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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11화 (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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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 종반기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같이 괴물이라고 불릴 만한 전투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비연은 타락체가 되기 직전까지 그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전투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던 인물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9세, 중학생 시절 어비스에 끌려온 소녀는 지옥에서 보내는 3년 동안 자신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문명사회에서는 하등의 쓸모도 없던 재능, 전사로서의 재능이었다.

“그때부터 보름이라. 그때까지 남았던 사람이 다 죽었다면, 확실히 나는 오빠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네.”

이비연은 그립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표정이나 태도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몸은 섬뜩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콰과과광……!

현란한 폭발들이 도심을 수놓았다.

용우와 이비연이 격돌할 때마다 충격파가 터진다. 그리고 퍼져 나가야 할 그 충격파가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한 점으로 수렴되더니 그대로 소실, 상대가 있는 지점에서 출현하면서 대폭발을 일으킨다.

‘따라갈 수가 없어.’

브리짓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용우를 도와서 이비연과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둘의 전투가 너무나 고차원적이라 끼어들 수가 없었다.

<브리짓 카르타!>

이비연과 맞서던 용우가 외쳤다.

<지원해! 이대로는 30초도 못 버틴다!>

“30초? 정말 버틸 수 있어?”

이비연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놀란 것은 브리짓이었다.

‘개인한테 보낸 텔레파시를 도청했어?’

그리고 다음 순간, 허공에 커다란 파문이 퍼져 나가면서 용우가 튕겨 나갔다.

쾅! 콰쾅……!

용우가 빌딩을 뚫고 날아가서 다음 빌딩에 처박혔다.

“빌어먹을!”

용우는 곧바로 스펠을 펼쳤다.

-오버 커넥트!

직후 용우 앞에 나타난 불씨가, 오버 커넥트로 열린 워프 게이트를 타고 옆 빌딩에 출현했다.

꽈아아아앙!

원형으로 퍼져 나간 섬광이 빌딩의 중층부를 잡아먹는다.

쿠구구궁……!

그 결과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빌딩 중층부가 일순간에 증발해 버린 것처럼 사라지고, 그 결과 아래쪽을 잃은 빌딩 상층부가 하층부로 낙하해서 충돌,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브리짓 카르타! 도청되든 말든 일일이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중첩되는 가속 스펠이랑 강화 스펠 모조리 걸어!>

<알겠습니다.>

브리짓은 혼란을 떨쳐 버리고 그 말에 따랐다.

용우에게 2종류의 가속 스펠과 3종류의 강화 스펠이 걸리면서 원래부터 빠르던 움직임이 한 차원 더 가속했다.

파지지지직!

용우와 이비연의 허공장이 충돌하면서 공간이 뒤흔들렸다.

허공에서 격돌하는 둘은 허공장을 막무가내로 부딪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서로의 허공장을 잠식하기 위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기둥을 믿고 있었던 거야?”

이비연이 말했다.

용우가 쓰고 있는 양손 대검은 빙설의 창의 형태를 변화시킨 것이다. 성좌의 무기를 쓰고 있는데도 이비연을 상대로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는 게 고작이었다.

“확실히 조금은 평가를 수정해야겠네. 개미 눈곱만큼이나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

이비연의 웃음은 서글퍼 보였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반딧불보다도 보잘 것 없는 희망의 불씨였다.

과연 자신은 이 희망을 믿고 도박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냉정하게 결단을 내려야 할까?

“…믿고 싶어.”

그녀의 주변 공간이 요동치며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물질이 터져 나갔다.

콰과과과광!

용우는 아슬아슬하게 그 파괴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셋으로 분화하면서 이비연을 3방향에서 동시에 몰아쳤다.

투하하학!

동시에 충격음이 울리며 두 사람이 서로 반대편으로 미끄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두 사람은 밀려나는 기세가 다하기도 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투앙! 투쾅! 콰콰콰콰쾅……!

현란하게 공간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잔상을 남겼다.

“믿어.”

용우는 아슬아슬한 격전 속에서 말했다.

“내가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

확신에 찬 용우의 말에 이비연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파직!

용우의 일격이 스쳐가면서 볼 앞에 스파크가 튀자 그녀가 웃었다.

“여전하네, 오빠는.”

예전부터 그랬다. 용우는 언제나 자신들을 어비스에 떨어뜨린 자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를 이야기했다.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희망이기도 했다.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이 지옥에도 끝은 있을 것이다.

이토록 많은 인간을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런 곳에 처박아두고 계속 강하게 만들 리가 없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살아남기만 하면 언젠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준 고통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용우는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포기하고 절망해 버린 상황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증오로 얼룩진 희망을 입에 담았다.

용우가 물었다.

“너희들은 이걸 기둥이라고 부르더군. 왜지?”

“일곱 개의 기둥, 일곱 개의 제물. 그게 우리가 이 세계에 넘어올 때 규칙을 강요하는 원천이야.”

이비연은 순순히 가르쳐 주었다.

용우를 말살하고자 하는 육체의 의지와 달리, 인간 이비연의 의식은 용우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타락체는 도대체 뭐지?’

브리짓은 그 지독한 괴리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비연은 그리워하고 있다. 반가워하고 있다.

슬퍼하고 있다. 절망하고 있다.

그녀가 보이는 감정 속에 살의는 없다. 미움도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더없이 흉흉한 공격으로 용우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마음과 몸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종말의 군주들이 기둥에 바쳐진 제물을 죽이고, 자신에게 대응하는 기둥을 손에 넣으면 강제력이 무너져. 그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넘어올 수 있게 되지.”

“…….”

“오빠, 아직 감추는 패가 있지? 그것도 하나가 아닐 거야.”

이비연이 그렇게 물으며 검을 휘둘렀다.

용우가 양손 대검으로 받아내자 그녀의 검세가 변화했다.

-보이드 바운드!

동시에 용우의 검세도 변화했다.

-보이드 바운드!

서로를 향해 휘둘러진 검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초음속에 도달했던 두 자루의 검이 서로 맞부딪치는 순간, 거짓말처럼 운동에너지가 소멸하면서 평온하게 맞대어진다.

그리고…….

쩌저적!

갑자기 유리에 금이 가는 것 같은 균열음이 울려 퍼졌다.

실제로 허공에 균열이 생기면서 눈에 보이는 풍경이 어긋나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균열로부터 쏟아져 나온 막대한 열기가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오로지 둘이 검을 맞대고 있는 영역만이 평온했다.

공간 그 자체를 뒤흔들며 퍼져 나간 충격파가 너덜너덜해진 빌딩들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쿨럭……!”

한 박자 늦게 용우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잘했어, 오빠.”

이비연이 미소 지으며 용우를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주저앉은 용우의 머리통에 인정사정없이 발차기를 날리고 있었다.

쾅!

폭음이 울리며 용우가 뒤로 물러났다.

<고맙다.>

용우가 헬멧의 바이저를 다시 내리며 브리짓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브리짓이 방어막을 둘러쳐 줬던 것이다.

“앞으로 47초야, 오빠.”

이비연이 천천히 걸어오면서 말했다.

“감춰둔 패, 마지막까지 쓰지 말고 버텨줘.”

“그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지?”

“군단은 게이트를 통해서, 몬스터를 통해서 인간의 영혼을 수집해.”

이비연은 빠른 말투로 중요한 정보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영혼을 대가로 지구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거야. 우리의 본질은…….”

“언데드겠지.”

“알고 있었구나. 그럼 이야기가 빨라지겠네. 우리는 군단에서 대가로 지불한 영혼만큼만 지구에 간섭할 수 있어.”

언데드들은 지구에 스스로를 구현하는 것 자체에 큰 제약이 걸려 있다.

실체가 정보 세계에만 존재하는 그들은 물질세계에 스스로를 구현하는 단계부터 열화를 겪는다. 강한 언데드일 수록 온전한 모습으로 강림하기 위해서 막대한 영혼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에 비해 타락체는 그런 제약이 적은 편이다. 그들은 원래 인류였다가 후천적으로 정보 세계의 주민권을 획득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타락체는 무조건 온전한 모습으로 강림할 수 있다. 다만 대가로 지불한 영혼만큼만 활동시간을 부여받게 되며, 힘을 쓰면 쓸수록 그 시간이 단축된다.

“이길 수 없다면 힘을 소모하게 만들어. 그리고 시간을 끌어. 희생을 줄이고 군단의 자원을 소모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익이야.”

이비연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몸은 용우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버텨줘.”

이비연은 용우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시간.

하지만 생사가 교차하는 격전 속에서, 압도적인 힘과 기량을 가진 상대로 버티기에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다.

용우는 그 시간을 마지막까지 버텨내었다.

이비연이 바란 대로, 준비해 둔 비장의 패는 하나도 꺼내 들지 않은 채로.

“오빠에게 걸어볼게. 다음에는 약속을 지켜줘.”

이비연은 그 사실에 만족한 것 같았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파악!

그 순간, 섬뜩한 파육음이 울리며 피가 튀었다.

이비연의 오른손이 손목부터 잘려서 떨어지고 있었다.

“…….”

이비연은 물론이고 브리짓도 깜짝 놀라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를 들고 있는 이비연의 손을 베어낸 것은 허공에서 홀연히 나타난 한 자루 붉은 검이었다.

완벽하게 허를 찌른 공격이었다. 용우를 압도하는 막강함을 과시했던 이비연조차도 모든 것이 끝난 순간, 자신이 지구에서 추방당하는 그 찰나를 노린 공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비연은 땅에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용우를 보며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잘했어.’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아침햇살에 스러지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용우가 중얼거렸다.

“…최악이군.”

브리짓은 그런 그를 보며 아연함을 느꼈다.

용우와 이비연이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것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상대로 그토록 가차 없고 비정하게 행동할 수 있다니…….

‘게다가 그걸 잘했다고 칭찬하다니.’

브리짓도 이비연이 웃으면서 입모양으로 용우를 칭찬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연해졌다. 어비스는 대체 어떤 지옥이었기에 두 사람 같은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 관계성에 감사해야겠지.’

용우의 기습이 아니었다면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를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종말의 군주가 게이트 안에 강림했을 터.

<조금 전 건 불꽃의 활인가요?>

“글쎄.”

용우는 대답하지 않고 이비연의 잘린 손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파지지직……!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허공장이 반응하면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맙소사…….>

브리짓이 경악했다. 잘린 손에도 고밀도의 마력이 남아서 허공장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존재여야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강대한 힘이라도, 그것을 휘두르는 의지가 없다면 헛되이 소모될 뿐이다.

용우는 간단하게 허공장을 잠식해 버리고 이비연의 손을 집어 들었다.

‘약속을 실현할 확률이 좀 올라가겠군.’

용우는 그 손에 보존 효과가 있는 스펠을 걸어서 아공간에다 넣고는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를 집어 들었다.

지직……!

그러자 격렬한 반발력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진동과 스파크가 주변을 휩쓸었지만 용우는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아티팩트 소유권은 아티팩트 소유권하고만 반발하는군.”

성좌의 무기 소유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인(封印)!

초고밀도의 마력장이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를 감싸고 수축하기 시작한다.

눈앞에서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을 본 브리짓이 물었다.

<그걸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내가 갖고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겠지.”

<…….>

“왜?”

<당신의 뻔뻔함이 참 놀라워서요. 그 뻔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좀 화나는군요.>

브리짓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용우가 말했다.

“이젠 시간이 없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시간이 없다.

용우는 이번 일로 그 사실을 절감했다.

“브리짓 카르타, 몬스터들을 정리해. 더 이상 피해를 확산시키지 마.”

<당신은?>

그 말에 용우는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저편을 노려보며 말했다.

“놈들에게도 핏값을 치르게 해야지.”

Chapter36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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