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세계의 귀환자-106화 (106/225)

1

리사는 꿈을 싫어한다.

팬텀에서 해방된 후로는 꿈을 꾸게 되면 언제나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눈을 떴을 때 내용이 기억나는 꿈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지독한 악몽이었다는 것만은 흘러내린 눈물이나 온몸을 적신 땀으로 알 수 있었다.

‘어?’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리사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거의 꿔본 기억이 없는 자각몽이다.

‘여긴 어디지?’

주변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올려다보니 하늘은 섬뜩할 정도로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석양에 물든 하늘과는 다르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핏빛이다.

마치 가공된 조명처럼 강렬한 붉은색이라, 계속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장시간 있다 보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이다.

‘이상해. 실내도 아닌데 왜 이런 색깔이지?’

리사는 불쾌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몽환적인 들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빛이 방울져서 피어오른다.

투명하고 새하얀 빛은 피어오름과 동시에 하늘의 붉은빛에 물들어 기괴하고 섬뜩한 느낌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무수한 빛 방울을 짓밟으며 날뛰는 자들이 있었다.

‘몬스터!’

리사는 뒤늦게 자신이 보는 풍경이 굉장히 먼 곳의 풍경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들판이 상식적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는 넓이였고, 하늘의 붉은빛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어서 원근감이 무너졌을 뿐이다.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빛 방울도 반딧불처럼 작다고 생각했지만, 원근감을 파악하고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크기였다.

그 사이를 무수한 몬스터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수가 얼마인지는 셀 수도 없었다. 최소한 천 단위인 것 같았다.

‘7등급 암흑거인.’

리사는 그중에서 7등급 몬스터를 발견하고 움찔했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형상이 날뛰고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20개체가 넘는 암흑거인의 무리들이 싸우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리사가 그 광경에 넋을 잃었을 때, 갑자기 그들 사이에서 섬광이 터졌다.

눈이 멀어버릴 듯 어마어마한 섬광이었다. 일순간에 암흑거인들이 빛에 삼켜지고 반경 수 킬로미터가 폭발에 뒤덮인다.

콰아앙! 콰광! 콰과과과과과……!

심지어 그걸로 끝도 아니었다.

동급의 폭발이 연달아 전장 곳곳에서 터졌다. 그럴 때마다 저등급 몬스터들이 수십 마리 단위로 쓸려 나갔다.

그오오오오오!

그 폭발을 압도하며 땅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저거…….’

직경이 300미터를 넘는, 거대한 불가사리처럼 생긴 존재를 본 리사가 경악했다.

‘랜드 스타!’

중국 베이징을 차지하고, 중국을 7국으로 갈라놓은 원흉.

군단의 산실(産室)이라 불리는 9등급 몬스터, 랜드 스타.

그 주변에서 꿈틀거리며 솟구치는 거대한 그림자들이 있다. 8등급 몬스터 가이아 드래곤 12마리가 랜드 스타를 호위하듯이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콰과과과과과과……!

랜드 스타로부터 뿜어진 한 줄기 섬광이 전방 5킬로미터를 관통했다.

그 궤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증발해서 사라지고, 한 박자 늦게 저편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성좌의 아바타는?>

그때 리사가 익히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리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신에 푸른 섬광을 휘감은 남자가 유성처럼 낙하해 오고 있었다.

서용우였다. 그는 누더기 같은 망토를 걸치고, 헌터용 양손 대검보다 두 배는 거대한 비현실적인 검을 들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하늘이 현란한 폭발로 수놓아졌다.

붉은 하늘 아래 무수한 비행 몬스터들이 용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지상의 몬스터들이 용우를 향해 대공 포격을 가했다.

용우는 그 모든 방해를 뿌리치면서 몬스터 대군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불꽃과 굉음은 소멸. 둘이 폭풍용 하나 치워줬다.>

폭풍용은 9등급 몬스터의 이름이었다. 영국을 파멸시키고 인류가 범접하지 못할 땅으로 만들어 버린 재앙.

<남은 9등급은 셋이군. 랜드 스타 치우면 이제 둘이고. 근데 또 성좌의 아바타 하나 오는 것 같은데? 이번엔 또 누가 죽은 거지?>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죽은 둘 중 하나는 이사벨라고.>

<뭐야, 걔는 어쩌다 죽었대?>

<좀 전에 강하 중에 내 뒤통수를 치더군. 그래서 치웠어.>

<허이구, 그렇게 몸을 사리더니만 이제 와서…….>

<나머지 하나는 누군지 모르겠군.>

누군가의 텔레파시에 용우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였다.

핏빛 하늘의 두 지점이 빛을 발했다.

‘아, 저건!’

하늘을 올려다본 리사는 아까 전에는 알아보지 못했던 특이점을 발견했다.

핏빛 하늘에 흐르고 있는 구름들 사이로, 검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형상들이 있었다. 리사도 익히 아는 형상이었다.

‘성좌.’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지닌 성좌의 무기를 상징하는 7개의 문양이 핏빛 하늘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빙설의 창과 뇌전의 사슬이 발한 빛이 지상으로 쏘아져 나갔다. 고속으로 낙하 중인 용우를 앞질러서 지상에 도달, 대폭발을 일으킨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돌풍이 폭연을 걷어내면서, 리사가 익히 알고 있는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세록의 계약자들이 변신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한 성좌의 아바타들.

콰아아아아아아!

그들이 종횡무진 전장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리사는 전율했다.

‘차원이 달라.’

성좌의 아바타들은 7등급 몬스터들을 어린애 상대하듯 죽여 버리고, 8등급 몬스터인 가이아 드래곤들이 무더기로 달려드는데도 전혀 밀리는 기색 없이 힘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둘이나 왔으니 일이 좀 쉬워지겠는데?>

<놈들은?>

<언데드들은 광휘의 검을 중심으로 막고 있어.>

<타락체는?>

<이쪽은 나랑 비연이가 막는 중. 까다로운 놈들이 와서 고생 중이다. 아, 방금 비연이가 한 놈 죽였어.>

그 말에 용우가 짜증을 냈다.

<어디선지는 모르겠는데 한 놈은 놓쳤네. 죽은 누군가는 이놈한테 죽은 건지도 모르겠어.>

<뭐?>

<랜드 스타 위에 한 놈 나타났어, 젠장. 역시 일이 쉽게 풀리는 법이 없군.>

그렇게 말하는 용우가 낙하 궤도를 바꾸면서 다섯 발의 에너지탄을 지상으로 떨구었다.

‘어?’

리사는 깜짝 놀랐다.

콰아아앙! 콰과과과과……!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소형 전술핵을 방불케 하는 대폭발이 연달아 터지면서 랜드 스타 주변에 존재하던 것들을 쓸어버린다.

파지지지직!

그 직후, 용우의 앞에 나타난 누군가가 그와 격돌했다.

비인간적인 용모를 지닌 존재였다. 상아빛 피부와 붉은 눈동자, 그리고 백발을 휘날리는 그 존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용우와 싸우기 시작했다.

‘빨라!’

가속 스펠을 몇 개나 동시에 걸고 있는 둘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랐다. 게다가 전투 중에 수시로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위치를 바꿔서 도저히 눈으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파악!

그 격돌의 끝에서 용우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하하하! 어떠냐? 내가 빚을 갚아주겠다고 했…….>

의기양양해하던 적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미끼였어, 멍청아. 너랑 길게 놀아줄 시간 없거든.>

뒤에서 나타난 용우의 분신의 손이 적의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이, 이런 비열한 놈……!>

<아직도 그런 거 따지는 희귀한 머저리가 남아 있었군.>

용우는 분신을 해제하고 적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콰직!

곧바로 머리통을 부숴 버리고는, 머리 잃은 몸통에 손을 대었다.

-에너지 드레인!

통제할 의지를 잃은 마력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용우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용우의 잘려 나간 팔이 순식간에 다시 자라나고, 적의 몸이 수분을 잃은 미라처럼 바짝 말라가는 게 아닌가?

리사가 그 광경을 보며 기겁할 때였다.

“그만.”

갑자기 용우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아.’

리사는 그것이 꿈속의 용우가 아닌, 현실의 용우의 목소리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꿈이 끝났다.

* * *

눈을 떴을 때는 어두컴컴한 자신의 방 안이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리사는 곧 침대에서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왔다.

거실에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는 용우가 있었다.

용우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리사를 보지 않으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른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버티지 못한 것은 리사 쪽이었다.

“저…….”

“사과하지 마.”

“…….”

“네가 잘못한 거 아냐, 내 실수지.”

용우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소파에 누운 채 노트북으로 2015년에 인기 있던 드라마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리사와 그의 정신이 연결되면서, 리사가 그의 과거 기억을 꿈으로 엿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였다.

‘내가 구세록의 계약자가 아니라서인가, 아니면 구세록의 계약자라도 현 소유자와 계승 후보의 정신이 연결될 여지가 있는 건가?’

지금까지 리사가 훈련 중에 몇 번이나 셀레스티얼로 변신했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셀레스티얼로 변신해서 허우룽카이와 싸운 그날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투 중에 너무 리사한테 몰입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리사의 특이체질 때문에?’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리고 있을 때, 리사가 입을 열었다.

“저…….”

용우가 말해보라는 듯 바라보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본 건…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그래.”

“…….”

리사는 할 말을 잃었다.

꿈속에서 본 광경은 도저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용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비스의 종반기였지. 한 달 전쯤? 그래도 그때까지는 100명 정도는 남아 있었는데…….”

“지구에서도…….”

리사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려나온다는 사실에 흠칫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태가 일어날까요?”

“아마도.”

용우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긍정하자 리사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본 광경은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저런 재앙이 지구에서 터진다면, 그날이 바로 인류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지구에는 게이트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데다가… 아마 사태가 저 지경에 이를 때쯤 되면, 너도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하게 될 테니까.”

“선생님 기준의 한 사람 몫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너한테 기대하는 건… 흠, 그래. 지금의 차준혁보다는 강해져야겠지.”

리사 입장에서는 눈곱만큼도 현실성이 안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 부족한 부분은 결국 내가 메꾸게 될 테니까.”

리사는 누구의 부족한 부분이냐고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우가 메꿔야 할 부족분의 대상은, 분명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전 인류일 것이다.

* * *

한국은 세계적인 헌터 강국으로 안정적인 국토방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런 한국조차도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라는 영토 안에 많은 재해 지역을 안고 있었다.

당장 구 북한 지역의 대부분이 그랬고, 강원도와 제주도 같은 곳도 있었다.

2028년 11월 말.

재해 지역 강원도.

8등급 몬스터 암흑호랑이의 서식지.

“드디어 시작이군.”

수직 이착륙 수송기에서 내린 팀 블레이드의 사장, 오성준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뒤를 따라서 한 사람이 내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헬멧을 쓰고 M슈트라 불리는, 특수한 헌터용 배틀 슈트를 입은 남자.

세간에는 제로라 불리는 자, 서용우였다.

“평양이 아니라 강원도를 고른 건 의외로군요.”

“정부 입장에서는 구 남한 영토부터 모두 수복하고 싶을 테니까. 정치적인 선택이지. 그리고 개성에서 더 위로 치고 올라가는 건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는 일이고.”

“하긴 그쪽은 하나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니긴 하죠. 이쪽도 하나가 아니긴 하지만…….”

강원도에 도사리고 있는 8등급 몬스터는 암흑호랑이만이 아니다.

동부에는 은갑옷거북이, 남부에는 흰불꽃여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강원도를 수복하려면 이 셋을 모두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셋의 주변에는 지속적으로 일어난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한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들이 존재하고 있다.

오성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현 시점에서는 우리만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만…….”

팀 블레이드 1부대는 원래부터 한국 최정예 헌터 부대였다.

그리고 용우에게 스펠 스톤을 공급받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전투 수행 능력이 그때보다 현격하게 높아져 있었다.

부대원 전원이 체외 허공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보유 스펠도 다들 대폭 늘었으니 당연했다. 여기에 권희수 박사의 걸작, M슈트와 윙 슈트까지 더해진 지금 충분히 8등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승부를 결해볼 만했다.

용우가 물었다.

“그럼 팀 블레이드만으로 해보시겠습니까?”

“아니, 이번에는 자네들에게 맡기지. 자네들을 보고 공부하겠어.”

“그건 무립니다.”

용우가 그의 옆에 서며 말했다.

“우리 팀은 남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행정 데이터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최강의 헌터 팀, 팀 섀도우리스(Shadowless)의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1