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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세계의 귀환자-109화 (10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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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섀도우리스의 강점은 그 어느 팀보다도 빠르게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전투 준비를 마치고 모이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용우와 차준혁이 공간 간섭계 스펠을 다루는 데다가, 전원이 아공간을 갖고 있어서 곧바로 장착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용우가 타이베이 북쪽의 양밍 산 국가 공원에서 시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팬텀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용우는 세계 각지의 공간 좌표를 확보해 놓았다.

타이베이의 경우는 곧바로 도심으로 이동하면 허우룽카이가 눈치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을 공간 좌표로 설정했다.

“허우룽카이가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 리사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용우는 그녀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흥분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놈은 저기에 없어.”

브리짓은 허우룽카이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용우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망쳤겠지.’

허우룽카이는 꿈에도 상상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용우가 이미 그의 존재 자체를 공간 좌표로 설정했다는 것을.

얼마 전 리사가 셀레스티얼에 빙의한 허우룽카이와 싸웠을 때, 용우는 리사를 서포트하면서 허우룽카이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가 정신체를 공격하는 리사의 공격에 의표를 찔린 틈을 타서 공간 좌표를 확보해 둔 것이다.

그렇기에 용우는 지금 허우룽카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위치면… 미국 동부인가?’

상당히 대담한 도피처 선정이었다.

애비게일 카르타의 홈그라운드인 미국으로 도망칠 줄이야.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허우룽카이가 어디로 도망쳤냐가 아니었다.

그가 타이베이가 위협받는 위기에서 도망쳤다는 사실 자체였다.

‘이제 네놈은 빈껍데기다, 허우룽카이.’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이 끝난 후, 애비게일 카르타는 용우에게 말했다.

어쩌면 허우룽카이와 사다모토 아키라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심한 PTSD에 시달려서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두 사람이다. 그들이 다시 한번 죽음을 유사 체험 했으니 전사로서의 생명이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용우는 그녀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확신했다.

허우룽카이는 자신이 지켜온 이 땅을 내버리고 도망쳤다. 그를 지탱해 주던 긍지와 자존심을 스스로 짓밟아 버린 것이다.

‘불쌍한 놈.’

용우는 그런 허우룽카이의 선택에 동정마저 느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손바닥 보듯 훤히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더 시간을 끌어가면서 괴롭힐 가치도 없군. 곧 죽여주지.’

용우는 허우룽카이의 처우를 결정하고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가자.”

팀 섀도우리스는 아수라장이 된 타이베이 시내로 진입했다.

* * *

타이베이는 퍼스트 카타스트로피 때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도시였다.

그 후로 대만의 국력이 역사상 최고조에 달하고, 중국 영토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번화한 대도시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서 재앙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워어어어!

전신이 금속질로 이루어진 키 10미터의 휴머노이드 몬스터, 6등급 강철거인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빌딩을 부수고, 자동차들을 걷어차서 부숴 버렸다.

화아아아악!

전신이 금속성 비늘로 뒤덮인 몸길이 40미터의 도마뱀형 몬스터, 메탈 드레이크가 입에서 뿜어낸 화염이 거리를 불태웠다.

크고 작은 몬스터들이 날뛰면서 인류가 구축한 문명의 산물들을 파괴하는 가운데, 50층이 넘는 고층 빌딩 위에 교복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

그녀는 강철거인이 아래쪽을 두들겨 대는 빌딩 위에서 재앙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휘날리는 검은 단발머리 아래, 붉은 눈동자가 아무런 감흥도 없이 파괴와 학살의 현장을 담았다. 마치 카메라처럼 무기질적으로 느껴지는 눈이었다.

“시끄럽군.”

누군가 저음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지구의 언어가 아닌,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동도 하지 않는 소녀의 옆에 그 목소리의 주인이 와서 섰다.

인간과 닮은 실루엣을 가졌지만, 한눈에 인간이 아님을 알아볼 수 있는 존재였다.

2미터가 넘는 키에 피부는 검푸른 암석을 울퉁불퉁하게 깎아놓은 것 같았고 눈은 통째로 붉은 가운데 동공만이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머리 양쪽에는 뒤쪽을 향해 휘어지며 솟은 굴강한 뿔이 나 있었다.

“벙어리 공주, 너도 힘 좀 쓰지 않겠나? 아까 그 인형들 처리한 것밖에 한 일이 없잖나.”

그 말에 교복의 소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그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교복 소녀와 암석인은 전혀 달라 보였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타락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교복 소녀는 타락체 중에서도 별종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인간이 타락체가 되는 과정은 표백과 각인의 2단계를 거친다.

표백을 거치면 기억과 얽혀 있던 모든 감정이 지워지고 만다. 그것은 더 이상 기억 속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게 되는, 즉 자아가 살해당하는 과정이다.

한때 자신이었던 잔해 위로 인류에 대한 적의를 각인받음으로써, 타락체는 원래와는 완전히 다른 자아로 거듭나게 된다.

그것은 감정이 말살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될 뿐, 분명 타락체는 희로애락을 가진 지성체였다.

하지만 교복 소녀는 타락체가 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희귀한 케이스였다.

그녀는 감정이 표백된 후로 새롭게 감정이 형성되지 않은 채로 타락체가 되어버렸다.

타락체로서의 목적의식은 있지만 인격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운 존재.

그것이 바로 교복 소녀였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년이랑 같이 출격이라니…….”

거구의 암석인은 짜증을 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그워어어어어어!

날뛰는 6등급 몬스터들의 소리조차 묻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음량의 포효였다.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거센 정신파가 퍼져 나갔다. 소리에 비유하자면 누군가의 목소리보다는 폭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변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날뛰는 몬스터들 앞에서 수천의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암석인이 포효하는 순간, 반경 5킬로미터의 인간들이 침묵했다.

조금 전까지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들은 그 자리에 멈춰 버렸고 아무런 반응도 없이 몬스터들에게 학살당했다.

“하! 효과가 이 정도라니… 정말로 하찮은 것들이군.”

암석인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릴 때였다.

교복의 소녀가 하늘을 흘끔 올려다보더니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뭐야, 갑자기 어디를 가는…….”

짜증을 내는 암석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머리 위로 하늘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섬광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빌딩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 * *

<프리앙카!>

뇌전의 사슬로 변신한 브리짓 카르타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타락체에게 기습적으로 대규모 파괴 스펠, 선다운 버스트를 날린 프리앙카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그녀 역시 붉은 갑옷의 모습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아직 생존자들이 있었어!>

프리앙카는 아직 탈출하지 못한 생존자가 남아 있는 구역에 대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브리짓의 비난에도 프리앙카는 태연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었어.>

<……!>

<냉정하게 생각해. 지금 우리 둘이서 저놈들을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그러니까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프리앙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프리앙카, 당신은……!>

격노한 브리짓이 프리앙카에게 다가갔지만, 프리앙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선다운 버스트!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한번 같은 지점에다가 똑같은 스펠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아!

다시금 대폭발이 같은 지점을 휩쓸었다.

소름 끼치는 냉혹함에 브리짓은 아연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강한 놈들이라도 이걸 두 번이나 맞았으니…….>

쾅!

프리앙카가 중얼거릴 때, 뭔가가 그녀를 쳐서 날려 버렸다.

<어?>

놀란 브리짓이 프리앙카를 바라보았다.

“…….”

무표정한 교복의 소녀가 프리앙카를 빌딩에다 처박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교복 소녀와 프리앙카의 허공장이 반발하면서 격렬한 스파크가 일었다. 그 압력으로 콘크리트 벽이 부서지고 유리들이 깨져 나갔다.

<타락체냐!>

프리앙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꽈과과광!

그리고 교복 소녀가 대답하기 전에 브리짓이 날린 뇌전의 사슬이 그녀를 후려쳐서 날려 버렸다.

‘저걸 막았어?’

브리짓이 놀랐다.

교복 소녀는 정타를 맞고 날아간 게 아니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서양식 장검을 뽑아서 뇌전의 사슬을 막고, 그 반발력을 이용해서 스스로 날아오른 것이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

프리앙카는 곧바로 안티 텔레포트 필드를 펼치고는 불꽃의 활을 당겼다.

퍼버버버버벙!

쏘아진 불꽃의 화살이 수백 조각으로 분열해서 교복 소녀가 착지한 지점을 폭격했다.

후우우우우!

하지만 소용없다.

돌풍이 일면서 교복 소녀가 불꽃 속에서 걸어 나왔다.

휘날리는 단발머리 아래 무기질적인 붉은 눈동자가 구세록의 계약자들에게 향했다.

브리짓은 전율을 느끼며 생각했다.

‘마력은 나와 동급.’

교복 소녀의 마력은 8등급 몬스터 수준이었다. 변신한 브리짓과 동급이다.

하지만 브리짓에게는 뇌전의 사슬이 있다. 뇌전의 사슬로 증폭된 그녀의 마력은 9등급 몬스터와 필적한다.

<프리앙카.>

브리짓은 프리앙카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내가 앞에서 막을 테니까 서포트해 줘.>

<알겠다.>

불꽃의 활의 주인인 프리앙카는 원래부터 원거리 화력전에 능한 인물이다. 또한 브리짓에 비해 스스로의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인정하는 냉정한 면모도 강점이었다.

-염동염마탄!

불꽃의 활에서 극초음속으로 쏘아진 초고열의 에너지탄이 교복 소녀를 노렸다.

-오만의 거울.

그러나 그 순간 교복 소녀의 눈앞에 거울처럼 매끈한 둥근 판이 나타났다.

쾅!

프리앙카가 쏘아낸 염동염마탄이 그대로 반사되었다. 판의 각도와는 상관없이 날아온 궤도를 고스란히 되돌아간 초고열의 에너지탄이 프리앙카를 때렸다.

<꺄악!>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프리앙카에게 교복 소녀가 뛰어들었다.

-구전광!

그러나 브리짓이 발한 뇌전의 구체 7발이 연달아 교복 소녀를 덮쳤다.

꽈광! 꽈르릉!

교복 소녀가 구전광을 허공장으로 버텨내고는 반격하려고 할 때였다.

파지지지직!

뇌전의 사슬이 교복 소녀의 허공장을 휘감고 격렬한 반발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반발력으로 교복 소녀의 스펠 발동이 취소되었다.

브리짓이 싸늘하게 말했다.

<사라져 줘야겠어.>

-라이트닝 버스트!

푸른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져서 교복 소녀를 강타했다.

꽈과광!

본래 라이트닝 버스트는 스펠 사용자가 낙뢰를 받은 뒤 그 에너지를 컨트롤해서 쏘아내는 스펠이다.

하지만 브리짓은 뇌전의 사슬을 통해서 그 스펠을 변칙적으로 쓸 수 있었다.

뇌전의 사슬로 표적을 구속하고, 그 지점에서 스펠을 최대 위력으로 폭발시킨 것이다.

눈을 태워 버릴 듯 강렬한 전광이 폭발하면서 굉음과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먹혔어!>

프리앙카가 쾌재를 부를 때였다.

쾅!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빛을 뚫고 날아온 뭔가가 프리앙카를 쳐서 날려 버렸다.

<브리, 짓……!>

일격에 프리앙카의 허공장에 구멍이 뚫렸다. 프리앙카는 격통을 느끼며 브리짓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후우우우우!

거센 돌풍이 휘몰아치면서 빛이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이 빨려 들어간다니,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현상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야?>

브리짓은 오싹함을 느꼈다.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일단 전방을 향해 공격을 쏟아내었다.

-구전광!

뇌격의 구체가 연달아 전방을 강타했다. 연달아 터지는 충격파로 인해 널브러져 있던 자동차들이 날아가고 건물 벽 유리들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그러나 브리짓은 곧 한 가지 절망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쏘아내는 뇌전은 단 한 발도 표적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녀는 아연해졌다. 뒤늦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교복 소녀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원뿔형으로 변형된 그녀의 허공장 위에서 거대한 뇌전의 구체가 고속 회전 하고 있었다.

브리짓의 시선이 교복 소녀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여전히 무표정한 그녀의 스펠이 해방되었다.

-천둥신의 진노.

그것은 뇌격계의 정점에 위치한 스펠.

브리짓이 쏘아낸 뇌전을 모조리 한 지점으로 그러모아 증폭시킨 힘이 폭발했다.

……!

브리짓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일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었고, 그녀의 의식이 날아가 버렸다.

* * *

지직…….

‘아.’

지지지직…….

‘무슨, 일이……?’

얼마나 의식을 잃고 있었을까?

브리짓이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지옥 같은 열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굉음이 잦아드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조금씩 감각이 회복되었다.

‘아직 살아 있어.’

브리짓은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자신의 몸을 두리번거렸다.

<프리앙카!>

브리짓은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그 어마어마한 힘의 폭발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뇌전의 사슬 덕분일 것이다. 그녀는 뇌전 공격에 대해서는 거의 면역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면모를 보이니까.

하지만 프리앙카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녀가 방금 전의 일격에서 살아남았을까?

<브리짓, 일단… 후퇴해. 제로가 올 때까지…….>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리앙카를 본 브리짓은 경악했다.

교복 소녀의 손에 들린 무기가 프리앙카를 때려서 대지에 처박았다. 그리고 그 무기의 끝부분이 프리앙카의 갑옷을 부수고 가슴뼈를 함몰시킨 채였다.

‘새벽의 해머!’

그 무기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헤드가 인간의 머리통보다도 두 배는 큰 전투 망치였다.

그것을 본 브리짓의 뇌리에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들었다.

‘이놈들의 목적은 아티팩트였어!’

대만에는 아티팩트 새벽의 해머를 가진 7세대 각성자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를 책임질 유망주로 주목받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헌터 자격을 박탈당하고 자택 연금 생활을 하고 있었다.

딱히 그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은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뜻에 반발해서 정부 인사에게 부상을 입히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언론에 의한 새파란 날조였다.

이유는 한국의 70미터급 게이트 제압 작전에서 밝혀진 진실 때문이었다.

허우룽카이는 아티팩트 보유자를 활동하게 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에 권력을 휘둘러서 그를 사회적으로 말살해 버렸다.

굳이 죽이지 않은 것은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리라. 아티팩트 보유자를 죽이는 일이 적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또 군주 개체를 강림시킬 생각이었던 거야.’

성좌의 무기 보유자인 브리짓이기에 알 수 있었다.

교복 소녀가 들고 있는 새벽의 해머는 아티팩트다.

분명 타이베이에서 자택 연금 생활을 하고 있던 각성자를 죽이고 빼앗았을 것이다.

파지지지직!

프리앙카는 새벽의 해머에 가슴뼈가 부서진 채로도 저항하고 있었다.

새벽의 해머를 붙잡은 채로 격렬하게 허공장을 부딪친다.

<그냥 죽어주진 않아……!>

프리앙카는 허공장을 부딪쳐서 교복 소녀의 움직임을 묶은 채로 자폭을 준비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교복 소녀는 무표정하게 프리앙카를 바라볼 뿐이다.

<……!>

막 자폭하려던 프리앙카가 몸을 뒤틀며 행동을 멈췄다.

<아, 무, 무슨……?>

프리앙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브리짓은 알 수 있었다.

‘텔레파시!’

교복 소녀가 정신파를 칼날처럼 벼려서 일순간 프리앙카의 사고 능력을 끊어버린 것이다.

휴고를 통해 용우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브리짓과 달리 프리앙카는 정신 공격 대응이 미숙했다. 더없이 세련된 텔레파시 공격이 프리앙카의 사고의 흐름을 끊어놓자 자폭이 멈춰 버리고 말았다.

파지지지직!

교복 소녀가 불꽃의 활을 붙잡자 격렬한 반발력이 일어났다.

허공장이 격렬하게 깎여 나가면서 동시에 불꽃의 활이 부서져 가고 있었다. 아티팩트를 주인으로부터 강탈한 교복 소녀도 성좌의 무기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콰과광!

결국 교복 소녀는 불꽃의 활을 포기하고 프리앙카를 끝장내 버렸다. 프리앙카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폭사당했다.

그리고 교복 소녀의 시선이 브리짓에게로 향했다.

철저하게 무기질적인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는 순간, 브리짓은 숨이 멎을 듯한 공포를 느꼈다. 뭘 해도 당해낼 수 없다는 절망적인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

‘인류는……,’

브리짓은 생각했다.

‘여기까지인가?’

70미터급 게이트에서 하스라와 싸웠을 때보다 더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인류를 지켜왔던 구세록의 계약자들의 시스템은 붕괴했다.

두 명이 죽었고, 살아남은 다섯 명도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설령 그들 모두가 멀쩡했더라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존재가 등장하다니…….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교복 소녀가 브리짓에게서 눈을 떼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기회다!’

브리짓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텔레포트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공허 문지기.

그러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뭐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상에 브리짓이 경악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다시금 텔레포트하기 전의 지점으로 끌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티 텔레포트 필드도 해제됐는데 텔레포트가 막혔어?’

등줄기를 타고 공포가 밀려 올라왔다.

텔레포트가 발동해서 공간을 이동한 상대를 다시 제자리로 끌고 올 수 있다니, 이건 도망갈 길이 완전히 막혔다는 뜻 아닌가?

쾅!

굳어버린 브리짓의 앞에서 한 줄기 섬광이 날아와 교복 소녀를 강타했다.

하지만 교복 소녀는 멀쩡히 걸어 나오면서 옆으로 새벽의 해머를 휘둘렀다.

꽈과광!

폭음이 터지면서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로!>

브리짓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서 그를 불렀다.

언제나처럼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헬멧을 쓰고, M슈트를 입은 용우가 교복 소녀를 보며 말했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 이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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