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10화 (1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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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섀도우리스가 타이베이 시내에 집결했다.

그들은 강원도 수복 작전 때와 달리 힘을 아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전 시작 전에 용우가 경고했기 때문이다.

타락체가 존재하는 전장에서 힘을 아끼다가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목숨을 잃는 수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원 변신한 채로 전장에 진입했다.

<지휘관 개체는 없는 걸로 추정. 휴머노이드 몬스터들이 다수 있지만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나가 주변을 정찰하고 의견을 내자 차준혁이 말했다.

<일단 수를 줄이는 것에 집중한다. 유현애, 이미나가 같이 움직이고 제로-2는 휴고와 같이 움직이도록.>

<야, 왜 네가 지시를 내리는 건데?>

휴고가 불만을 표시했다.

<캡틴이 자신이 지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지휘권을 일임했다.>

<…….>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네가 지휘해도…….>

<됐거든?>

휴고가 짜증을 냈다.

‘젠장, 이 자식한테는 무슨 말을 못 하겠네.’

70미터급 게이트에서 휴고에게 은혜를 입었던 일 때문일까? 차준혁은 휴고를 늘 예의를 갖춰서 대하고 있었다.

차준혁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휴고는 그 사실이 굉장히 불편했다.

<조금 전의 지시는 철회한다.>

그런데 갑자기 차준혁이 심각하게 말했다.

<제로-2는 유현애, 이미나 조와 합류해라. 휴고 스미스, 내 쪽 지원을 부탁한다.>

<뭐? 무슨 일이야?>

텔레파시에 실려 전해지는 위기감에 다들 놀랄 때였다.

꽈과과과과……!

차준혁이 있는 지점에서 거대한 마력이 충돌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차준혁이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락체다.>

2미터가 넘는 거구에 검푸른 암석을 울퉁불퉁하게 깎아놓은 것 같은 피부를 가진 타락체가 차준혁과 대치하고 있었다.

* * *

브리짓은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느꼈다.

용우가 ‘이비연’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순간, 거침없이 공격해 들어가려던 교복 소녀가 행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무기질적인 붉은 눈으로 용우를 바라보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

평범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특이한 구석은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브리짓은 그 사실이 소름 끼쳤다. 이토록 강대한 재앙에게서 평범함이 느껴진다는 것이.

“서용우.”

그 이름을 들은 교복 소녀, 이비연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그 형태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용우 오빠? 정말로?”

대리석을 깎아 만든 가면처럼 무기질적이었던 얼굴에 감정이 퍼져 나갔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묻는 이비연은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붉은 눈동자와 허리에 차고 있는 서양식 장검만 없다면 누구나 그 나이 또래의, 활달하고 귀여운 소녀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로 나야.”

용우는 헬멧의 바이저를 열고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의 얼굴을 본 이비연은 말문이 막힌 듯 입가를 실룩이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살아 있었구나.”

그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용우는 그 사실에 쓰라린 감정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래.”

“살아 있었구나. 믿어지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용우와 이비연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어비스의 모든 것이 끝나기 보름 전이었다.

그날은 이비연이 타락체가 된 날이었고, 용우는 그녀를 죽이지 못한 채로 전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다시 이비연을 보지 못했기에 용우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이야.

“제물이 모두 죽고, 어비스가 닫혔다고 들었어. 그래서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오빠는 살아 있었구나. 살아서 지구에 돌아온 거였어.”

“…….”

“축하해. 우리 모두의 꿈이었잖아. 오빠라도 살아남아서 다행이야.”

이비연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마저 맺힌 얼굴을 보면 누구나 그녀가 진심으로 용우가 살아 있음을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용우의 질문에 이비연이 멈칫했다.

그녀는 고장 난 인형처럼 멍하니 용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잖아.”

다시금 환하게 웃는 그녀의 입에서, 잔혹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 죽었다는 걸. 오빠가 보고 있는 건 이미 죽은 사람의 망령이야.”

“유감이군. 그때하고 다르길 바랐는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이비연이 새벽의 해머를 들어 올리자 용우가 말했다.

“비연아, 그건 두고 가줘야겠어.”

“그게 오빠가 원하는 거라면 들어주고 싶어.”

이비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지? 내 마음은 죽은 사람의 잔영에 불과해. 오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깨어나지도 않았을 거야.”

“알아.”

이비연은 용우가 아는 타락체 중에서 가장 특이한 케이스였다.

용우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타락체가 되었음에도 이전에 품고 있던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일 뿐이었다.

이비연이라는 인간의 마음은 더 이상 몸의 주인이 아니었다. 타락체로서 각인된 목적의식이 그녀의 몸을 지배했다.

“오빠, 미안하지만 이제 한계야.”

이비연이 말했다. 용우는 그것이 경고임을 알아차렸다.

잠시 동안 인간 이비연의 마음이 쥐었던 몸의 통제권이, 다시 타락체 이비연에게로 넘어갔다.

“언니하고 한 약속을 지켜줘.”

그리고 이비연의 손에서 새벽의 해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형상변화!

영롱한 빛을 발하는 해머가, 그 질감 그대로 서양식 장검의 형태로 변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공간을 넘어서 용우 앞에 나타났다.

쾅!

폭음이 울리며 용우가 튕겨 나갔다.

이비연은 용우를 추격하는 대신 스펠을 발했다.

-염동염마탄(念動炎魔彈) 동시다발(同時多發)!

초고열을 머금은 에너지탄 24발이 한 번에 발사되었다.

-이레귤러 바운드!

그 직후 새로운 스펠이 연이어 발동하면서, 초음속으로 쏘아진 24발의 에너지탄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콰콰콰콰콰쾅……!

‘저게 뭐야?’

폭염이 연달아 터지는 것을 보며 브리짓이 기겁했다.

사라진 24발의 에너지탄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혀 다른 궤도로 튀어나와서 용우를 노리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런 일이 한 번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용우가 피하면 다시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각도에서 나타나서 용우를 노린다.

초음속의 에너지탄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그것도 한번 빗나가도 다시 되돌아오기까지 하면서 하나의 표적을 노린다. 회피 불가능 한 공격이었다.

-오만의 거울!

그러나 그런 공격에도 용우는 대응책을 꺼내 들었다.

주변에 거울처럼 매끈하게 잘린 얼음판들이 나타나면서 에너지탄들을 튕겨내었다.

콰과과광……!

튕겨 나간 에너지탄들이 연달아 폭발하는 가운데, 용우가 양손 대검을 휘둘렀다.

-공허 가르기!

그러자 용우의 양손 대검 끄트머리가 허공을 푹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쉬이이잉!

그렇게 사라진 끄트머리는 50미터 이상의 거리를 격하고 이비연의 목 바로 옆에 나타났다.

무기의 일부분만이 공간을 격해서 표적을 베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공허 문지기!

이비연이 자신의 목이 베이는 순간에 새로운 스펠을 발했다.

쾅!

폭음이 울리면서 용우가 거센 기세로 튕겨 나가서 빌딩에 처박혔다.

“…젠장, 여전하군.”

용우가 빌딩에 처박힌 채로 중얼거렸다.

이비연은 어비스 종반기까지 살아남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당시 생존자들 중에서도 특출하게 강한 인물로 손꼽히는 무투파였다.

즉, 그녀는 지구의 각성자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전투 능력을 보유한 것이다.

“용우 오빠.”

이비연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장난하는 거야?”

“글쎄.”

이비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용우를 가리켰다.

콰아아아앙!

직후 용우가 있던 자리에서 섬광이 폭발하면서 빌딩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쿠구구구궁……!

몇 개 층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빌딩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비연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슬아슬하게 블링크로 탈출한 용우가 있었다.

“페이즈22 정도?”

“여전히 귀신같군.”

용우의 마력은 계속해서 성장, 아니, 정확히는 회복해서 현재는 페이즈22였다. 본신 마력만으로도 셀레스티얼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마력이 늘어난 만큼 용우의 전투 능력은 현격히 상승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펠도, 활성화된 특성도 늘어났고 힘이 부족해서 구사하지 못하던 기술들도 사용 가능 해졌으니까.

그런데도 이비연은 용우가 약해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빠 마력이 그 정도일 리가 없잖아. 장난은 그만해. 정말 감쪽같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러다가 제 실력을 내지도 못하고 죽을 거야.”

“장난치는 게 아니야. 그냥 좀 사정이 생겼을 뿐이지.”

“사정이라…….”

이비연이 그 말을 입안에서 곱씹더니 물었다.

“정말로 약해졌다는 거야?”

“글쎄.”

“하긴 13년이나 흘렀지.”

“…….”

용우는 동의하지 않았다. 현실의 시간은 13년이 흘렀지만 용우의 체감 시간으로는 1년이 지났을 뿐이니까.

“오빠도 나이를 먹었을 테니까… 약해졌을 수도 있겠지.”

용우는 그녀를 보면서 세월을 느낄 수 없었다. 이비연의 외모에서도, 태도에서 묻어나는 감정에서도 13년의 세월이 끼친 영향을 찾지 못했으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나을 거야. 내가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줄게.”

아지랑이처럼 투명한 푸른빛이 이비연의 몸을 감싸면서 마력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8등급 몬스터 수준이었던 그녀의 마력이 몇 배로 거대해진다.

“내가 여기 온 건 시작일 뿐이야. 이제 진정한 종말이 올 거야.”

검의 형태로 변한 새벽의 해머를 쥔 그녀가 거리의 예언자처럼 말했다.

“나 하나도 막을 수 없다면, 일찌감치 죽어 버리는 게 나아. 미래에 도래할 지옥에 떨어지기보다는 모두 깔끔하게 죽어버리는 게 행복할 거야.”

우우우우우우!

이비연의 마력이 새벽의 해머와 공명하면서 한층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브리짓조차도 압박감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9등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

70미터급 게이트에서 싸웠던 하스라를 훨씬 능가하는 마력이었다. 도저히 맞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마력을 다루는 것은 지성 없는 몬스터와 달리 너무나 고차원적인 기술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하지만 그 마력의 폭풍 속에서도 용우는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보름밖에 안 걸렸어.”

“뭐가?”

“네가 그렇게 되고 나서, 모든 게 끝나기까지.”

“…….”

이비연이 멈춰 서서 용우의 말을 기다렸다.

“다 죽어버리고 나 혼자 남으니까 놈들이 그러더군. 다음이 마지막이라고…….”

“마지막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구나.”

이비연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용우는 그 심정을 이해했다.

“있었지. 그리고 내가 죽는 게 어비스를 만든 놈들이 쓴 시나리오의 끝이었고.”

“하지만 오빠는 죽지 않았어.”

“그래. 어떻게든 탈출했지.”

“약해진 건 그 대가였어?”

“…….”

“오빠가 잘못했다고는 하지 않을게. 살아남아서 지구에 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그동안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테니까.”

이비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용우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야.”

용우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익숙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오랫동안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결정되어 버리는 운명에 대한 절망.

“어차피 끝날 거라면, 차라리 내 손으로 보내주겠어.”

“그럴 필요 없어.”

용우는 단호하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구구구구구……!

허공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그 진동에 움찔한 이비연은, 물러나는 대신 벼락처럼 달려들어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용우에게 닿지 못했다.

그 앞에서 나타난 양손 대검이 검격의 궤도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건…….”

이비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용우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약속을 지킬 거니까.”

그리고 빛이 폭발하면서 용우와 이비연이 서로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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