티얼과 팔라딘 무리였다.

그 수는 셀레스티얼 3명, 팔라딘 11명.

확실히 막강한 전력이다. 자신이 성좌의 힘으로 변신한 채로 이만한 수를 거느렸으니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용우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전력이기도 하다.

“시간 낭비였군.”

용우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

그러자 허공에서 한 자루 양손 대검이 나타났다.

그 검의 모습은 독특했다.

사이즈는 헌터들이 쓰는 규격품 양손 대검과 같았지만, 그 표면은 새빨간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그 검면을 따라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본 허우룽카이가 경악했다.

<그건 뭐지?>

“뭐긴. 알고 있잖아?”

<…….>

용우가 이죽거리자 허우룽카이는 그 검을 보자마자 떠올린 것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네놈이 불꽃의 활을… 아니, 불꽃의 활이 왜 검으로…….>

저 양손 대검이 프리앙카가 소유했던 성좌의 무기, 불꽃의 활이라는 것을.

* * *

6시간 전.

용우는 인도 뭄바이에서 프리앙카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러면 된 거겠지?”

영어로 묻는 프리앙카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이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보였다.

“그래. 협력에 감사하지.”

볼일은 끝났다.

오랫동안 프리앙카의 것이었던 성좌의 무기 불꽃의 활은 이제 용우의 것이 되었다.

원래 용우는 프리앙카를 죽일 생각이었다. 죽음을 유사 체험 하고 광기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그녀를 공격해서 불꽃의 활을 빼앗는 것은 손쉬운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용우는 프리앙카를 고문해서 불꽃의 활을 빼앗고 죽인다는 사실에 별 거부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용우에게 있어서 그녀는 딱히 원한은 없지만, 그렇다고 죽일 때 꺼림칙한 것도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용우가 프리앙카의 소재를 묻자, 애비게일 카르타가 자신에게 교섭을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용우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일이었기에 그녀에게 교섭을 맡겼고, 그녀는 프리앙카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아니, 설득이라기보다는 협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용우가 프리앙카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설명해 주었을 테니까.

하지만 프리앙카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용우의 협박을 두려워해서는 아니었다.

프리앙카가 물었다.

“궁금하지 않아?”

“뭐가 말이지?”

“왜 내가 이렇게 순순히 불꽃의 활을 넘겨준 건지.”

“별로.”

용우는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대답했고, 프리앙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용우가 의자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하지만 꼭 말하고 싶다면 들어는 주지. 순순히 협력해 준 보답으로.”

“하하하. 내 이야기가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거야?”

“누군가에게는 꽤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그렇군…….”

쓴웃음을 지은 프리앙카는 술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들이켜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서없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정신 상태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프리앙카는 절망하고 있었다.

70미터급 게이트에서 하스라와 라지알을 만남으로써 한 번, 그리고 타이베이에서 이비연을 만남으로써 두 번.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재앙에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이후 지금까지 세상을 지켜오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목숨을 죽이거나 혹은 죽도록 방치하면서 역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그 역사를 지켜내기에는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알게 된 것이다.

죽음의 유사 체험으로 부서지기 직전이었던 프리앙카의 정신은 그 절망을 견뎌내지 못했다.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프리앙카는 오래전에 사람을 믿는 법을 잊어버렸다. 과거를 되새겨 봐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누군가를 믿지 않으면 자신의 뒤를 이어서 싸워줄 후계자를 만들 수 없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프리앙카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이 할 수 없으면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맡겨야만 했다. 그 단순한 방법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절망을 감당 불가능 할 정도로 크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초인으로서 세계를 조율하는 능력보다는 재앙과 싸울 수 있는 직접적인 힘이 중요할 테니까. 그 점에서는 분명 네가 나보다 낫겠지.”

그런 때 애비게일 카르타가 용우에게 불꽃의 활을 넘기라고 제안했다.

프리앙카는 그 제안에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안도감을 느꼈다.

“난 이제 쓸모가 없어.”

그녀에게 있어서 용우의 제안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였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일 때문에 고통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 사실이 후련했다.

“쓸모를 다한 도구는 세상에 없는 편이 나아.”

이야기를 마친 프리앙카는 용우가 보는 앞에서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서 나온 것은 한 자루 권총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뭐지?”

“날 죽여줘.”

“…….”

“남의 손은 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걸로 죽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군.”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경이로운 생명력을 지녔다. 프리앙카는 불꽃의 활을 용우에게 넘긴 지금도 자신이 권총으로 자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프리앙카의 눈을 본 용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눈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부탁이었다.

* * *

다시, 현재.

“너희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앞으로 나타날 적들과 싸우기에는 너무 약하거든.”

용우는 허우룽카이에게 차가운 진실을 고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이제는 쉬게 해줄게. 지옥에서 말이지.”

1세대 구세록의 계약자들은 심각한 PTSD 때문에 전투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닥쳐올 재앙을 막기에는 너무 약하다.

성좌의 무기를 그들에게 맡겨두는 것 자체가 심각한 손해다. 그 무기는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되어야만 했다.

“알아들었지?”

<닥쳐!>

허우룽카이가 격노했다.

동시에 용우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음?”

용우가 눈을 빛냈다.

“이건 또 뭐야?”

용우는 전투가 시작되면 다수의 셀레스티얼과 팔라딘이 동시에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우룽카이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는 그게 아니었다.

쿠우우우웅!

셀레스티얼 3명과 팔라딘 11명이 허우룽카이를 에워싸고 원진을 구축했다. 그리고 모두가 순백의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들이 지닌 힘이 공명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쿠아아앙! 콰아아아앙……!

강렬한 진동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한번 터질 때마다 더 증폭되고 있었다.

용우는 방어막으로 그것을 막아내면서 중얼거렸다.

“멋지군.”

애비게일 카르타는 허우룽카이가 뭔가 대단한 연구 성과를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리짓이 뇌전의 사슬을 계승한 후로 허우룽카이는 꾸준히 위기감을 드러내 왔다. 그러니 팬텀을 통해서 대책을 연구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용우는 애비게일 카르타의 추측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허우룽카이가 정말로 쓸 만한 비장의 한 수를 개발해 냈기를 바랐다. 일단 어떤 수법인지 봐두기만 하면 나중에 자신이 써먹을 수도 있을 테니까.

쿠아아아아앙!

폭발하는 굉음 한복판에서 허우룽카이의 마력이 폭증하고 있었다.

“대단한데?”

용우는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허우룽카이의 마력은 어마어마한 수준까지 상승해 있었다. 브리짓이나 차준혁을 능가할 정도였다.

쿠우웅!

허우룽카이가 용우 앞에 내려섰다.

<제로.>

강대한 마력을 휘감은 그가 굉음의 도끼로 용우를 겨누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전신을 가득 채운 활력이 피폐해졌던 그의 정신을 명료하게 만들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만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그 선언에 용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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